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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영식의 삶과 신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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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설일 : 2005/11/11
 

homo unius libri
천국은 어디에...
2008/05/02 오 전 10:34 | homo unius libri

박영식.
http://kr.blog.yahoo.com/religionstheologie/MYBLOG/write.html


예수님은 하나님 나라가 가까이 왔다고 선포했다.

하나님 나라(basileia tou theou)는 마가복음과 누가복음에 나오는 용어인데, 이것은 마태복음에서는 천국(하늘나라, basileia ton ouranon)이라는 용어로 대체된다.

그렇다면, 천국과 하나님 나라는 같은 개념인가? 다른 개념인가? 왜 마태복음은 천국이라는 용어를 사용했는가?

두 용어는 다르지 않다. 예수님께서 전하신 메시지의 핵심인 하나님 나라가 서로 다른 용어로 표현되어 있을 뿐이다. 마태복음은 유대인들을 의중에 두고 기록했기 때문에, 하늘 나라라고 표현했다. 유대인들은 하나님이라는 말을 함부로 입에 담지 않으려고 했으며, 하나님에 대한 종교적 경외심 때문에 다른 용어를 사용하고자 했다. 하나님을 대신해서 사용한 용어가 바로 '하늘'이다.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기도를 가르치실 때도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라고 했다. 하나님이라는 용어 대신에, 하늘이 등장하였다. 하늘은 단순히 하나님이 계신 장소적 의미가 아니라, 인간 세상과는 구분되는 그 분의 권위와 위엄을 나타내는 상징이다. 하나님이 하늘에 계시고 이 땅에는 없다는 뜻이 아니다. 그렇다면, 뜻이 하늘에서 이루어진 것처럼 이 땅에서도 이루어지소서, 라고 기도할 필요가 없을 것이다.

어쨌든 마태복음의 하늘 나라는 하나님의 나라와 동일하다.

그런데, 그렇다면, '나라'는 무슨 뜻인가? 신학자들은 영토적 개념, 정치적 국가개념이 아니라고 말한다. '바실레이아'는 하나님의 다스림, 그분의 활동을 뜻하는 동적인 개념이라고 한다. 유대인들에게 하나님은 정적인 존재가 아니라, 항상 동적인 분으로 이해되었다. 하나님께서 함께 계심이란 하나님의 뜻이 이루어짐을 의미하고, 하나님의 뜻이 현실화되는 것이 바로 바실레이아이다.

그렇다면, 예수께서 하나님의 나라가 가까이 왔다고 하셨는데, 이는 죽어서 간다고 하는 천당을 의미하는 것도 아니며, 극락의 세계에 대한 시간적 정보를 알리는 말도 아니다. 하나님의 나라, 즉 하나님의 뜻이 성취될 것이라는 말이다.

누가복음 17장 20절 이하를 보면,
"하나님 나라는 여기 있다, 저기 있다 할 것이 아니라
너희 안에 있다." 하였다.

하나님 나라를 어떤 특정 장소와 일치시켜 이해해서는 안 된다는 말씀이다. 주일학교 시절 자주 불렀던 찬양처럼, '저 높은 우주에 천국을 만들고 주 믿는 자들 오라네'의 내용과는 판이하게 다르다. 예수님의 하나님 나라, 천국은 저 우주 너머에 있는 어떤 특정 장소가 아니다. 예수 천당, 불신 지옥과도 다른 내용이다. 예수님은 한번도 이런 식의 메시지를 전하지 않았다고 생각한다.


'너희 안에 있다.' η βασιλεια του θεου εντο? υμων εστιν
문제는 '안'이라는 entos에 대한 이해이다.

1. 교부신학자 중 하나인 오리겐은 이 용어를 '내면에'라는 뜻으로 이해하여, 하나님의 나라는 우리 속에, 우리 각자의 마음 안에 있다고 이해했다. 아마 대부분 한국교회가 이렇게 가르치고 있다고 생각한다.

2. 그러나 독일의 신약학자 예레미야스 같은 사람은 '안'이라는 용어는 지금은 보이지 않지만, 갑자기 출현할 하나님 나라의 순간성을 의미한다고 해석한다. 다소 무리한 해석인 듯 보인다.

3. 지금 교황으로 있는 라찡어는 '안'에라는 용어는 무리들 한 가운데 서 있는 예수 자신을 지시하고 있다고 해석했다. 물론 이때의 예수는 단순히 육체를 가진 한 인간으로서가 아니라, 성령 안에서 하나님의 뜻을 실행하는 메신저로서의 예수를 의미한다. 하나님의 나라는 바로 여기, 하나님의 뜻을 실행하는 성령 안에 있는 예수 자신이라고 그는 말한다. 따라서 예수는 '인격 안에 있는 하나님 나라'이다. 몰트만의 저서나 김균진 교수님의 글에도 이런 논지를 따르고 있다.

4. 개인적으로는 세번째 견해를 수용하면서, '안'라는 개념이 '가운데'라는 공동체적 의미를 가지고 있음을 잊어서는 안 된다고 본다. 물론 여기서 질문하는 대상자가 신약성서에서는 그렇게 탐탁하게 생각되지 않는 바리새인이라는 점에서 그들의 심령 '안'에라는 해석은 정당하지 못한 듯하다. 그러나 하나님의 나라가 개인의 심령 안에서가 아니라, 또한 예수의 심령 안에서도 아니라, 무리 중에, 예수와 함께 있는, 즉 하나님의 뜻이 성취되고 있는 무리 가운데에서 일어난다고 이해할 수 있지 않을까? 하나님의 나라는 개인의 것이 아니라, 항상 '안'에 있다. 하나님의 나라는 내 것도 아니고 남의 것도 아니라, 나와 너 사이에, 우리 안에 있다. 그 안에서 예수라는 인격을 통해 성취된 하나님의 나라가 사건화되는 것이다.

5. 따라서 하나님의 나라는 항상 공동체적인 형태로 비유되고 있다. 예컨대 잔치비유가 그것이다. 아무리 큰 경사라고 해도, 자기 혼자만 먹고 마시는 잔치는 쓸쓸하다. 하나님 나라에 대한 잔치비유는 하나님 나라가 항상 무리들과 함께, 무리들 속에서 일어나는 기쁨의 잔치라고 말한다.


그런데, 이 무리 중에 꼭 언급되는 사람들이 있다. 가난한 자들, 병자들, 소외된 자들이다. 이들이 배제된 잔치는 어리석은 부자의 한 여름 밤의 꿈과 같다. 곡식 쌓을 곳이 없으니 허물고 더 넓혀야 겠다.....여기에는 확장만 있을 뿐 함께 누리는 기쁨이 없다. 나눔이 없다. 예수께서 말하는 하나님 나라의 잔치는 나눔의 잔치이다. 이 축제는 피안에서, 죽은 다음에 일어나는 것이 아니라, 예수와 함께 하는 배고픈 사람들과 함께 시작되었고, 지금도 가난한 그 분의 교회를 통해 계속되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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