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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교와 삶 박영식. 2006년 7월 24일 월요일
1. 프랑스 작가 앙드레 말로에 의하면, 20세기에는 과학이나 기술에 대한 질문이 아니라, 윤리와 종교적 질문이 가장 중요시 될 것이다. 그의 말대로 세속화된 사회에서 종교는 사멸되지 않고 오히려 더 성장하게 되었으며 윤리와 종교적 질문은 오늘날 점점 더 중요시 되고 있다. 그러나 한편에서는 여전히 종교에 대해 경멸적이거나 비판적인 입장들이 있는데, 이런 종교비판적 경향은 이미 17, 18세기의 계몽주의의 대두와 함께 시작되었다. 종교에 대한 주요비판들은 1) 과학과 지식의 발달로 우주와 인간에 대한 종교적 해답이 더 이상은 필요하지 않다는 입장과 2) 종교로 인해 인간이 부자유하게 되었다는 입장으로 정리될 수 있다. 칼 마르크스: 종교는 “민중의 아편”으로 민중을 경제적 빈궁 속에서 신음하게 방치하는 구실을 한다. 레닌: 종교가 민중을 초월적인 세계관을 통해 위로한다는 점에서 “민중을 위한 아편”이다. 프로이트: 종교는 “집단 노이로제”이며 초자아의 통제를 필요로 하는 인간의 환상이다. 꽁트: 종교는 인간 발달에 등장하는 하나의 사회진화적 단계로서 곧 사라질 것이다. ☞ 이런 입장들은 인간이 세계의 주체(주인)로서 인간 밖에 다른 어떤 주체를 인정하지 않는 인간중심적인 일원론적 세계관에 근거하고 있다.
2. 과연 인간은 스스로 홀로 존재하는가? 위의 종교비판들은 종교의 근거를 인간 자신에게 돌리고 있다. 종교는 인간의 불안감이나 공포, 무지에 근거하거나 또는 인간의 인간에 대한 착취를 위한 수단으로서 종교가 유지되고 있다고 본다. 이들의 견해는 초월적 차원을 무시하고 세상을 구성하고 결정하는 것은 오직 인간이라는 사실을 주장한다. 그러나 실제로 인간이 자신의 행위의 정당성이나 행위의 근거를, 삶의 의미를 찾으려고 할 때, 그러한 정당성과 근거, 의미들은 결코 자명하게 주어져 있는 것이 아님을 알게 된다. 왜 나는 살아있으며, 또 살아가려고 하는가? 세상의 만물들은 왜 이렇게 주어져 있으며, 이들은 어디서 와서 어디로 가는 것일까? 나는 왜 선하게 살려고 하며, 악하게 살아서는 안된다고 생각하는가? 나는 왜 존재하며, 무엇을 향해 살아가는가? 이런 질문들에 대해 우리는 명쾌한 답변을 스스로 내릴 수 없음을 알게 된다. 즉 우리가 이런 질문을 통해 알게 되는 것은 우리가 모른다는 사실이다. 우리가 알려고 할 때, 우리는 우리를 둘러싸고 있는 비밀과 마주하게 된다는 사실이다.
이런 인간의 자기 자신에 대한 실존적 질문과 세상에 대한 실존적 물음은 바로 종교적 질문에 속한다. 이런 종교적 질문들은 앙케이트 조사하듯이 그렇게 물어지는 질문이 아니다. 호기심에 호소하는 질문이 아니며, 그저 묻고 지나갈 질문이 아니다. 종교적 물음은 끈질긴 물음이다. 종교적 물음, 인간 자신의 삶의 출처와 향방을 묻는 의미질문으로서의 종교적 물음은 그 궁극적인 대답을 갖지 못한 채, 인간으로 하여금 이 질문에 위협을 받게 한다. 인간이 던진 질문이지만, 종교적 질문은 오히려 인간에게 던져진 질문이다. “나는 왜 사는가?” “나는 왜 살다가 죽으며 이런 나의 삶에서 참된 의미란 무엇인가?” 이런 질문은 나를 못 살게 괴롭히는 질문으로 다가와, 내 삶을 죽음의 그림자 앞에 세우기에 나를 위협하는 질문이다. 종교적 질문이 던져질 때, 실제로 질문하는 인간 자신이 대답 없는, 붙잡을 때 없는 망망대해로 내던져진다.
이런 종교적 질문은 언제 출현하는 것일까? 이제 질문해 보아야지 한다고 해서 이 질문이 꼬리에 꼬리를 물면서 질문하는 자를 괴롭히고 못살게 만들어 죽음의 그림자에 세우게 되는가? 그렇지 않다. 종교적 질문은 엄밀한 의미에서 내가 만들어 내는 질문이 아니라, 나에게 엄습해 오는 질문, 나에게 던져진 질문이다. 그러기에 이 질문은 나 자신을 질문거리로 만들며, 질문의 소용돌이에서 벗어나지 못하게 한다. 그런데 이런 종교적 질문은 돌연히 출현한다. 내가 만들어내는 질문이 아니기에 어떤 시점이 정해져 있지 않다. ‘돌연히’ 던져지는 이 질문은 그래서 비일상적이다. 내가 일상에서 늘 마주하고 예상할 수 있는 질문들과는 달리 갑자가 내 삶 전체를 뒤흔드는 질문으로 찾아오기에 비일상적이다. 동시에 지금껏 살아왔던 일상이 이 질문과 함께 비일상화된다. 다시 말해 비현실이 된다. 갑자기 다가온 종교적 질문 앞에서 내 삶은 마침표를 만난다. 한 점으로 모아진다. 긴 일상이 한 점으로 모이면서 마치 아무것도 아닌 것으로, 아무런 의미도 없었던 것으로 여겨진다.
3. 이런 종교적 질문은 앞에서 언급했듯이 내 삶과 나의 세계에 대한 실존적인 질문이기에 나에게만 고유한 질문이다. 인간은 인간 전체의 죽음에 대해 묻기도 하고 세계의 종말에 대해 궁금해 할 수도 있다. 그러나 엄밀한 의미에서 종교적 질문은 나에게 던져진 질문이기에 나 자신과 관계하며, 나 홀로 지고 가야 하는 질문이다. 내게 던져진 이 질문을 나대신 다른 사람이 답변한다고 해서 이 질문이 해결되는 것은 아니다. 내 인생을 다른 사람의 인생과 비교할 수는 있다고 하더라도, 이런 비교는 단순히 표면적이며 양적인 측면에서만 가능하다. 질적인 측면에서 내 인생은 다른 인생을 통해 말해질 수 없으며, 오직 나 자신을 통해서만 표현된다. 종교적 질문이 객관화될 때, 이 질문은 다른 사람들에게도 동일한 표현으로 전달되지만, 그 깊이와 색채에서 있어서는 매순간 고유하다. 이런 점에서 실존적 종교적 질문은 철저히 개인적이다.
4. 그러나 종교적이며 실존적인 질문이 철저히 개인적이라는 말은 그 질문의 깊이와 색채에 있어서 그렇다는 뜻이다. 인간 삶의 의미를 캐묻는 종교적 질문은 동시에 그 폭에 있어서는 보편적이다. 비록 이 질문이 일상의 삶 속에 감춰져 있다고 하더라도 인간은 이 질문과 부지불식간에 마주치게 된다. 자신의 삶과 다른 사람의 삶이 다름을 확인할 때, 자신의 삶에 견딜 수 없는 고통의 순간이 찾아올 때, 밝게만 보였던 미래적 전망이 암흑으로 돌변할 때, 영원히 함께 하리라고 믿었던 사람이 내 곁을 떠나게 될 때, 이런 고통의 순간에 인간은 삶의 의미를 묻게 되며, 동시에 이 질문과 함께 자신의 삶이 문제시된다.
5. 인간 존재가 당면할 수밖에 없는 자신의 존재에 대한 질문, 자신의 생에 대한 질문에 대한 답변을 인간 자신이 만들어 낼 수는 없다. 이 실존적인 질문 앞에서 인간은 대답하는 자가 아니라, 질문당하는 자로 서 있으며, 동시에 스스로 질문자체가 되어 버렸다. 자신의 대답들이 온통 의문시되는 그 순간에, 아무것도 알 수 없음을 깨닫는 그 순간에 직면할 때, 인간에게는 새로운 차원이 열리게 된다. 아무것도 알 수 없음을 알게끔 하는 종교적 질문으로 인해 인간은 자기 자신을 넘어가게 된다. 아무것도 확실하지 않음을 깨닫는 순간에 인간은 일상의 대답들과 일상사로부터 자유함을 얻게 되고, 새로운 대답을 찾는 여행을 나서게 된다. 종교적 질문에 직면하여 인간은 자유와 초월을 경험하게 된다. 종교비판가들의 관점과는 달리, 종교적 질문은 결코 인간을 비인간화하거나 억압하지 않는다. 오히려 종교적 질문은 주어진 대답에 대한 집착과 이데올로기적 맹종으로부터 자유케 하며, 주어진 허무의 차원을 꿰뚫고 새로운 길을 떠나게 한다. 종교적 질문과 함께 인간의 새로운 생의 방향정위를 얻게 된다. 삶의 의미를 발견하게 되며, 새로운 여행을 감행한다.
6. 우리는 지금까지 ‘종교적’이라는 단어를 사용하여 인간과 종교의 연관성을 지시하고자 했다. 그러나 여기서 ‘종교적’ 단어는 사회화되고 제도화된 종교들의 추상적인 특성을 말하는 것이 아니다. ‘종교적’이란 다른 말로 살아있는 인간 본연의 초월성이며 자유를 의미한다. 달리 말하면, 이는 인간 생의 본래적인 역동성을 지시한다. 인간의 생은 방향을 모색한다. 인간의 생은 역동한다. 묶여 있지 않고 풀어헤쳐 나아간다. 새로운 땅을 향해 모험을 감행한다. 이 인간의 생을 역동케 하고 삶을 삶 되게 하는 질문은 인간을 꿰뚫고 지나가서 꼼짝 못하게 만들면서 동시에 자유케 하는 종교적 질문이며 체험이다. 이처럼 ‘종교적’이란 생의 역동성과 부합한다.
그렇다면, 이제 우리는 이와 관련해서 실제 종교들의 기능에 대해 생각해 보자. 종교적이란 의미를 우리는 인간 생의 자유와 해방, 새로운 여행, 삶의 오리엔테이션 등의 이미지와 결부시켜 이해했다. 이런 이미지는 기존 종교들의 기능으로 이해되어야 한다. 종교들은 인간 생의 자유와 해방, 인간 생의 본연의 초월성을 일으키며 삶의 방향을 정위해 주는 역할을 수행해야 한다. 이를 위해 종교들은 각각의 고유한 가르침과 종교적 수행, 실제적인 측면들을 제시한다. 그러나 여기서 우리는 종교들의 기능을 서술적으로 이해하기 보다는 규범적으로 제시하고 있다. 이를 통해 여러 종교들의 비판적 준거점을 마련하고자 하기 때문이다. 모든 종교들이 이처럼 인간 생의 자유를 위해 기능하지는 않는다. 오히려 종교적 측면을 띄면서 해방하는 듯 하나 오히려 억압하고 생을 얼어붙게 만드는 사이비 종교들도 있다. 그러나 한편에서는 서로 다른 가르침과 종교적 수행법들을 제시하지만, 인간 생의 자유와 초월을 체험하게 하는 종교들이 있다. 우리의 종교비판의 준거점은 바로 인간 생의 자유와 초월을 가능케 하는 구원과 해방에 있다. 이런 측면에서 종교들은 인간의 삶과 밀접하게 연관되어 있다. 죽임의 종교들이 있는가 하면 살림의 종교들이 있다. 인간의 삶에 종교는 늘 깊숙이 결부되어 있었다. 인간과 종교는 기나긴 지구의 역사에서 동반자였다. 인간이 삶을 질문하는 한, 종교는 지속될 것이다. 문제는 종교가 과연 인간의 삶을 삶되게 하느냐이다. 인간의 삶을 살리지 못하는 종교는 참으로 스스로 ‘종교적’이라고 말하기 힘들다. 아무리 그 종교가 초월적이며 신비적인 무엇을 제시한다고 하더라도 ‘종교적’이지 못하다.
7. 인간의 실존적인 의미질문은 곧 삶의 방향정위에 대한 질문이다. 의미질문은 단순히 자신의 과거를 묻는 질문이 아니라, 앞으로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에 대한 미래를 향한 질문이다. 이 삶의 방향정위의 질문에 대해 종교들은 제각기 다양한 안내도를 제시한다. 종교인은 이 안내도를 따라 삶의 새로운 방향을 모험을 감행하며, 그 길에서 자유와 초월의 맛을 체험한다.
참고문헌 1. Bernhard Casper, "Religion", in: Warum Christen glauben. Theologisches Sachbuch, hrsg. von der katholischen Landesareitsgemeinschaft fur Erwachsenenbildung in Rheinland-Pfalz e.V., 2. Aufl. 1979, 23-32. 2. Paul Tillich, Systematische Theologie Bd. 3, 4.Aufl., 1984.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