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떤 남자가 더운 여름날 머리 위에 100Kg의 바위를 이고 있었다. 그는 다른 남자에게 가서 도움을 청했다. 그 남자는 “여기 10Kg짜리 쇠를 가지시오. 쇠가 바위보다 나으니까”라고 했다. 그래서 이제 110Kg이 되었다. 또 다른 남자가 쇠보다 낫다며 놋쇠를 주었다. 이제 그는 머리에 120Kg을 이고 있다.
이런 것이다. 그대가 어디에 가든지 그들은 그대의 머리에, 그대의 마음에 무거운 것을 얹을 것이다. 그대의 머리에 아무 것도 올려놓지 않을 스승이 누구인가? 모두들 “이 책을 읽으시오”, “이 수행을 하시오”라고 한다. 그래서 그들은 그대의 마음에 무거운 짐만 얹을 뿐이다.
짐, 생각, 수행, 비파사나, 우파사나upassana를 주는 스승은 받아들이지 마라. 그를 스승으로 여기지 마라. 스승은 어떤 무게도 지우지 않는다. 설교자만이 짐을 줄 뿐이다.
그냥 고요하라. 태어나기 전 그대는 고요했다. 죽은 후에도 그대는 고요해질 것이다.
그런데 왜 그대는 바로 지금 고요하지 않는가? 참된 이완은 고요해지는 것이다. 고통이 있다고 생각하면, 그대는 이완할 수 없다.
행복하고 긴장을 풀 때, 그대는 생각하지 않는다. 욕망의 대상을 얻고 나면 그대의 행복은 더 이상 그 대상에서 오지 않는다. 행복은 대상에 대한 욕망을 멈추는데서 온다. 더 이상 욕망이 없을 때, 아무런 생각이 없으며 그래서 행복이 있다.
대부분 사람들은 자신의 생각들을 알아채지도 못한 채 강의 흐름 속으로 씻겨져 버린다. 정신을 똑바로 차려라! 생각이 올 때마다 그것을 지켜 보라. 그러면 생각은 사라질 것이다. 생각 없이 일상을 살아갈 때 그대는 그 삶을 진정으로 즐기게 될 것이다.
오면 오게 하고, 가면 가게 하라. 그대는 단지 지켜보기만 하라.
명상은 마음이 자유롭고 생각을 붙잡지 않은 순간이다. 생각이 오고 가게 내버려 두라. 생각을 쫓아가지 마라.
고개를 돌려 누군가 거리를 내려가고 있는 것을 본다면, 그대는 길을 잃는다. 그저 가도록 놔두는 것이 더 좋다. 이것이 행복한 삶의 방법이다.
기차들을 역구내로 오고 가도록 내버려두다가 그대가 원하는 방향으로 가는 기차가 오면 올라타라.
대합실에서 친구들을 사귀지 마라. 그들은 그대가 가는 곳으로 가지 않으며, 그대의 마음만 산란하게 할 뿐이기 때문이다.
이 세상은 사람들의 대합실이고 그대의 마음은 생각의 대합실이다. 그것은 그대의 영원한 고향이 아니다. 그러므로 이런 사라질 사람들과 사귀지 마라. 같은 차를 타고 함께 여행할 사람들을 사귀어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