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아바론>은 만화영화 <공각기동대>와 <패트레이버 극장판> 그리고 <인랑>으로 유명한 오시이 마모루 감독이 2001년에 만든 실사영화이다. 실사영화라고는 하지만 2001년 당시의 기준으로는 거의 CG영화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만큼, 컴퓨터그래픽이 많이 사용되었다. 이 영화는 1999년에 개봉한 사이버펑크 영화사에 길이 남을 걸작 <매트릭스>에 많은 영향을 받았을 텐데, 사실 <매트릭스>는 마모루의 애니메이션에서 아이디어를 많이 얻었다는 점을 생각해보면 이 두 영화 사이의 관계는 꽤나 복잡하다. 게다가 이 두 영화는 모두 사이버 공간을 소재로 한다는 공통점도 있다. 하지만 그 분위기나 이야기의 구조는 두 영화가 전혀 다르다. 그런 면에서 특히 <아바론>은 일본문화가 사이버공간을 바라보는 관점이 잘 드러나 있다. <매트릭스>가 MMOG를 보는 관점을 차용했다면, <아바론>은 스탠드얼론 게임의 관점을 기초로 하기 때문이다.
일본은 스탠드얼론 게임(Stand alone game)혹은 싱글플레이(Single Play) 게임의 나라이다. <동키콩>으로부터<수퍼마리오>와 <바이오해저드>, <젤다의 전설>에서 시작해서 <파이널판타지>에 이르는 일본의 대표적인 게임들은 모두 게이머가 컴퓨터 프로그램을 상대로 벌이는 혼자만의 놀이다. 이 유형의 게임은 보통 우리가 <오락실>에서 즐기던 게임들이기도 하다. <갤러그> <제비우스> <보글보글> <너구리> <라이덴> 등등의 게임도 모두 혼자서 즐기는 스탠드얼론 게임들이니 말이다. 그리고 그 게임들 대부분은 일본에서 만들어진 것들이다. (거의 유일한 예외는 <테트리스>인데, 테트리스는 러시아에서 만들어졌기에 같은 스탠드얼론 게임이면서도 일본 게임들과는 기본 틀이 다르다.) 이들 일본제 스탠드얼론 게임들이 전 세계에서 대성공을 거두면서 스탠드얼론 게임은 컴퓨터게임의 대명사가 되었다. 하지만 그 덕분에 생긴 문제도 있다. 컴퓨터 게임을 잘 모르는 학자들이 게임을 연구할 때도 “컴퓨터 게임 = 스탠드얼론 게임” 이라는 공식을 당연하게 여기다 보니, 스탠드얼론 게임의 문제점이 곧 컴퓨터 게임 전체의 문제점으로 알려지게 된 것이다. 그렇다면 이렇게 혼자서 하는 스탠드얼론 게임의 문제점은 무엇일까?
첫 번째는 ‘비현실성’이다. 스탠드얼론 게임의 세계는 현실이 아니다. 비록 게임 속에서 사람처럼 보이는 어떤 이미지가 나를 상대하고 있을지도 모르지만, 그것은 사실 컴퓨터 프로그램이 만들어낸 허상에 불과하다. 소니에서 만든 유명한 게임 <이코>를 예로 들어보자. 게임 속에서 플레이어가 조작하는 주인공은 연약한 소녀를 지켜가며 악마들과 싸운다. 소녀는 어떤 때는 적극적으로, 어떤 때는 주저하며 주인공의 손을 잡는데 그 동작이 지극히 자연스러워서 마치 진짜 사람을 대하는 것처럼 가슴이 두근거린다. 하지만 그 소녀는 진짜 사람이 아니다. 게임 개발진의 창조물에 불과하다. 이렇듯 스탠드얼론 게임세계는 모든 것이 가짜이고 허위이고 미끼이다. 플레이어로 하여금 가짜를 진짜처럼 착각하게 만드는 것이 스탠드얼론 게임 개발자의 목표다. 이는 게임을 하는 플레이어의 입장에서도 마찬가지다. 좋은 스탠드얼론 게임은 ‘실감이 나는’ 게임이다. 문제는 그 실감의 정도에 있다. 늘 이런 실감나는 게임에는 지나치게 실감이 나서 정말로 현실과 게임을 혼동하게 될 수 있으리라는 우려가 따라다닌다. 만약에 이 허위의 세계에 속아 넘어가서 이것들을 진짜라고 착각하기 시작하면 그때부터 정신분열이나 망상증 같은 정신병이 되는 것이기 때문이다.
PS2 게임의 명작, 이코. 정작 나는 해본 적이 없다... 그저 말만 무성하게 들었을 뿐...-_-;;;;
모든 것이 가짜이므로 여기에 너무 빠지면 이꼴 난다?
스탠드얼론 게임의 두 번째 문제점은 이 세계에는 진정한 의미의 사회적인 교류가 없다는 점이다. 사회적 교류란, 내가 진짜 타인과 만나서 대화하고 여러 가지 관계를 맺는 것을 말한다. 그런데 스탠드얼론 게임세계에서는 내가 대화하거나 협력하고 경쟁하는 상대방은 실제 사람이 아니라 컴퓨터 프로그램이 만든 허상일 뿐이므로 그것은 사회적 교류가 아니라 사회적 교류처럼 보이는 유저 인터페이스일 뿐이다. 그 결과, 스탠드얼론 게임에 지나치게 몰입하다 보면 실제 사람들과 의사소통하는 기술이 약화되거나 심하면 자폐증상을 보이게 될 것이라는 우려가 제기되었다. 실제로 90년대까지는 스탠드얼론 게임을 지나치게 많이 하는 아이들이 사회성이나 사회적 지능이 낮다는 연구결과들이 많이 나왔다.
혼자만의 세계에 빠진 게이머의 이미지, Rachel Seymour 작품
이 비현실성과 자폐성이라는 스탠드얼론 게임의 특성은 영화 <아바론>에 그대로 나타난다. 영화 제목이기도 한 ‘아바론’은 그 세계에서 가장 인기 있는 게임인데 그 형식은 요즘 우리나라에서 인기를 얻는 ‘카운터스트라이크’ ‘아바’ ‘스페셜포스’ 같은 FPS(일인칭슈팅)게임이라 할 수 있다. 영화의 주인공 애쉬(마우고차타 포렘난크)도 바로 그 게임의 플레이어이다. 문제는 이 게임이 심각한 중독증상을 유발한다는 것이다. 그 중독증상이란 다름이 아니라 게이머의 정신이 게임과 현실을 혼동하게 되는 것이다. 혼동이 너무 심해져서 마침내 진짜 현실세계로 영영 돌아오지 못하면 결국 게이머는 식물인간이 되어버린다. 주인공인 애쉬도 게임을 하면서 아슬아슬하게 현실과 게임의 경계선을 유지하는 사람이다. 그렇다고 게임을 그만둘 수도 없는 것이, 그녀에게는 이것이 생계수단이기 때문이다. 그녀는 게임 속에서 적을 사살해서 얻은 점수를 게임 밖에서 현금으로 환전해서 생계를 유지한다. 이런 애쉬를 영화는 마치 사회적 교류를 하지 않고 게임 속에서만 빠져 지내는 오타쿠나 은둔형 외톨이 혹은 폐인처럼 묘사한다.
폐인 애쉬의 로그인
게임 속에서 그녀는 최고의 전사
SVD를 쓰는 스나스런 그녀는 탱크를 조작하며 적을 쓸어버리기도 하고
게임을 끝내면 전투수당이 주어진다. 그래도 그녀는 폐인
하지만 컴퓨터 게임에는 이런 혼자서 하는 게임만 있는 것이 아니다. 멀티플레이 게임(Multi play game) 그리고 다중접속온라인 게임(MMOG)도 있다. 사실 <아발론>에 등장하는 게임은 혼자 하는 스탠드얼론 게임이 아니라 멀티플레이 게임이다. 인터넷에서 ‘아바’나 ‘스페셜포스’ 같은 게임을 해본 사람들이라면 누구나 아는 사실이다. 이들 멀티플레이 게임에서는 플레이어가 컴퓨터 프로그램이 아니라 진짜 사람을 상대로 플레이를 한다. 따라서 여기서는 자폐성이 부각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사회성과 사회적 지능이 필요해진다. 멀티플레이 게임의 원형이라고 할 수 있는 게임은 바로 ‘바둑’과 ‘체스’인데 이 게임의 개발목적은 당시 귀족의 자제들을 대상으로 전략적 사고력을 키우기 위해서였다. 전략적 사고의 기본은 상대방의 마음을 읽는 것이다. 일상생활을 할 때는 그런 기술을 ‘독심술’이라고 부르지만, 게임에서는 보통 ‘수 읽기’라고 한다. 상대방이 나라면, 내가 상대방이라면 어떻게 행동할 것인지를 끊임없이 예측하고, 그 예측을 근거로 내 행동을 결정하는 것이다. 이것은 ‘체스’의 온라인 버전이라고 할 수 있는 ‘스타크래프트’도 마찬가지이며, 보다 직접적인 전투를 경험하는 ‘아바’나 ‘스페셜포스’에서도 결국 마찬가지다. 더구나 다른 사람의 마음을 읽는 능력은 경쟁을 하기 위해서 뿐만 아니라 내 동료들과 협력하기 위해서도 필요하다. 이심전심(以心傳心)이 된 상태에서 협력하는 것이 최상의 협동인데, 역시 독심술이 협력에 중요하다는 의미다. 이것은 현실세계에서도 마찬가지다. 대인관계를 잘 유지하는 사람과 그렇지 못한 사람, 눈치가 빠른 사람과 눈치가 없는 사람, 연애를 잘 하는 사람과 쑥맥인 사람, 고객이나 상사를 만족시키는 사람과 그렇지 못한 사람, 리더쉽을 발휘하는 사람과 꼴통인 사람의 차이는 모두 독심술 능력의 차이다. 또한 매너를 지켜야 하고, 반칙을 하면 안 된다는 모든 게임의 기본적인 원칙(그리고 모든 사회생활의 기본원칙)도 여기서는 매우 중요하다.
즉, 멀티플레이 게임은 사회생활의 연습장이다. 실제로 이런 멀티플레이 게임을 건강하게 즐기는 청소년들은 친구관계도 다양하고 사교성도 좋은 경우가 많다. 물론 여기서 반칙을 하고 남을 괴롭히고 분탕질을 치는 일탈자들도 있다. 문제는 멀티플레이 게임이나 MMOG는 진짜 사람들이 참여하기 때문에 그 세계에서 벌어지는 일들도 더 이상 비현실이 아니라는 점이다. 게임 속에서 남을 속이거나 반칙을 하면 그것은 실제 사기나 반칙이 되며, 게임 속에서 신의를 지키고 존경을 받으면 그것은 진짜 신의와 존경이 된다.
멀티플레이 게임 속의 아이템들은 실제 물건처럼 거래의 대상이 되고 심지어 현금 가치를 가진다. 그러나 이것은 현실과 게임을 혼동하는 미친 짓이 아니다. 지극히 정상적이고 당연한 일이다. 사실 눈에 보이지도 않고 만질 수도 없으나 그 존재가 현실로 인정되고 그 가치도 높이 평가되는 것들은 이전에도 있었다. 예를 들어, ‘박사학위’나 ‘자격증’ 같은 인증서들, 혹은 ‘국회의원’이나 ‘대통령’과 같은 사회적인 지위들은 모두 무형의 존재가 아닌가. ‘주식’도 마찬가지다. 주식의 가격은 기업의 미래가치에 대한 사람들의 믿음을 반영할 뿐이다. 그저 다른 돌보다 더 투명하고 단단한 돌에 불과한 ‘다이아몬드’ 쪼가리 하나가 수백만원의 값어치를 가지는 것도 따지고 보면 황당하기는 마찬가지다. 우리는 이런 것들의 가치를 지극히 당연하게 여기며 그것을 얻기 위해 시간과 노력과 돈을 퍼붓는다. 이제 이 무형의 가치 목록에 ‘게임 아이템’이 추가되었을 뿐이다. 스탠드얼론 게임을 현실로 착각하는 것은 정신이 나간 짓이다. 하지만 멀티플레이 게임이 현실이 아니라고 우기는 것도 역시 큰 문제다. 멀티플레이 게임 속에서 일탈행위를 하는 사람들이 종종 그렇게 말한다. “게임은 게임일 뿐”이라고.
게임 이코에 감명받아서 소설까지 쓴 미야베 미유키도 폐인?
2009년 현재, 영화 <아바론>은 더 이상 미래의 어딘가를 그리는 SF가 아니다. 이미 수 많은 게이머들이 <아바론>에서 묘사하는 바로 그런 사이버 전쟁터에 뛰어들어서 전투를 즐기는 지금, 우리는 이 영화가 묘사하는 세상이 과연 사실인지 아닌지를 논리가 아니라 체험으로 확인할 수 있다. 그들이 마주하는 상대는 컴퓨터가 그려낸 허상이 아니라 진짜 사람들이다. 그리고 거기서 벌어지는 모든 일도 가짜가 아니라 진짜다. 여기서 말하는 진짜란, 얼마 전 있었던 WBC 야구경기의 결과가 진짜라고 말할 때와 똑같은 의미다. 물론 여기에도 게임 속에 빠져서 허우적거리는 사람들이 있다. 하지만 그들은 게임 속 현실이 게임 밖의 현실보다 더 만만하기 때문에, 게임 밖의 현실을 마주할 용기나 자신감이 없기 때문에 게임 속으로 도피하는 것이지, 게임과 현실을 혼동하는 것이 아니다. 스탠드얼론 게임플레이 게임이 아닌 멀티플레이 게임은 이미 현실이기 때문이다. 이런 면에서 영화 <아바론>은 스탠드얼론 게임에 익숙한 일본인들의 시각으로 이해하는 멀티플레이 게임의 세계라고 할 수 있다. 이 영화가 내린 결론이 타당할까? 그 대답은 여러분들에게 맡긴다.
http://kr.news.yahoo.com/service/cartoon/shellview2.htm?linkid=series_cartoon&sidx=4768&widx=41&page=1&wdate=200805211.아는 사람을 어쩌다 처음 마주치게 되면 어떤 기분이 들까.웬 쌩뚱맞은 소리냐 싶겠지만, 나는 그런 적이 두 번이나 있다. 한 번은 처음 입사했을 때 회사에서 정시퇴근 님을 마주쳤을 때이고, 또 한번은 한달 전...
스탠드얼론 게임을 현실로 착각하는 것은 정신이 나간 짓이다. 하지만 멀티플레이 게임이 현실이 아니라고 우기는 것도 역시 큰 문제다. 정답.
2009.07.13 09:37
MMORPG의 경우 게임 내에서도 끊임없이 현실을 상기시켜주는 '유저'들이 있지만, 싱글 게임의 경우 자신을 제외한 모든 것이 초현실적인 게임 마스터가 만들어 놓은 세상일 뿐이어서 게임에 빠져들면 빠져들 수록 그 세상에 동화된다고 해야할까요? 사실 MMORPG에서 가장 흔하게 떠오르는 문제인 '현피'의 경우를 보면 게임 상의 문제를 현실 속에서 쉽게 해결할 수 있다는 것을 자각하고 있다는 반증이 아닐까 합니다. 그 반대의 경우라면 '현질'이 있겠네요 :)
유저가 현실을 상기시켜주기 때문에 현실감을 잃지 않는 것이 아니라, 유저들이 진짜이기 때문에 그들과 하는 모든 것들이 진짜가 된다고 볼 수 있지 않을까요?
그리고, 현피는 게임의 문제를 더 키우는 방법이죠. ^_^
게임 속에서야 대부분이 플레이의 일환이지만, 현피를 하는 순간 그것은 폭력범죄가 되니까요.
단어상 약간의 차이가 있을 듯 합니다만... 일단 현피에 관한 것을 보자면 그들이 생각하는 문제의 해결법, 즉 와우를 예를 들자면 문제 '어떤 지역에서 퀘스틀르 하고 있는데 상대 진영의 유저가 지속적으로 나를 죽인다'가 있을때 게임 상의 해결법 이외에 현실적인 물리력을 동원해 문제를 해결한다는 경우로 생각해볼 수 있습니다. 짱가님이 말씀하신 '문제'와는 약간 다른 의미로 quest라고 표현해야 할지...
그리고 현실감에 대한 부분은 어디까지나 유저들은 게임 속 세상과는 유리되어 있습니다. 하는 말, 하는 행동 등이 게임 속 장치들을 통해 나타난다는 것 뿐이지 다르다는 것을 알게 모르게 자각시켜 주지요. 약간 표현이 다르지만 게임도 현실의 일부분으로 아우르지만 어디까지나 다르다는 것을 알고 있다는 겁니다. 와우에서 흔히 말하는게 '플포가자'라고 하는데 어떤 문제에 관해 와우 플레이포럼에 글을 올려 잘잘못을 가리자는 이야기인데.... 쓰면서 생각해보니 앞서 제가 쓴 글에서 현실은 일상으로, 문제는 quest로 바꾸면 조금더 정확해질 것 같은 느낌이 드는군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