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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은 많이 해도 관계없습니다. 많이 일어나면 많이 일하고... 일하더라도 나의 평화의 부분을 놓치지 않으면 됩니다.
평화의 부분이 무엇입니까? 말 할 때 바탕에는 무엇이 있습니까? 침묵에서부터 시작해서 말이 나옵니다. 그것을 안 놓치면 무슨 일을 해도 관계없습니다.
그것을 놓쳐버리면 조금만 행동해도 지쳐버립니다. 자기의 근원을 잊어버렸기 때문이지요. 내가 어디에 가 있더라도 시장에 가 있더라도 근원을 안 놓치면 시장에 가 있는 것이 아니고 참나와 더불어 있는 것입니다.
이 방에는 우리와 관계없이 공간이 있잖아요? 여기에 수백 명 들어와도 공간은 아우성칩니까? 안칩니까? 우리끼리는 아우성칩니다. 그러나 공간은 아우성치지 않습니다. 공간이 있기 때문에 우리가 들어올 수 있습니다. 이 방안의 공간과 같은 것을 자기 존재에서 발견해야 해요. 그것은 내가 일을 많이 해도, 적게 해도 괴로워하지 않습니다. 내가 평화의 상태에 있어도, 불안의 상태에 있어도 상관하지 않습니다. 내가 누구로부터 칭찬 받아도 상관하지 않고 비난받아도 상관하지 않습니다.
그러한 모든 것으로부터 자유로운, 손이 닿지 않는 그 무엇이 나와 더불어 있습니다. 그것은 자유입니다. 그것은 절대적인 순수입니다.
그것이 바탕입니다. 그것은 여기에만 있는 것이 아니라 어디에든 있습니다. 부산에도 있고 창원에도 있고 마산에도 있고. 그래 '그것'을 알면 어디에 가도 관계가 없습니다. 어디에 가도 평화가 있기 때문이지요. 명상해도 '그것'이 있고 명상 안 해도 '그것'은 있습니다. 푼자님은 사람들이 명상을 하면 깨운다고 해요. 명상 하지 말라고.(전체 웃음) 왜 그리 고생을 하느냐는 것이지요. '그것'은 ‘자기’ 것입니다. 사람들은 '그것'을 멀리 두고 삽니다. '그것'이 나의 것이 아니라고 하는 생각을 하는 것이지요. '그것'은 ‘나’입니다. 어떤 식으로든지 '그것'과의 거리감을 좁혀야 해요.
만약에 배를 타고 가다가 배가 난파되었다고 합시다. 저 멀리에 나무 널빤지가 있다고 하면 어떻게 하겠습니까? 헤엄쳐서 거기까지 가야만 살아남습니다. 자기가 그 널빤지를 잡기위하여 노력해야 합니다.
푼자님의 말씀은 사람들은 지금 자기 집에 불이 났는데 친구가 놀자 하면 놀고, 아이스크림 먹자 하면 아이스크림 먹는다고 그래요. 지금 자기 집에 불이 났는데도 말입니다. 먼저 자기 집에 불부터 끄고 나서, 즉 참나를 발견하고 참나에 있고 나서, 그 다음에 세상을 보면 세상이 선명하게 보입니다. 세상이 제대로 보이는 것이지요. 그때는 세상과 어떤 관계를 맺어도 관계가 없습니다.
우선 첫 번째는 '그것'을 자기화 시키는 것입니다. 그게 궁극의 약입니다. '그것'을 자꾸 회상해야 합니다. 기억하면 됩니다. '그것'을 신이라 해도 관계없습니다. '그것'이 나를 관통하고 있습니다. 생각을 하면 막힙니다. 어떤 견해를 가지면 막힙니다. 견해 없음! 생각 없음!
그러면 편안하고, 에너지가 충만하고, 아무리 일을 많이 해도 관계없습니다. 일은 나의 일이 아니고 참나의 일, 신의 일이 됩니다. 오염되어 있는 세상에 그런 일을 나눌 필요는 있잖아요. 실제로는 별로 어렵지는 않아요. 어렵게 생각하지 말아요. 너무너무 쉬운 것입니다. 그것을 받아들이면 돼요. “나는 아무것도 아닙니다. '그것'이 나의 모든 것입니다.” 이러면 돼요. 자기 생활이 그쪽에 젖어 버리면 되는 것입니다. 책을 읽거나 명상을 하거나 만트라를 하거나 하여튼 어떤 방법을 통해서든지 나의 존재가 참나에 적셔지면..!
성격은 만들어진 것입니다. 만들어지기 전에는 성격이 없었습니다. 성격이 없는 것이 참나입니다. 우리는 만들어 진 것을 가지고 자기라고 착각합니다. 나는 성격이 만들어 지기 이전입니다.
나의 최고점은 이미 제로입니다. 일, 이, 삼이나 오가 아니라 나는 제로입니다. 순수라는 것이지요. 다른 말로하면 평화, 모르는 미지의 무엇이라는 것이지요. 이제 그것을 내면화시켜서 다시 나와요. 그러면 모든 것이 다 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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