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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설일 : 2004/12/07
 

 선암사에 梅花(매화)가 활짝 폈다. 매화는 추위를 이기고 눈 속에서 그윽한 꽃향기를 만들어 내는 봄의 전령사다. 四君子(사군자)에서 제일로 손꼽히는 매화는 늦겨울과 이른 봄에 꽃을 피워 강인한 절개와 지조를 보여준다. 조선시대 유학자 姜希顔(강희안·1417~1464)은 저서 「養花小錄(양화소록)」에서 『함부로 번성하지 않는 희소성, 세월의 풍상을 이겨낸 늙은 나무의 모습, 살찌지 않고 탐욕 없는 마른 모습, 그리고 꽃봉오리가 벌어지지 않고 오므라져 있는 우아한 자태』를 지닌 매화를 높이 평가했다. ●
 
선암사에서 가장 아름다운 昇仙橋(승선교)에서 바라다 본 降仙樓(강선루).

바람에 흩날리는 꽃향기는 수행하는 스님의 눈과 마음을 어지럽게 한다.

전남 순천시 조계산 동쪽 기슭에 자리한 선암사에는 봄철이면 처마 밑으로 산수유·진달래·개나리·매화·목련 등이 탐스럽게 핀다.

[김영택의 펜화로 본 한국] 강화 전등사와 정수사

2005.12.09 19:10 | 사찰 | 하늘

http://kr.blog.yahoo.com/ppis4988/11124 주소복사

[김영택의 펜화로 본 한국] 강화 전등사와 정수사(49)
그림 같은 꽃살문, 막 꺾은 연꽃을 꽂아놓은 듯
문살이 아닌 통판 전체에 조각, 한 폭의 그림을 새긴 것처럼 섬세하고 아름다워

▲ 정수사 대웅보전, 2005, 종이에 먹펜, 48*36cm

건축문화재가 있는 현장에서 펜화를 그리고 있을 때 옆에서 서너 시간씩 지켜보는 분들이 있습니다. 이런 분 중 반수 이상이 화가입니다. 같은 화가인데도 펜으로 기와 한 장, 벽돌 한 장까지 꼼꼼하게 그리는 것이 신기한가 봅니다. “어떻게 그리 꼼꼼할 수 있느냐”는 분도 있고, “힘들지 않느냐”는 분도 있습니다.

▲ 정수사 대웅보전
세밀한 묘사를 하는 경우에는 하루 온종일 그려도 10×10㎝ 정도밖에 못 그립니다. 그러니 펜화가라고 어찌 지겹지 않겠습니까. 특히 벽돌 건물을 그리려고 수만 장의 벽돌을 한 장 한 장 그릴 때면 한숨이 절로 납니다. 한번은 꾀를 내서 손재주 좋은 후배에게 대신 그리게 하였습니다. 연필로 완전하게 잡아놓은 밑그림을 따라 단순한 선만 그으면 되는 것이었거든요. 그런데 저녁에 보니 후배의 선과 펜화가의 선이 전혀 다른 것이 아니겠습니까. 그림 한 점을 망쳐 놓고서야 선 하나도 사람마다 다르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이제는 하나의 선도 우연이 아닌 필연으로 만들어진다고 생각합니다.

주간조선 연재가 1년을 넘었습니다. 주간연재를 위하여 1주일에 한 점의 펜화를 그리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닙니다. 보통 4절(48X36㎝) 규격의 펜화 한 장 그리는 데는 열흘 정도가 걸리거든요. 더구나 취재에 이틀 정도 걸리니 4~5일에 한 장을 그려야 하는 셈이지요. 그러니 하루 16~18시간 작업을 하여 이틀치 작업을 하루에 해결합니다. 마감 전날은 꼬박 날밤을 새는 것이 습관처럼 되었습니다.

▲ 삼랑성 남문
이번 추석합본호 덕분에 1주일의 여유가 생겼습니다. 그 덕에 그동안 미루었던 강화 정수사(淨水寺) 법당을 그리게 되었습니다. 정수사 대웅보전의 꽃살문과 공포의 첨차, 화반은 아름답고 섬세한 목각이어서 세밀한 묘사가 필요하거든요. 일부분이 세밀해지면 전체가 같은 필법이 되어야 하기 때문에 시간이 곱으로 늘어납니다.

정수사 대웅보전은 정면 3칸, 측면 4칸으로 정면보다 측면이 긴, 보기 드문 규격의 건물입니다. 본래 측면 3칸의 건물에 앞쪽으로 한 칸의 퇴칸을 달아낸 것이지요. 그 때문에 지붕 용마루가 뒤쪽에 치우쳐 있어 측면 풍판의 모양이 이상합니다. 안동 개목사 원통전과 함께 드문 형태의 건물입니다. 작은 법당에 여러 사람이 예불할 수 있도록 개조한 것입니다. 작년에 끝난 8중창 공사 때 목재의 벌채연도를 측정해본 결과 툇간을 내단 것이 1524년으로 추정된답니다. 정수사는 신라 선덕여왕 8년(639)에 창건되었다고 합니다.

정수사가 유명해진 것은 퇴칸보다는 아름다운 꽃살문 때문일 것입니다. 사분합문인 꽃살문은 화병에 꽃이 꽂혀 있는 모양을 통판투조방식으로 만든 것입니다. 쉽게 말씀드리자면 두께 45㎜의 널판에 꽃을 조각하여 문울거미에 끼워넣은 것입니다. 가운데 두 짝은 연꽃, 연봉, 연잎과 줄기를 새겼고 좌우 두 짝에는 목단 꽃, 봉오리, 잎과 줄기를 널판 가득하게 조각해놓았습니다. 불상 옆에 장엄을 하던 크고 화려한 조화를 문짝에 옮겨놓은 것으로 보여집니다. 문살 자체에 무늬를 새긴 꽃살문이나 살교차점에 꽃을 붙인 꽃살문은 연속무늬 형태를 갖게 됩니다. 그러나 통판에 조각한 정수사 꽃살문은 꽃 그림을 보는 듯한 개성이 넘치는 문입니다.

꽃살문과 똑같은 디자인을 법당 정면 공포의 첨차와 창방 위의 화반에서도 볼 수 있습니다. 첨차 좌우에 연봉을 새겨놓고 소로를 받치게 하였습니다. ‘연봉형 첨차’로 보기 드문 걸작입니다. 투각된 연봉과 줄기를 보고 있노라면 너무 예뻐서 꺾어다가 화병에 담고 싶어집니다. 창방 위의 화반은 넓적한 수반에 연꽃과 연잎을 꽂아놓은 꽃꽂이 작품처럼 아름답습니다. 모두 집을 짓는 대목의 솜씨가 아닌 가구를 만드는 소목장의 솜씨인데 뛰어난 창의력이 돋보입니다.

▲ 정수당 법당 꽃살문(왼쪽), 함허대사 부도(가운데), 정족산 사고(오른쪽).

정수사는 법당이 둘, 요사채가 하나인 작은 절입니다만 꽃살문과 연봉형 첨차, 화반만으로도 보는 이를 행복하게 합니다.

강화도를 한반도의 중심부라고 합니다. 한반도에서 지기가 가장 센 곳이라는 마니산(摩尼山)에 단군왕검이 하늘에 제사를 지내던 참성단(塹城壇)이 있습니다. 마니산은 ‘우두머리산’이라는 뜻으로 마리산(摩利山) 또는 두악(頭岳)이라고도 불렀습니다. 마니산 동쪽 기슭에 정수사가 있고, 가까운 정족산(鼎足山)에는 단군이 운사 배달신에게 명하여 쌓았다는 삼랑성(三郞城) 안에 전등사(傳燈寺)가 있습니다.

강화도는 수도 서울의 입구인 한강을 방어하는 요충지로서 삼별초의 대몽항쟁, 병인양요, 신미양요, 운양호 사건, 강화도 조약 등 큰 사건이 일어났던 곳입니다. 해안을 따라 12진보, 54돈대, 5포대가 잇달아 늘어서 있습니다. 전등사는 호국사찰로서 수도방위와 왕실의 원찰 기능을 함께 담당하였습니다.

▲ 전등사 전경
전등사는 1920년대에 발간한 조선고적도보의 사진과 현재의 모습에 큰 차이가 없습니다. 큰 불사를 일으켜 절을 키우는 것이 자랑이 된 요즈음 변함없는 모습을 하고 있는 전등사에 정이 가는 것은 당연한 일이지요. 거목이 된 은행나무뿐만 아니라 절마당의 느티나무도 엄청 큰 덩치를 자랑하고 있고, 보제루 옆의 단풍나무까지 큰 고목이 되어서 전등사의 역사를 말해줍니다. 절 뒤편 잡목들을 베어내서 잘 생긴 소나무들이 드러나 보이는 것이 참 좋습니다. 스님 말씀이 소나무의 생장에도 좋아서 매년 잡목제거 면적을 넓혀나갈 예정이랍니다. 소나무와 잡목이 섞여있는 숲을 가진 절에서 참고할 만한 일입니다.

절 뒤편 서쪽 숲에 자리 잡은 정족산사고(鼎足山史庫)는 복원된 지 5년밖에 안되었는데 목재들이 습기에 검게 변하여 보는 이를 안타깝게 합니다. 주위의 나무가 너무 잘 자란 것도 탈이 되네요. 잡목들을 제거하여 통풍이 잘 되게 하여야 해결될 것이랍니다.

바다가 보이는 전등사에서 맞는 일출도 장관이어서 정월 초하루 새벽에는 절 마당이 인산인해가 된답니다.

그림ㆍ글ㆍ사진=김영택 펜화가(honginart@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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운달산 김룡사

대자연의 서기로 가득한 피안의 길목

▲ 대웅전 앞마당. 보제루를 마주보며 양편에 해운당과 설선당을 둔 ㅁ자 형이다.

여름 한철, 우리는 맹렬히 자유로웠습니다. 옷자락을 조금 풀어헤쳐도 크게 허물이 될 게 없었습니다. 설사 그것이 방종이라 할지라도 유쾌한 일탈이었습니다. 우리의 몸과 마음을 산수간(山水間)에 두었기 때문이겠지요. 

다시 일상입니다. 아침마다 같은 번호의 버스, 같은 노선의 지하철에 몸을 싣고 쳇바퀴 돌듯 하루하루를 살아내야겠지요. 이런 동굴 같은 일상을 무덤으로 만들지 않기 위해 우리는 여름 한철 마음속에 푸른 빛다발을 비축하는지도 모릅니다. 여행은 인간들의 광합성입니다.

일상의 건강에서 삶의 궁극을 찾은 이들이 있습니다. 조주(趙州?778-897) 스님이 남전(南泉?748-795) 스님에게 물었습니다.

“무엇이 도입니까(如何是道)?”

“평상심이 바로 도다(平常心是道).”

▲ 사역 뒤편 가장자리 계곡 옆에 선 약사여래불. 조각수법이 소박하여 천연스럽다.
세간과 출세간의 경계가 와르르 무너져내리는 소리가 들립니다. 이러한 선(禪)의 전복성은 ‘번뇌가 곧 보리(菩提, 지혜)’라는 혁명적 선언으로 이어집니다. 일상에 대한 가없는 긍정입니다.

하루하루의 삶을 벗어나 찾아야할 도는 없다는 선사들의 통찰은 비루한 일상 그대로를 보석으로 바꾸어 놓습니다. 선사들에게 깨침은 ‘세수하다 코 만지기’입니다. 구름을 타고 찾아야할 도 같은 건 없다는 말이겠지요. 어쩌면 선사들이야말로 일상성에 주목한 최초의 인류가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을 해 봅니다.

‘잘 쉬는 것도 하나의 경쟁력’인 시대를 살고 있습니다. 쉬는 일 자체가 일종의 스트레스가 될 소지도 다분해졌습니다. 이제 곧 매스컴에서는 바캉스 증후군 운운하면서 뻔한 소리를 심각한 표정으로 하는 데 천재적인 재능을 지닌 전문가라는 사람들을 동원하겠지요. 괜히 덩달아 심각해질 필요는 없습니다. 우리는 이미 처방전을 들고 있으니까요. 평상심시도(平常心是道)!

김룡사를 감싸고 흐르는 자연의 광휘, 금강소나무로 절정

운달산 김룡사를 찾았습니다. 귓속에 맴도는 파도소리나 주머니 속에 남은 모래알을 털어내는 데 산사의 침묵이 필요할 것 같아서였습니다. 아주 단순한 생각에서였습니다. 하지만 소득은 기대한 것의 몇 갑절이었습니다. 그것은 세 번의 놀람으로 다가왔습니다.

▲ 운달산의 수림과 운무와 하나를 이룬 전각들.
첫번째 놀람은 절을 둘러싼 자연의 눈부심 때문이었습니다. 자동차가 무시로 드나드는 활짝 열린 곳에 아직도 때 묻지 않은 계곡과 원시림이 존재한다는 것은 하나의 경이였습니다. 백두대간이 대미산(1,115m)에서 남쪽으로 한 가지를 뻗어 일으켜 세운 운달산(1,097.2m)은 팔처럼 계곡을 풀어 김룡사를 안고 있습니다.

그 중 서남쪽으로 흘러내리는 계곡이 바로 운달계곡인데 현지에서는 냉골로 불립니다. 얼음처럼 서늘한 계곡이라는 말이겠지요. 태고부터 도끼 소리를 들어본 적이 없다는 원시림이 머금었다 흘려보내는 풍부한 물이 사철 계곡을 적시고 있습니다. 계곡은 흐르는 물 위로 또 한 겹 물결처럼 안개를 피워 올리고 있습니다.

주차장에서 차를 버리고 안개 위에 몸을 실어 올리면 울울창창한 전나무 숲길이 길잡이를 해줍니다. 이 땅에 아름다운 전나무 숲길이 한둘은 아니지만 이곳은 특별합니다. 계곡을 끼고 그 흐름을 따라 자연스럽게 휘어 돌기도 하고, 사이사이에 단풍나무와 층층나무 같은 활엽수들을 끼고 있어 진한 원시성을 느끼게 합니다.

▲ 배롱나무(나무 백일홍) 꽃불을 켠 응진전.
쉴 새 없이 바위를 간질이는 물과 조금의 거리낌도 없이 몸을 내맡기고 있는 바위, 그 억겁의 포옹에 넋을 다 주고 말 즈음 홀연히 산문이 나타납니다. 김룡사 일주문인 홍하문(紅霞門)입니다. ‘붉은 노을’이라는 문 이름이 녹음 속에서 이채롭습니다. 잠시 눈을 감고 머리 속으로 아둔한 상상력이지만 단풍 든 숲길을 불러내 봅니다.

홍하문 아래에 걸린 ‘雲達山金龍寺(운달산김룡사)’ 편액은 구한말의 독립운동가로 상해 임시정부의 요인이었던 동농(東農) 김가진(金嘉鎭)의 글씨라고 합니다(대한불교진흥원 편 <한국사찰의 주련과 편액> 하권 참조). 홍하문 오른쪽에는 민예품처럼 투박한 조각수법의 귀부가 눈길을 끄는 비석이 보이는데, 이는 절에 전답을 희사한 계성당(桂城堂)의 송덕비라고 합니다. 일주문 안의 비는 김룡사에서 출가한 근세의 걸출한 학승이자 초대 동국대 총장이었던 퇴경당 권상로 대종사의 사적비입니다.

▲ 보제루 옆 모퉁이 계단. 대웅전으로 오르는 길이다.

다시 숲길을 걸어올라 오른쪽으로 살포시 돌아 오르면 김룡사의 전각들이 모습을 드러냅니다. 그러나 그보다 먼저 눈길을 붙잡는 것은 마치 금강역사인양 가람을 감싸고 있는 금강 소나무의 모습입니다. 김룡사를 감싸고 흐르는 자연의 광휘는 그것으로 절정을 이룹니다. 운달계곡과 전나무숲, 그리고 소나무는 김룡사의 살아있는 탱화입니다(참고로 수령 50~90년에 이르는 이 전나무들은 경북산림환경연구소에서 관리하는 채종림이이기도 하다). 

조금 속물스럽긴 합니다만 두번째 놀람은 왜 이런 절이 전국적으로 널리 알려지지 않았을까 하는 것입니다. 일제강점기에는 전국 31본산의 하나로 50개 말사를 관장하던 큰 절이었습니다. 이런 절이 왜 한갓진 산속 절로만 치부되고 있는 것일까요. 상당히 주관적인 얘기일지 모겠지만, 근래의 과도한 문화재 집착이 이런 현상을 가져온 게 아닌가 합니다.

‘만약 무엇이든 마음에 걸어 두는 일 없다면, 늘 호시절일진저’

언제부턴가 우리 사회에서 사찰의 격을 말할 때 국보급 문화재의 보유 유무를 그 척도로 삼곤 합니다. 그러나 그것이 절대 기준일 수는 없습니다. 결코 절은 박물관이 아닙니다. 당연히 불교 신자들에게는 제1의 의미가 신앙 공간일 테지만, 아닌 사람들에게는 ‘잘 쉴 수 있는’ 곳이어야 합니다. 그것이야말로 ‘닦음’이 아닐까요. 문화(재) 학습장으로서 기능도 중요하지만, 그것은 후순위로 밀려도 좋을 것입니다. 자연 속에서 얻은 한가한 마음. 이보다 좋은 수신(修身)이 또 있을까요. 첨단 문명사회일수록 자연과 인간의 매개공간으로서 절의 소중함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을 것입니다. 절이 자연의 품에 안김으로써 우리는 삶 깊숙한 곳에 자연을 담을 수 있습니다.

절은 인간화한 자연의 진경입니다. 그것의 한 부분을 김룡사 가람에서 봅니다. 보제루 석축 앞의 상사화가 곱게 피어 있습니다. 잎이 다 시들고 난 뒤 꽃을 피워 이별초라는 별칭을 갖고 있기도 합니다. 애끊는 사랑의 상징인 꽃입니다. 하지만 이 꽃이 절마당으로 들어오면 ‘피안화(彼岸花)’가 됩니다. 우리 모두도 언젠가는 저 꽃처럼 홀로 자연으로 돌아가겠지요.
▲ 가람을 수호하는 금강역사 같은 소나무가 후광으로 빛나는 운달산 김룡사. 명부전 옆 둔덕에서 바라본 모습.

봉명루(종각)에서 감로당쪽으로 오르는 길가의 개미취 보랏빛 꽃은 지상으로 내려앉은 별빛인양 합니다. 그 빛을 밝고 오르면 대웅전 뒤쪽으로 금륜전(산신각.독성각)과 극락전, 응진전 앞에서 배롱나무(나무 백일홍)가 꽃불을 밝히고 있습니다. 우리 육신의 그림자는 그 꽃 그림자 속에서 피안(彼岸)에 이릅니다.

▲ 응진전 앞 배롱나무 꽃 진 자리. 피안으로 가는 징검다리인 양이다.
세번째 놀람은 근세 고승들의 수행처였다는 사실입니다. 조계종 종정을 지내셨던 성철, 서암, 서옹 스님이 바로 그분들입니다. 자연의 가장 내밀한 곳으로 다가간 그분들로 하여 김룡사는 더욱 그윽해집니다.

풍수가들의 말에 따르면 김룡사의 가람은 누운 소(臥牛)의 형국이라고 합니다. 그리고 그 소의 눈에 해당하는 부분이 동쪽 계곡 너머 명부전이랍니다. 앞서 말한 스님들 모두 그곳에 머물렀다 합니다. 눈 밝은 스님들이어서 소의 눈을 찾은 것인지, 소의 눈이 스님들의 눈을 밝혔는지는 모르겠으되, 자연에 대한 눈뜸 없이 깨달음을 말할 수는 없을 것 같습니다.

김룡사의 초창은 588년(신라 진평왕 10)의 일입니다. 이후 조선 중기까지의 역사는 알 길이 없고, 1625년(조선 인조 3년)에 다시 지었다고 합니다. 운달 스님이 창건할 당시의 이름은 운봉사였다고 하는데, 냉골의 차가운 기운이 구름을 피워 올리는 정경을 떠올리기 어렵지 않습니다.

현재의 이름으로 바뀐 때는, 절에 전하는 괘불의 화기(畵記)에 1703년으로 기록된 것으로 보아 그 이후로 보입니다. 전설에 따르면 김씨 성을 가진 이가 냉골에 숨어 살며 신녀(神女)를 만나 용(龍)라는 아들을 낳고부터 가운이 성했다고 해서 동리 이름이 김룡으로 바뀌었고 절이름도 그리 됐다고 합니다.

▲ 절집의 장맛은 찾아오는 객들을 대하는 주인의 마음을 반영한다. 김룡사의 장맛은 깊고 달다.
운달계곡 상류의 금선대와 용소폭포의 첫 글자를 따서 지었다는 이야기도 전합니다. 하지만 김룡사 존재 의미는 믿기 힘든 전설에 기댈 바가 아닙니다. 눈부신 대자연이 후광처럼 빛나는 절이기 때문입니다.

남전 스님의 ‘평상시도(平常是道)’를 우리에게 전해 준 무문 스님은 그 때의 심회를 이렇게 노래합니다. 그 노래에 김룡사를 나서는 내 마음을 실어봅니다.

‘봄에는 온갖 꽃, 가을에는 달. 여름에는 시원한 바람, 겨울에는 눈. 만약 무엇이든 마음에 걸어 두는 일 없다면, 늘 호시절일진저(春有百花秋有月, 夏有.風冬有雪, 若無閑事?心頭, 便是人間好時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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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암사(淨巖寺)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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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암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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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암사(淨岩寺)

위치 : 강원도 정선군 고한읍 고한리
지정 : 정암사 적멸보궁(지방문화재 자료 제32호)

정암사는 태백산에 신라 선덕여왕 14년(645)에 자장율사가 창건하였다. 자장율사는 당나라 산서성에 있는 청량산 운제사에서 문수보살을 친견하고 석기세존의 정골사리 치아 불가사패엽경등을 전수하여 동왕 12년에 귀국하여 14년에 금탑은탑 수마노탑을 쌓고 부처님의 사리와 유물을 봉안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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적멸궁 뒤 높은 곳에 세워진 수마노탑(水瑪瑙塔)은 자장율사가 귀국할때 서해 용왕이 용궁으로 모시고 가서 주신 마노석(瑪瑙石)으로 탑을 쌓은 것이라 하여 수마노탑이라 한다. 금탑과 은탑은 후세의 많은 사람들이 귀한 보물에 탐심을 낼까 염려하여 영구히 보존키위해 비장(備藏) 하였다고 전해진다.

정암사 적멸보궁 (淨岩寺 寂滅寶宮)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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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암사 수마노탑 (淨岩寺 水瑪瑙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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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암사 적멸보궁 (淨岩寺 寂滅寶宮)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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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암사 적멸보궁(淨岩寺 寂滅寶宮)

적멸보궁은 사찰의 법당에 해당하는 건물로 불상을 모시지 않았다. 불상을 대신하여 적멸보궁 뒷산 중턱에 석종의 진신사리를 봉안한 수마노탑이 있다. 건물의 양식은 자연석 기단위에 세워진 전면 3칸, 측면 2칸의 겹처마 팔작지붕이다.

정암사 수마노탑 (淨岩寺 水瑪瑙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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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암사(淨巖寺)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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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혈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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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혈사 (聖穴寺)

위치 : 경상북도 영주시 순흥면 덕현리 277
지정 : 보물 제832호

성혈사는 신라시대 의상대사(義湘大師)가 처음 건립하였다고 전하는데, 이 나한전은 임진왜란 이후 다시 고쳐 지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원래 다른 목적으로 지어진 나한전은 정면 3칸, 측면 1칸의 단층 맞배 기와집으로 네외(內外) 이출목(二出目)의 공포를 기둥과 기둥 사이의 평방위에 짜 얹은 다포식(多包式) 건축이다.


성혈사 나한전 (聖穴寺 羅漢殿) - 보물 제832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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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혈사(聖穴寺)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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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혈사(聖穴寺) 산신각과 나한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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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혈사(聖穴寺) 나한전 꽃살무늬 창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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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둥은 배흘림 기둥에 가깝게 다듬으면서 벽선을 세우지 않고 문짝을 달았다. 정면 3칸에 설치된 창호(窓戶)는 꽃살 창호로서 특히 어간(御間)의 것은 연못(連池)에 게, 물고기, 동자상(童子像), 여의주(如意珠), 기러기 등을 조각한 특출한 것이다. 오래된 건축 기법들이 많이 남아 있어 건축양식사 연구의 귀중한 자료이다

뵉台?聖穴寺) 나한전 꽃살무늬 창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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