ㅇ 이 방아속에는 망간스틸로 만든 대저울추처럼생긴 구멍이 뚫린 240파운드짜리 해머 24개가 들어있다. 무거운 문을 여닫는 하이드라울릭 실린더가 보인다.
폐차장 회고-2 차를 빻는 기계를 방아(mill)이라고 부르는데 2층높이의 두꺼운 철판을 용접하여 만든 이 기계는 축의 양쪽에는 사진에서 보다시피 크디큰 베어링이 있는데 돌리기전에 뜨겁게 끓인 오일을 순환하게 하며 이 오일은 돌아가는 동안 베어링에 열이 나면 식혀주기도 하여 적정한 온도를 유지하니 두 가지의 역할을 한다. 이 밀을 돌려주는 모터는 4,160불트의 교류모터이며 큰방에다가 장착을 했는데 한 쪽 벽에는 직경이 사람의 두길 정도의 선풍기가 있어서 실내공기를 뽑아내면 반대쪽의 벽에는 크디큰 필터가 있어서 깨끗한 시원한 공기가 빨려들어 와서 식혀준다. 이 방아의 아래쪽에는 넓이가 약 2m나 되는 콘베어(convair)벨트가 돌아가면서 쇳조각을 높은 곳으로 운반하는데 두께가 3cm나되어도 쇠가 부딪치면 쉽게 찢어지니 방아 밑에는 쉐이킹 테이블(shaking table)이라고 경사가진 흔들이 판을 깔 게 된다. 쇳조각이 이곳에 떨어지면 경사가지고 동요하니 낮은 쪽으로 내려가서 콘베어 벨트에 얌전히 떨어지게 된 후 높은 곳에 위치한 자석으로 운반된다. 이 흔들이 모터의 아래쪽에는 사람이 들지를 못하는 큰 직류모터(출발이 빨라서 자동차의 스타터로 사용)가 있는데 모터축의 한쪽에 무거운 쇠뭉치를 달고 테이블의 아랫 쪽에 45도 각도로 모터의 받침대를 용접을 하여 돌리면 모터가 흔들리게 되는데 모터가 흔들이 테이블에 고정이 되어 있으니 테이블이 45도 각도로 흔들리게 되어서 테이블이 평면일지라고 쇳조각은 옆으로 움직이게 된다. 쉬운 예로 자동차 타이어의 밸런스가 안 맞으면 차체가 흔들리는 이치와 같다. 무거운 이 모트는 밀의 아래쪽에 위치한 쉐이킹 테이블 밑에 매달려있는데 공간이 좁아서 힘이 장사라도 들어갈 수 가 없으니 낮에 일하는 종업원들이 기겁을 할 정도인데 이를 갈아 넣으려면 하루쯤 걸릴 정도 이었다. 오후에 출근을 한 내가 생각한 것은 얕은 천정에다가 쇠 고리(eye)를 용접하여 붙이고 그기에 다가 도르레를 단 후 케이블 끝에 모터를 달아매어서 옆쪽에서 30불짜리 케이블 캄 어롱(cable come alone)으로 케이블을 잡아당기면 천천히 올라가서 천정에 찰싹 붙는데 접촉구멍에 나사를 조이면 되며 한 시간 작업으로 충분 했으니 그 후부터는 모두들 내 실력을 알아주는 계기가 되었다.
아이디어가 나온 곳은 초등학교시절 이었는데 학교건물이 산 중턱에 위치하니 지붕이 있는 두레박 우믈은 깊었고 버킷만한 나무통으로 된 두레박은 무거웠다.
각목으로 일본사람들이 만든 우물의 지붕 대들보에다가 도르레를 걸어놓고 밧줄을 건 후 무거운 두레박 2개를 양쪽에 매달아서 들어올리는 힘을 역이용, 위에서 아래로 잡아당기면 물이 놀라 왔다.
도르레(pully) 한개를 상용하면 힘의 방향을 180도로 바꿀수가 있었으니 이 이치를 여기에 써 먹은것이다. 높은 곳으로 운반이 된 금속은 자석이 건져내지만 비철금속, 시터(seat)를 만든 섬유, 페인트나부랭이는 자연히 땅에 떨어지게 된다.
 보이는 원추는 먼지를 걸러내는 통. 자동차의 시트 나부랭이들이 쌓여있는데 이곳에는 오래전 차의 구석에 감춰 놓았다가 잊어버린던 지폐나 동전들이 간간이 섞여있는데 은행에 갖다주면 새돈으로 바꾸어 주었다. 차를 들어서 옮기는 기계의 이름은 페리본. 다음단계의 흔들이 테이블에서는 구리와 쇠가 섞인 모터종류나 스타팅모터의 아마추어에 끼었다가 쇠와 함께 들어 올려 진 구리는 손으로 직접 가려내야만이 쇠의 순도를 높이게 되는데 자동차를 바순 고철은 녹인다 해도 100% 쇠로 볼 수는 없는 것이 구리와 쇠가 섞여있을지라도 자석은 무조건 들어올리기 때문이다. 만약 외국에서 이 고철을 수입해서 강철제품을 만들 경우에 순도가 떨어져서 강도가 약할 수밖에 없다. 친구들이 큰 배움터에서 4년 동안 수신(修身)을 하는 동안 ‘공수래’ 인 나는 아직도 돈이 없는 ‘공수(空手)’일 뿐이니 다른 뚜렷한 방도나 선택권이 없었는데 그래도 세상 살아가는 인생 수업(授業)사다리를 독학으로 연구하며 한 계단씩 오르고 있었다. 내가 이 회사에서 신용을 얻었는데 혹시 너무 피곤하여 낮잠이라도 자고 있을 때 어깨까지 내려오는 장발에 청바지 차람의 유태인 폴 스미드 (Paul Smith)사장이 순시를 하다 자는 나를 보게 되더라도 그는 못 본 척 고개를 다른 방향으로 돌리고 멀리 피하여 돌아가기도 할 정도이었는데 시간당 급료를 받는 회사이니 월급 도둑질을 하는 셈이지만 피곤을 이기는 장사는 존재 할 수가 없는 것이다. 들은 이야기로 군인들이 행군을 하면 졸면서도 걷는다고 했다. 내가 평사원 같으면 당장 해고감이겠지만 내가 없어서는 안 되는 필수요원이니 확고한 지위의 덕을 본 셈이다. 1975년 첫 입사를 할 때 2불50센트이던 임금이 3년8개월 동안에 더 좋은 직장인 지하철회사로 가기 위하여 사표를 낼 때까지 여섯 번이나 올라서 6불 38센트까지 되었는데 그 이유는 나를 붙잡아 두기 위한 수단인 것이고 내가 떠날 때에는 모두들 아쉬워했으며 나는 이 기계들의 시스템 전부를 잘 알고 있었으니 언제든지 다시 복직을 원하면 당장 재고용을 한다 했다. 그 당시 자판기의 캔 소다음료의 가격은 15센트이었다. 오후4시에 출근을 하는데 처음에는 한국인 몇 사람이 있었는데 어떤 분은 약 반시간씩 늦게 출근을 했는데 포맨이 그냥 내버려 두니 그 다음부터는 아예 한 시간을 늦게 출근을 하니 포맨이 타임카드를 없애버리고는 “고 홈!”했으니 해고(fire)이다. 그분은 립스틸이 찢지 못하는 대형 추럭의 차대(frame)를 화염절단기(torch)로 3피트길이로 용광로에 들어가게끔 자르는데 기술이 없어도 한 시간만 추레닝을 하면 되는 허드레 직책 이었다. 한 번은 화상을 입고 병원에 입원을 했는데 그의 머릿속에는 하루속히 퇴원을 하여 경마장에 가야지 하는 일념뿐이라고 말했다. 경마를 어찌나 좋아하는지 금요일 12시만 되면 십장에게 집에 볼일을 보러가야 한다고 핑계를 댄 후 막 바로 경마장으로 달려간 후 오후 늦게까지 놀다가 봉급을 죄다 탕진한 후에는 어깨가 축 늘어져서 귀가를 한다고 그분의 아내는 말 했다. 쌀살 돈, 아파트 세, 아기의 우유를 살 돈 도 TV를 살 돈도 없더라고 말했다. 하루는 그가 마권 3불 어치를 샀는데 추리플로 맞추어서 80불로 변하더란다. 그의 생각에 26배로 늘었으니 없었던 것으로 치고 80불 전액을 걸었는데 다시 한 번 더 터지면 2천불이 아닌가?, 3불이 2천 불? 몽땅 다시 걸었더니 꽝! 일순간에 없어지더란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