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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영식의 삶과 신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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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설일 : 2005/11/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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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레스덴의 교회와 숭례문
2008/02/14 오 전 6:06 | 단상

방학을 이용해 독일에서 3주간 시간을 보냈다.

무엇보다 이번 여행을 통해 느낀 것은 "문화"였다. 특정한 하나의 종교라기 보다는 이미 그들의 삶의 일부 또는 근본이 되어버린 기독교는 그야 말로 유럽문화의 심장이었다.
독일 친구 마틴은 목사님의 신분으로 할버스타트라는 곳에서 주교교회의 보물들과 관련된 일을 하고 있었다. 물론 한달에 한번 설교를 하지만 평일에는 주교교회의 보물과 관련된 사무적인 일을 하는 것이 자신의 일이라고 했다. 할버스타트 市는  주교교회에 소장되어 있는 중세의 귀중품들을 일반인에게 공개할 준비를 하고 있었으며, 이를 위해 시와 교회가 협력해서 함께 일종의 박물관 개장을 준비하고 있는 셈이다. 여기에 내 친구 목사 마틴의 사무직을 수행하고 있었다.

친구 마틴의 집에서 몇일 머물고 있다가 유학을 마치기 전 잠시 방문했던 드레스덴을 다시 찾았다. 그 때만 해도 아직 완공되지 않았던 교회 프라우엔키르헤가 이제는 찬란하고 아름다운 모습을 드러내고 있었다. 안밖으로 많은 관광객들과 방문객들이 있었고, 교회 안에서는 이들을 위한 안내와 사순절을 맞아 짧은 묵상의 시간이 있었다. 프라우엔키르헤는 11세기 지어진 교회로서 드레스덴 시의 상징이기도 하다. 그런데 2차대전 종전 직전에 폭격을 받아 파괴되었으며, 동독시절에는 파괴된 상태 그대로 방치되어 왔다. 그러나 1990년 통독과 더불어 드레스텐 시는 교회의 재건을 전 독일에 호소했고, 드디어 2005년 10월 30일 옛 모습을 다시 회복하여 봉헌예배를 올렸다. 어언 60년만의 일이었다. 45년간 방치된 교회를 15년만에 다시 재건한 것이다. 
그런데 실제로 나를 놀라게 했던 것은, 옛 교회가 다시 재건되었다는 사실만이 아니다. '어떻게' 재건을 했느냐가 나를 놀라게 만들었다. 드레스덴 시와 함께 전쟁의 피해자이며 상흔을 안고 있던 교회는 아주 깔끔하게 새로 지어진 것이 아니라, 옛 상처를 그대로 지닌 채 새롭게 봉헌되었다는 점이다. 예전에 폭격에 의해 무너진 돌들을 엄밀한 학술적인 고증을 거쳐 예전에 있던 자리에 다시 배치했다는 것이다. 독일 전역에서 모은 성금으로 복구가 이루어졌고, 간간히 성금을 위한 콘서트를 통해 드레스덴의 아픔과 의지를 함께 알렸다고 한다. 복원작업을 통해 완전히 새로운 교회를 탄생시키기 보다는 이전의 아픔을 그대로 담고 있는 역사의 산 증거를 만드는 일, 이것이 나를 놀라게 했다.




드레스덴의 프라우엔키르헤를 방문하고 돌아오는 기차 안에서 나는 다시금 "문화"에 대해 생각하게 되었다. 그리고 우리의 문화전통의 계승과 그 가치에 대한 인식을 되묻게 되었다. 그리고 아픔을 감추려고만 하는 소위 현대적이며 엘리트적인 사고에 대한 반성을 하게 되었다. 그리고는 빌레펠트에 돌아왔을 때, 나는 뜻밖의 소식에 가슴을 쓸어내려야 했다. 국보1호인 숭례문이 전소되었다는 소식은 거짓말처럼 들렸다. 그것도 누군가에 의해 방화되었다는 것은 정말이지 믿기지가 않았다. 내 의식은 재빨리 혹시 '일본놈이~'하는 생각으로 치달았다. 그러나 아니다. 지금은 그런 시대가 아니다. 다시 정신을 차려 보았지만, 해답이 나오질 않았다.





몇일 지나 밝혀진 전모를 듣고 있자니 더욱 한심해 진다. 개인적인 화를 이런 식으로 쏟아내는 민족이 이 지구상에 몇이나 있을까? 그것도 어린아이도, 청소년도 아닌 어르신이. 노인은 공경의 대상이다. 왜냐하면, 그는 역사를 알고 있기 때문이다. 그에게는 역사의 질곡을 고스란히 담고 있는 지혜의 주름살이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오늘의 일은 이 모든 것을 의심하게 만들었다. 천박하고 이기적인 자본의 정신에 매수된 우리의 정신세계를 극단적으로 보여주는 한 단면이 아닐 수 없었다. 여기에는 민족도, 조국도, 역사도, 문화전통도 없었다. 오직 자본과 개인만이 있을 뿐. 극단적으로 솟구치는 분노와 허탈감을 안고서, 막 도착하여 공항에서 몸을 실은 고속버스 창 밖으로 눈을 돌렸다. 말없이 울고 있을 산야를 보고 있자니 눈이 시렸다. 누군가의 말대로 5시간만에 600년의 역사가 무너져 내렸다. 아~~ 이런 멍청한 민족이, 이런 허망한 역사가 또 어디에 있을까?

숭례문 재건을 국민성금으로 하자는 의견이 있었다. 국민들이 원한다면 그렇게 할 수도 있다고 본다. 우리의 힘으로 다시 재건했다는 자부심이 있을테니까. 그런데, 그런 의견조차도 자신의 책임을 감추고 실적으로 만드려는 속셈이라면 참 어처구니가 없다. 천박한 자본주의적 경영논리의 한 일각이리라.

분노가 아직 가라앉지 않아서 인지, 이런 생각도 든다. 숭례문 재건보다, 지금의 화재현장을 거대한 유리관 안에 담아 보존하는 것은 어떨까? 서울 한 가운데에서 우리의 어리석음을 늘 상기할 수 있도록 말이다. 숭례문의 화재 이전에 어쩌면 우리는 이미 우리의 의식 속에서 '예'를 전소해 버리지 않았던가? 예는 아래에서 위로만 흘러가는 것이 아니라, 위에서 아래로 그리고 옆으로 옆으로 흘러간다. 무릇 사람과 사람 사이에는 반드시 '예'가 있어야 한다. 그런데, 우리는 그런 '예'를 잃어버린지 오래된 듯하다. 화재에 무너진 숭례문과 더불어 자취조차 희미해진 예의 정신을 기리기 위해서라도, 숭례문의 잔해를 그대로 보존해 두는 것은 어떨까? 그리고 그 맞은 편 어딘가에 새롭게 숭례문을 다시 재건하는 것은 어떨까? 잃어버린 우리의 '예'를 반성하고 다시 21세기에 맞는 새로운 '예'를 찾아가도록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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답글 보임/숨김 답글쓰기 (3)
잘 다녀오셨군요... 교수님, 읽고 갑니다...
글 남기셨을 듯 해서 왔습니다.
08/02/14 (목) 오후 10:11   [박현주] from 117.53.94.78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늦었지만 새해 복 많이 받으시고 올 한해도 건강하십시오.
08/02/16 (토) 오전 8:56   [이성철] from 222.119.3.41
아이구 감사합니다.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08/02/18 (월) 오전 2:24   [sper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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