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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 그리스도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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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설일 : 2006/09/10
 

이유를 알 수 없는 불안

2007.12.31 22:31 | 수필 | qfccny

http://kr.blog.yahoo.com/qfccny/1269 주소복사

   애굽에서 빠져나온 후 40년간 험난한 광야 생활을 이겨낸 이스라엘 백성들은  전쟁에서 승리할 수 있는 요소들을 두루 갖추고 있었습니다. 그들에게는 여호수아라는 탁월한 지도자가 있었고, 남자들은 40년 동안 전쟁을 여러 번 치른 훈련된 군인들이었습니다. 게다가 그들은 공동 운명체라는 단결의식이 투철했습니다.
 
   이렇게 이스라엘은 승리할 수 있는 요건들을 두루 갖추고 있었지만 강둑에 넘치게 흐르는 강을 건너 적지에 들어가서 전쟁을 하는 것은 매우 위험한 일이었습니다. 그들은 두려웠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그들을 계속 격려하셨습니다. "마음을 강하게 하라!" "담대하라!"

   준비하지 않고 사는 사람은 없습니다. 누구나 나름대로 내일을 열심히 준비하며 살아갑니다. 열심히 준비했고 승리할 수 있는 여건을 두루 마련했는데도 사람들에게는 이유를 알 수 없는 불안감이 늘 있습니다. 이러한 불안감은 생존 본능에서 나오는 근원적인 두려움에서 생겨납니다. 그러한 근원적인 두려움에 대한 해결책은 오직 우리를 위해서 죽으시고 부활하신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우리가 자신에게 솔직해지면  결국은 둘 중에 하나라는 것을 보게 됩니다. 자신을 신뢰할 것인가? 아니면 하나님을 신뢰할 것인가? 우리가 내리는 모든 결정은 근본적으로 이 두 가지 중에 하나를 선택하는 것입니다. 세상은 우리 자신을 믿으라고 합니다. 좀 더 힘을 키우고, 좀 더 훈련을 하고, 좀 더 유능한 지도자를 찾고, 하나 됨에 좀 더 힘쓰라고 합니다. 그러나 우리가 정말 해야 할 것은 온 우주의 주인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더 믿고 더 의지하는 것입니다.

   신실하신 예수께서 우리에게 약속하십니다. "수고하고 무거운 짐 진 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 (마 11:28). "평안을 너희에게 끼치노니 곧 나의 평안을 너희에게 주노라 내가 너희에게 주는 것은 세상이 주는 것 같지 아니 하니라 너희는 마음에 근심도 말고 두려워하지도 말라" (요 14:27).

   요단강을 건너 전쟁을 하러 가는 이스라엘 백성들도, 전쟁터와 같은 이민자의 삶을 살아가는 우리도 하나님의 돌보심을 바랍니다. 사람은 하나님께서 지켜주실 것을 바라고 하나님은 순종하는 사람을 지켜주십니다. 하나님의 인도하심에 순종하는 사람들을 지키시고 보호하십니다.

   하나님께서는 예수 그리스도를 믿지 않는 사람들도 인도하십니다. 예수 믿고 하나님의 백성이 되라고 인도하십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자신의 주님으로 받아들이는 것이 하나님의 인도하심에 순종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또한 믿는 사람들을 성결한 삶으로 인도하십니다. 예수님을 믿는 사람은 그 분의 말씀에 순종하며 삽니다. 예수님의 말씀에 순종할 때 우리는 자신이 예수님을 신뢰하고 있다는 것을 압니다.

   예수님께 순종하는 사람만을 돌보시는 하나님은 불공평하다고들 합니다. 그런데 순종하면 이상한 일이 생깁니다. 순종하면 할수록 더 겸손해지는 겁니다. 자신은 하나님의 특혜를 받을 자격이 없다는 것을 더 알게 됩니다. 하나님의 특혜를 받을 자격이 없는 사람을 인도하시고 축복하시는 하나님은 조금도 불공평하지 않습니다.

   자신을 의지하지 말고 예수 그리스도를 의지하십시오. 그 분의 말씀에 순종하십시오. 당신을 지키시고 돌보시는 하나님의 은혜를 누리실 것입니다.

    몇 해 전에 495를 타고 맨하탄에 가다가 도로 변에 있는 대형 광고판 하나에 커피 한 갤런에 $34이란 광고문이 써 있는 것을 보고 깜짝 놀랐었습니다. 개스 한 갤런에 $2 조금 넘었을 때였는데 커피가 한 갤런에 $34이라는 것은 제게 충격이었습니다.

   
그 광고를 보기 얼마 전에 맨하탄 미드 타운에 있는 널찍한 스타벅스에서 커피 한 잔을 마시면서 이런 생각을 했었기 때문입니다. ‘맨하탄 요지에서 이 넓은 장소를 임대해서 커피 팔아 돈이 남나? 도대체 커피를 몇 잔이나 팔아야 가게 세 내고, 인건비, 기타 경비 제하고 돈을 남기지?’ 계산도 해보기 전에 제 대답은 ‘커피를 팔아서는 도저히 채산이 맞을 수가 없다’였습니다이것은 두려움입니다. 현실적으로 불가능하게 보여지는 일을 대할 때 오는 느낌의 바탕에는 언제나 두려움이 깔려 있습니다.

 

    이 두려움은 신앙생활에서도 나타납니다. 사사기 1:19여호와께서 유다와 함께 하신고로 그가 산지 거민을 쫓아내었으나 골짜기의 거민들은 철병거가 있으므로 그들을 쫓아내지 못하였으며라고 적혀있습니다. 하나님이 유다 지파와 함께 하셔서 산지에 사는 적들은 쫓아낼 수 있었는데, 골짜기에 사는 적들은 철병거가 있었기 때문에 쫓아내지 못했다는 뜻입니다.

   
그런데 궁금증이 생깁니다. 산지에 사는 적들과 싸울 때 함께 하셨던 하나님께서 골짜기에 사는 적들과 싸울 때는 왜 함께 하시지 않았을까요? 하나님은 항상 함께 하실텐데 말입니다.

 

    이것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철병거골짜기가 무엇인지를 알아야 합니다. 병거는 말이 끄는 전차입니다. 그때 철갑을 두른 철병거는 청동제 무기밖에 없던 이스라엘에게는 공포의 대상이었습니다. 오늘날로 하자면 아군은 보병뿐인데 적에게는 탱크들이 있는 것과 같습니다.

   
그리고 골짜기는 산골짜기가 아니라 산 사이에 있는 넓은 평지입니다. 이 평지에서는 적의 철병거가 위력을 발휘합니다. 그래서 유다가 두려워했고 적들을 쫓아내지 못했던 것입니다. 그러나 철병거가 위력을 발휘하지 못하는 산지에서는 유다가 적들을 쫓아낼 수 있었던 것입니다.

 

    유다가 산지의 적들과 싸울 때는 적의 철병거가 별로 두렵지 않았기 때문에 유다는 도우시는 하나님을 바라볼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평지에서 적들과 싸우려니까 철병거가 두렵습니다. 유다의 눈에 무서운 철병거가 어른거리니까 두려움 때문에 자기들을 도우시는 하나님을 바라볼 수 없었던 것입니다. 유다가 적들의 철병거 때문에 하나님을 의지하지 못했던 것은 그들의 믿음이 약했기 때문입니다.

 

    만약에 당신이 새로운 가능성을 보지 못하고 있다면 그것은 아마도 두렵기 때문일 것입니다. 우리는 믿음이 약할 때 두려움을 이기지 못합니다. 커피 팔아 큰 돈을 버는 것과 같은 새로운 가능성이 우리의 삶 속에는 항상 있습니다.

   
그리고 전능하신 하나님을 믿는 우리는 이 새로운 가능성을 믿음으로 발견할 수 있습니다. 믿음으로 새로운 가능성을 과감하게 현실로 만들 수 있습니다. 하나님은 언제나 그 백성들과 함께 하십니다. 산지에서 함께 하시는 하나님은 평지에서도 함께 하십니다.

 

    새로운 가능성을 현실로 만드는 능력은 오직 믿음에서 나옵니다. 믿을 때 성령이 역사하시고, 성령이 역사하시면 성령의 능력으로 우리는 두려움을 이기고 새로운 가능성을  보고 행동하게 됩니다. 그리고 가능성이 현실이 되는 것입니다.

 

세계 평화를 위해 만들어진 유엔의 수장인 사무총장으로 한국 사람인 반기문씨가 선출되던 그 주에 세계 평화에 큰 위협이 되는 핵실험이 한반도에서 있었습니다. 한국 사람이 유엔의 사무총장으로 선출되었다는 것은 평화를 위한 좋은 소식이었으며, 핵실험이 한반도에서 있었다는 것은 평화를 해치는 나쁜 소식이었습니다. 북한이 핵실험을 강행하자 미국은 동북아에서 본격적인 핵무기 경쟁이 시작될 것이 두려웠는지 요즘 북한과의 관계 개선을 위해 적극적인 움직임을 보이고 있습니다. 북한의 핵실험 후에 미국이 적극적으로 관계 개선을 모색하는 것을 보니 역시 세상에서는 힘이 안정과 평화를 보장합니다. 그래서 모두가 힘을 키우기 위해서 경쟁합니다. 피차 두려워서 서로 조심하는 것이 세상에서의 안정과 평화의 원리입니다. 불안한 토대 위에 평화를 쌓고 있는 것입니다. 개인도 마찬가지입니다. 사람들이 비록 안정되고 행복을 누린다고는 하지만 불안을 떨칠 수 없습니다. 개개인 역시 불안한 토대 위에 행복을 쌓고 있기 때문입니다.


 이렇듯 세상에서는 경쟁이 미덕이며, 서열은 당연한 것입니다. 세상에서는 받을 자격이 있는 사람만이 받습니다. 받을 자격을 쟁취하려면 노력도 해야 하지만 술수도 써야 하고, 선의의 경쟁도 해야 하지만, 사기도 치고, 사람을 이용도하고, 아프게도 하고, 한마디로 남을 밟아야 내가 삽니다. 이 얼마나 나쁜 소식들입니까? 이렇게 온갖 나쁜 소식들로 가득 찬 세상에서 사람들은 서로에게 상처를 주고, 수치심을 심어주고, 죄책감이 들게 하며, 서로 실패하게 만듭니다. 우리도 한 때는 이러한 속에 있었습니다. 하나님은 이런 속에 있었던 우리들에게 선하셨으며 오래 참으셨던 것입니다. 또한 하나님은 지금의 우리들에게도 선하시며 오래 참으십니다. 우리도 한 때는 하나님과 사귐이 없었습니다. 그러다가 복된 말씀이 귀에 들리기 시작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깨닫기 시작했습니다. 하나님의 은혜가 깨달아지기 시작했습니다. 


교회는 세상 어떤 단체와도 다른 아주 특이한 곳입니다. 그 다른 점의 핵심은 은혜입니다. 교회는 은혜가 있는 곳입니다. 일 년에 몇 십, 몇 백만불을 버는 전문직에 종사하는 고학력자에게나 일자무식 노숙자에게나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은 동일하며 같은 하나님의 은혜가 부어집니다. 경쟁, 시기, 질투, 비난, 상처, 서열, 차별, 이기심 등과 같은 온통 은혜 아닌 것으로 가득한 세상에서 우리는 쉴 곳을 찾습니다. 교회는 은혜가 있는 곳이며 쉴 만한 곳입니다. 사실 교회에만 은혜가 있습니다.


이 은혜는 선물이며 공짜입니다. 은혜는 한 마디로 ‘받을 자격이 없는 사람이 받는 것’입니다. 받을 자격이 있는 사람에게 선물은 선물이 아니라 받아야 할 대가입니다. 그것은 은혜가 아닙니다. 어쩌면 당신은 자신이 대가를 받을 충분한 자격이 있다고 생각할 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자신의 부족함과 무능함을 종종 경험하며 속으로 남모르게 우는 것이 우리의 솔직한 모습입니다. 받을 자격 있다는 것은 겉으로 내보이고 싶은 우리의 모습은 될지언정 우리의 진짜 모습은 아닌 것입니다.


요즘 교회에 대한 부정적인 시각들이 많습니다. 하지만 교회는 거저 받은 것을 거저 주는 은혜가 있는 유일한 모임입니다. 온갖 나쁜 소식들로 가득한 세상에서 상처받은 사람들, 수치심과 죄책감에 잡힌 사람들, 실패한 사람들, 마음이 궁핍한 사람들이 은혜를 경험할 수 있는 곳은 교회입니다. 당신에게 교회에 참여하여 적극적으로 은혜의 공동체를 만들어 가기를 도전합니다. 당신은 진정한 안정과 평화를 얻을 것입니다.

 

한 환자가 환자복을 제대로 여미지도 못한 채 수술실을 황급히 빠져나와 뛰어가는 것을 본 병원 직원은 깜짝 놀랐습니다. 병원관리인은 환자를 세우고 물었습니다. “왜 황급히 수술실을 빠져나와 뛰어가시죠?” 환자는 놀란 눈으로 그를 바라보며 이렇게 말했습니다. “간호사가 말예요. 이렇게 말하는 거예요.” 병원 직원이 물었다. “뭐라고 말했는데요?” "글쎄 간호사가 그러더라구요. ‘용감하세요! 맹장수술은 간단한 수술이어요.’" 병원 직원이 되물었습니다. “그게 어때서요? 맹장수술은 정말로 간단한 수술인데요 뭐. 그 말을 들으면 오히려 더 편안해질 텐데요.” 환자가 말했습니다. “간호사가 수술할 의사에게 그렇게 말하더라니까요!”


수술을 받는 사람은 당연히 믿을만한 의사에게 수술 칼을 맡겨야 안심이 됩니다. 우리의 삶에도 제거하고 싶은데 스스로 제거할 수 없는 문제들이 있습니다. 당신에게도 그런 문제들이 있을 것입니다. 당신은 그러한 문제를 제거할 수술 칼을 누구에게 맡길 것입니까?


예수 그리스도는 우리가 만날 수 있는 최고의 의사이십니다. 그분은 인간이 되신 하나님이시며, 우리가 스스로 해결할 수 없는 죄를 자신의 죽음으로 해결하신 구주시며,  죽음에서 부활하셔서 영원한 생명이 있음을 보여주신 살아계신 주님이십니다.


그분은 애굽의 군대가 그분의 백성을 죽이려고 쫓아올 때 홍해 바다를 갈라 백성을 구원하시는 분이십니다. 그분은 주님의 백성이 광야에서 목이 탈 때 바위에서 물이 솟아나게 하시는 분이십니다. 그분은 그분의 제자들이 거친 풍랑이 이는 바다 위에서 겁에 질려 두려워하고 있을 때 자연에 명령하여 풍랑을 그치게 하신 분이십니다. 그분은 따르는 사람들이 배고파 할 때 빵 두 덩어리와 물고기 다섯 마리로 오천 명을 먹이시는 분이십니다.


우리는 정말로 배고플 때 오병이어의 기적이 그 분 안에서 사실임을 알게 됩니다. 우리의 삶이 앞뒤가 다 막힐 때 그 분 안에서 홍해 바다가 갈라지는 것이 사실임을 알게 됩니다. 우리가 심한 고통 중에 있을 때 그 분 안에서 육신과 마음의 병과 아픔이 치유되는 사실을 알게 됩니다. 삶에서 아무런 해결책이 남아 있지 않는 그 순간에 우리는 그분의 기적이 사실임을 알게 됩니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우리가 남이 모르는 죄 때문에 고민할 때 그분 안에서 우리의 죄가 용서받는 것을 알게 됩니다.


기적을 행하시고, 성경을 통해 자신의 생각과 감정과 의지를 계시하시고, 우리로 하여금 말씀에 절대 순종하기를 원하시는 하나님이 황당한 것이 아닙니다. 진짜 황당한 것은 잠시 살다가 떠날 이 세상의 삶이 전부라고 여기고, 한 줌밖에 안 되는 재물에 의지하고, 잠깐 지나면 쇠약해질 자신의 능력이 영원할 것으로 착각하고 있는 우리인 것입니다.


우리의 삶에 있는 꼭 제거해야만 하는 문제들을 고치시는 최고의 의사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만나는 곳이 교회입니다. 교회는 또한 예수님을 만나서 치유 받고 예수님의 제자들로 다시 만들어지는 곳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모습을 닮은 교회를 찾아보기가 쉽지 않은 것이 안타깝습니까? 먼저 당신 자신을 예수님의 모습을 닮은 복된 존재로 재건하기를 당신에게 도전합니다. 그러면 예수 그리스도의 모습을 닮은 당신이 예배드리고 섬기는 교회도 예수님의 모습을 닮은 교회로 재건될 것입니다.

무엇을 보기를 원하십니까?

2007.08.23 07:37 | 수필 | qfccny

http://kr.blog.yahoo.com/qfccny/1226 주소복사

     세례 요한의 시대에 사람들은 힘들게 살고 있었습니다. 힘들게 살고 있었던 그들은 메시야를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그런 그들에게 세례 요한은 충격과 감동을 주었습니다. 사람들은 세례 요한에게서 희망을 보고 그에게로 몰려 갔습니다. 그런데 세례 요한이 감옥에 갇혀버렸습니다. 그러자 사람들의 마음속에 그에 대한 의문이 생겼습니다. 이제 사람들은 새로 등장한 예수께로 몰려 왔습니다.

우리 성도들도 때때로 자신의 신앙에 대해서 의문을 가집니다. 많은 신자들은 자신이 '왜 특정한 교회에 출석해야 하는지'에 대해 의문을 갖고 있습니다. 한 걸음 더 나가서 '왜 교회에 다녀야 하는지'에 대해서도 확신이 없는 신자들도 꽤 있습니다. 심지어는 '왜 예수님을 믿어야 하는지'에 대해서조차 혼란스러워 합니다.
     이러한 우리들에게 주님께서 물으십니다. "너희가 무엇을 보려고 광야에 나갔더냐?" (마태복음 11:7) 사람들은 속으로 대답합니다. '세례 요한을 보려고 광야에 나갔었지요.' 예수께서 다시 물으십니다. "바람에 흔들리는 갈대냐?" 예수님은 지금 '요한은 바람에 흔들리는 갈대가 아니지 않느냐? 너희들도 알다시피 요한은 이랬다저랬다 흔들리는 줏대가 없는 사람이 아니다'라고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다시 예수께서 물으십니다. "부드러운 옷 입은 사람이냐?" (11:8) 세례 요한은 결코 부드러운 옷 입고 자신의 영달을 위하는 사람이 아니었습니다. 또 다시 예수께서 물으십니다. "어찌하여 나갔더냐? 선지자를 보려더냐?" 그들은 사실 세례 요한을 선지자로 보고 그에게서 하나님의 말씀을 들으려고 광야로 나갔던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예수께서 이어서 말씀하십니다. "옳다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선지자보다도 나은 자니라." (11:9)

예수님 당시에 사람들이 세례 요한에게서 희망을 보고 그를 찾아 광야로 갔던 것처럼 오늘날도 사람들은 희망을 품고 교회로 갑니다. 세례 요한에게 나왔던 사람들은 메시야를 만나고 싶었습니다. 사람들은 생각했습니다. '혹시 이 사람이 메시야인가?' 아닙니다. 세례 요한은 메시야를 전하는 사람이었습니다. 메시야는 오직 예수님뿐이십니다. 오늘날 신자들도 메시야를 만나려고 교회에 옵니다. 목회자는 신자들이 메시야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만나도록 도와주는 일을 할 뿐입니다.

교회를 찾는 신자들은 바람에 흔들리는 갈대처럼 줏대 없는 목회자를 기대하지 않습니다. 신자들은 부드러운 옷을 입고 자신의 영달을 추구하는 세속적인 목회자를 기대하지도 않습니다. 신자들은 선지자와 같은 목회자를 기대합니다.

      사실 목회자를 포함한 모든 성도는 상황에 따라서
신앙이 흔들리지 않는 줏대 있는 신자가 되기를 추구해야 합니다.  또한 모든 성도는 교회에서 허영과 사치와 세상의 속된 것들을 추구하지 말아야 합니다.

신자들은 교회에서 훌륭한 목회자를 보기를 원합니다. 누가 훌륭한 목회자입니까? 예수 그리스도가 메시야이심을 신자들에게 보여주는 목회자가 훌륭한 목회자입니다. 교회의 크기나 감동적인 설교나 신학 수업의 정도가 훌륭한 목회자이냐 아니냐를 결정하지 않습니다. 오직 예수가 그리스도이심을 성도들에게 제대로 보여주는 목회자가 훌륭한 목회자입니다.

독자와 필자를 비롯한 모든 성도는 주님의 몸 된 교회에서 구주이신 예수님을 보기 원하는 것입니다. 설령 한 교회에 헌신하지 않고 떠도는 신자들도 사실은 모두 교회에서 예수 그리스도를 보기를 원하고 있습니다. 이글을 읽는 모두가 예수 그리스도를 보여주는 교회와 성도들이 될 것을 도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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