몇 해 전에 495를 타고 맨하탄에 가다가 도로 변에 있는 대형 광고판 하나에 커피 한 갤런에 $34이란 광고문이 써 있는 것을 보고 깜짝 놀랐었습니다. 개스 한 갤런에 $2 조금 넘었을 때였는데 커피가 한 갤런에 $34이라는 것은 제게 충격이었습니다.
그 광고를 보기 얼마 전에 맨하탄 미드 타운에 있는 널찍한 스타벅스에서 커피 한 잔을 마시면서 이런 생각을 했었기 때문입니다. ‘맨하탄 요지에서 이 넓은 장소를 임대해서 커피 팔아 돈이 남나? 도대체 커피를 몇 잔이나 팔아야 가게 세 내고, 인건비, 기타 경비 제하고 돈을 남기지?’ 계산도 해보기 전에 제 대답은 ‘커피를 팔아서는 도저히 채산이 맞을 수가 없다’였습니다. 이것은 두려움입니다. 현실적으로 불가능하게 보여지는 일을 대할 때 오는 느낌의 바탕에는 언제나 두려움이 깔려 있습니다.
이 두려움은 신앙생활에서도 나타납니다. 사사기 1:19에 “여호와께서 유다와 함께 하신고로 그가 산지 거민을 쫓아내었으나 골짜기의 거민들은 철병거가 있으므로 그들을 쫓아내지 못하였으며”라고 적혀있습니다. 하나님이 유다 지파와 함께 하셔서 산지에 사는 적들은 쫓아낼 수 있었는데, 골짜기에 사는 적들은 철병거가 있었기 때문에 쫓아내지 못했다는 뜻입니다.
그런데 궁금증이 생깁니다. 산지에 사는 적들과 싸울 때 함께 하셨던 하나님께서 골짜기에 사는 적들과 싸울 때는 왜 함께 하시지 않았을까요? 하나님은 항상 함께 하실텐데 말입니다.
이것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철병거’와 ‘골짜기’가 무엇인지를 알아야 합니다. 병거는 말이 끄는 전차입니다. 그때 철갑을 두른 철병거는 청동제 무기밖에 없던 이스라엘에게는 공포의 대상이었습니다. 오늘날로 하자면 아군은 보병뿐인데 적에게는 탱크들이 있는 것과 같습니다.
그리고 ‘골짜기’는 산골짜기가 아니라 산 사이에 있는 넓은 평지입니다. 이 평지에서는 적의 철병거가 위력을 발휘합니다. 그래서 유다가 두려워했고 적들을 쫓아내지 못했던 것입니다. 그러나 철병거가 위력을 발휘하지 못하는 산지에서는 유다가 적들을 쫓아낼 수 있었던 것입니다.
유다가 산지의 적들과 싸울 때는 적의 철병거가 별로 두렵지 않았기 때문에 유다는 도우시는 하나님을 바라볼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평지에서 적들과 싸우려니까 철병거가 두렵습니다. 유다의 눈에 무서운 철병거가 어른거리니까 두려움 때문에 자기들을 도우시는 하나님을 바라볼 수 없었던 것입니다. 유다가 적들의 철병거 때문에 하나님을 의지하지 못했던 것은 그들의 믿음이 약했기 때문입니다.
만약에 당신이 새로운 가능성을 보지 못하고 있다면 그것은 아마도 두렵기 때문일 것입니다. 우리는 믿음이 약할 때 두려움을 이기지 못합니다. 커피 팔아 큰 돈을 버는 것과 같은 새로운 가능성이 우리의 삶 속에는 항상 있습니다.
그리고 전능하신 하나님을 믿는 우리는 이 새로운 가능성을 믿음으로 발견할 수 있습니다. 믿음으로 새로운 가능성을 과감하게 현실로 만들 수 있습니다. 하나님은 언제나 그 백성들과 함께 하십니다. 산지에서 함께 하시는 하나님은 평지에서도 함께 하십니다.
새로운 가능성을 현실로 만드는 능력은 오직 믿음에서 나옵니다. 믿을 때 성령이 역사하시고, 성령이 역사하시면 성령의 능력으로 우리는 두려움을 이기고 새로운 가능성을 보고 행동하게 됩니다. 그리고 가능성이 현실이 되는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