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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학기 강의를 준비하다가 [루터교 정통주의 교의학]이라는 19세기 후반의 책을 뒤적거린다.교회 다니시는 분들 중에는 '정통주의'라는 말을 자주 그러나 불분명하게 사용하는 분들이 많다. 교인들 뿐 아니라, 신학생들 조차도 '정통주의'의 역사적 유래를 전혀 모르고 사용하는 경우가 많이 있다.
'정통주의'는 특정한 시대의 신학사조와 관계된 말이다. 우리가 흔히 사용하는 '정통주의'는 개신교 정통주의의 줄임말이며, 이는 16세기 루터와 칼빈으로 대표되는 종교개혁자들의 신학을 신학적으로 뒷받침하고 정리하는 작업을 수행했던 사람들의 신학을 의미한다. 게르하르트, 후터, 칼로브, 홀라쯔와 같은 사람들의 신학노선을 우리는 개신교 정통주의라고 부른다.
다른 한편, 칼 바르트처럼 종교개혁주의자들의 신학을 20세기의 사상사적 맥락에 생환시키면서 이를 이전의 개신교 정통주의가 정리했던 방식대로 전개한 신학을 우리는 '신정통주의'라고 부른다.
또 다른 맥락에서는 로마 가톨릭 교회와는 다른 신학적 노선과 교파적 성격을 띠고 있는 '러시아 정교회' 또는 '그리스 정교회'의 신학을 Orthodoxy 즉 정통주의라고 칭하기도 한다.
이처럼 정통주의라는 용어가 그 분명한 역사적 근원과 맥락에 한정되어 사용되어야 함에도 우리나라 교계에서는 자신의 입지를 굳히기 위한 정치적이고 선동적인 용어로 '정통주의' 또는 '정통'을 언급하며, 이와는 다른 신학 또는 신앙의 형태를 '이단'이라고 주저함없이 단죄하는 경우가 종종 있는 듯하다.
그러나 '정통주의'가 시대적 배경을 가지고 있듯이 '이단'이라는 용어 역시, 콘스탄티누스 대제의 영향 하에 이루어진 공의회를 통해 단죄된 신앙유형에 한정하여 사용되어야 하는 것이 아닌가 하는 의구심이 든다. 원래 '이단'이란 '선택'이라는 뜻을 가지고 있다. 교회법과 국가의 법이 일치하던 시대에 이 법적 규정과는 다른 '선택'을 한 무리들은 '이단'으로 단죄받았다. 물론 서구 역사에서 교회의 이단 규정과 국가의 범죄 규정이 동일시되던 시기에서는 여전히 '이단'이라는 표현이 유용했겠지만, 오늘날처럼 모두가 자기의 구미에 맞게 종교와 신념을 '선택'할 수 있는, 소위 종교와 사상의 자유가 허용된 시대에서는 '이단'이라는 용어는 그리 적절하지 않은 것이 아닌가 생각한다. 물론 '정통'이라는 말도 터무니 없고, 근거가 희박함을 오히려 대신하려는 웅변에 지나지 않으니 말이다.
어쨌든 새학기 강의를 준비하다가 [루터교 정통주의 교의학]에서 '교회론' 쪽을 보고 있었는데, 교회에 대한 다양한 규정들이 눈에 들어왔다. 그 중에서 특히 눈에 띄는 표현은 '참 교회'와 '거짓 교회'였다.
"교회를 우리는 참된 교회 또는 거짓 교회로 부른다. 그 이유는 신앙인 또는 불신앙인의 숫적 우위나 열세 때문이 아니라, 복음의 가르침이 분명하게 선포되느냐 또는 불분명하게 선포되느냐에 달려 있다. ... 신적 말씀의 분명한 선포와 성례전의 올바른 시행이 우리가 참된 교회라고 인식할 수 있는 표징이다."
이 글을 읽고 있는데, 내 마음이 왜 이리 뒤숭숭한지...말씀과 성례전이 교회의 참된 표징이라는 평범한 교의학적 기본지식이 왜 이렇게 나를 답답하게 하는지...
그러고 보면, 내가 출석하는 교회에는 성찬예식이 거의 없을 뿐 아니라, 복음의 가르침이 분명하게 선포되고 있는지도 의심스럽다. 너무 지나친 폄하인지도 모르겠다. 그랬으면 좋겠다. 아니, 우리 교회를 떠나 한국교회 전반의 문제가 바로 신자의 숫자에 따라 교회의 참됨을 평가하는 물량주의식 관점이 아닌가 싶다. 교회가 작으면, 교인수가 적으면, 목사나 그 교회의 자질이 부족하고 무언가 더 분발하고 채워져야 하는 것으로 평가하는가 하면, 교회가 크고, 교인수가 많은 교회는 뭔가 우월하고 훌륭한 듯한 자의식에 도취되어 있는 것이 한국교회의 현실은 아닌가 모르겠다.
복음의 가르침이 분명하게 선포되는 교회, 아마 그 교회는 크게 성장하기가 힘들 것이 아닐까 하는 것이 내 생각이다. 예수님께서 말씀하신대로, 그 길은 좁고 험해서 따라오는 사람이 많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교회성장에 많은 사회적인, 지리적인 제약이 있는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복음 자체가 교회의 성장의 제약요소라는 사실을 인식해야 하지 않을까?
거대한 교회들, 비대해진 교회들은 분명 무언가 잘못된 길을 가고 있는 것이 아닐까? 한번 반성해 보면 좋겠다. 우리가 도대체 무슨 복음을 전했기에 이렇게도 매주 많은 사람들이 교회에 모이는 것일까? 하고 말이다. 교회가 마치 대형할인매장처럼 복음을 가장 값싸게 팔고 있지는 않은지, 거기에다 덤으로 덧붙여주기까지 하면서.
교회가 기본을 지킬 때, 복음을 올바르게 선포하고 성찬을 올바르게 시행할 때, 교회는 크게 성장하기 힘들다고 본다. 아니, 거대하게 성장한 후에는 이미 교회의 역할을 수행하기가 어렵지 않을까 생각한다. 아마 교회는 어느 정도 성장하다가 곧 세상을 향해 자기를 희생하신 그리스도처럼 다시 세상 속으로 뿔뿔히 흩어져야 되지 않을까 생각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