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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실비평
배운 것이 죄다.
2008/03/06 오 전 10:08 | 현실비평

3월 6일

훈훈한 봄 바람이 불 줄 알았는데 눈발이 흩날리고 있다.
이명박 정부의 탄생과 함께 '성장'이라는 꽃을 단 서울의 봄을 기대했던 국민의 마음에 벌써 배신감의 혹한이 찾아오고 있는 것은 아닌지. 가난한 자들의 친구였던 예수와는 달리, 대통령의 친구는 '국민의 상위 1%'에 해당되는 돈과 권력으로 양심까지 마비시킨 사람들처럼 보인다.
이해할 수 없는 답변들 - 자연이 좋아 땅을 샀다. 선물로 오피스텔을 받았다 등등 - 을 듣고 있자면 내 자신이 오히려 무력해진다.

돈 버는 능력도 없고 가진 재산도 없는 내가 걸어가야 할 길은 무엇인가, 나는 제대로 살아왔는가 하는 자성의 물음이 저절로 던져진다. 내가 지금까지 해 온 것이라고는 고작 공부하는 일 밖에 없었다. 그리고 그렇게 살면 되는 줄 알았다. 내게 주어진 일을 성실하게 하면 그것이 참된 삶이라고. 예수님께서도 그렇게 사셨고, 마더 테레사도 그렇게 살았다고 나는 생각했다. 내일을 위해 살지 말고 바로 지금 여기서 내게 주어진 그 일을 성실하게 하라. 그 메시지에 나는 지금까지 순종하며 살아온 듯하다.

내 머리맡에서 일찍 잠든 아이와 아내를 보면 행복이 밀려온다. '억이라는 숫자가 난 전혀 감이 없다'던 아내의 말이 떠오른다. 그리고 그 행복은 다시 사라진다. 난 텔레비젼 드라마를 잘 보지 않는다. 코메디 프로도 잘 보지 않는다. 드라마에 등장하는 집들이며 그들의 생각들이 나를 소외시키기 때문이다. 코메디 프로는 어쩐지 '환각제'처럼 여겨져서 스스로 피하는 편이다. 삶의 무거움을 잊어야 살아갈 수 있는 우리들에게는 어쩌면 그런 환각제가 가정상비약일 수도 있는데...

이명박 정부의 '강부자'(강남 부자 자산가)내각을 둘러싸고 '부자가 죈가?'라는 답변이 나왔다. 부자는 죄가 없다. 맞는 말이다. 그렇다면, 부자가 되기 위해 달려온 그들의 길가에 서글픈 눈을 하고 있는 가난한 자들이 죄인이란 말인가? 그것도 아닐테다. 부자도 가난한 자도 죄가 없다. 다만, 가난한 자를 생각하지 않는 것, 그들과는 무관한 삶을 살아가려는 자세가 죄일테다.

이번 겨울 독일에 갔을 때 그레버 아저씨를 만났다. 그는 정신적으로 약간의 장애가 있는 사람이다. 그렇기 때문에 베델공동체에서 살고 있다. 그러나 겉으로 보기에는 너무나 착하고 성실한 사람이다. 어쨌든 그를 방문하고 그와 차를 마시는 동안, 신문에서 오려붙인 작은 문구를 방 한켠에서 발견했다.

"부자는 하나님께 거슬리는 것이 아니지만,
 그 이웃의 가난은 하나님께 거슬린다."

나 보다 더 가난한 우리의 이웃들, 순박하게 믿고 신뢰하며 더 좋은 세상이 오기를 기다리는 그들을 보고 있으면 함께 하는 행복이 다시 찾아온다. 사랑도 찾아온다. 희망도 벌써 고개를 들고 있는 듯하다. 그런데, 저 1%의 사람들을 보고 있자니 힘이 빠진다. 영락없이 인생의 낙오자가 된 기분이다. 내 사는 모습이 우습기만 하다.

오늘 인터넷을 뒤적거리니 시간강사들의 처우에 대한 기사들이 눈에 보인다. 파리목숨보다 못한 강사목숨이라고 했던가. 가끔은 교수라고 앉아있는 사람들이 얄밉게 보인다. 인격도 실력도 없는 그들이 자신들보다 월등한 실력을 가진 강사들을 견제하느라 진땀을 빼는 모습을 보고 싶은데 ...  모두 다 그렇다는 말은 절대 아니다!! 하지만 분명 이런 모습도 있다. 그들은 눈 하나 깜짝하지 않고도 학생들을 속인다. 때로는 사정을 모르는 학생들 또는 사정을 알지만 어쩔 수 없는 학생들이 불쌍하다... . 자신들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자리를 굳히고 있는 교수들에게 배움을 강요당해야 하는 학생들의 처지나 파리목숨보다 못한 시간강사들의 처지나 매한가지다. 배운게 죄다. 학생들에게 나는 말하지 못한다. 열심히 공부해라고.

오늘도 차를 몰고 집으로 오는데, 이런 소리가 들린다. 도저히 학교 못 다니겠어요. 배우는게 없어요. 졸업은 해야 하는데, 아무런 지도도 하지 않고 이 정도면 됐죠 뭐? 이런 말만 한다. 답답하다....대학원생의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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