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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설일 : 2006/04/30
 

의식의 유희-사랑의 길 / 묵타난다

2009.08.15 16:12 | 묵타난다 | 야무나

http://kr.blog.yahoo.com/ramanadass/6321 주소복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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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9장 사랑의 길


사랑의 사다나는 매우 수준 높은 사다나이다. 사랑은 또한 박띠 즉 헌신이라고 불리기도 한다. 사랑이란 역동적이고도 영감을 주는 가슴의 고동이다. 사랑이란 바로 신의 본성이며, 경전의 저자들은 그것을 지고의 황홀경 및 사찌다난다라고 불러왔다. 그것은 완전한 상태로 인간 내면에 존재한다. 비록 인간이 그것을 경험하지 못할지라도,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것은 거기에 존재한다. 불빛을 한 번도 본 적이 없는 맹인은 다른 사람들이 그것에 대하여 이야기하는 것을 들을 때, “불빛은 없다. 나는 그것을 본 적이 없다. 나는 그것에 대하여 아무것도 모른다.”라고 말할지도 모른다. 그러나 불빛은 존재한다. 그에게는 보는 눈이 없기 때문일 뿐이다. 이와 마찬가지로 사랑을 경험하든 않든 간에 사랑은 존재한다. 만약 당신이 사랑의 길을 따라가 본 적이 없거나 그 사랑을 찾으려고 노력해 보지 않았다면, 어떻게 그 사랑을 얻을 수 있겠는가?
사랑은 넥타이다. 사랑은 불멸이다. 단지 사랑을 통하여 고꿀의 고삐들은 신을 발견하였다. 사랑은 내면에 있는 비밀스러운 동굴을 일견하는 것이다. 내면에 거주하고 있는 사랑은 여러 감각 기관을 통하여 흘러나온다. 그것이 눈으로 흘러갈 때, 그것은 형상을 아름답게 만든다. 그것이 귀로 흘러갈 때, 그것은 소리를 감미롭게 만든다. 그것이 혀로 올라갈 때, 그것은 미각을 달콤하고 감미롭게 만든다. 사랑은 바깥으로 표현될 때, 감각적인 대상들을 즐겁게 만드는 황홀한 참나이다. 앞에 숫자가 없는 영들은 의미가 없으며 영에 불과한 것과 마찬가지로, 만약 이 흘러나오는 사랑의 고동이 멈추게 되면, 감각들은 생명이 없고, 기쁨이 없으며, 쓸모없게 될 것이다.
당신의 일상생활 속에서 사랑을 배우라. 이 사랑은 순수하고, 집착이 없어야 하며, 사랑 그 자체를 위하여 주어져야 한다. 만약 사랑에 어떤 요구들이 있으면, 그것은 단지 상업적인 교환에 불과하다. 즉 그것은 사랑의 몸짓이지 사랑 그 자체는 아니다. 진정한 사랑에는 어떤 요구도 없고, “나의 것이나 너의 것”도 없으며, 이기심도 없는 것이다. 사랑은 그냥 사랑이다. 슈리 구루 니띠아난다는 바로 그 사랑이다. 그냥 사다구루를 사랑하라. 그에게 해방조차도 요구하지 말라. 인간의 가슴 속에는 한 사람뿐만 아니라, 수천 명의 사람들에게도 줄 수 있는 충분한 사랑이 있다. 그러나 갈망과 쓸데없는 사고 때문에, 불운한 사람은 그것을 볼 수 없다. 일단 그가 이들로부터 벗어나면, 그는 순수하고도 불멸의 그리고 완전한 사랑을 발견하게 된다.
사랑을 발견하기 위해서 당신은 그 무엇보다도 당신 자신을 사랑해야만 한다. 당신이 불순하고, 기쁨이 없고, 비실재적이고, 덧없거나 불행하다고 반복함으로 당신 자신을 고문하지 말라. 어떤 종교들, 어떤 지역사회들, 어떤 시 작품들은 몸을 껍데기 이상의 것이 아닌 미천하고, 약하고, 보잘것없는 것으로 생각한다. 얼마나 부당한 말인가! 뚜까람은 브람마부따 호떼 까야 짜 끼르따니, “신의 이름을 반복함으로, 몸이 성스러워진다.”라고 말한다. 신에 대한 기억, 명상, 헌신적인 공경과 구루에 대한 사랑을 통하여 신성을 얻게 되는 몸을 당신은 얼마나 부당하게 다루고 있는가!
나는 자신의 몸을 혹사시키는 많은 수행자들을 보아왔다. 그 결과로 그들이 결국 얻은 것은 오직 병이었다.
오, 싯다 수행자들이여! 당신의 살아있는 몸은 여신 찌띠의 사원이다. 순수하고 순결함으로, 맛있고 건강에 좋은 음식을 먹음으로, 그리고 아름다고, 소박하고도 깨끗한 옷을 입음으로써, 몸을 존경하는 마음으로 다루라.
오, 싯다 수행자들이여! 만약 다른 사람들이 이 몸을 천하다고 한다면, 그렇게 하도록 내버려 두어라. 당신은 구원이 바로 이 몸을 통하여 얻어진다는 것을 잊어서는 안 된다. 만약 당신이 사랑하는 신과 구루를 얻고 싶고 그리고 내면에 있는 사랑의 근원을 열어젖히고 싶다면, 당신은 먼저 당신 자신을 사랑해야 한다. 오직 사랑만이 당신을 신에게로 데려다 줄 것이다. 당신은 내면의 평화를 갈망하지만, 당신은 몸과 감각을 미워하고 있다. 당신은 내면의 기쁨을 동경하지만, 그 기쁨에 이르는 수단이 되는 몸이 마치 당신의 최대의 적인 것처럼 그 몸을 적대시하고 있다. 먼저 당신의 몸을 완전히 알라. 일단 당신이 당신 내면의 존재를 안다면, 당신은 몸이 환영이 아니라 지식으로 가득 찬 아름다운 사원이라는 것을 깨닫게 될 것이다. 몸을 사랑함으로써 당신은 당신 자신의 사랑의 샘물을 흐르게 할 것이다.
명상 중에 스스로 드러나는 늘 새로운 기쁨이 자유롭고도 영감을 주는 힘으로 가슴 내에 거주한다는 것을 이해하라. 이 사랑을 발달시켜라. 그리하여 그것이 당신으로부터 타인에게로 흐르게 하라.
사랑은 감각적인 만족을 위한 것이나 혹은 이기적인 목적을 위한 것이 되어서는 안 된다. 왜냐하면 그때에는 그것이 단지 집착이지 신의 사랑이 아니기 때문이다. 집착은 불순하다. 그러므로 집착은 당신을 신으로 결코 데려다 줄 수는 없다. 사랑은 받음을 통해서가 아니라 주는 것을 통해서 증가된다. “내 것과 너의 것”이라는 느낌은 사랑의 큰 장애물이다. 당신의 사랑은 평등해야 하고, 견줄 나위 없는 것이어야 한다.
사랑하는 싯다 수행자들이여! 만약 당신이 사랑을 찾고 싶다면, 당신은 사랑이 거주하는 장소인 몸을 진정으로 이해해야만 한다. 당신은 몸을 이루고 있는 다섯 가지 요소들의 기능들을 알아야만 한다. 당신의 몸에 대한 태도는 순수하고, 우호적이고, 존경스럽고도 애정이 가득 해야 한다. 몸은 수많은 탄생을 통하여, 고통과 행복이 수반된 수많은 여정들을 통하여, 인간의 동료이자 친구였다. 몸은 사다나를 위하여 근본적으로 필요한 것이다. 그것은 해방의 도시로 올라가는 사다리이다. 그것은 내면의 참나의 위대한 사원이다. 이 몸으로 된 사원의 가장 깊숙한 곳에, 사랑의 주인인 신이 내면의 참나로서 살고 있다. 그러므로 묵따난다는 다음과 같이 말한다. 싯다 수행자가 몸을 이해하고, 몸이 내면의 참나의 사원이라는 것을 알게 될 때, 그는 결코 몸에 적대적인 어떤 것을 행하지 않을 것이며, 또한 몸을 품위 없는 어떤 것에 연루시키지도 않을 것이며, 또한 타락된 비도덕적인 행동으로 몸을 결코 더럽히지도 않을 것이다.
어떤 사람들은 몸을 클럽이나, 호텔 혹은 극장과 같은 쾌락의 장소로 여기고는, 몸의 순수성을 파괴하고 그들의 힘을 잃게 된다. 내가 보기에 그들은 자신의 몸을 존중하거나 몸을 정당하게 다루지 않고, 자신들의 몸을 모욕하고 있다. 또한 자신들의 순수하고 우호적인 몸을 잔인하고 부자연스럽게 고문하고 억압하는 어떤 신경증적인 사람들도 있다. 사랑으로 충만 되어야만 할 그들의 가슴들이 비탄으로 채워진다. 그들은 밤낮 자신들의 몸을 해치고 있다. 그들은 신체라는 감옥으로부터 그들을 자유롭게 해달라고 신에게 끊임  없이 기도한다. 그러나 진실로 말하자면 몸에는 어떤 잘못도 없다.
몸은 다섯 요소로 만들어져 있으며 참나의 집이다. 그것은 당신이 기쁨과 슬픔을 경험하는 땅이다. 몸은 참나의 하인이다. 그것은 항상 당신에게 봉사하고 있으며, 당신이 그 몸을 데려가려는 곳마다 따라갈 준비가 되어 있다. 만약 당신이 몸을 지옥으로 데려가고 싶다면, 그것은 당신이 요구하자마자 거기로 갈 것이다. 만약 당신이 그것을 천국으로 데려가고 싶다면, 그것은 기꺼이 그곳으로 갈 것이다. 만약 당신이 몸을 코끼리나 말 위에 앉히면, 그것은 기뻐한다. 만약 당신이 몸에다 끼르, 뿌리 및 할바라는 음식을 먹이면, 그것은 기뻐한다. 만약 당신이 몸에다 고추 꼬투리, 처뜨니와 마른 빵을 먹이면, 그것은 역시 기뻐한다. 그것은 모든 것에 행복해 한다. 만약 당신이 보석들로 몸을 장식해주면, 그것은 즐거워한다. 그러나 그것은 헤어진 낡은 옷이나 허리에 두르는 간단한 옷으로도 그 만큼 기뻐한다. 몸은 이렇게 대단한 하인이요, 노예요, 친구라서, 이 세상에 그와 같은 자는 그 이외에 아무도 없는 것이다.
옛날에 구루에게 헌신적인 하인이 한 명 있었다. 어느 날, 어떤 사람이 그 사람에게,“안녕하십니까? 당신의 기쁨과 슬픔에 대하여 나에게 말해주시오. 아쉬람에서의 생활은 어떠하십니까? 더위와 추위가 당신에게 어떤 영향을 줍니까?”라고 물었다.
그 사람은, “선생님, 나는 여름의 더위나 겨울의 추위를 아무 것도 모릅니다. 나는 하인입니다. 나는 단지 봉사하는 방법만을 알 따름입니다. 나의 구루만이 나의 추위와, 나의 더위, 나의 기쁨과 고통을 압니다.”라고 대답했다. 얼마나 아름다운가! 이 사람은 구루에 대한 봉사에 완전히 전념해 있었다. 그는 자신의 것으로 따로 남겨둔 것이 아무것도 없었다. 사랑은 바로 이러 하여야 한다. 사랑에는 항상 결함, 차별, 고뇌와 욕망이 없어야 한다. 이와 같은 사랑은 당신을 신으로 안내할 것이며, 당신을 신으로 만들 것이다.
당신의 몸을 이루고 있는 다섯 가지 주요 요소들에 대하여 생각해 보라. 너무나 아름답고, 수많은 종류의 음식의 모태이며, 너무나 많고 다양한 존재들의 어머니인 땅을 생각해 보라. 곡식, 꽃, 과일, 나무들과 식물들에게 생명을 가져다주고, 사랑이 가득 하여 모든 것의 더러움을 씻어주며, 모든 사람의 친구인, 순수한 물을 생각해 보라. 그것은 얼마나 사랑으로 가득 차 있는가! 자신들의 필요에 따라 모든 존재 속에서 살아 있고, 마찬가지로 모두의 친구인 불에 대하여 생각해 보라. 인간에게 그것은 소화의 불이 되어 음식을 소화시킨다. 그것은 나무, 돌 그리고 모든 물체 속에서 개개의 본성과 조화를 이루면서 살아있다. 그것은 모든 곳에 퍼져있는, 갈망이 없는 사랑의 경이로운 예이다. 인간의 생명 즉 그의 쁘라나인 공기에 대하여 생각해 보라. 그것은 생명이 있거나 생명이 없는 이 세상의 모든 것에 똑같은 정도로 퍼져있다. 그것은 우주와 그 속의 모든 것의 움직임을 지탱해주고 있다. 일단 쁘라나가 몸을 떠나면 그것은 쓸모없는 시체가 된다. 마지막으로 내면의 참나의 초연함을 상기시켜주고, 그 광대한 공간 내에서의 모든 활동을 포함하고 있는 에테르를 생각해 보라. 이들이 몸을 구성하고 있는 다섯 가지 요소들이며, 의식을 갖고 있는 참나가 모든 세포에 퍼져있다. 첫째로 이 아름답고 갈망이 없는 몸을 충분히 묵상하고, 그 다음 그것을 신과 같이 사랑하라.
자, 이 점을 생각해 보라. 만약 당신의 눈이 어떤 다른 사람의 부나 아름다움을 보고 분노와 탐욕 그리고 질투로 불탄다면, 그 두 눈에 대해 화를 내며 눈을 해치거나 혹은 눈을 뽑아버린다면 그것은 미친 짓이 아니겠는가? 포기와 고행이라는 이름으로 당신의 죄 없는 눈을 벌하는 것이 바른 일이겠는가? 그 눈은 당신의 성실한 친구들이다. 당신의 눈은 그 어떤 것에도 끌리거나 반감을 갖지 않는다. 그들은 단지 당신이 형상을 보는 것을 도와주는 친구일 따름이다. 당신이 아무리 당신의 감각 기관을 사용하더라도, 그들은 단지 당신에게 도움을 주고 있다. 그들은 당신이 그들에게 무슨 작업을 주더라도 그 작업을 할 준비가 되어 있다. 만약 당신이 몸을 통해 사랑의 요기가 되고 싶다면, 그들은 기꺼이 그렇게 할 것이다. 만약 당신이 화를 내고자 한다면, 그들은 기꺼이 그렇게 할 것이다. 당신이 무엇이 되더라도 당신의 몸은 그렇게 될 것이다. 당신이 무엇을 표현하기를 원할지라도 그것은 그렇게 되는 것이다.
당신의 몸을 바르게 이해하라. 갈망이 없이, 당신의 눈 속에 자리 잡고 있는 태양과 달을, 당신의 모든 감각기관 속에 자리 잡고 있는 신들을, 손과 발과 같은 몸의 여러 부분들을 사랑하라. 그런 다음에 감각의 속성 속에 거주하고 있는 속성 너머의 신을 발견하고 공경하라. 기계적으로 공경하는 것이 아니라, 깊고도 갈망이 없는 사랑으로 공경하라. 당신은 억제하는 수행을 해야만 한다. 감각을 통제해야만 한다. 그러나 억제나 포기의 이름으로 몸을 고문하거나 병들게 하지 말라.
당신은 감각 기관과, 근육, 신경 및 뇌와 같은 몸 안에 있는 여러 가지의 능력을 알아야만 한다. 그들은 당신에게 적대적이지 않다. 그들은 당신에게 행운을 가져다주는 것도 불운을 가져다주는 것도 아니다. 그들은 선하지도 악하지도 않다. 그들은 절대적으로 초연하다. 그들은 마음과 내면의 경향성에 따라 행동한다. 인간의 내면의 샥띠는 신의 샥띠이다. 똑같은 신성한 샥띠가 때에 따라서 갈망, 분노, 맹목적 정열, 탐욕 등과 같은 형태를 취하며, 그녀의 수단으로서 감각 기관 한두 개를 이용한다. 묵따난다는 이렇게 말한다. 명상하라. 사랑을 소생시켜라. 사랑이 모든 감각을 통해 고동치기 시작하면, 자연스러운 포기, 자연스러운 요가 및 자연스러운 지식이 당신 내면에서 일어날 것이다. 당신의 마음이 다른 사람들에게서 사랑을 찾고, 감각을 통해 사랑을 추구하고, 외부 세계에서 쾌락의 대상을 추구하는 것은 바로 당신의 마음이 사랑 그 자체를 전혀 보지 못하기 때문이다. 만약 인간이 자기 자신을 신으로 알고 사랑한다면, 왜 그가 밖으로 눈길을 돌리겠는가? 도대체 바깥에 무엇이 있단 말인가? 사랑은 명상을 통해 온다.
방종한 사람은 자신의 몸이 쓸모없게 될 때까지 감각을 계속 충족시켜 갈 것이다. 결국에는 지쳐버린 몸이 그를 괴롭히며, 그는 몸을 미워하기 시작한다. 포기 수행자도 역시 부자연스러운 형태의 고행으로 자신의 몸을 완전히 지치게 한다. 그는 몸을 적대시하고 몸에다 고통을 주어 몸을 쓸모없이 만들지만, 해방의 기쁨을 갈망한다. 우선 해방을 향한 여정의 수단이 되는 당신의 몸을 이해하고, 그것을 주의 깊게 돌보고, 그 다음 그것을 사랑과 존경의 마음으로 바라보라.
당신의 몸은 신이 창조한 경이로운 예술 작품이며, 지성으로 가득 찬 아름다운 창고이며, 비밀스러운 지식의 보고이다. 신의 궁정으로 들어가기 위해서나, 바이꾼타로 여행하기 위해서나, 까일라사를 보기 위해서나, 혹은 고요함의 도시를 배회하기 위해서, 당신은 몸을 사용할 것이다. 만약 당신이 그 몸을 버린다면, 당신은 어떻게 할 것인가? 참나에 대한 지식은 명상을 통하여 몸에서 일어난다. 정말이지, 묵따난다여! 이 신성하고도 값으로 매길 수 없는 몸을 얻은 후에, 당신이 그 몸을 초월하고자 하는 대신에 그것과 끝없이 싸운다면, 그것은 미친 짓이 아니겠는가? 이 몸을 사랑하지 않고 미워하는 것이 도대체 어떤 종류의 포기 수행이란 말인가?
인간은 신의 자비를 통하여 한 몸을 얻었다. 만약 당신이 내적 혹은 외적 존재를 사랑하는 사람이 되어, 사하스라라의 전역에 뿌려진 이 끝없는 사랑의 빛으로 만들어진 넥타를 마시며 취하지 않고, 오히려 자신의 몸에 해롭고, 오염되고, 그리고 감각적인 탐닉이란 치명적인 음료수를 준다면, 그는 미치광이의 왕이 아니겠는가? 체내의 유동체를 바싹 말려버리지 말고, 사랑을 통해 그들을 증가시켜라. 바로 이것이 당신으로 하여금 신과의 일체를 맛보게 해 줄 것이다.  
나는 예전에 지식을 가진 사람으로, 항상 명상에 열중했던 한 성자의 죽음사전지식을 갖고 있었으며, 그래서 때가 오자 그는 모든 사람들을 자신의 주위에 모이도록 하고는 그들에게 축복과 용서를 구하고 난 뒤, 그들에게 감사의 마음을 전달하였다. 그 이후에 그는 네 방향과 다섯 요소들과 그리고 지혜의 수여자인 자신의 구루에게 인사를 하였다. 마지막으로 그는 걸어 다니고 움직이고 말하는 신의 사원인, 신이 주신 에 대한 믿을만한 이야기를 읽은 적이 있다. 그는 자신의 죽음에 대한 자신의 몸에 감사와 존경을 표했다. 왜냐하면 그는 그 몸을 통하여 그의 영적 여정을 완수하면서 신을 보았기 때문이다. 그는 합장을 하고서는 자신의 몸에게 이렇게 말했다.“내 사랑하는 몸이여! 당신의 은총과 도움으로 나는 신의 경지에 도달했다. 나는 당신에게 감사한다. 나는 종종 당신에게 불편함과 놀라움을 주기도 했다. 나는 나 대신에 당신으로 하여금 너무나 많은 고뇌와 고통을 감내하도록 하였다. 그러나 내가 무슨 일을 했더라도, 당신은 항상 나를 도와주었다. 정말이지 나는 당신에게 빚을 지고 있다. 오, 나의 사랑하는 몸이여! 당신은 나에게 민첩하고 예리한 마음을 주었다. 당신을 통하여 나는 명상의 최고 상태인 니르비깔빠 상태에 도달하였다. 그러므로 나의 사랑하는 친구여! 나는 항상 당신의 은혜를 입고 있을 것이다. 알게 모르게 나는 여러 번 당신을 부당하게 취급하였지만, 당신은 항상 나를 도왔으며, 당신이 나를 위하여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항상 해 주었다. 내가 당신에게 무슨 짓을 했더라도, 당신은 그 대가로 우정과 동료애 이외의 어떤 것도 나에게 결코 주지 않았다. 당신이 없었더라면, 나는 훌륭한 사다나를 할 수도 없었을 것이고, 신의 경지에 이를 수도 없었을 것이다.” 이 말을 몸에게 하고는, 그 성자는 절대자와 하나가 되었다.  
사랑하는 싯다 수행자들이여! 여러분 역시 몸에 대해서는 이 같은 고귀한 태도를 가져야만 한다. 똑 같은 공경하고 존경하는 사랑을 가져라. 성자가 자신의 몸에게 말한 그 사랑스러운 말들을 읽으면서, 나는 엄청난 기쁨이 내 가슴 속에서 고동치는 것을 느낀다. 만약 여러분이 나와 같이 그 말들에 귀를 기울일 수 있다면, 여러분은 곧 최고의 행복으로 채워질 것이다. 나는 이렇게 묻고 싶다. 나의 사랑하는 싯다 수행자들이여! 당신은 그와 같은 갈망 없는 사랑을 갖고서 당신의 몸을 본적이 있었는가? 당신은 여태껏 순수한 참나-묵상을 하면서, 명상과 찬가와 노래를 하면서, 그리고 들어오고 나가는 호흡에 따라 소함 만뜨라를 반복하면서 몸을 사랑한 적이 있었는가? 당신은 여태껏 자제를 맹세함으로써, 장수를 가져다주는 음식을 몸에 제공함으로써, 그리고 달콤하고 순수한 주스를 몸에 줌으로써 몸에게 감사한 적이 있었는가? 그렇지 않았다면, 당신은 지금까지 얼마나 배은망덕한 사람이었던가! 얼마나 예의를 모르는 사람이었던가! 당신의 소중한 친구를 이렇게 대하는 것 보다 더 나쁜 일이 도대체 어디에 있을까! 사랑하는 구도자들이여! 여러분은 몸을 묵상해야 하고, 몸이 무엇인지를 이해해야 하며, 몸과 갈망 없는 우정을 발전시켜야 하며, 몸을 아주 꼼꼼하고도 규칙적으로 돌보아야 한다. 만약 여러분이 몸을 진정으로 이해한다면, 여러분은 몸을 요가, 사랑 및 명상으로 채울 것이다.
몸을 모든 장소로 데리고 가는 것은 끊임없는 사고와 환영으로 채워진 마음이다. 몸은 생각을 따라 움직이며, 생각은 마음을 따라 움직인다. 마음은 몸과 감각 기관에 명령을 내린다. 마음을 즐겁게 하기 위해서 당신은 왜 몸에게 벌을 주는가? 람에게 화를 내면서 왜 당신은 끄리슈나를 벌주는가? 그렇게 하는 것이 도대체 무슨 소용이 있는가? 마음이 변덕스럽고 불안정하며 우리에게 괴로움을 가져다준다는 점에 나는 동의한다. 단지 마음을 통제하기 위하여 그토록 수많은 방법들이 고안되었던 것이다. 요기들은 마음을 통제하는 이 기법들을 배우지만, 그들은 여전히 자만과 에고를 추종하고 편한 삶을 신봉하는 자들이 된다. 그들은 이러한 수행을 통해서 사랑을 발견하지 못하며, 또한 가슴으로 내적 만족이나 기쁨을 발견치도 못한다. 모든 사람들은 마음이 결코 한 곳에 머물지 못한다고 말하는데, 나도 그 말에 전적으로 동의한다. 그러나 동시에 당신은 여태껏 마음에게 휴식하기 좋은 장소를 보여준 적이 있었는가? 마음을 가치 있는 장소로 데리고 가라. 그러면 마음은 그곳에 머물 것이다. 그것은 이곳저곳으로 방황하지 않을 것이다.
어떤 스와미가 시골의 자그마하고 소박한 오두막에 살고 있었다. 그는 많은 것을 소유하지는 않았지만, 가난 속에서도 풍족함을 느끼면서 살았다. 어느 날 가까운 읍의 가장 부유한 상인이 그를 방문하기로 결심을 했지만, 도착하자마자 그 스와미가 외출하고 없다는 것을 알았다. 한 제자가 그에게 앉을 장소를 마련해 주었다. 그 상인은 앉지 않고 바깥에 있는 나무 곁을 계속 오르내리고 있었다. 그 제자는 상인의 행동을 보고서 놀랐다. 스와미가 집에 돌아왔을 때 그 제자는 놀란 어조로 자초지종을 이야기 하였다. 그 스와미는 조금도 놀라지 않았다. 그는 다음과 같이 설명하였다. “형제여! 우리는 결국 탁발승이다. 여기에는 그가 앉기에 적합한 자리가 없다. 그래서 그가 바깥에서 오르락내리락 한 것은 당연하다.” 당신의 마음은 그 상인과 같다. 오직 마음이 좋은 장소를 얻을 때만, 그것은 방황을 멈출 것이다. 사랑하는 형제들이여! 여러분도 똑 같은 상황에 처해 있다. 당신의 마음은 마음이 정말로 좋아하는 어떤 것, 정말로 좋은 어떤 것을 잡고자 늘 노력하고 있다. 오, 마음이여! 당신은 모든 것을 다 시도해 봤으며, 어디를 가나 행복과 평화를 추구했으며, 당신을 기쁘게 해 줄 어떤 것을 추구했지만, 당신은 여전히 불안하고 의기소침해 있다. 당신은 지식을 추구했지만 결국 우울하기만 했다. 당신은 요가의 한 분파를 통달하여, 한 동안 생명의 꽃을 피웠으나, 곧 당신은 실패하고 말았다. 당신은 감각적인 쾌락 속에서 탐구하였지만, 사랑을 발견치 못하였다. 당신은 감각적 쾌락의 진창 속을 기어 다니는 한 마리의 지렁이가 되었다. 여전히 어떤 만족도, 어떤 안정도 없었으며, 오직 불안의 악몽만이 있을 뿐이었다.  
당신은 이제 새로운 교훈을 배워야만 한다. 모든 사람을 끝없이, 욕망 없이, 유일무이하게 사랑하라. 만약 당신이 어느 누구도 사랑해 본적이 없다면, 당신이 어떻게 평화를 발견할 수 있겠는가? 형제여! 당신은 순수하고 집착이 없어야 하며, 그리고 당신으로 하여금 차별을 보게 만드는 그 나쁜 의향이 없어야 한다. 신의 창조물 내에는 당신에게 반하고, 당신이 나쁘게 되기를 바라는 것은 하나도 없다. 당신은 신의 창조물이 당신에게 친근해지도록 해야 하는 법을 배워야만 한다. 만약 당신의 마음이 비록 단 한번 뿐일지라도 당신의 깊은 내면으로 들어갈 수 있다면, 그것은 그곳에 머물 것이다. 당신의 마음을 적으로 생각하지 말라. 그것은 위대한 힘을 갖고 있지만, 당신이 먼저 마음을 이해하고 난 뒤에야 비로소 그것을 이용할 수 있을 것이다. 어떤 요기들은 단지 보통의 정신력만으로도 온갖 종류의 기적을 당신에게 보여 줄 수 있다. 만약 당신이 당신의 마음을 정말로 알게 된다면, 당신은 그것이 얼마나 경이로운 일꾼인지를 알게 될 것이다. 마음은 웅장한 창조적 능력이다.  
마음의 변덕스러움을 묵상하라. 당신으로 하여금 싯다 요가의 위대한 지식에 끌리게 하여 가네쉬뿌리로 오게 한 것은 바로 이 마음의 불안정이다. 마음은 너무나 불안정하여 당신이 마음에게 가장 아름다운 것들을 보여줄 때라도 마음은 그들을 적절하게 즐길 수 없다. 하루는 마음이 아름다움에 관심을 가지는가 하면, 그 다음 날에는 맛에, 그 다음 날에는 향기에, 또 그 다음 날에는 소리나 혹은 다른 어떤 것에 관심을 가진다. 이러한 불안과 동요로 말미암아 마음은 끊임없이 좋은 멋진 장소를 찾아간다. 만약 마음이 동요하지 않았다면, 화난 사람은 늘 화를 내게 될 것이고, 탐욕스러운 사람은 매 순간마다 탐욕을 나타낼 것이며, 망상에 잠긴 사람은 자신들의 망상에 빠져 있을 것이고, 색을 좋아하는 사람은 영원히 색욕을 느낄 것이다. 부자들은 늘 자신들의 부에만 열중할 것이며, 예술가는 오직 자신의 예술에만 몰두할 것이다. 그러나 사정은 그렇지 않다. 어디를 가나 당신은 평화가 돈이나, 예술, 아름다움, 감각적인 쾌락 혹은 다른 어떤 것에도 있지 않다는 똑 같은 만뜨라를 듣게 될 것이다. 평화가 이러한 것들에 있지 않기 때문에, 마음은 한 장소에서 다른 장소로 방황을 하면서 끊임없이 고통을 겪는다. 결국 마음의 불안으로 인하여 당신은 절망에 빠지게 된다.  
묵따난다는 이렇게 말한다. 사랑하는 수행자들이여! 마음은 진정한 사랑과, 완전한 평온과 그리고 신과의 결합을 원한다. 마음은 매혹적인 어떤 것을 원하며, 바로 그 때문에 마음은 불안하다. 그것은 불안이라는 한 장소를 떠나 그 다음의 불안한 장소로 나아간다. 마치 꿀벌이 꿀을 모으기 위하여 이 꽃에서 저 꽃으로 날라 다니듯이, 마음도 이런 저런 이유로 계속해서 방황한다. 그러나 이와 같은 불안한 마음의 배후에는 마음이 완전한 휴식을 찾고 있다는 의미심장한 탐구가 있다는 점을 기억하라. 마음이 명상을 통하여 참나 속으로 완전히 사라질 때까지 마음은 항상 동요할 것이며 결코 안정되지 못할 것이다. 오직 마음이 꾼달리니의 선물로서 명상에 몰입하여 내면의 빛과 하나가 될 때만, 마음은 그 불안정성을 버리고 고요하게 될 것이다. 마음이 명상을 통해 참나 속에서 완전히 고요해지고 그리고 사랑에 열중할 때만, 당신은 더할 나위 없는 환희의 화신이 될 것이다. 당신의 방향은 변할 것이며 당신은 변형 될 것이다. 순수한 평화의 샘이 당신 안으로부터 흘러나올 것이다.
마음은 신을 제외한 그 어디에서도 완전한 휴식을 발견할 수 없다. 당신이 신을 만날 때 당신은 모든 것을 찾으며, 그래서 마음은 안정을 찾게 된다. 그러면 비록 당신이 노력할지라도 마음은 움직이지 않는다. 이런 관점에서 볼 때, 당신으로 하여금 진리와 평화를 찾아 나서도록 만든 것은 일시적인 고요함에 한 번도 만족하지 못했던 바로 당신의 불안한 마음이다. 마음은 신을 제외한 그 어디에서도 고요해지지 않는다. 마음으로 하여금 평화를 찾도록 만든 것은 바로 이러한 경향의 마음 때문이다. 당신은 마음의 편에서 볼 때 이것을 위대한 봉사로 간주해야 한다. 당신의 불안한 마음은 당신에게 큰 자산이다. 왜냐하면 그것이 명상에 대한 당신의 관심을 촉진시켰으며, 당신으로 하여금 싯다의 은총을 받을 가치가 있도록 해 주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당신은 마음의 자비로운 은총을 진심으로 환영해야만 한다.
사랑하는 구도자들이여! 만뜨라와 같고, 또한 실제적인 경험으로 채워지기도 한 묵따난다의 말을 기억하라. 어떤 사람이“나의 종교가 최고다.”라며 아무리 자랑을 하더라도 마음이 거기에서 휴식을 찾지 못하면, 그것은 신의 거주지가 아니다. 어떤 사람이 “이것은 위대하고 진정한 만트라이다.”라며 만뜨라를 칭찬하는 것을 여러분이 아무리 많이 듣는다 하더라도 마음이 거기에서 행복해 지지 않으면, 그것은 신이 거주하는 곳이 아니다. 어떤 종파가 아무리 유명하고 어떤 구루가 아무리 훌륭하다 하더라도, 그가 훌륭한 기적을 행하거나, 성수를 마시거나, 성스러운 재를 바르거나, 혹은 여러 신과 여신들을 숭배하든지 간에, 마음이 거기에서 휴식을 찾지 못하면, 그곳조차도 신의 거주지가 아니다. 만약 마음이 잠시 동안 한 장소에 머물고는 곧 동요하면서 움직인다면, 그곳에는 평화가 없다는 것을 의미한다. 당신은 마음을 멈추려고 노력할 수 있지만, 그것은 항상 계속 움직이기를 원할 것이다. 그것은 계속해서 행복을 찾아 움직인다. 만약 당신이 마음을 정지시키기를 원한다면, 당신은 그것을 사랑 속으로 가라앉히고 참나의 깊은 사랑 속으로 밀어 넣어야 한다. 평화의 환영이 있는 곳에서는 마음이 순간적으로 멈출 것이지만, 곧 이어 그 어느 때보다 더 불안한 상태로 다시 움직일 것이다. 그러나 마음이 진정으로 행복한 곳에서는, 마음의 움직임은 멈추고 마음은 평온을 찾는다.  
당신의 마음을 억지로 통제하려고 하지 말고, 당신은 마음을 잘 인도하여 참나의 황홀경이란 강으로 데려가야 한다. 진정한 사랑의 빛이 빛나고 있는 곳인 참나의 사랑이란 신성한 그늘로 가는 순례의 길로 마음을 데려가라. 만약 당신이 마음을 지고로 황홀한 참나에게로 돌린다면 마음은 가능한 한 빨리 그곳으로 달려가기를 원할 것이지만, 만약 당신이 강제적인 힘이나 고행을 통해 마음을 평화롭게 하려고 고집스럽게 노력한다면 그것은 더욱 더 동요하며 당신을 배반할 것이다. 마음을 사랑하라. 그러나 당신이 마음을 사랑하기 전에라도 그것을 마음이라고 생각하는 것을 그만두어라. 그것을 마음으로서 고동치는 여신 찌띠라고 생각하라. 마음에 대한 적개심을 버리고, 마음과 진정한 우호를 수립한 뒤에 “내면의 참나에게로 가라.”라고 말하라. 이와 같이 생각하는 것이 실제로 명상이다. 만약 당신이 마음을 정복하고자 한다면, 당신은 그것이 찌띠로 가득 채워져 있다고 생각하고는 그것을 사랑하여야만 한다. 당신이 마음을 평범한 것이라고 생각하거나 당신이 마음에게 적개심을 품을 때, 마음은 당신을 정복한다. 그러므로 마음을 완전히 정복하기 위해서는 당신은 마음을 사랑해야만 한다. 사랑은 승리의 만뜨라이다. 그것은 신을 당신에게로 끌어들이는 자석이다. 그것은 마음을 취하고 즐겁게 만드는 위대한 야그나이다. 사랑은 위대한 힘을 갖고 있다. 그것은 불가능한 것을 가능하게 한다. 그것은 깨어진 것을 완전하게 만드는 힘을 갖고 있다. 당신 스스로를 작고 하찮은 존재라고 더 이상 생각하지 말라. 당신 자신을 사랑으로 채워라. 그리하면 당신은 당신 자신의 위대함을 보게 될 것이다.
사랑하는 명상의 요기들이여! 명상을 통하여 당신은 무엇이 당신 내면에 있으며 무엇이 당신 내면에 없는지를 발견할 수 있다. 명상이 없다면 당신은 가난하다. 명상이 있으면 당신은 부유하다. 그러므로 먼저 당신 자신을 사랑하고 사랑과 함께 명상하라.
옛날에 한 싯다가 숲속에 살고 있었다. 어느 날 어떤 구도자가 그를 찾아와서 그에게 “마하라자! 나는 신을 보고 싶습니다. 어떤 사다나를 해야 합니까?”라고 물었다. 그를 자세히 살피고 난 뒤에 싯다는 “당신은 누구를 사랑합니까?”라고 물었다.
“사랑은 신을 찾아 가는 수행의 길에는 방해물입니다.”라고 그 구도자는 대답했다.
“방해물이 되는 것은 사랑이 아니다. 사랑의 욕망이 방해물이다. 맹목적 정열이 방해물이다. 사랑은 신의 몸이다. 당신이 당신 자신과 친구와 친척들에 대하여 갖고 있는 사랑은 사방으로 퍼져나가야 한다. 당신을 람에게로 데려다 주는 그것이 진정한 사랑이다. 그러므로 모든 사람을 사랑하라.”라고 그 싯다는 말하였다.
당신 몸의 여러 수족들에게 화내지 말라. 만약 당신이 화를 내야 한다면, 몸이 아닌 화에게 화를 내라. 무지한 자들이 하는 말에 귀를 기울이면서, 당신의 동료요 친구인 몸을 괴롭히지 말라. 몸을 무자비하게 혹은 교활하게 다루지 말라. 사랑하는 구도자들이여! 당신은 몸을 통하여 모든 행위들의 결실을 얻게 된다. 모든 세계의 고행들은 몸을 통해 겪게 된다. 모든 위대한 사람들은 몸을 통해 위대하게 되었다. 위대한 현인들, 현자들, 왕들, 영웅들, 시인들, 배우들, 화가들, 운동선수들, 전사들, 대단히 정숙했던 여인들, 예수 그리스도, 부처님, 그리고 기타 모든 뛰어난 사람들은 몸을 통해 살았다. 몸을 순수하게 하라.
아무 일도 하지 않는 몸은 아무 소용이 없다. 그러므로 당신은 규칙적인 일, 아사나, 쁘라나야마 그리고 명상을 통하여 몸을 단련시켜야 한다. 당신의 몸을 신의 사원처럼 존경하라. 몸에게 올바른 음식과 올바른 이완을 베풀어주는 사제가 되라. 몸을 통하여 오직 하나의 갈망만 있게 하라. 즉 사랑의 갈망만 있게 하라. 또 하나의 소망만 있게 하라. 즉 명상을 통하여 오는 내면의 빛에 대한 비전을 얻으려는 소망만 있게 하라. 또 하나의 희망만 있게 하라. 즉 절제되고 단련된 몸과 내면의 빛을 방사하는 몸에 대한 희망만 있게 하라. 모든 것은 사랑을 통하여 가능하다. 사랑하는 사람은 사랑을 통하여 신을 볼 수 있으며, 사랑을 통하여 그는 지고로 성취할 수 없는 것을 쉽게 얻을 수 있다. 어떤 사다나도 사랑만큼 쉽지 않다. 이것은 당신이 사랑이 무엇인지를 알기 때문이다. 사랑은 사다나를 통하여 밖에서 얻어야만 하는 그 어떤 것이 아니다. 사랑의 흐름은 이미 내면의 그곳에 있다. 당신은 이 사랑을 널리 퍼뜨려야 한다. 이렇게 하면 그것은 당신을 채울 것이다. 당신이 사랑을 더 많이 주면 줄수록, 그것은 더욱 커질 것이다. 자신의 사랑을 퍼뜨리는 사람은 어디를 가나 사랑으로 환영받을 것이다.
나는 사랑이라는 탈을 쓴 채 단지 미워만 하는 많은 사람들을 보아왔다. 사랑 속에는 미움이라는 것이 들어설 자리가 없다. 높고 낮음이라는 느낌도 없어야 한다.“우리는 비슈누의 헌신자이다. 그래서 우리는 쉬바 사원에는 절대 가지 않는다.”라고 말하는 어떤 냉혹하고, 분노에 찬 사랑하는 사람들이 있다. 만약 당신이 사랑 속에서 이러한 분노를 발견한다면, 그것이 도대체 어떤 종류의 사랑이겠는가? 그것은 진실로 야만적 행위에 불과하다. 사랑 속에는 계급, 사람 혹은 종교 간의 차별이 결코 있을 수 없다. 차별은 사랑이 아닌 협소한 비전에서 비롯된다. 사랑에서부터 비이원성에 대한 몰입이 나온다.  
사랑은 당신의 내면에 있으면서 당신에게 늘 새로운 경험을 가져다준다. 깊은 수면이 가져다주는 만족에 대하여 생각해 보라. 어디에서 이 초감각적인 만족이 오는가? 당신이 처음 친구를 만날 때, 당신은 만족감을 느낀다. 그것은 어디에서 기인하는가? 아름다운 광경을 보고 기뻐할 때 그 행복은 어디에서 오는가? 또 당신의 마음이 기쁨으로 가득 차게 될 때 간혹 자연스럽게 일어나는 만족감은 어디에서 오는가? 이 모든 질문들을 자세히 살펴  보라. 그리하면 당신은 큰 만족의 근원이 당신 내면에 숨겨져 있음을 발견할 것이다. 그것은 지고로 행복한 것이며, 그것의 이름은 사랑이다.
그러므로 사랑을 공경하라. 당신의 두 눈 뒤에 있는 참 목격자에게 단지 사랑의 장면만을 보여주어라. 당신의 모든 행위들이 사랑으로 가득 차게 하라. 젖소, 나무, 꽃, 그리고 과일들에 대한 당신의 사랑이 나날이 성장케 하라. 왜냐하면 사랑이 그 모든 것의 바탕이기 때문이다.
사랑은 인간을 변형시키는 강력한 원자 에너지이다. 그러므로 당신의 가슴을 메마르게 하지 말라. 당신이 만나는 모든 어리석은 자들이 당신에게 사랑이 당신 내면에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을 납득시키도록 하지 말라. 인간은 무지하기 때문에 자신에게 불공정하다. 그리고 자신이 죄인이고 보통 사람이라고 믿기 시작하면, 인간은 다른 사람들도 똑 같이 느끼도록 만든다. 나는 옛날에 세 강이 합류하는 알라하바드에 목욕하러 간적이 있었다. 내가 그곳에 앉아 있었을 때, 한 사제가 나에게로 와서는 나에게 맹세를 하라고 말하였다. 나는 맹세를 하고 싶지 않았지만, 그는 나의 말을 듣지 않고 계속 자기의 주장만을 했다. 그는 꽃과 물을 갖고 와서는, “스와마지! ‘나는 죄인이다.’라고 반복하라.”라고 말하였다.
“당신이 죄인이지, 나는 죄인이 아니다. 이같이 성스러운 곳에서도 당신은 순례자들을 바보 취급하고 있다. 나는‘덕이 있는 사람이다. 나는 선행을 하는 사람이다. 나는 욕망이 없다! 라고 말하겠다.’”라며 쏘아 붙였다. 이 말을 듣고서, 그는 가버렸다. 그와 같은 나쁜 친구를 통하여, 인간은 그들에게 기쁨이 없으며, 그들이 실재하지도 않고, 불행하고, 가난하고, 그리고 썩어 없어지는 존재라고 믿게 된다. 그리고 그들이 이와 같이 생각하기 때문에 그들은 내면의 사랑을 꽃피울 수 없다.  
사랑하는 구도자들이여! 사랑이 없는 배움은 소용이 없다. 사랑이 없는 요가는 의미가 없다. 사랑이 없는 사다나는 그것이 어떤 사다나이든 간에 당신을 참나의 기쁨 속으로 데려다 줄 수 없다. 당신 자신을 사랑으로 가득 채우고 이 사랑을 사람들 사이에 퍼뜨려라. 욕망, 갈망 혹은 집착이 없이 사랑하는 것이 맹목적 정열, 적의 및 망상을 극복케 하는 열쇠이다. 당신은 많은 경전들을 공부할 필요는 없다. 왜냐하면 모든 생각들은 신으로부터 나오기 때문이다. 여기에서는 그것이 지식의 문제가 아니라 사랑의 문제이다.
포기와 수용에 대한 논쟁에 갇혀 인생을 허비하지 말라. 왜냐하면 그 논쟁은 아무 가치가 없기 때문이다. 오직 참나에 대한 지식만이 가치가 있다. 요가와 학문과 지식이 이기주의로 가득 차게 되면, 그들은 사랑의 적이 된다. 당신은 이기주의를 완전히 버려야 하며, 이것은 사랑을 통해서만 이루어질 수 있다. 비이기적인 사랑이 가슴으로부터 일어날 때, 사람은 자신의 삶에서 깊은 평화를 경험한다. 마음을 억압하는 대신에 그것을 사랑으로 채워라. 그다음 얼마나 경이로운 황홀이 당신의 내면에 있는지를 보라.  
강압적 힘이나 호흡 통제를 통하여 마음에 고통을 주는 대신에, 단순히 마음을 참나가 있는 곳으로 안내하여, 사랑으로 그 마음을 평정하라. 신을 당신의 모든 감각 기관들의 대상으로 하라. 자신의 한 가지 즐거움이 나라야나인 사람은 사랑으로 가득 차 있는 세상을 볼 수 있다고 말한다.  
사랑은 당신의 본성 그 자체이다. 그것이 당신의 사다나이며, 당신이 도달할 최고의 경지이다. 사랑은 신이다. 사랑은 우주이다. 신은 우주로서 나타났다. 우주는 신과 전혀 다르지 않다. 우주는 신성한 샥띠의 나타남이다. 사랑은 신의 실현을 위한 완전한 사다나이다. 사랑이 없이는 신의 경지에 도달할 수 없다.  
사랑은 위대한 내적 경험이다. 그것을 내면에서 찾아라. 당신은 신성한 에너지가 전기의 속도로 당신의 전신을 통해, 즉 몸의 모든 유동체, 피, 쁘라나를 통해 돌진해 가는 것을 볼 것이다. 당신이 이러한 힘을 경험하게 될 때, 당신은 사랑이 무엇인지를 알게 될 것이다.
당신 내의 활동은 늘 계속된다. 그것은 결코 멈추지 않는다. 당신의 신경, 근육, 및 혈구는 끊임없이 그들의 기능들을 수행하고 있다. 당신이 집에 있든, 아쉬람에 있든, 아니면 다른 어디에 있든지 간에, 당신은 또한 사랑과 열정과 결의를 가지고 당신의 일을 해야만 한다.  
인간은 모든 것을 포용하고 있는 자신의 참나를 사랑해야만 한다. 그는 그 참나에 대한 완전한 믿음을 가져야 한다. 사랑은 인간을 행복의 대양으로, 평화의 이미지로, 지혜의 사원으로 변화시킨다. 사랑은 인간의 참나 그 자체이며, 그의 진정한 아름다움이며, 인간적 존재의 영광이다. “먼저 당신 자신을 사랑하라. 그 다음 당신의 이웃을 사랑하라. 그러고 나서 온 세상을 사랑하라.”라고 묵따난다는 말한다. 이것이 박e요, 이것이 냐나의 기쁨으로 가는 길이며, 이것이 요가의 기쁨을 성취하는 것이다. 기타 모든 사다나들은 사랑의 사다나 속에 포함되어 있다. 바가반 니띠아난다는 바로 그 사랑이다. 그는 모든 사다나의 보상인 지고의 행복이다. 그는 구루의 은총을 통하여 공경 받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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