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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무나 (ramanadas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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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설일 : 2006/04/30
 

Yajne jate(의식의 시작)

RVⅩ, 130

1. 헤아릴 수 없는 의식으로 이루어진 희생제는
이쪽 저쪽으로 뻗어가는 실을 가진 베틀과 닮았으니.
이제 보라, 걸쳐진 베틀위에 앉아서 천을 짜는 아버지를.
길게! 가로질러서! 고함을 친다.

2. 이제 보라, 실을 풀고 감는 사람을,
천국의 아치까지 그것을 바르게 푸는 사람을.
여기 말뚝이 있으니; 그들은 경배의 장소에 고정되어졌다.
사만의 찬가는 베틀의 북을 엮기 위해 쓰여진다.

3. 표본과 모양과 연결은 어떻게 하는지?
의식의 버터와 경계선은 어떻게 하는지?
운율과 기도와 시초의 찬송은 어떻게 하는지?
모든 신들이 언제 봉헌물을 신께 바쳐야 하는지?

4. 가야트리의 운율은 아그니에게 격을 맞추어 이루어지고,
사비트르는 우스니의 운율에 격을 맞추며,
찬가로 찬송되어지는 소마는 아누스트부를 얻는 반면
언어의 주인은 그 말이 브르하티에 의해서 강화된다.

5. 비라즈의 운율은 미투라와 바루나에 바쳐졌고;
인드라의 날을 위해 활당된 운율은 트리스트브였다.
쟈가티의 운율은 모든 신에게 바쳐졌으니,
인간의 시가 이 모든 것에 따른다.

6. 태초에 희생제가 처음 이루어졌을 때,
예견자이신, 우리 아버지께서 채택하였던 이것과 같은 의식이 있었으니.
나의 마음의 눈으로 이 희생제를 처음 지냈던
그들을 상상할 수 있음을 믿노라.

7. 비록 신과 같은 일곱 노 예견자일지라도,
의식과 운율과 찬가는 주서의 법규에 따라야 하나니.
현자가 조상에 의해 행해졌던 법규에 따르면
그들은 마치 마부가 손에 고삐를 얻은 것과 같다.



<주석> 희생의 창조 Yajne jate

본 글에 제시된 중요한 직관은 ‘우주의 창조는 예배의식과도 같고 예배의식은 우주의 창조와도 같다’라는 말로 요약될 수 있으며 이를 통해서 베다 세계관에 대한 가장 깊은 신념들 중의 한가지를 함께 형성시킬 수 있다. 세상은 성스러운 희생에 그 기원을 두고 있으며 그같은 희생의 덕택으로 유지되고 있다. 희생이란 행위가 신에 의해 최초로 행해진다고 한다면 인간은 두 번째의 행위자가 된다. 자신의 유형을 창조하고 자신의 의복을 만들어내는 등의 인간 활동과 결부되어 있다는 점에서 볼 때 희생은 우주에서 신과 인간 모두에 의해 이루어지는 행동이며 이 때문에 그것에 부합하는 상징이란 모호한 것일 수밖에 없다.
사실 모든 예배의식은 늘 세상을 다시금 만들어왔으며 지금도 그러하다. 즉, 세상이 존재성을 갖도록 만드는 창조적 행위를 재규정해왔으며 현재도 그러하다. 그런데 “세상을 만든다(making of the world)"라고 하는 것은 우주론적 관념에 바탕한 우주의 창조를 말하는 것으로 이해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역사적 내지 심지어 사회적 관점에 바탕한 우주의 창조를 말하는 것으로 이해될 수도 있다. 이와 관련하여 오늘날의 예배의식은 사회적, 문화적, 정치적, 생태학적, 예술적 환경 등을 재형성시킬 목적으로 사람들을 결합시키는 경향이 있는 것이 사실이다.
예배의식에 적용되는 찬가(hymn)의 경우 그 전체에 걸쳐서 일련의 두 가지 행동 즉, 실을 짜는 행동과 희생이라는 행동과 함께 그러한 두 행동이 지닌 개념들을 교대로 제시하고 있는데 후자의 행동이 전자의 창조적 행위를 반영하거나 나아가서는 그러한 행위를 재규정하는 식으로 되어 있다. 찬가가 주는 의미는 낮과 밤을 각각 상징하는 두 여인이 원을 그려 춤추고 쉴새없이 세상이라는 대상을 실로 짜며 우주를 구성하는 여섯가지 영역 전체에 걸쳐 현실의 온갖 색깔들을 펼치고 있는 모습을 서술하고 있는 유사한 내용의 글들을 상기해볼 때 더욱더 명료해진다. 하지만 그같은 세상을 만들어내는 행동은 우주의 힘에 의해서만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며 인간과 그들의 선조 내지 조상 등도 세상이라는 직물을 짜고 그것을 위해 실을 잦는 일과 관련되어 있다. 예배의식에서 펼쳐지는 의례는 세상이라는 직물을 짜기 위한 실에 해당되고 예배의식의 찬가는 베틀의 북에 해당된다. 상기의 실을 짜는 이들은 희생을 행한 조상들에 해당된다. 한편, 천이란 것이 스스로의 무늬를 지니고 있는 것처럼 희생에 관한 내용을 담고 있는 글들도 스스로의 척도를 지니고 있다. 이와 관련, 한 우파니샤드는 신들은 죽음을 두려워했으며 그 때문에 그들 모두 각각의 척도로 스스로를 보호하였다고 말하고 있다. 이 개념의 근원에 대해서는 본 글을 통해 파악할 수 있는데 모든 신이 자신만의 척도를 지니고 있으면서 그 속에서 스스로를 찬양하고 동시에 스스로에게 힘을 부여하는 것으로 되어 있다. 이와 관련, 시의 힘은 너무도 강렬하여 시인들은 종종 신이 자신들의 노래에 영감을 불어넣어 주는 것인지 자신들의 시가 신에게 힘을 부여해주는 것인지 어리둥절해 한다. 하지만 본 글에서는(v.5) 인간으로서의 시인들이 이미 존재하고 있는 상태의 관계를 추구하면서 모든 척도에서의 신이 지닌 힘을 발견해낸다라고 언급하고 있다. 여기서 등장하는 남성 인물인 푸만(puman)은 이전의 글에서 등장한 근원적 인간 즉, 푸르샤(purusa)와 관계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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