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즐겨찾기 | 블로그홈 | 바로가기 바로가기 | 로그인
박영식의 삶과 신학
블로그  |  사진갤러리  |  동영상갤러리 방명록  |   즐겨찾기 추가
spero (religionstheologie)
프로필      쪽지
전체 글보기(343)
창조와 자연의 신학
사진
프로필
단상
이웃종교들과 기독교
신정론(Theodicy)
한국교회와 신학
서구신학과 사상
현대신학산책
철학과 신학
종교와 신학
폴 틸리히의 신학
판넨베르그의 신학
성결교회신학
어학
homo unius libri
사회봉사-Diakonia
현실비평
2008 07월
1 2 3 4 5
6 7 8 9 10 11 12
13 14 15 16 17 18 19
20 21 22 23 24 25 26
27 28 29 30 31
최근 답글 전체
그런데, 협상이 잘 되..
요즘 추가협상과 관련해..
가슴깊이 묵상하게됩니다..
네. 언제든지 환영입니..
귀중한 글이라고 생각 ..
오늘 전체
방문자 134 73293
구독자 0 29
답글 0 141
참조글 0 0
 즐겨찾기
 즐겨찾기 글모음
개설일 : 2005/11/11
 

단상
영화 어거스트 러쉬
2007/12/28 오 전 5:30 | 단상

어거스트 러쉬(2007)

아내와 함께 오후시간 오랜만에 영화관을 찾았다.

미리 조금은 알고 간 영화지만 왠지 제목이 너무 딱딱해 보였다.
‘어거스트 러쉬’. 영화는 소리에 대한 믿음으로 시작된다. 소리를 믿는 꼬마 소년 에반스. 버려지지 않았지만 버려진 고아처럼 외톨박이가 된 그에게 유일한 위안은 바로 소리였다. 소리를 믿는 그는 이 소리가 그와 부모를 다시 이어주는 다리가 되리라고 믿고 있다. 그에게 세상은 온통 아름답고 리듬감 넘치는 소리로 가득 차 있다. 귀에 들려오는 세상의 모든 소리를 그는 이제 ‘음악’의 필터를 통해 아름답게 표현하는 천재적 음악소년이 되어 잃어버렸던 아빠와 엄마를 다시 만나게 된다.


원본 크기의 사진을 보려면 클릭하세요
겉보기에는 짧고 단순한 스토리지만, 영화적 재미와 긴박감이 솔솔하다. 그러나 음악가인 아내와 함께 본 영화라서 그런지, 내게는 음악과 음악가를 조금이나마 이해할 수 있는 교육적 효과를 주는 영화였다고나 할까? 동시에 '호로비츠를 위하여'를 생각나게 하면서, 음악이 무엇인지, 하는 철학적인 질문을 제기하게끔 했다.

'호로비츠를 위하여'에서 천재 피아니스트 김경민은 동물원에서 본 것들을 건반에 담아 표현한다. '어거스트 러쉬'에서 어거스트 러쉬는 세상의 소리를 귀담아 듣고 음악으로 표현한다. 다른 사람에게는 그저 소음에 불과한 것이 이 꼬마에게는 음악으로 살아난다. 동시에 어거스트에게나 그의 부모에게 음악은 그들을 다시금 만나게 해 줄 것이라는 믿음의 약속으로 표현된다.

'사람들이 동화를 믿듯이 저는 음악을 믿어요'

동화를 믿듯이 음악을 믿는다는 것은 무엇일까? 현존하지 않는 것을 마치 현존하는 것으로 믿듯이, 잡히지 않는 것, 대상화되지 않는 음악의 힘을 현실화될 것을 믿는다는 말일까?

영화는 내게 낭만주의 신학자 슐라이어마허를 생각나게 했다. 인간을 둘러싼 온 우주가 자신을 쳐다보고 있음을 직감할 때, 인간의 유한성 안에 내재한 무한자의 싹이 트인다고 보았던 그는 이를 '종교'라고 말했다. 종교는 무엇인가 저 밖에 있는 것에 대한 믿음이나 비밀스런 지식이 아니라, 우주와의 교감을 통해 내 안에 내재해 있는 본연적인 인간성을 꽃피우는 것이라고. 물론 음악적 천재처럼 종교적 천재에게만 이 일은 온전하게 가능할테지만.

'어거스트 러쉬'에서 11살의 나이에 줄리아드음대에 입학한 천재음악가는 학장과의 대화에서 음악의 근원, 소리의 근원이 어딘지 하는 물음을 접하게 된다. 자신을 둘러싼 온 세계가 그에게는 음악의 근원지이다. 마치 슐라이어마허에게서 인간을 둘러싼 온 대우주와 인간의 내면의 소우주가 종교의 근원지인 것처럼.

'어거스트 러쉬'를 보면 시종일관 나는 '귀를 기울였다.' 귀기울임이 표현보다 앞선다는 평범한 사실을 이 영화는 새삼 생각나게 했다. 음악도 그렇듯이 신학도 그렇다. 진리는 주장되기 이전에 청취되어야 한다는 사실.

영화를 보면서 음악과 음악가, 그리고 삶의 열린 가능성 - 자신의 천재성을 획득할 수도 잃을 수도 있었던 어거스트, 아이를 되찾을 수도 잃어버릴 수도 있었던 라일라와 이들과 다시 만날 수도 그렇지 않았을 수도 있었던 루이스- 등을 꼽씹어 보았다. 동시에 역시 난 어디에 있든 신학하는 자이기에, 종교에 대해, 신에 대해, 그리고 진리의 청취에 대해 음악을 빌어 생각하는 계기가 되었다.

"음악은 항상 우리 곁에 있어요. 귀를 기울이기만 하면 되요"

원본 크기의 사진을 보려면 클릭하세요

  추천수 (0)  답글 (0)  참조글 (0)  스크랩 (0) http://kr.blog.yahoo.com/religionstheologie/1518 주소복사 
인쇄 | 추천 | 스크랩
답글 보임/숨김 답글 (0)
이름   비밀번호   블로그
등록
참조글 쓰기
참조한 글
참조한 글이 없습니다.
블로그 통합 검색 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