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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비록 당신이 크리슈나와 떨어져 있어도, 당신은 그가 당신을 어루만지고, 당신을 부르고, 당신을 포옹하려 함을 느낄 것이다. 그의 온 존재는 너무나 달콤하고, 너무나 끌어당기고, 너무나 매력적이고, 너무나 소리가 고와서, 수천의 여인들이 그의 고피, 즉 여자 친구들이 되는 것이 전혀 이상하지 않다. 그것은 너무나 자연스럽다. 그것은 너무나 자발적인 일이다.
당신은 또 크리슈나가 성관계를 가질 수 있는지, 그가 사랑을 할 수 있는지를 묻는다. 크리슈나에게 불가능한 것은 없다. 우리에게는 성이 문젯거리지만, 크리슈나에게는 그렇지 않다. 크리슈나가 성생활을 하는지에 대해 질문하는 것은 이상하다. 그러나 우리는 꽃이 성관계를 가지는지에 대해서는 질문하지 않는다. 우리는 새와 동물이 성행위에 몰입하는지는 결코 묻지 않는다. 온 세상이 성에 잠겨 있다. 온 세상이 성행위에 빠져 있다. 모든 존재가 사랑 만들기에 몰두하고 있다. 우리는 그 이유를 묻지 않는다.
그러나 그것이 인간에게로 오면 우리는 즉시 눈썹을 치켜 올린다. 우리는 크리슈나가 어떻게 성관계를 가질 수 있느냐고 묻는다. 사람들은 긴장해 있고 불안하고, 삶에 대한 비난으로 가득 차 있고, 자기 연민에 빠져 있기에 ― 전적으로 이미 짜여져 있고 지극히 자연스럽고 단순한 ― 성 같은 하나의 행위조차도 가장 복잡한 문제가 되어 버렸다. 그는 존재가 준 너무나 단순하고 천진한 선물을 몹시 성가신 일로 만들어 버렸다. 그는 성을 원리들과 교의들의 죄수로 만들어 버렸다.
성행위의 의미는 무엇인가? 그것은 자연이 정해 준 대로 두 개의 몸이 서로 친밀하게 접촉하고 결합하는 것을 의미한다. 성이란 자연이 원하는 방식으로 두 개의 몸이 생물학적으로 친밀하게 서로 결합하는 것이다. 그것은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다. 성이란 자연의 수준에서 남성과 여성이라는 두 존재들 간의 극도의 친밀성이다. 자연은 그 너머로 갈 수 없다. 그것 너머에서 신의 관할구역이 시작된다.
크리슈나는 자연의 모든 권리를 인정한다. 그는 신과 영혼의 합일을 받아들이듯이 자연이 부여한 생물학적 친밀성을 정중하게 받아들인다.
그는 자연은 신에게 속하며, 그것은 모두 신 안에 있다고 말한다. 크리슈나에게는 성이 전혀 문제가 되지 않는다. 그것은 단순한 사실이다.
그가 어떻게 성을 그처럼 단순하고 천진하게 받아들일 수 있는지 우리가 이해하기는 무척 어려운 일이다. 우리에게 성은 삶의 하나의 사실이기를 그쳤다. 우리는 성을 다루기 힘든 문제로 만들어 버렸다. 삶의 다른 많은 단순한 것들에 대해서는 아직 그렇게 하지 않았다는 것에 대해 신에게 감사하라. 그러나 우리가 내일 그렇게 하지 않을지 누가 알겠는가?
내일 우리는 자신의 눈을 뜨는 것이 죄라고 말할 수도 있다. 그리고 우리는 크리슈나도 눈을 뜨느냐고 물을 것이다. 내일 우리는 눈을 뜨고 감는 단순한 일조차도 철학적인 문제, 신학과 교리 논쟁의 문제로 바꿀 수 있다. 그러면 우리는 바로 지금 성에 대해 묻고 있듯이, 우리의 눈으로 무엇은 해야 하고 무엇은 하지 말아야 하는지를 끊임없이 물을 것이다.
내 생각에 크리슈나의 삶은 전혀 방해받지 않고, 구속받지 않고, 제한되지 않는다. 그는 억압들과 제한들을 허용하지 않는다. 그것이 그의 아름다움과 위엄이며, 그의 독특함이다. 그에게 있어 진정한 자유는 구속들과 제한들로부터의 자유이다. 구속되지 않는 것이 그의 자유이다.
그러나 구속되지 않음에 대한 크리슈나의 의미는 우리들의 것과는 다르다. 구속되지 않음이란 우리에게는 구속들의 위반을 의미한다. 크리슈나에게 그것은 구속들과 제한들의 부재이다. 만약 당신이 이것을 명심한다면, 당신은 성을 포함한 모든 문제들에 있어서 크리슈나의 삶을 이해하는 데 아무런 어려움이 없을 것이다. 그에게는 성이 우리와는 달리 아무런 문제가 아니다. 그에게 성은 단지 생물학적인 현상이다. 만약 성이 일어나면, 그것은 일어난다. 만약 성이 일어나지 않으면, 그것은 일어나지 않는다.
우리에게 관한 한, 성은 생물학적이라기보다는 훨씬 더 심리적, 지적인 것이 되어 버렸다. 그것은 그것 자신의 올바른 자리 ― 성 센터 ― 에 있기보다는 훨씬 더 우리의 마음속에 있다.
심리학자들은 현대인이 뇌로 성행위를 한다고 말한다. 크리슈나는 우리와 달리 성에 대해 생각할 필요가 없다. 우리는 성관계 속으로 들어갈 때에도 생각하고, 성관계 속으로 들어가지 않을 때에도 생각한다. 크리슈나는 성에 대해 생각하거나 결정할 필요가 없다. 그것은 그에게는 지적 활동의 문제가 아니다. 만약 성을 필요로 하는 사랑의 순간에 이르게 되면, 크리슈나는 그렇게 할 수 있다. 그것은 그냥 일어나는 것이다. 만약 그것이 일어나지 않는다면, 크리슈나는 그것을 갈망하거나 관심을 갖지 않는다. 그에게 성은 그냥 성이다. 그는 성을 정당화하거나 비난하지 않는다.
정당화와 비난이 우리의 교육이요, 우리의 견해요, 우리의 편견이다. 그것은 성이라는 사실과는 아무런 관련이 없으며 순전히 생물학적인 내용이다. 있는 것이 그냥 있다. 그것은 좋은 것도 나쁜 것도 아니다. 크리슈나는 있는 것을 받아들인다. 있지 않은 것조차도 받아들인다.
반복하건대, 크리슈나의 수용의 의미는 우리와 다르다. 우리가 무언가를 받아들일 때는 그것에 대한 거부의 반대 의미로 그렇게 한다. 즉 거부를 억제함으로써 그렇게 한다. 거부감이 있지만, 우리 마음속에 있는 거부의 부분을 억제하고 그것을 받아들이도록 조정한다. 이 수용은 부분적인 것이다. 마지못해 하는 수용이다. 우리에게 그것은 결코 무조건적이거나 완전한 수용이 아니다. 크리슈나가 수용할 때, 그는 그냥 수용한다. 그것 내에는 아무런 거부의 흔적이 없다.
바로 이런 이유 때문에 크리슈나를 이해하기는 너무나 어려웠다. 마하비라, 붓다, 예수와 모하메드를 이해하기는 쉽다. 그러나 크리슈나는 온 세상에서 이해하기 가장 어려운 존재이다. 그러한 이유로 우리는 크리슈나를 가장 부당하게 대했으며, 아무런 비난도 받지 않고 그렇게 해 왔다.
대부분의 우리의 아이디어들, 개념들 그리고 생각들은 마하비라, 붓다, 예수 그리고 모하메드로부터 온다. 우리의 모든 도덕적 교의들과 도그마들, 선과 악 그리고 미덕과 악덕에 대한 우리의 모든 가치들 ― 우리의 모든 이상들과 고상한 원리들 ― 은 마누(Manu), 모하메드와 공자에 의해 결정되었다. 그래서 그것들을 이해하기는 쉽다. 왜냐하면 우리는 생각들의 세상, 생각들의 창조물 안에 있기 때문이다. 크리슈나는 우리를 그러한 방식으로 만드는 데 관여하지 않는다. 크리슈나가 아이디어들과 이상들, 교의들과 도그마들로 삶을 제한하는 것을 거부한다는 것은 사실이다. 왜냐하면 삶은 모든 아이디어들과 이상들을 합쳐 놓은 것보다 더 크기 때문이다. 삶은 제한이 없고 무한하다. 아이디어들은 삶을 위해 있다. 그러나 삶은 아이디어들을 위해 있지 않다. 삶은 궁극의 가치를 지니고 있다. 그러므로 크리슈나는 존재하고 있는 것이 옳다고 말한다.
이 때문에 크리슈나는 널리 이해되지 못하고 있다. 비록 우리가 그를 이해하려 노력할지라도, 우리는 그를 마누와 모세, 그리스도와 공자를 통해서 본다. 이 모든 사람들은 틀에 박힌 사람들이다. 그들은 나름의 억제들과 한계들을 가지고 있다. 반면에 크리슈나는 어떤 억제나 한계도 없으며 모든 틀에서 자유로운 존재이다.
크리슈나는 자기 자신에 대한 어떤 한계도 받아들이지 않는다. 그는 말한다. “만약 당신이 나를 이해하고자 한다면, 모든 안경을 벗고 맨눈으로 나를 보라.” 맨눈으로 맑게 보는 것, 어떤 것을 판단 없이 있는 그대로 본다는 것은 무척 어려운 일이다. 그러나 당신이 다른 사람들의 눈으로 크리슈나를 보는 한, 당신은 그에게서 어떤 결점을 발견하기 마련이다. 그러나 이 결점들은 크리슈나에게서 나오는 것이 아니라, 당신의 안경에서 나올 것이다. 당신의 편견들을 내려놓아라. 그러면 크리슈나는 가장 단순하고 자연스럽고 천진하고 진정한 인물이다. 그때 그의 삶은 열린 책이 된다. 그에게는 숨길 것이 아무것도 없다. 그는 자연스러움 그 자체이다. 그는 인간으로 나타난 순결함 그 자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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