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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교권력을 우려한다
- 2008년 4월 18일(금) 13:00-17:00 / 성공회 대성당 - - 제3회 불자-기독자 교수 공동 학술대회 / 2부 ‘한국사회와 종교권력’ - - 박광서(서강대 교수/종교자유정책연구원 공동대표) -
기독교의 등장
최근 수 년 사이 종교 문제와 갈등이 사회문제로 떠오르면서 다문화ㆍ다종교 사회인 우리 사회의 통합과 평화에 최대 걸림돌이 종교문제일지도 모른다는 불안감의 배경이 되고 있다. 특히 기독교의 권력화 현상으로 인한 사회 갈등을 예방하거나 최소화하기 위해 국민적 논의와 합의가 필요한 시점이라는 점에서 본 학술대회가 중요하며 시의적절하다 할 수 있다. 발표문은 개신교 성장의 역사적 배경과 과정, 그리고 최근의 권력화 현상에 대해 짜임새 있게 요약해 주고 있다. 문명국가의 신종교로서의 기독교 이미지, 친미 기독교 세력의 등장, 미군정과 건국초기의 기독교 우대정책, 군사독재정권 시절 민주화 운동 선봉자로서의 공로 등으로 기독교가 우리 사회에 정착하게 된 배경과 함께 10여 년 전부터 본격적으로 정치세력화 하는 과정을 꼼꼼하게 설명하고 있다. 특히 80년대까지 국민의 박수를 받으며 자유와 인권을 위해 싸워주던 진보 기독교와는 달리 민주화가 한 고비 넘긴 90년대부터 그동안 정교분리를 주장, 교회의 정치ㆍ사회적 참여를 비판하며 사회돌풍을 피해 체력강화를 해오던 주류 보수 기독교로 ‘선수교체’ 되면서 스스로 정치권력으로 변신하고 있는 기독교계를 날카롭게, 그리고 우려스럽게 분석하고 있다. 평소 놓치기 쉬운 부분까지 폭넓고 객관적으로 다룸으로써 단순한 공감을 넘어 종교사회적 현상의 본질에 대해 새롭게 성찰할 수 있는 계기를 마련해주고 있다는 점에 각별한 감사를 드린다. 그것은 신뢰 받는 중견 종교학자이고 우리 사회에 대한 애정이 깊은 발표자가 아니면 하기 어려운 일이다. 반면에 종교학이나 사회학 전공자가 아닌 논평자로서는 종교권력에 대해 학술적으로 심도 있는 논평을 할 입장은 아니다. 다만 불교인의 한 사람으로 제3자의 시각에서 기독교 권력화 현상을 어떻게 볼 수 있을지 보완적인 시각으로 언급할 부분이 있을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비기독교인의 입장에서 교회세습이나 여성차별, 해외선교 등 교회내부의 문제를 다루는 것은 적절치 않다는 생각이며, 사회적 의제 또는 정치영역과 관련된 내용, 그 중에서도 비기독교인으로서 더 절실하게 느끼는 부분을 세밀하게 논의하는 것이 필요할지 모른다. 특히 ‘종교자유정책연구원’이라는 단체를 중심으로 종교시민운동을 하고 있기에, 종교권력의 문제점을 ‘종교의 자유’라는 헌법상의 종교인권과 ‘정교분리’라는 국민합의 차원에서 살펴보는 것이 논평자의 몫이 아닐까 생각해 본다.
종교권력, 사회를 흔들다
권력은 복종을 강요하는 사회적 힘을 의미하며, 정치는 그 권력을 어떻게 배분하는가를 담당하는 영역이다. 권력은 통치를 위해 국민으로부터 위임 받은 국가권력을 지칭하지만, 넓게는 ‘강제적 힘으로 느껴질 만한 모든 세속적 실력’을 통칭 권력이라고도 한다. 공권력 외에 언론ㆍ학교ㆍ기업ㆍ종교 등 특정 이해집단이 본연의 고유 영역과 방식을 넘어 사회적 강제성을 확보하면 사회 권력이 되는 것이다. 종교가 정치에 관여하는 것은 독재ㆍ부패ㆍ인권침해 등 불의에 대해 견제하는 청량제 역할에 그쳐야 한다. 그것이 국민들이 바라는 종교에의 기대 수준이며, 그 이상 직접적이고 깊숙한 개입은 특정종교의 이해관계를 극대화하기 위한 권력화로 간주될 소지가 다분하다.
종교 관련한 문제가 사회 이슈화된 것은 10여 년 전부터이지만, 2004년 이후 전례 없이 빈번하고 격해지기 시작하였다. 학교 내 종교자유를 주장하며 단식까지 했던 강의석군 사건, 서울시를 하나님께 바쳐버린 이명박 전 서울시장, 시 예산을 선교사업에 쓰려 했던 정장식 전 포항시장 등 공교육현장과 공직사회에서 사적인 종교가 과잉 표출됨으로써 국민의 기본권이 제한되거나 비기독교인들을 소외시킨 종교문제가 연달아 불거졌다. 국가보안법이나 반북친미 같은 정치적 이슈를 들고 나온 기독교 보수집단의 시국집회는 처음에 의아해하던 국민조차 이제 익숙한 장면이 되었다. 지난해에도 종교문제는 언론의 도마 위에서 떠난 적이 거의 없다. 목사들이 삭발까지 하며 한나라당과 함께 기어코 개정 사립학교법을 무력화 시키는 것을 보며 국민은 혼란스러워했고, ‘문명의 충돌’을 실감케 해준 개신교인들의 무모한 아프간 선교행위와 인질사태로 인해 국민 모두가 함께 볼모가 되어 짜증스러운 여름을 보내야 했다. 최근에는 재정투명성 문제와 종교인 소득세 납부 문제로 기독교가 시민사회와 힘겨루기를 하더니, 정치의 계절인 대선과 총선에 즈음하여 또 다시 종교색깔 드러내기나 종교정당의 출현 등 종교권력의 분출로 인해 사회가 흔들리고 있다.
종교권력과 국민의 기본권
개인이나 집단의 과도한 종교적 행위는 종교 오염이나 무례로 비쳐져 타인을 당황하게 하거나 불쾌하게 만들기 쉽고, 한 발 더 나아가면 부당한 차별이나 종교폭력으로 발전해 증오와 분노를 유발하게 될 뿐만 아니라 제도적ㆍ관행적인 인권침해로 굳어질 가능성이 크다. 종교집단이 더 권력화 되기 전에 공존의 기준에 대한 사회적 합의가 시급한 이유다. 다종교 사회에서 서로 얼굴 붉히지 않고 평화롭게 살기 위한 최소한의 기본 룰이 있다. 개인적인 종교행위는 다른 종교인들이 불편해하지 않을 정도라야 한다. 더 중요한 것은 공공영역을 종교로부터 자유롭게 해야 한다는 점일 것이다. 공공영역은 사회구성원 그 어느 누구도 개인적 신념이나 이익을 위해 독차지할 수 없도록 합의한 공간이기 때문이다. 이 공간마저 종교로 오염시킨다면 숨 쉬고 살 곳이 어디 있겠는가. 공공영역에서의 종교 관련 사회문제들은 크게 세 가지로 구분된다. 공교육 현장인 학교에서의 종교교육ㆍ종교의식의 강요와 특정종교인들만의 선별채용 등 종교로 인한 인권침해와 차별, 공공행사에서 공직자의 특정종교 행위, 그리고 공공장소에서의 무차별 선ㆍ포교행위 등이 그것들이다. 우리 사회에 이러한 법질서의 틀 또는 게임의 룰부터 먼저 자리 잡아야 힘의 논리에 의해 종교가 권력화로 치닫는 것을 막을 수 있을 것이다. 다양한 진리가 공존하는 글로벌 문화시대에 여러 종교가 활성화되어 있는 한국사회는 그 나름대로 인류문화에 기여할 자격과 역할이 있을 것이라는 긍정적인 시각과 기대가 있는 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기독교의 편협성과 배타성이 오히려 부담스럽다는 견해 또한 만만치 않다. 여러 종교들에 대해 쓴 소리를 마다하지 않는 김용옥은 “기독교는 질시와 배타와 반목의 좁은 패거리 의식에서 벗어나야 한다”고 비판했다. 사랑이란 간판을 내걸고 미움을 가르쳐 ‘패거리 문화’를 만드는 게 종교가 할 일이라고 생각지 않는다. 그러지 않아도 학연과 지연에 의한 갈등으로 멍든 우리 사회에 ‘종연(宗緣)’까지 얽혀서 특정종교 또는 그 종교인들만의 ‘끼리끼리’ 분위기를 만들어 결과적으로 다른 종교인들을 노골적으로 차별한다면 얼마나 살기 피곤한 세상이 될 것인가. 영국 어느 방송국에서 내보냈다던 맨해튼을 배경으로 한 “종교 없는 세상을 상상해 보라!”는 광고가 솔깃해지는 세상이다. 다종교 국가 중 한국만큼 비기독교인으로 사는 데 불편을 느끼는 나라는 없다는 말이 있을 정도라니 ‘불안한 동거’라는 표현이 적절한 것 같다. 최근 몇 년 사이 반기독교시민운동연합, 종교비판자유실현시민연대 등 안티기독교 단체나 기타 수십 개의 안티기독교 인터넷사이트들과 종교법인법제정추진시민연대, 종교자유정책연구원 등 일련의 종교시민운동 단체들의 공개적인 활동은 배타적인 기독교가 자초한 것이기도 하지만, 건강한 종교계를 바라는 국민의 기대가 있기에 가능한 일일 것이다.
근본주의, 배타성과 권력화의 뿌리
종교는 두려움과 고통의 궁극적 뿌리를 찾아 세속적 탐욕을 버리고 타인과 사회를 자비와 사랑으로 보살피는 역할을 한다. 그런데 무종교 또는 타종교인들에게 무례를 넘어 공격적일 수 있다는 사실을 단순히 개인적인 성향으로 돌려버릴 수 있는 것일까. 다수가 자주 그런다면 종교집단 전체에 문제가 있다고 보아야 한다. 교리 해석에 문제는 없었는지, 혹시라도 알게 모르게 증오심과 적개심을 자극하고 부추기는 종교교육은 없었는지 진지하게 함께 고민할 필요가 있다.
기독교의 배타성과 공격성은 19세기 자유주의 신학과 현대 과학사상의 영향력 확대에 대항하여 반동적으로 일어난 일종의 종교운동이었던 기독교 근본주의가 그 뿌리라고 할 수 있다. 중세까지 정치ㆍ과학ㆍ철학ㆍ예술 등의 여러 분야와 미분화된 상태에서 그 영향력이 절대적이었던 기독교였지만, 16세기부터 19세기까지 갈릴레오(1564~1642), 뉴턴(1642~1727), 다윈(1809~1882)이 주도한 과학혁명을 거치는 동안 기독교 교리에 대한 신뢰가 무너지기 시작하였다. 기독교에 가장 위협적이고 큰 타격을 준 것은 1859년 ‘종의 기원’이란 저서로 발표된 다윈의 ‘진화론’이었음은 두말할 나위 없다. 기독교는 권위를 다시 찾을 필요를 절실하게 느끼게 되었고, 1881년 프린스턴 대학의 하지와 워필드는 기독교 신앙의 근본교리를 고수해야 한다는 명분 아래 기독교 근본주의를 주창하게 된다. 그 핵심교리는 철저하게 문자주의에 기초한 소위 ‘성서(聖書)무오류설(無誤謬說)’로서 타종교인은 물론 같은 종교인이라 해도 신앙 노선이 다르면 거부하는 폐쇄적이고 배타적인 성격을 띠고 있다. 근본주의는 20세기 초반까지 세를 얻다가 양자역학과 상대성 이론 등 현대과학의 풍성한 성과로 인해 반지성주의라는 비판을 받고 1930년대 이후 퇴조하기 시작했는데, 1,2차 세계대전을 거치면서 미국 개신교 내의 보수운동으로 다시 고개를 들게 된다. 특히 1975년 월남전 패배와 함께 도덕적 침체를 벗어나기 위해 사회분위기를 다시 기독교 근본주의로 몰아감으로써 새로운 탈출구로 삼게 되는데, 1978년 레이건은 대통령에 당선되자마자 ‘성경의 날’을 선포하고, “악의 리비아와 선의 이스라엘의 갈등이 이미 구약에 예언돼 있었다”고 선언한 뒤 리비아에 무자비한 폭격을 지시하기도 했다. 미국은 1990년대 초 소련의 붕괴와 함께 동서냉전이 막을 내린 후 세계 유일 최강국이란 위상이 기독교 근본주의에서 온다고 착각한 나머지 반미ㆍ반기독교 세력인 이슬람권을 응징하기 위해 거침없이 걸프전, 아프가니스탄 전쟁, 이라크전 등 수 차례 전쟁을 일으키게 되며, ‘악의 축’에 대한 확신, 그리고 자신과 자신의 국가만이 신의 대리자로서 정의를 관장한다고 믿는 조지 W 현 부시 대통령 시대에 정점에 달한 듯하다. 그는 이라크전에 앞서 “하늘에 계신 아버지와 협의했다”고 말했고, 전쟁 발발 이후에는 전 세계를 향해 주저 없이 ‘미국 편에 서지 않으면 테러리스트 편’이라고 윽박지르며 줄 세우기를 꾸준히 시도해왔다. 역사를 돌아볼 때 자기 종교만이 진리라는 극우 기독교도들의 ‘선악놀이’는 끝날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한국기독교사회문제연구소의 조사에 따르면, 기독교 신자들 중 ‘성경은 글자 하나하나가 하나님의 말씀이다’라고 믿는 사람들이 놀랍게도 목회자가 85%, 평신도는 92%에 달한다고 한다. 1910~20년대 미국의 선교사들이 서구종교 우월주의에 기반해 전통적 신앙을 비난하고 말살하고자 가르쳐준 대로 너무나도 철저히 믿고 따르는 한국인들에 대해 미국인들 스스로도 놀랄 정도라고 한다. 지구상의 기독교 중 한국의 개신교가 미국 다음으로 배타성과 공격성이 강한 배경이며 우리 사회의 통합에 오히려 부정적인 기능을 할지도 모른다는 우려가 가시지 않는 이유다.
절대선은 절대악이다. 20세기 중반 러시아의 반체제 작가 앙드레이 시냡스키는 그의 저서 ‘사회주의 리얼리즘에 대하여’에서 “감옥을 없애기 위하여 우리는 새로운 감옥을 지었다. 모든 국경은 사라져야 한다고 해서 중국식 장벽을 쌓았다. 노동은 휴식과 쾌락이어야 한다고 해서 우리는 강제노동을 도입했다. 한 방울의 피도 흘려선 안 된다고 해서 우리는 죽이고 또 죽였다”고 설파한 바 있다. 평등이란 ‘절대선’을 위해 출발한 사회주의가 어떻게 파멸이란 ‘절대악’으로 치달을 수가 있는지에 대한 그의 지적을 음미하면서 종교근본주의의 위험성을 철저히 경계해야 할 것이다. 사랑으로 포장된 위선과 배타를 우리 모두 직시해야 한다. ‘원수를 사랑하라’는 예수님의 말씀을 들이댈 생각은 없다. 그러나 ‘이웃을 사랑하라’는 동서고금의 가르침 정도는 늘 떠올리며 살아가야 종교인이라고 할 수 있지 않을까. 철저하게 자기 자신이나 자기 종교집단의 이익에만 집착해온 사람들에게 그마저도 어려운 일일까. 종교학자 장석만은 “하나의 종교만이 있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을 때는 항상 불행했다. 종교는 이중성을 지니고 있다. 인간이 지닌 가장 고귀한 이상을 실현시키기 위해 애쓰는 측면이 있는 한편 인간의 잔인성을 거리낌 없이 배출해온 측면도 있다. 그래서 종교인은 항상 ‘다른 것’을 ‘잘못된 것‘으로 간주하려는 충동을 이기기 위해 긴장해야 한다”라고 지적했다. 종교의 이중성에 대해 늘 되돌아 볼 것을 주문하고 있는 것이다.
힘숭배의 종교
2005년도 인구주택총조사에 의하면, 우리나라의 종교 인구는 불교 22.8%, 개신교 18.3%, 가톨릭 10.9%, 기타 1.0%로 총 인구의 53%에 해당하는 사람들이 종교를 갖고 종교간 균형을 이루고 있는 편이다. 그런데 국회의원 중 종교인이 3/4을 넘는다고 한다. 국민 전체 종교비율의 1.5배 수준이다. 특히 개신교와 천주교 등 기독교인이 국회에서 차지하는 비율은 전 인구의 기독교인 비율의 2배 이상이라고 한다. 정치인이 더 도덕적이고 종교적이어서가 아니라 권력지향적 종교에 기대고 싶은 심리 탓이라고 보는 게 타당할 것이다. 심지어 현직 목사들까지 다수 자리를 차지하고 있는 정치판을 어떻게 보아야 할 것인가. 우리 사회에서 정부를 포함해 기독교를 제어할 수 있는 어떤 세력도 존재하지 않는 듯하다. 종교권력 문제를 다룰 때 기독교가 주로 대상이 되고 있는 이유다. 불교는 상대적으로 도그마성이 적은 교리의 특성상 타인에 대한 강제성이 적을 뿐만 아니라, 권력화도 사회를 향할 만큼 진화되어 있지 않고 주로 자체 내부 다툼으로만 한정되는 경우가 대부분이어서, 사회 권력으로서는 기독교에 비해 그 영향이 미미할 수밖에 없다. 대내외적인 환경으로 인해 불교를 포함한 한국의 전통종교가 정신 차리거나 기력을 회복하기 전에 미국의 절대적인 지원 아래 급성장한 기독교가 비판의 중심에 서게 된 것은 어찌 보면 당연한 일인지도 모른다. 한국 기독교가 어떻게 ‘힘숭배’의 권력종교로 서게 되는지 살펴보자.
영락교회를 세우고 대광학교를 설립한 한경직 목사의 권력 지향성은 많은 것을 생각하게 한다. 그는 1938년 신사참배 결의 시 “권세들에게 굴복하라. 권세는 하나님께로 나지 않음이 없나니 모든 권세는 다 하나님의 정하신 바라. 그러므로 권세를 거스르는 자는 하나님의 명을 거스름이니 심판을 자취하리라”는 로마서 13장을 인용하면서 권력에의 굴종을 호소했다고 한다. ‘국가조찬기도회’ 또한 유신독재 찬양 등 역대 정권의 정치적 정당성을 확보하기 위한 수단으로 이용돼 왔다는 비판을 감수해야만 했다. 대학생선교회를 이끌었던 김준곤 목사는 73년 조찬기도회 설교에서 “민족의 운명을 걸고 세계의 주시 속에서 벌어지고 있는 10월 유신은 하나님의 축복을 받아 기어이 성공시켜야겠다”고 했다고 한다. 국가를 위한 기도는 종교계 전체가 따로따로 알아서 할 일이다. 최고 권력층을 초청한 특정종교인들의 기도회는 자신들의 기득권 강화와 권력 교두보 확보 전략으로 대표적인 정권유착의 사례라고 할 수 있다. 개신교계가 수십 년 동안 ‘친미ㆍ반공ㆍ권위주의ㆍ성장주의’라는 동류의식과 함께 정권이 바뀌어도 언제나 밀착, 실속을 차릴 수 있었던 요인 중 하나다. 그에 반해, 김대중ㆍ노무현 두 정권에서는 ‘대북관계 개선ㆍ민주화ㆍ분배주의’ 등 도무지 코드를 맞출 수 없다보니 사회 주류에서 주변세력으로 밀려날 수밖에 없었다. 그들이 말하는 소위 ‘잃어버린 10년 세월’이다. 최근 대형교회 중심의 보수 개신교계가 필요 이상 불안해하고 공세적이기까지 한 이유일 것이다. 이승만-박정희-전두환-노태우-김영삼 정권으로 이어지는 밀월관계가 깨져 기득권을 더 이상 보장받을 수 없게 된 데 대한 반작용이라는 것이다. 게다가 자유권ㆍ평등권ㆍ행복권 등 시민의 권리 찾기 분위기에 점점 더 그 고유영역을 뺏긴다는 조바심이 생겼고, 지난 10년 간 신도수가 14만 명이나 준 사실과 국민들 사이에 팽배해진 반기독교 정서에 대한 충격에서도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듯하다.
일부 몰지각한 개신교인 공직자들이 자신의 지위를 이용해 도시선교 사업을 지원하는 소위 ‘성시화(聖市化)운동’도 정교유착으로 이어지지는 심각한 문제다. 그것은 각 지역에서 힘깨나 쓰는 개신교인 기관장들의 모임인 소위 ‘홀리클럽(Holy Club)’이 주도하는 운동인데, 생각해 보라, 온갖 고급 정보를 갖고 있고 막강한 권력을 행사할 위치에 있는 지도급 기관장들이 특정종교라는 이해관계로 지속적으로 만난다면, 편파적 정보제공 내지 권력집행에 대한 국민들의 의혹의 눈초리를 피할 수 있겠는가. 대통령이 아니더라도 고위 행정직이나 선출직 자치단체장의 경우 단순히 사적인 종교생활로 믿어달라는 주문은 억지다. 이명박 전 서울시장, 정장식 전 포항시장, 문봉주 뉴욕총영사, 서찬교 성북 구청장, 안상수 인천시장, 박세직 재향군인회장, 이영무 대한축구협회 기술위원장 등이 대표적인 종교편향적 공직자들이다. 물론 공직자도 자신의 종교를 신봉할 자유가 있다. 그러나 ‘무지’이든 ‘의도적’이든 공직의 신분을 망각한 채 특정종교 편향적 발언이나 행정행위를 하는 것은 사회분열을 조장하는 위험천만한 일이 아닐 수 없다. 공인의 신앙생활은 ‘골방에서 기도하듯’ 해야 하는 까닭이다. 사립학교법 같은 사회적 이슈에 대해서도 정치인들에게 압박을 가하고 물리적으로 저항하거나 왜곡하면서 어렵사리 개정해 놓은 사립학교법을 재개정함으로써 기득권 수호에 혈안이었던 주류 보수 개신교 세력을 국민들은 똑똑히 보았다. 서울시청 앞에서의 기독교 대형집회 때는 성조기 물결이 넘쳐나고 어떤 목사는 영어로 기도했다고 하니 이런 코미디가 어디 있겠는가. ‘힘 숭배’의 종교라는 면목을 유감없이 드러내는 장면이 아닐 수 없다.
반세기 전 어느 지식인은 한국 교회가 섬기는 것이 세 가지가 있는데, 일제 때는 ‘하느님ㆍ돈ㆍ일본’, 해방 후에는 ‘하느님ㆍ돈ㆍ미국’이라고 비판한 적이 있다. 역대 정권들도 대부분 미국 커넥션과 표를 의식해 기독교에 우호적이거나 때로는 특혜적인 관계를 유지해 온 것이 사실이며, 그것은 곧 기독교가 ‘힘의 논리’에 익숙해진 배경이기도 하다. 개신교계의 90%에 해당하는 주류 보수층은 아주 큰 힘, 예컨대 일제 강점기나 군부독재 시절에는 물밑에서 권력과 결탁해 조용히 숨죽이며 소위 ‘부흥운동’에 치중함으로써 비정치적인 집단으로 자신을 감추지만, 조금만 틈이 생기고 더 이상 얻을 것이 없다 싶으면 신도와 돈을 동원해 가차 없이 공격하는 모습으로 돌변한다. 정치-종교 지형에서 세력균형이 깨지는 조짐이 있을 때마다 삼투압 작용이 일어나고 있는 것이다.
비기독교인은 2등 국민
국민의 합의사항인 헌법은 제11조에서 “모든 국민은 법 앞에 평등하다. 누구든지 성별ㆍ종교 또는 사회적 신분에 의하여 차별을 받지 아니 한다”고 못 박고 있으며, 제20조 제1항 “모든 국민은 종교의 자유를 가진다”, 제2항 “국교는 인정되지 아니하며 종교와 정치는 분리된다”고 명시함으로써 종교의 자유가 국민의 기본권이며, 정치와 종교는 엄격히 분리됨을 명백히 하고 있다. 개인은 그가 믿는 종교 때문에 사회적으로 물의를 일으키지 않는 한 그의 내면적인 종교는 존중되어야 하며, 국가는 국민들이 이 최소한의 자유를 누리고 종교로 인해 소외되지 않도록 제도ㆍ정책의 수립과 관리ㆍ감독의 책임이 있는 것이다. 종교자유와 정교분리 정신은 서구역사에 그 뿌리를 두고 있다. 12세기 전후로 170여 년이나 치러진 십자군전쟁, 17세기 유럽 전체를 휩쓴 신ㆍ구교 간의 30년 전쟁 등 피비린내 나는 종교전쟁에서 얻은 뼈아픈 경험의 산물이다. 서구사회에서 정교분리가 처음 확립될 때에는 주로 정치가 종교의 고유영역을 침범하여 활용하거나 유린하는 것을 막기 위한 것이었지만, 현대사회에서는 오히려 종교가 국가권력과 밀착하여 순수목적을 뛰어넘어 주도력을 행사하거나 세속적 권력과 이익을 추구하는 것을 경계하고자 하는 의미가 더 부각되고 있고, 현재 한국의 상황도 마찬가지인 듯하다. 오늘날 우리나라에서 종교자유라는 기본권과 정교분리라는 헌법정신이 엄격하게 지켜진다고 보기 어려운 사례들이 적지 않다. 권력화 된 특정종교가 국민의 기본권을 침해하고 공공영역에서 무종교인이나 타종교인을 차별하는데도 국가는 그 종교의 눈치만 살피는 일이 비일비재한 현실이기 때문이다. ‘종교의 권위’에 ‘세속의 권력’마저 누리려는 권력지향적인 일부 종교계에 원천적으로 문제가 있는 것이 사실이지만, 세금을 내는 국민의 입장에서는 종교인권의 침해와 종교적 차별을 묵인ㆍ방조함으로써 직무유기를 하고 있는 정부와 정치인들에 대한 실망감 또한 크다. 특정종교에 치우친 종교정책을 방치한다면 종교로 인해 언제든지 충돌할 가능성이 있다. 정치와 종교 두 권력이 공공영역의 종교오염을 어떻게 유발하는지, 그리고 그 폐해와 상처는 얼마나 깊고 오래 가는지 사례들 중심으로 살펴보자.
우선 대통령의 종교 문제다. 국가 최고지도자의 의식구조는 정치권뿐 아니라 사회 전반에 큰 영향을 미친다. 따라서 대통령이 종교색깔을 분명히 하는 경우 더 이상 대통령 개인의 문제일 수 없다. 지난해 7월 ‘종교자유정책연구원’이 불교ㆍ개신교ㆍ천주교 등 3대 종교 지도자 3백 명을 대상으로 ‘정치와 종교’에 관한 설문 조사를 실시한 결과, 역대 대통령 중 가장 종교편향적이었던 대통령으로 1위가 김영삼 대통령(42.7%), 2위는 이승만 대통령(30.0%)으로 나타났다고 한다. 스님 70.8%와 신부 48.9%가 김영삼 대통령을 꼽은 데 반해, 흥미롭게도 목사의 경우 8.9%만이 김영삼 대통령이라고 답한 반면 50%가 이승만 대통령을 꼽은 것을 보면 종교간 미묘한 정서적 차이가 드러난다. 김영삼 대통령이 당선되고 제일 먼저 한 일은 청와대라는 상징적인 공공장소에 목사를 초청하여 예배를 본 일이다. “당선되면 청와대에 찬송가가 울려 퍼지게 하겠다”던 기독교인들과의 철없는 약속을 지키는 맹신자의 모습이었으며, 그 후 수 년 동안 종교문제로 바람 잘 날 없으리라는 신호탄에 불과했다. 기독교 집회에 국가예비군을 강제로 동원해 사회적 비난을 받은 적도 있고, 김영삼 대통령 자신이 직접 국방부 내 교회에서 공직자들을 대동하여 공개적으로 예배를 보는 모습이 TV와 신문을 통해 보도되었다. 종교간 형평이나 군대의 사기 문제는 안중에도 없었다. 90년대 초 걸프전 당시 미국 대통령이었던 H.W. 부시(현 조지 W. 부시 대통령의 아버지)가 이라크 전장을 둘러볼 때 기독교 병사들로부터 예배에 참석해 줄 것을 요청받았지만, “미국의 군대는 기독교 군대가 아니다. 타종교 병사들의 사기는 어떻게 하나”라면서 정중히 거절한 적이 있다고 한다. 헌법수호를 선서한 대통령의 처신이 어떠해야 하는가에 대한 좋은 표본이며 김영삼 대통령과 극명히 대비된다. 종교적 편견이 심했던 김영삼 장로 대통령과 그 주변의 장로 정치인들은 타종교인들에게 많은 상처를 주었다. 1996년 김영삼 정권 시절에 한국 정치사상 최초로 ‘기독교민주당’이란 기독교 정당이 생긴 것도 우연이 아닐 것이다. 아마도 최근 우리 사회의 반기독교 정서는 어쩌면 김영삼 대통령 시절부터 커지기 시작한 것 아닐까 생각도 해 본다. 기독교 국가를 꿈꾸던 이승만 대통령도 자신의 종교를 드러내는 것을 주저하지 않았다. 1948년 5월 31일 제헌국회 개원식에서 임시의장으로 추대된 그는 “우리가 다 성심으로 일어서서 하나님께 감사드릴 터인데 이윤영 의원(목사) 나오셔서 기도를 올려주시기 바랍니다”라며 식순에도 없는 횡포를 부렸고, 이어진 개회사에서도 감사할 대상 중 첫째로 ‘하나님’을 꼽아 비신자들에게 낙오자가 되는 모멸감을 느끼게 해주었다. 김대중 대통령의 경우 81년도에 하버드 대학에서 강연을 했을 때 한 여교수로부터 “기독교 전통이 아닌 한국에서 정치지도자들이 기독교를 앞세우며 이용하는 것이 이해되지 않는다”는 질문을 받는 것을 논평자가 직접 목격한 일이 있다. 한국 지도자들의 종교 의존적 정치행태가 오히려 밖에서 지적된 것이다. 천주교 신자인 대통령과 개신교 신자인 이희호 여사의 영향 아래 청와대와 내각, 그리고 행정부와 군ㆍ경 등의 고위 임명직에 불교인을 소외시키고 기독교 일색으로 채웠다는 불만도 많았다. 각종 위원회에 기독교 인사(현직 목사 포함)가 50~60%인데 반해 불교 인사는 10%에도 못 미치는 등 국민정부가 문민정부 때보다 더 심하다는 보고도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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