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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무나 (ramanadas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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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설일 : 2006/04/30
 

오쇼-어둠을 밝혀 주는 지혜, 마흔두가지 중에서

2009.10.11 17:24 | 오쇼 라즈니쉬 | 야무나

http://kr.blog.yahoo.com/ramanadass/6359 주소복사

42 Enlightened Wisdoms by Osho
어둠을 밝혀 주는 지혜, 마흔두가지 by Osho   중에서






모든 가능한 방법으로 삶을 경험하라.

좋음과 나쁨, 달콤한 것과 쓴 것,
밝음과 어둠, 여름과 겨울 등
모든 양면성을 경험하라.
경험을 두려워 말라.
경험이 많으면 많을수록,
그대는 더욱 더 성숙할 것이기에.

 


환희는 바로 우리의 본성이다.
환희롭지 않음은 절대로 불필요한 것이다.
환희로움은 자연스럽고, 자발적이다.
환희롭게 되는 데에는
결코 힘이 들지 않는다. 

하지만 비참하게 되기 위해서는
많은 노력이 있어야 한다.
비참함이란 정말 힘든 작업이다.
이것이 그대가 피곤해 보이는 까닭이다.
비참함속에 계속 있는 것은
참으로 어려운 일이다.
왜냐하면 그대는 본성에 반하는
어떤 짓을 계속 해야 하기 때문이다.

 


그대가 진정으로 신비와
대면하고자 한다면
경이 속에 머물러 있어라.

신비는 질문을 계속 해대는 자에게는
결코 문을 열지 않는다.

탐구자는 조만간 도서관에서 종말을 고할 것이다.
탐구자는 곧 경전과 함께 사라질 것이다.
왜냐하면 경전에는
온갖 모범답안으로 넘쳐나기 때문이다.
정답이란 것은 해롭다.
그것은 그대의 경이를 질식시킬 것이다.

 


어느 시대를 막론하고 모든 깨달은 자는
다음과 같은 매우 간단한 사실 하나를 말해왔다. 
"그저 존재하라, 무엇인가 될려고 하지 마라"

그저 있음 그리고 무엇인가 되려고 함,
이 두 문장 안에 그대의 인생 모두가 함축되어 있다.
'존재함'이 깨달음이다.
'되려고 함'이란 무지이다.


 


진리는 경험되어질 수 있지만,
정의되어질 수는 없다.
경험이 정의는 아닌 것이다.  

하나의 정의는 생각에 의해서 규정되어지고,
경험은 온 몸으로 뛰어들음으로서 가능하다.

누군가가 "춤이란 무엇이냐?"고 묻는다면,
그대는 그것을 어찌 정의할 수 있겠는가?
하지만 그대는 춤출 수 있고,
그것을 가슴깊이 느낄 수 있다.

신성은 궁극적인 춤이다



창조적으로 된다는 것은
삶과 사랑에 빠지는 것을 뜻한다.

삶의 아름다움을 향상시키고 싶어 하며,
음악이 삶속에 울려 퍼지기를 바라고,
삶을 따라 시를 읊으며,
삶과 더불어 춤추기를 바라는,
이처럼 삶을 듬뿍 사랑할 때만이
그대는 창조적이 될 수 있다.


 


생명이 없는 원칙은 도움을 줄 수 없다.
오직 살아 있는 의식만이 도움이 된다.
절대적으로 원칙이라는 것에 얽매이지 마라.
그저 삶에 맡겨라.

 


사랑에 빠지면, 그대는
어린아이인 채로 남는다.
사랑 속에서 자라날 때, 그대는 성숙한다.
이윽고 사랑은 하나의 관계로서가 아니라,
그대의 존재성이 된다.
사랑안의 그대가 아니라,
바로 지금 그대가 사랑인 것이다.

 지식에 얽매이지 말고,
어린아이같이 더욱 더 천진난만하게 되라.
삶을 놀이로 받아 들여라.
왜냐하면 삶이란 정확히 그것이기 때문이다.


  


두려움을 놓아 버려라.
두려움은 어린 시절부터
무의식적으로
그대 스스로 키워온 것이다.

이제는 의식적으로 .
그대가 성장해 가면 갈수록,
그 두려움을 떨쳐 내버리고, 성숙해져라
삶은 더더욱 깊어지는 한줄기 빛이 될 수 있다.


 


 그대의 삶 내면의 신비를
아는 것과 비교할 때,
전 세계를 아는 것은
아무 것도 아니다.


 


심각함은 병이다.
그대의 유머감각이
그대를 더욱 인간적으로 되게 하고,
더욱 겸허하게 할 것이다.  

나의 관점으로는,
종교성의 가장 본질적인 부분 중의 하나가
바로 유머감각이다.

 


아무런 의도 없이 삶을
마주 대하는 것은 매우 아름답다.
그제 서야 삶은 새로움과 젊음으로 가득 차게 된다.

그러면 삶은 흐르게 되고, 신선함을 가지게 된다.
그때 삶은 수많은 놀라움으로 넘칠 것이다.
그렇게 되면 지루함이라고 하는 것은
결코 그대에게 자리할 수 없다.

 


세상에 나쁜 것이라든가
나쁜 힘이라는 것은 없다. 
다만 깨어있는 사람들,
그리고 깊이 잠들어 있는 사람들이 있다
-- 잠은 힘을 가지고 있지 않음.

모든 에너지는 깨어난 사람들의 손 안에 있다. 
그리고 한명의 깨어난 사람이 온 세계를 깨울 수 있다.  
하나의 불타는 양초가 그 밝음을 잃지 않고,
무수히 많은 양초들을 불 밝힐 수 있다.




죄의식을 버려라!
왜냐하면 '죄의식속의 삶'은
'지옥의 삶'이기 때문이다.

죄의식이 없다면,
그대는 이른 아침 햇살아래
이슬처럼 새롭게 될 것이다.
그대는 호수위의 연꽃잎처럼
청정하게 될 것이다.
그대는 밤하늘의 별처럼
영롱하게 될 것이다.

일단 죄의식이 사라지기만 한다면,
그대는 밝고 눈부신,
완전히 다른 삶을 살게 될 것이다.
그대의 발은 춤출 것이며,
그대의 가슴은 수천가지 노래를 부를 것이다.

 


일몰을 보고 있노라면,
아주 잠깐일지라도 그대는
스스로의 분리의식(자아의식)을 잊는다 :
그대는 일몰인 것이다.
그때가 바로 그대가 일몰의 아름다움을 느끼는 순간이다. 

그러나 그대가 "아름다운 일몰이구나" 하고 말하는 순간,
그대는 더 이상 그것을 느끼고 있지 않다;  
그대는 다시 자아의식으로 돌아와서,
에고의 세계에 갇혀버린다.  

 이제 마음이 말한다.
마음은 말할 수 있지만 아무 것도 알지 못한다.
이것은 참으로 미스테리하다.
그런데, 가슴은 모든 것을 알고 있지만 말할 수 없다.
아마 너무도 많이 알고 있다는 것이
말하는 것을 어렵게 하나보다;
마음은 거의 아는 것이 없어서
말하게 되나 보다.  

  


깨어 바라보는 영혼은 하늘과 같다.  
새들은 하늘을 날아다니지만
어떠한 자취도 남기지 않는다. 
이것이 붓다가 말한 바이다.
깨어있는 사람은 이처럼
어떠한 흔적도 남기지 않고 살아간다.  

그는 고통도 없이, 공포도 없이 존재한다. 
그는 결코 뒤를 돌아다보지 않는다.
돌아볼 까닭이 없다.  

그는 너무도 완전히 지금 이 순간을 살아가기에
또다시 뒤 돌아볼 필요가 어찌 있을 수 있겠는가?  

그는 결코 앞서서보지 않는다.
그는 결코 뒤돌아보지 않는다.
그는 지금 이 순간을 살아간다.



 

라마 2009.10.12  23:34

"신비는 질문을 계속 해대는 자에게는 결코 문을 열지 않는다. " 최근에 마음이 힘들어 했던 이유군요. ^^ 감사합니다.
"일몰을 보고 있노라면, 아주 잠깐일지라도 그대는 스스로의 분리의식(자아의식)을 잊는다 : 그대는 일몰인 것이다. " 옴 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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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무나 2009.10.13  00:02

라마님, 오랫 만에 뵙습니다. ^^


하나의 양초가 무수히 많은 양초를 밝힐 그날을 기다리며.. _()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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