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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영식의 삶과 신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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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설일 : 2005/11/11
 

예수 이야기
예수는 신화인가?(2)
2008/07/17 오후 2:17 | 예수 이야기

과연 우리는 역사의 예수를 찾을 수 있을까?

한국교회는 신학계의 발전과는 무관하게 자신의 길을 걸어가고 있는 듯이 보인다. 대다수의 신앙인들은 학문적인 책보다는 신앙서적,경건서적에만 눈길을 돌리고 있다. 이런 현상은 비단 신앙인들에게만 국한된 것은 아니다. 목회자들도 마찬가지다. 설교를 위해 자극적이고 감성적인 언어들을 찾아내어야 하기 때문일까?
학문을 하는 신학생들도 마찬가지다. 이들 역시, 신학교에 들어오자 마자 전도사 생활이나 교사생활을 해야 하기 때문에 현재 논의되고 있는 학문적인 토론들에 관심을 기울일 여력이 없다. 왜냐하면, 학문적 논의라는 것은 어디서나 마찬가지지만, 확실성 보다는 개연성을, 어떤 결정보다는 고민을 던져주기 때문이다.
고민할 시간적, 정신적 여력이 없는 한국교회는 그동안 가르쳐 왔던 대로 가르치고 새로운 논의에 대해서는 침묵하거나 불신앙으로 매도해 버리는 경향이 있다.

기독신앙은 예수신앙이다. 예수의 말씀과 그의 행위에 근거를 두고 있는 것이 바로 그리스도교의 신앙이다. 그런데, 예수의 말씀과 그의 사역을 우리는 어디서 배울 수가 있는가? 일차적으로는 성서며, 오늘날에 새로 발굴된 예수에 대한 옛 문헌들이다. 오늘날 학자들은 "역사적 예수 연구"라는 이름하에 우리가 이미 알고 있는 성서의 문헌과 아직 잘 알려지지 않는 나그함마디 문서나 쿰란문서에서 역사의 예수를 복원하고자 한다.

과연 이 역사적 예수 복원이 가능할지는 여전히 의문스럽다. 복원에는 항상 복원하고자 하는 사람의 개인적인 전제와 관심, 잣대라 놓여 있기 때문이다. 다시 말하면, 복원된 역사의 예수는 이미 해석된 예수일 수 밖에 없지 않느냐는 생각이다. 그러나 하나의 해석이라고 하더라도, 그것이 우리가 무비판적으로 무덤덤하게 그저 수용해 왔던 예수 상에 비해 보다 근거있는 것이라고 한다면 귀 기울여 들어보아야 하지 않을까?

아래는 타이센의 책을 통해 역사적 예수 연구의 역사를 시기적으로 나누어 요약해 보았다.


역사적 예수를 찾아서:

게르트 타이센의 Der historische Jesus에서

소위 “역사적 예수 연구”는 크게 다섯 시기로 나뉘어진다.

제1기에는 라이마루스(1694-1768)나 쉬트라우스(1808-1874) 등과 같이 계몽주의의 합리성의 잣대를 가지고 복음서의 예수를 신화적인 것, 비역사적인 것으로 규정함으로써, 소위 역사의 예수와 신앙의 그리스도 사이에 메울 수 없는 간격을 인지했다.

제2기에는 소위 역사비평에 의해 예수상을 재구성하려는 시도들이 등장한다. 이들은 교회의 교의화된 그리스도상에서 벗어나 역사의 예수를 성서비평의 원리를 통해 복원할 수 있다고 믿었다. 바우어나 홀쯔만의 연구가 여기에 속한다. 공관복음서의 두 자료설이 이 때 등장한다.

제3기는 알버트 슈바이쩌, 브레데 그리고 루돌프 불트만(1884-1976)으로 이어지는 시기이다. 이들은 공관복음서의 오래된 자료층도 역시 교회공동체의 작품임을 인지했다. 즉, 예수에 대한 이야기들이 이미 신앙적인 관심에 의해 수집되고 선별되고 채색되었기 때문에 성서의 예수상을 통해 역사의 예수에게로 가는 길은 원칙적으로 불가능하다고 보았다.

제4기는 불트만의 제자인 에른스트 케제만같은 학자에 의해 대표된다. 이 시기를 특히 “새로운 질문”의 시기라고 말하는 것은 제3기의 학자들에 의해 원칙적으로 불가능하다고 선언된 역사적 예수연구가 다시 새롭게 질문되었기 때문이다. 여기서는 역사의 예수와 교회공동체의 그리스도상 사이의 어떤 연관성이 있음을 주장하면서 방법론적으로는 종교사와 전승사적 연구들을 수용하면서 역사의 예수와 초대교회공동체의 고백 사이에 무엇이 다른지에 관심하였다. 즉, 초대교회공동체가 그려낸 그리스도상은 역사의 예수를 반영한 것이지만, 그들에 의해 그려지지 않은 예수의 원초적인 상을 돌출해 낼 수 있다고 본 것이다.

제5기를 영미권의 학자들은 “세번째 추구”(the third quest)라고 부른다. 제4기의 관심이 초대교회의 정황에 집중하면서 역사의 예수와 초대교회의 그리스도 상 사이의 연속성과 불연속성에 관심을 집중했다고 한다면, 이 시기에는 예수 당시의 사회세계를 추적하여 역사의 예수와 초대교회 공동체가 당면하고 있던 사회상 사이에 연관성을 검토한다. 이를 위해서 성경 외의 새롭게 발견된 자료들을 적극적으로 활용하는 것도 특징이다. 물론 이 시기에 속하는 많은 학자들이 모두 일치되는 예수상을 전하는 것은 아니다. 예수를 유대교 내의 개혁운동을 주도한 인물로 파악하면서 미국의 학자들은 예수를 비종말론적인 예언자, 지혜로운 현자로 파악하기도 한다. (타이센은 이들의 비종말론적 예수를 갈릴리 지방의 예수가 아니라, 캘리포니아식 예수라고 표현한다.) 어쨌든 이들은 예수 당시의 사회상을 복원하고 예수를 그 시대의 아들로 파악하려고 한다. 여기서는 역사적 개연성이 잣대로 놓여 있다.


신앙과 역사: 의미의 해석사.

예수의 역사 없는 예수신앙이 가능할까? 비록 신앙자체가 역사와 동일시 하지 않다고 하더라도, 신앙은 역사를 매개로 해서 일어나지 않으면 그 영향력을 쉽게 상실하고 만다. 예수 신앙은 예수의 역사를 매개로 해서 다양하게 전개되었다. 예수 신앙의 다양성은 예수의 역사가 가지고 있는 영향력을 단적으로 대변하고 있다고 할 수 있다.

예수의 역사는 유대묵시문학적 지평에서 새롭게 이해되고 의미있는 사건으로 발전되었으며, 헬레니즘적 지평에서, 영지주의적 지평에서는 또 다른 의미의 역사로 해석되어 전개되었다. 예수는 하나님의 아들로, 인자로, 고난받는 종으로, 예언자로, 영적인 계시자로, 귀신 축출자로, 치료자로, 지혜로운 현인으로, 빛, 로고스로, 하나님으로부터 온 하나님으로, 성자 하나님으로 해석되었다.

오늘날도 예수의 역사는 이 역사와 조우하는 시대상의 의미지평 안에서 새롭게 해석되어 다양하게 전개되고 있다. 예수를 자유사상가로 해석하는가 하면, 혁명가로, 민주투사로, 해방자, 무정부주의자로 이해하기도 하고, 어떤 이는 휴머니스트로, 최고경영자 CEO로, 사람의 마음을 사로잡는 예술가로 해석하기도 한다. 예수의 역사는 새로운 의미지평과 만나면서 때로는 너무 지나치다 싶을 정도로 새로운 형태로 등장하기도 한다. 무엇이 맞고 틀리냐를 떠나 이것이 예수의 역사가 안고 있는 힘이 아닐까?

역사의 예수가 누구인지 복원하려고 할 때, 예수 자신만이 아니라, 예수와 관계하고 그를 따랐던 자들 사이에 일어난 "사건"을 복원하지 않으면 우리는 실제로 그에 대해 아무것도 이해할 수 없다. 그가 목수였거나 농부였다는 주장은 사실 아무것도 말하지 않는 것과 같다. 왜냐하면, 그것은 왜 예수 운동이 일어났는지를 도무지 설명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인간은 언제나 사회적 관계 속에서 파악된다. 따라서 예수가 누구인지는 왜 예수를 메시야로, 하나님의 아들로, 인자로, 고난받는 종으로 불렀는지 하는 관계적 사유 안에서  파악되어야 한다. 관계적 언어와 사건 안에서 우리는 예수가 누구였으며, 이 언어들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파악할 수 있을 것이다. 오늘날의 역사적 예수 연구를 하는 학자들의 연구결과들이 이를 드러내는데 도움을 주기를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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