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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선이 안에 있지 않고 자꾸 바깥으로 나가는 것에 대해서 걱정할 필요는 없습니다. 세상의 대상에 관심을 두는 것은 상관없다는 말이지요. 거기에 집착만 안 하면 됩니다.
세상에 나오는 사람은 용감한 사람입니다. 나와도 걸리지 않으면 됩니다. 우리가 나올 때 자기 집에서, 참나에서 끈을 달고 나오니 저 멀리 나가도 괜찮아요. 집으로 돌아가고 싶을 때는 끈만 당기면 됩니다. 티베트에서는 사람마다 실이 있는가 봐요. 나갈 때는 줄을 달고 멀리 나간답니다. 그러니 아무리 멀리 나가도 연결이 되어 있는 것이지요. 세상에 나가 있는 사람이 있어야 세상이 유지됩니다. 어떤 사람은 청소를 해야 되고, 집도 지어야 되고, 상인도 있어야 되고, 물건 옮기는 사람도 있어야 되고, 공무원도 있어야 됩니다. 그것은 신의 세상적인 일에 기여하는 것입니다. 자기 카르마 대로 나가면 돼요. 자기 좋아하는 대로 하면 됩니다. 나가는 것은 관계없어요. 다만 나가더라도 나의 엣센스, 본질을 망각하지 않으면 됩니다. 세상에 나가지 말라는 말이 경전에 많이 있는데 그것은 참나를, 본질을 발견하기 위해 잠깐동안 실험하는 것입니다.
푼자님은 그 실험의 시간을 일초도 아닌 반초만 달라고 그래요. 그 잠시 동안 세상에 안 나가고 자기 엣센스를 아는 것이지요. 그 다음에는 자유입니다. 나가고 싶으면 나가라는 것이지요.
밤에 번개가 번쩍거리면 세상이 안보입니다. 하지만 번쩍하는 그 찰나에 뭔가가 있다는 것을 알게 되는 것입니다. " 번쩍"하는 그 순간 알면 됩니다. “아, 참나가 있구나!”하고요. 그러면 내가, 참나가 없다는 그런 말은 두 번 다시 안 하게 되지요.
그 지식을 가슴에 간직하고 있어야 합니다.
Bill Douglas / In Lovely Blu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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