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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에는 어처구니가 없었다. 실소가 나왔다. '경제를 살린다'는 구호에, 마치 독일사람들이 히틀러의 구호에 손을 들어 답변했듯이 그렇게 우수꽝스런 모습으로 지지하는 모습들이. 그러고 보면, 우리 인간들은 아직까지 '빵의 차원'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듯하다. '의미의 차원'으로 초월해 나가야 할텐데도.
조금 지나니까 분노가 치밀었다. 아이들을 다시 입시지옥으로 밀어넣는 듯 보였다. 영어 못하면 바보라는 식의 논리를 펼친다. 오직 영어! 영어!만이 구원이다. 덕분에 대학 내에서도 영어강좌가 우후죽순으로 열렸다. 첫교시부터 영어수업이 시작되고 학생들은 하루종일 영어와 씨름하며 시름을 앓는다. 우리말로도 따라 오질 못하는 아이들에게 영어로 강의하는 헛폼을 우리나라 대학은 언제까지 잡고 있어야 하는지...대학은 학원이 아니다. 더구나 영어학원은 더더욱 아니다. 아니어야 한다!!! 단순히 배우고 익히는 곳이 아니다. 특정분야의 전문가만을 양성하는 곳이 아니라, 세상을 이해하고 변혁을 주도할 책임적인 사회인이 형성되는 터전이다. 그런데 온통 대학은 영어학원이 되었다. 수업시간에도 온통 영어교재만 뒤적이고 있다. 친구들이 달아놓은 번역물을 외우느라 정신이 없다. 학원과 대학의 경계가 모호해 지고 있다.
고등학생들은 이런 대학에 진학하고자 또 다시 학원같은 곳을 기웃거린다. 지난 겨울에 독일 갈 때 비행기 안에서 슈피겔(Spiegel) 잡지를 들었다. 대문기사에는 독일 중고등학생들이 학업에 시달린다는 내용이었다. 다른 나라의 학생들에 비해 한 학년을 더 다녔기 때문에 사회진출이 1년 늦어졌다는 진단을 바탕으로 지금까지의 수업내용을 그대로 하면서 1년을 단축하는 대안이 제시되었다. 그러니까 학생들의 수업시간이 많아진 것이다. 물론 찬반여론이 기재되었다. 찬성하는 측은 학생들의 사회진출이 빨라져서 좋다는 내용이다. 반대하는 측은 학생들에게 자유롭게 사고하고 여가를 즐길 시간을 빼앗는 비인간적인 처사라고 질타한다. 그래도 여전히 독일 고등학생들은 오후 3시면 집에 돌아온다. 주말에는 온갖 특별활동과 과외활동(승마, 수영, 축구 등의 스포츠 활동)을 하면서. 김이 팍 샌다. 우리 학생들이 머리가 나빠서 더 많이 공부해야 한다는 것일까? 왜 별보고 학교가서 별보고 집에 돌아와야 하는지...물론 이제 이런 혹사는 사라졌으리라 보지만.
그러더니 이번에는 미국 경제를 살리고자 자국민에게 거짓말을 하고 다닌다. 바보같이 협상하고 와서는 질 좋고 값싼 쇠고기를 먹게 되었다고 큰소리를 쳤다. 큰소리가 안 먹히니까 자꾸 발뺌을 한다. 30개월 이상도 괜찮다는 둥. 모두다 먹는다는 둥. 미국기준이 세계기준이라는 둥...그러나 내가 화나는 것은 소고기의 질이 아니라, 협상의 질이다. 왜 굽신거리면서 협상하고 자국민에게는 큰소리치냐는 것이다. 저쪽에서 설마하고 망설이던 것까지 다 빼주니 '판타스틱'하고 환호성을 쳤다고 한다. '우린 친군데'하고 응수하는 꼴에 화가 치밀어 오른다.
조금 지나니까 반성을 했는지, 소통의 중요성을 역설하고 나왔다. 소통을 위해 불러 모은 사람들은 '각계의 원로인사들'이다. 중요한 작업이다. 그러나 내 생각엔 각계의 원로들이 아니라 젊은 이들과의 소통이 중요하다고 본다. 각계의 원로들 중에는 국민의 목소리를 대변하는 사람들도 있겠지만 그렇지 않은 사람들도 있을 것이다. 소위 배부른 사람들도 있을 것이다. 기득층, 지배계층이 되어 오히려 소통이 먹통이 되어버린 사람들도 있을 것이다. 그들로부터 '잘 하고 있다'는 박수소리를 들어서는 안 된다. 그것은 거짓 예언자의 아랑거리는 소리일 뿐이다.
오히려 이 사태를 정면으로 돌파하기 위해서는 이명박 대통령은 청와대로 사람들을 부를 것이 아니라, 시청광장으로 나가야 한다. 그리고 그 자리에서 대국민담화식으로 2-3분 담화하고 줄행랑을 칠 것이 아니라, 1시간 가량 가만히 들어야 할 것이다. 지금까지의 대국민담화는 사실 담화가 아니었다. 연설이었다. 자신의 생각을 일방적으로 공포하고 돌아서면 끝이었다. 정운찬 장관의 발표도 그래서 문제였다. 2-3분 재협상 관련 발표를 하고 돌아서서 피식 웃는 그의 속내를 알 길이 없다. 그나마 국무총리께서 연세대 백주년 기념관까지 와서 대학생들과 대화했다니 참으로 고무적인 모습이다. 그 내용이야 어쨌든 그런 형식자체가 중요하다고 생각된다. 계속되어야 한다. 거짓예언자들을 불러 모으지 말고, 참 예언자들의 절규를 들어야 한다. 가진 것이 없어 잃을 것도 없는 그들의 소리를 귀담아 들으려면 내려와야 한다. 부시와 전화통화 20분하는 것보다 국민과 20분 대화하고 그 속에서 새로운 용기와 희망을 읽을 수 있어야 하지 않을까?
통상마찰이 무서워서, 강대국과의 무역마찰이 무서워서 자국민의 소리를 듣지 않는 대통령은 더 이상 국민의 머슴일 수 없다. 오히려 국민들을 믿고 그들의 든든한 지지를 등에 업고 강대국이 아니라 강대국 할아버지라고해도 당당하게 맞짱을 뜰 수 있는 그런 사람이 나라의 대통령이 아닐까?
길을 걷다가 문득 나라를 위해 기도해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사실 기도하지 않았다. 기도하면 눈물이 난다. 용기없는 대통령이 국민의 타오르는 촛불을 보고 용기를 얻었으면 한다. 마치 모세가 파라오가 무서워 미디안 광야로 도망갔을 때 거기서 나약한 가시나무에서 꺼질 줄 모르고 타오르는 불꽃 속에서 새로운 존재의 용기와 희망을 불어넣으시는 하나님을 만난 것처럼.
먼저 국민에게 사과할 수 있는 용기가 있어야 하겠고, 둘째, 과감하게 재협상의 칼날을 뺄 수 있는 용기가 필요하다고 본다. 미국과 많은 나라들이 통상마찰을 두려워하지 않고 자국의 실익을 지켜내고 있다. 그런데 왜 우리나라 대통령은 꼭 미국 대사처럼 행동해야 하는가? 맞설 용기가 필요하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