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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 내면의 우주적 광채
현대의 인간은 자신을 욕구로 뭉쳐진 존재로 정의하는 경향이 있으며 그러한 욕구를 충족시킬 권리가 있다고 주장한다. 인간은 의식주와 “교육”, 일을 필요로 하며 현대 사회는 이론상으로 인간의 욕구하는 것들을 제공해주기 위해 조직되는 것으로 되어 있다. 하지만 베다가 제시하는 견해는 그 같은 사회를 조직하는 것보다는 개인적인 욕구 충족에 더 중점을 두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더불어 정의 대신에 영광 즉, 영광스러운 인간과 영광스러운 사회에 중심적 가치를 두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여기서 인간의 영광은 신의 영광을 모방한 것이라기 보다는 우주에의 참여에 있는 것으로 여겨지며 실지로는 창조물에 깃든 신의 광채에 있는 것으로 보인다. 인간의 영광은 신의 영광의 반사체는 아니며 우주적 경이로 이루어진 현실 속에서 자신의 역할을 완전 실현함으로써 신의 광채를 공유하는데 있다. 달리 말하면, 이상과 같은 상황의 기저를 이루는 것은 보다 저차원의 존재가 보다 고차원의 존재를 모방하고 그에 도달하려고 노력하는 어떤 이원적 양상은 아니며 오히려 신과 물질적 대상들을 포함해 각각의 존재들이 자신만의 적정한 역할을 지니고 있는 다원적인 구조이다.
하지만 그같은 다원적인 구조도 하나의 유일론적 근거를 내포하고 있다, 각각의 존재가 자신을 깨닫고 자신의 충만 상태에 도달할 수 있는 것은 최종적인 불일치를 허용하지 않는 조화롭고 완벽한 하나의 양상 속에서 각각의 역할을 수행하기 때문이다. 인간에게는 그러한 양상을 발견해낼 특권이 있으며 그를 통해 이사 우파니샤드에 언급된 이상 상태(ideal)를 실현하고 모든 대상들을 자신의 자아속에서 바라보며 동시에 자신의 자아를 모든 대상들 속에서 바라볼 수 있는 특권이 있다. 이렇게 함으로써 인간은 망상과 슬픔이 없는 진정한 충만에 이르게 된다. 완벽에 대한 갈망, 인간 상황의 극적인 개선에 대한 추구심 등은 인간이 태어날 때부터 가지고 있는 것들이지만 그 모든 것들은 인간이 갖는 완벽에 대한 개념에 따라 좌우된다, 완벽한 인간이란 무엇인가? 인간에게 있어 이상 상태라든가 전형(model)이라든가 하는 것은 어떤 것인가?
본 단락에서는 베다 전통이 지닌 어떤 근본적인 특징을 묘사하고 있으며 동시에 그 특징이 어떻게 전개되고 있는지와 그 특징에 내포된 다원주의(pluralism)에 관해서 제시하고 있다. 베다 전통의 근본적 특징은 ‘인간 내면의 우주적 광채(Cosmic Splendor in Man)'라는 제목 속에 신중히 암시되고 있다. 인간의 충만은 나머지 세상으로부터의 고립을 통해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며 인간 존재의 한 일면을 확대시키는데 있지도 않다. 인간은 세상의 모든 측면들을 자신의 내면 속에서 통합시키면서 전체로서의 우주가 갖는 광채를 스스로 발산시킨다. 인간은 우주의 맹목적 힘에 의한 희생자도 아니고 우주의 수레에 달린 바퀴같은 존재도 아니다. 인간의 상황은 군주와도 같은 전적인 지배의 상황도 책임으로 짐 지워진 노예의 상황도 아니다. 그 같은 생각들 모두 본 단락에서는 이질적이며 적절치 못한 것들이다. 본 단락의 기저에 흐르는 개념은 전체성(wholeness)의 개념이자 통합(integration)의 개념이다. 완벽한 인간이란 단지 순수한 심성이나 건강한 육신을 지닌 사람을 말하는 것이 아니며 그것은 완벽이란 기존의 모든 인간 가치관들을 어떤 식으로든 통합하는 것을 암시하기 때문이다. 이에 덧붙여 본 단락은 전체성의 강조에 있어 다양성이 존재하며 나아가 전체성을 이해하는데 있어 광범위한 다원성이 존재하고 있음을 보여주고 있다.
아트르바 베다(XIX, 51)에서 인용한 본 단락의 첫 번째 내용은 전체 인간 영역을 아우를 뿐만 아니라 감히 신까지도 포용하는 분리되지 않은 통합된 삶을 인간이 완벽성을 이룬 상태로 간주하고 있다.
찬송에 관한 것으로서 리그 베다(X, 158)에서 인용한 두 번째 내용은 모든 실체를 끌어안으려는 욕구가 있다는 점에서 명백히 동일하긴 하지만 우주적 창조물 일체를 포용하려는데 더 중점을 두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인간은 세상으로부터의 배제를 원하지 않으며 일견(一見)의 방식으로 전체로서의 세상과 세세한 모든 것들로서의 세상을 끌어안고 싶어한다. 여기서 행복한 삶이란 신을 바라보는 것이 아니다 전체로서의 세상의 실체와 모든 구체적이고 세세한 것들로서의 세상의 실체를 직접적으로 들여다보는 것이다.
본 단락의 다음 내용으로서 야쥬르 베다(XXXVI)에서 인용한 기도문은 의식의 일부분을 구성하는 것이며 예찬의 성격을 지니고 있다, 해당 기도문에서는 전체성이란 조화와 평화가 존재하고 인간이 우주의 구도 속에서 자신의 위치를 지니고 있는 상태로 간주하고 있으며 무질서(disorder)를 저주스러운 것이고 죄가 되는 것으로 보고 있다. 더불어 인간의 완벽성이란 대상물들의 전체적 구도 속에 질서 있는 방식으로 통합되는데 있는 것으로 보고 있다.
이어지는 또 다른 기도문 역시 야쥬르 베다에서 인용된 것이며 앞선 내용과 동일한 기조를 이루고 있다, 여기서는 아그니에 관해 언급하고 있으며 육신과 삶, 심성의 행복을 비롯해 인간의 완벽성을 위해 필요할 수 있는 모든 것을 요구하고 있다.
아트르바 베다(III, 22; VI, 38)에서 인용된 본 단락의 나머지 두 내용은 창조물의 정점에 도달하고자 하는 인간의 갈망을 묘사하고 있다. 인간은 자신을 벗어나 있는 광채 즉, 자신이 소유할 수 없는 광채에 대한 생각을 용인할 수가 없는 존재이다. 그리고 인간은 코끼리의 위엄, 사자의 강력함, 물의 부드러움, 천둥과 바람의 힘을 포함해 자연이 지닌 모든 속성들을 지니고 싶어한다. 나아가 인간은 신의 영광을 갈망하며 그 영광을 입게 되기를 염원한다. 더불어 우주의 왕이 되기를 기원하며 무한한 힘을 자신에게 부여해 달라고 신에게 솔직히 기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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