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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IMAGE 1 =-


2000년의 6월쯤의 일이다.
포털사이트 게시판에 특이한 글이 하나 올라왔다. 어떤 일본의 언더그라운드 랩그룹이 우리나라를 비하하는 내용의 노래를 부른다는 얘기였다. 일본 정치인들의 독도 관련 망언으로 한참 반일정서가 부풀어있던 차에 이 게시물은 지대한 관심을 끌었고 많은 다른 게시판으로 퍼 날라졌다. 며칠 지나지 않아 그 랩그룹의 이름이 DNP006 이라는 사실과 그 노래의 가사전문이 우리말로 번역되어 올려졌다. 역시 많은 인터넷 이용자들의 공분을 자아냈고, 게시물은 여러 게시판으로 옮겨졌다. 며칠 후에는 그 노래의 일본어 버전이 올라왔으며, 다시 며칠 후에는 실제 그 노래의 mp3 파일이 올려졌다. 그리고 직 접 확인하지는 못했지만, 어떤 게시판에서는 그 노래의 뮤직비디오까지 올려졌다는 얘기가 돌았다. 이 사건의 반향은 매우 컸다. 오죽했으면 문화관광부에서 일본 대사관에 공문을 보내서 한일양국관계를 저해하는 노래가 일본에서 유행한다는데 어떻게 된 일이냐는 문의를 하기까지 했다. 그 와중에 게시판에는 우리나라 랩그룹인 DJ DOC가 이 DNP006 에 보복하는 내용의 노래를 만들었다며, 그 노래 파일이 업로드되고 있었다. 한참 난리가 지나간 후, 사건의 진상은 약 1개월쯤 후에 밝혀졌다.

결론만 말하자면, 일본에 DNP006 이라는 밴드는 없었다.
그런 노래도 없었음은 물론이다. 그러니까 DNP006은 우리나라 인터넷 게시판에만 존재했던 밴드였고 그 노래도 역시 우리나라 사람들이 만들어낸 노래였다. 상식적으로도 납득하기가 어려운 일이라 지금도 이런 이야기를 하면 많은 사람들이 반신반의한다. 어떻게 전혀 존재하지 않는 노래가 저절로 만들어질 수 있단 말인가?

관련 포스트 (아직도 낚이는 인간이...-_-;;;)

관련기사
문화부가 일본에 시정을 요구했다는 기사
사태를 최종정리한 기사


2006년 12월, 우리나라는 MBC 에 대한 반감으로 넘쳐났다.
이 프로그램에서 제기한 황우석 교수의 연구논문의 진위 여부문제는 강압적인 취재과정이 부각되면서 많은 인터넷 이용자들의 공분을 샀고, 광고가 줄줄이 취소되는 바람에 프로그램은 존폐위기에까지 몰렸다. 그 와중에 생물학전문 연구정보 센터(BRIC)라는, 생물학연구자들만 드나들던 외딴 게시판에 한 게시물이 올라왔다. 황우석 교수의 <사이언스> 게재 논문에 첨부된 세포사진들 중 몇 개가 같은 세포를 다른 각도에서 찍은 것으로 보인다는 내용이었다. 이 게시물은 곧 디시인사이드(DCinside)라는, 디지털 사진 동호인들이 모이는 다른 게시판으로 옮겨졌다, 그 이후 불거진 의혹제기의 시발점이 되었다. 곧 논문에 기술된 DNA 지문분석 결과에 대한 의문이 제기되었고, 매일 새로운 조작의 증거가 발견되고 퍼져나갔다. 결국 이렇게 쌓인 작은 증거들은 부정할 수 없는 사실임이 확인되었다. 이 과정 역시 앞서의 DNP006 사건 만큼이나 놀라운 일이었다.

처음 의문을 제기한 것은 생물학연구자들이었지만, 이후에 그 많은 세포사진들을 비교하고 분석한 사람들은 생물학 전문가가 아니라 디지털 사진을 만들고 변형하거나 합성하는 활동을 즐기던 사진 동호회 회원들이었기 때문이다. 이들이 동호회 게시판에서 주로 하던 것은 일상생활이나 TV 방송에서 순간 캡쳐를 통해 재미있는 모습을 찾아내고, 어떤 경우에는 몇 가지 이미지를 합성해서 더 재미있는 형태로 변형하는 놀이였다. 그러니까 이들은 생물학에 대해서는 잘 몰랐지만, 이미지에 대해서는 눈이 밝은 사람들이었던 셈이다. 그리고, 학계 최고의 권위를 자랑한다는 <사이언스>지의 생물학 전문가들도 속여 넘긴 자료가 이 이미지 조작 전문가들에 의해서 낱낱이 해부된 것이다.

DNP006 사건은 집단사고(group thinking) 과정이었다.
집단사고란 어떤 사안에 대해서 동일한 관점을 가진 사람들이 모여서 생각을 나누다 보면 점점 더 비현실적이고 극단적인 결론을 내리게 되는 것을 말한다.(관련 포스트) ‘사공이 많으면 배가 산으로 간다’ 는 속담에 해당하는 현상이다. 2000년 6월 당시 우리나라 네티즌들은 모두 일본의 끈질긴 망언 릴레이에 진저리를 치면서 적대적인 감정을 가지고 있는 상황이었다. 이렇게 모두가 비슷한 생각을 하는 상황에서 사람들은 점점 더 극단적인 말이나 행동을 내놓는다. 그렇게라도 하지 않으면 자신의 의견이 남의 눈에 띄지 못하기 때문이다. 처음에는 단순히 ‘이렇게 지독한 일본인들이니 아마 우리나라를 욕하는 노래도 있을 것’이라는 생각으로 누군가 올린 글이 주목을 받자, 다른 사람이 그런 노래라면 아마 이런 내용일 것이라고 추측해서 다시 시선을 끌고, 이를 구체화함으로써 계속 사람들의 관심을 끌다보니 결국 없던 노래를 네티즌들의 집단창작 형식으로 작사 작곡해서 연주까지 하게 된 것이다. 그렇다면 이렇게 말도 안 되는 과정이 벌어지는 동안 사람들은 왜 이것이 가짜일 것이라고 의심하지 못했을까? 다원적 무지(Pluralistic Ignorance) 때문이었다. 워낙 많은 사람들이 그 글을 봤기 때문에 만약 이게 거짓이라면 분명히 누군가 지적했을 것이라고들 생각할 수밖에 없었다. 이렇게 막연하게 다른 사람들의 판단력에 의존해서 자신의 판단을 내린 결과, 결국 모두가 한꺼번에 멍청하게 속아 넘어가고 말았다. 거기다가 인터넷 초창기에 저지르기 쉬운, 텍스트로 명시된 내용은 이미 확인된 사실일 것이라고 무조건 믿어버리는 습관도 한몫 했을 것이다.

반면에 BRIC 회원들이나 DC inside 과학갤러리 이용자들은 집단지능(group intelligence)을 발휘해서 이 문제를 분석했다.
그들 중에 연구 결과 전체를 포괄하는 안목을 갖춘 사람들은 별로 많지 않았지만, 서로 자기가 할 수 있는 영역에서 자신이 잘 하는 방법으로 자료를 비교하고 분석했고 새로운 정보를 열심히 공유했다. 마치 우리 뇌속의 신경 뉴런들이 단순히 0과 1의 전기신호를 서로 주고받음으로써 ‘생각’ 이라는 고차원적인 활동이 만들어지는 것처럼, 그리고 수만 마리의 개미들이 단순한 작업을 반복해서 복잡한 개미굴을 완성하는 것처럼, 이들은 인터넷이라는 인프라를 이용해서 각자가 단순한 감각기관의 역할이나 신경 뉴런의 역할을 떠맡으면서 고차원적인 정보처리를 이루어낸 것이었다.

집단사고와 집단지능은 이전부터 사람들이 보여주던 현상이다.
그러므로 이것이 모두 인터넷 때문이라는 생각은 옳지 않다. 인터넷은 단지 이런 심리적 현상이 좀더 빠른 속도로, 좀더 극적인 형태로 드러날 수 있는 여건을 마련해주었을 뿐이다. 물론 주류 의견에 동의하지 않는 사람들에게 피난처를 마련해준다는 인터넷 익명성의 특징이 중요한 역할을 하기는 했다. 이들은 다른 모든 게시판에 모인 사람들이 황우석 교수를 맹신하며 국익을 외치는 모습에 동의할 수 없었던 사람들이었다. 그런 사람들이 자신과 비슷한 생각을 가진 동료를 찾아 인터넷을 돌아다니다가 디씨인사이드의 과학 게시판을 발견했고 거기에 모여서 그들의 태도를 온전히 유지할 수 있었기 때문에 이런 반전이 일어난 셈이다.

어쨌거나 우리는 함께 모여서 아주 멍청해질 수도 있고, 놀랍게 똑똑해질 수도 있다.
집단사고와 집단지능은 그 두 가지 모습을 보여준다. 앞으로도 같이 모여서 똑똑해지는 경험이 멍청해지는 경험보다 더 많아지기를 바란다.


- 2006. 1. 따듯한 디지털 세상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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흐흥 2006.01.20  02:00  [12.210.162.18]

제 생각에는 일종의 익명 공간의 힘이 아닌가 싶어요. 흔히 익명 공간이 온갖 루머의 진상지 & 인신공격의 무대 쯤으로 여겨지는데, 이런 전문적 토론을 하게 되는 경우 익명 공간 만큼 유용한 곳도 드물다고 생각합니다. 흔히 말하는 '계급장 떼고'토론 하는 방이니 아무리 오프라인에서 권위 있는 사람의 말이라도 말이 안되면 반박이 들어오고 묻혀버리는 거죠. 익명의 전문가들이 모인 집단에서 전공 지식으로 속이려 들기는 매우 힘들다고 봅니다.
흔히 음모론자들이 주장하길 브릭이나 과겔에도 그 '배후세력'이 침투해서 선동하고 있다고 주장하던데, 글쎄요. 알바를 수백명 단위로 쓰지 않는 한 누구나 쉽게 로긴하고 글 쓸수 있는 게시판의 의견을 바꾸기는 쉽지 않죠. 전 그래서 음모론을 믿지 않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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짤구 2006.01.20  07:26  [58.77.12.50]

이번 황우석 껀 때문에 좋은 거 많이 알게 됩니다. 인지부조화라든가(그 실험 얘기가 무척 재밌더군요) 집단사고와 집단지능이라든가. 잘 읽었슴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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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죠 2006.01.20  13:57  [218.48.35.7]

집단사고... 탄핵 때, 딴나라 애들이 어떻게 이렇게 생각이 없을 수 있는가에 대해 얘기하다가 나왔던 얘긴데. 집단지능, 좋은 거 알았습니다. 감사함돠. 나날이 배우게 많아지니 머리가 아프군요. ㅋ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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싸이코짱가 2006.01.20  14:08

아, 그렇죠... 그때도 집단사고 얘기 했었는데...
헤비죠님 코멘트 보고 그때 썼던 포스트 링크 추가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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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안 2006.01.20  19:26  [147.46.217.124]

안녕하세요, 자주 와서 글만 보고 갔는데 처음 코멘트 남깁니다.이 글 보고 갑자기 생각났는데, 예전에 대나무꽃을 보면 행운이 온다더라, 라는 글과 함께 떠돌던 가짜 대나무꽃 사진이 있었는데, 그게 3달 넘게 떠돌을 적이 있어요.(그리고 지금도 그걸 믿고 있는 사람도 있을테고..) 모 일간지 인터넷 싸이트에 올라가면서 그렇게 퍼졌다는데, 실제로 사진의 꽃 자체도 대나무꽃이 아니었고, 대나무는 꽃이 피면 뿌리로 연결되어있는 한 군락이 다 죽기 때문에 불길한 징조로 여겼다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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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림잡객 2007.08.07  23:40

흥미로운 내용입니다. '집단사고'와 '집단지능'.. 글 담아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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