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육군 22사단, 전우의 아픔을 함께 하려는 선행 이어져

2009.10.17 21:24 | 따뜻한 세상속 | 하늘

http://kr.blog.yahoo.com/ppis4988/28555 주소복사



병영 내 가슴 따뜻하게 만드는 선행이 릴레이처럼 퍼지고 있어 화재가 되고 있다. 육군 22사단 쌍호연대 비호대대 박민한(21세) 상병의 어머니가 혈액암 판정을 받고 수술을 위해 많은 혈액이 필요하다는 것이 알려지자 부대 장병들이 헌혈증 110장을 모아 전달하게 됐다. 이후 박 상병의 어머니는 7월 말 혈액암 수술에 성공했고 지금은 회복중에 있다. 또, 아버지의 간암 초기 판정을 받은 연대 본부중대 박인웅(21세)병장이 아버지를 위해 간이식 수술했다. 현재 박병장의 아버지는 회복중에 있다. 최근 사연을 접한 김용덕(쌍호 연대장) 대령은 “요즘 신세대를 다소 이기적이라고 말하기도 하지만 군 생활은 그런 신세대들의 마음까지도 바꿀 수 있다”며 이들을 격려했고, 부대에서는 십시일반 헌혈증과 격려금을 모아 박상병과 박병장에게 전달하기도 했다. 사진은 회복중인 어머니와 박민한상병. / 사진=육군 제공 /뉴시스

두 손 없는 소금장수 강경환씨의 장엄한 인생

2009.04.10 12:47 | 따뜻한 세상속 | 하늘

http://kr.blog.yahoo.com/ppis4988/27739 주소복사



해마다 명절이 되면 충남 서산 일대에 사는 독거노인들 집 수십 채 앞에는 맑은 천일염 30킬로그램 들이 포대가 놓여 있곤 했다. 13년째다. 아무도 누군지 몰랐다.

지난해에 ‘범인’이 잡혔다. “나 혼자 여러 해 동안 소금을 나르다 보니 힘이 들어서” 읍사무소에 맡기겠다고 소금을 트럭에 싣고 그가 자수했다.

이름은 강경환(50). 충남 서산 대산읍 영탑리에서 부성염전이라는 소금밭을 짓는 소금장수다. 그런데 보니, 그는 두 손이 없는 장애인이 아닌가. 손 없이 염전을? 또 서류를 살펴보니 그는 7년 전까지 그 자신이 기초생활수급자였던 빈한한 사람이 아닌가. 자기 앞가림하기도 바쁜 사내가 남을 돕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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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뢰 가지고 놀다가 두 손을 잃다

소금장수 강경환은 사건이 발생한 연월일시를 또렷하게 기억한다. 1972년 12월 24일 오전 9시 40분. 1959년생인 강경환이 초등학교 마지막 겨울방학을 맞은 6학년, 나이는 13세였다.

서산 벌말에 살던 강경환은 해변에서 ‘안티푸라민’ 통을 닮은 깡통을 발견했다. 나비처럼 생긴 철사가 있길래 그걸 떼내 가지고 놀겠다는 생각에 돌로 깡통을 두드려댔다. 순간 앞이 번쩍하더니 참혹한 현실이 펼쳐졌다. 안티푸라민이 아니라 전쟁 때 묻어놓은 대인지뢰, 속칭 발목지뢰였다.

“순간적으로 정신을 잃었는데, 눈을 떠보니까 가스 땜에 목은 칼칼하고, 눈이 안 보이는 겁니다. 화약이 지금도 눈가에 들어가 있어요. 앞은 이글이글하지, 손을 보니까 손가락이 늘어지고 막 타서….” 폭발음에 놀란 마을 사람들이 집으로 달려와 경환을 업고 병원으로 갔다. 사흘 뒤 깨어나 보니 손목 아래 두 손이 사라지고 없었다. 그리 되었다, 노래 잘해서 가수가 꿈이었던 소년의 인생이 엉망진창이 된 것은.

500미터 거리인 집까지 어떻게 왔는지 모른다. 나중에 마을 어른들이 그랬다. “바다에서 집 사이에 폭 3미터짜리 웅덩이가 있었는데, 너가 어떻게 그걸 뛰어넘고 왔는지.” 신비한 일은 또 있다. “기절해 있는데, 어머니가 무지개를 타고 내려와 내 이름을 부르면서 달려오는 거예요. 그래서 깨어나서 집으로 달려간 거요.”

절망의 나날을 술로 보내다

피를 너무 흘려서 죽었다고 생각했던 소년이 살아났다. 하지만 “남 보기 부끄러워서” 중학교는 가지 않았다. 대신에 그 뒤로 3년 동안 경환은 집 밖으로 나가지 않고 어머니가 밥 먹여주고, 소변 뉘어주며 살았다고 했다. 소년은 고등학교 갈 나이가 되도록 그리 살았다. 인생, 포기했다. “어느날 외할머니께서 돌아가셨어요. 어머니가 친정에 가셨는데, 오시질 않는 겁니다. 배는 고프지… 결국 내가 수저질을 해서 밥을 먹었어요.” 3년만이었다. 석달 동안 숟가락질 연습해서 그 뒤로 스스로 밥을 먹었다.

스스로 밥을 먹고 스스로 혁대를 차게 되었다고 해서 인생이 완전히 바뀐 건 아니었다. “모든 게 귀찮아서 농약 먹고 죽으려고 한 것만 두 번”이라고 했다. 그런데 그때마다 뒤에서 누군가가 부르는 소리가 들리는 바람에 실패했다. 대신에 그는 “열일곱 살 때부터 주막에 출근했다”고 말했다. “모든 게 귀찮았어요. 술로 살았죠. 괴로우니까. 아침 10시에 출근해서 밤 12시에 퇴근했어요. 주막에 친구들이 많이 있으니까, 가서 그런 거나 먹고 살았죠.”

손을 잃은 대신 사랑을 얻다

그날도 술을 처먹고 집에 온 밤이었다. 책상에 유인물이 하나 있길래 무심코 봤다가 휙 던져버렸다. “아침에 유인물을 보니까 정근자씨라고, 팔 둘이랑 다리 하나가 없는 사람이 교회에서 강의를 한다는 거예요. 가서 들었죠. 야, 저런 사람도 사는데, 나는 그 반도 아닌데, 이 사람같이 못 살라는 법 없지 않나….”

강경환은 편지를 썼다. “나도 당신처럼 잘 살 수 있나.” 답장이 왔다. 너도 나처럼 잘 살 수 있다고. 아주아주 훗날이 된 지금, 강경환은 이렇게 말한다. “손이 있었다면 그 손으로 나쁜 짓을 하고 살았을 거 같다”고. 그래서 “손이 없는 대신에 사랑을 알게 되고 마음의 변화를 갖게 되고, 새롭게 살게 되었다”라고. 

대한민국에서 장애인으로 산다는 것. 강경환은 훌륭하게 그 방법을 찾아냈다. 술을 끊고, 일을 하기 시작했다. 삽질을 익히고, 오른쪽 손목에 낫을 테이프로 감고서 낫질을 하며 아버지 농사일을 도왔다. 농사랬자 일곱 마지기. 식량 하고 나니 남는 게 없었다. 지독하게 가난한 집. 1994년, 아버지 친구가 그에게 물었다. 너 염전 할 수 있겠냐.

이미 1987년 교회에서 사랑을 만나 결혼한 가장이었다. 하겠다고 했다. 피눈물 나는 삶이 시작됐다. 농사 짓는 삽보다 훨씬 무겁고 큰 삽을 ‘손 몽둥이’로 놀리는 방법을 익혔다. 수레에 싣는 소금은 양이 훨씬 적었다. 정상인만큼 일하기 위해 밤 9시까지 염전에 물을 대고, 새벽까지 소금을 펐다. 하루 2시간 밖에 잠을 자지 못했지만 그래도 남의 몇분의 일만큼도 일을 하지 못했다. “노력도 노력이지만, 인내라는 게 그리 중요하다는 걸 깨달았다”고 했다.

나보다 어려운 사람들을 위해

1996년 그 와중에 그의 머리 속에 남을 돕겠다는 생각이 떠올랐으니, 손을 잃은 대신에 얻은 사랑을 실천하는 방법이라고 했다. “소금 한 포대가 1만원 가량 하는데, 여기에서 1000원을 떼서 모았죠. 그걸로 소금을 저보다 불행한 사람들에게 주는 겁니다.”

한 해도 빠지지 않고 올해까지 14년째다. 한달 월급 받고선 고된 일 마다하고 도망가 버리는 직원들 대신에 부부가 직접 염전을 지으며 실천하고 있는 일이다. 아산의 한 복지단체를 통해 소록도에 김장용 소금을 30포대씩 보내는 것도 빠지지 않는다. 

강경환의 ‘부성염전’은 1만2000평. 한해 소출이 6000만원 정도다. 이거저거 비용을 빼면 순수입은 한해에 1800만원 정도라고 했다. 뭐, 1800만원? 거기에서 10%인 200만원은 꼬박꼬박 남을 위해 쓰고 있으니 이게 어디 사람의 삶이 맞긴 맞나. 작년에는 400만원 정도 되더라고 했다.

강경환이 말했다. “조금만 마음을 가지면 되는 겁디다. 소금 한 포대 팔아서 1000원 떼면, 5000포대면 500만원이잖아요. 하나를 주면 그게 두 개가 돼서 돌아오고, 그 두 개를 나누면 그게 네 개가 되어서 또 나눠져요. 연결에 연결, 그게 사는 원리지요.”

그 나눔과 연결의 원리에 충실한 결과, 2001년 그는 지긋지긋한 기초생활수급자 꼬리표를 뗐다. 작지만 아파트도 하나 장만했다. 그리고 그는 곧바로 시청으로 가서 자발적으로 기초생활수급자 신분을 포기했다. 수급자 수당 30만원이 날아갔다. 장애인 수당도 포기했다. 6만원이 또 날아갔다. “나는 살 수 있는 길이 어느 정도 닦아졌으니까, 나보다 더 어려운 사람 주라”고 했다. 

하지만 여전히 그는 어렵다. 염전도 남의 염전을 소작하고 있고, 여고생인 둘째딸 학비도 버겁다. 가난한 사춘기 때 손 잃은 서러움과 방황하던 청년기를 일거에 날려버린 종교적인 깨우침이, 여전히 가난한 그에게 이른다. 손을 내밀라고, 보이지 않는 사랑의 손을 내밀라고.

장엄한 부부, 소금밭을 가꾸다

작년에는 ‘밀알’이라는 자선단체를 만들었다. 혼자서 하기에는 버거운 일. 그래서 마음 맞는 사람들을 모아서 불우한 사람들을 더 도우려고. 꿈? 거창하다. “한 30억원 정도 모았으면 좋겠어요. 그러면 마음놓고 남 도울 수 있잖아요. 지금은 형편이 이래서 돕고 싶어도 어렵고….” 옆에서 듣고 있던 아내가 말했다. “내가 악처죠. 내가 악처가 아니고 저 사람만 믿고 있으면 큰일 나요, 큰일.” 남편이 웃으며 말을 받는다. “우리 식구가 천사에요 천사.” 

맑은 날이었다. 부부가 소금밭에 나가서 소금을 거두는데, 손 없는 남편이 능숙하고 진지한 몸짓으로 소금을 모으면 아내는 얌전하게 삽으로 밀대에 소금을 담고, 그 밀대를 ‘손몽둥이’로 남편이 밀어 소금창고로 가져가는 것이다. 그 모습, 장엄(莊嚴)했다.


 

 

원빈 아프리카 봉사활동 'W'에 방송도

2009.04.01 16:31 | 따뜻한 세상속 | 하늘

http://kr.blog.yahoo.com/ppis4988/27669 주소복사


영화배우 원빈이 아프리카 봉사활동을 떠난다.

유니세프 한국위원회는 1일 “원빈이 4일부터 13일까지 아프리카 감비아의 유니세프 구호현장을 방문해 봉사활동을 펼친다”고 밝혔다.

원빈은 이번 방문에서 유니세프 한국위원회의 지원 비용으로 설립된 현지 학교와 보건소 등을 찾는다. 또 감비아 동쪽의 가난한 오지인 바스 지역을 찾아 말라리아 모기장 설치, 펌프 설치 등 어린이를 위한 활동에 직접 나선다.

원빈은 2007년부터 유니세프 한국위원회의 특별대표로 활동하고 있다. 그동안 어린이돕기 자선행사에 참석했고 기금모금캠페인 홍보에 나서는 등 다양한 활동을 펼쳤다.

원빈은 유니세프 한국위원회를 통해 “유니세프 사업현장을 처음 방문하게 돼 걱정과 책임감이 앞선다”며 “이번 여정을 통해 많은 사람의 마음을 움직일 메시지를 전하고 싶다”고 소감을 밝혔다.

원빈의 감비아 봉사활동 장면은 24일 밤 10시55분 MBC TV 국제시사프로그램 ‘W’를 통해 전파를 탄다. ‘W’는 방송 4주년 특집 방송으로 원빈 편을 마련했다

"엄마 다 나으면 가족여행 가고파요"

2009.04.01 16:30 | 따뜻한 세상속 | 하늘

http://kr.blog.yahoo.com/ppis4988/27668 주소복사

[CBS TV 반태경 PD]
경기도 고양시의 한 어두운 지하 셋방. 퀴퀴한 냄새가 풍키는 방 한 쪽 구석에 죽은 듯 누워있는 여성이 있다. 바로 급성골수성백혈병으로 투병 중인 양수진(36) 씨. 독한 항암 치료의 부작용으로 중증 골다공증마저 생긴 그녀는 하루 종일 누워만 있어야 한다. 조금이라도 움직이면 뼈가 부러지고, 호흡이 힘겨울 정도로 통증이 심해 진통제가 없이는 잠시도 버틸 수 없다.

◈친동생 골수 이식 받았지만
양수진 씨가 이렇게 누워서 생활하게 된 것은 3년 전, 백혈병을 진단 받은 이후부터다. 특별한 이유 없이 몸에 멍이 들고, 어지럼증이 심해져 병원을 찾았는데 ‘급성골수성백혈병’ 판정을 받은 것. 다행히 친동생의 골수가 일치해 항암치료 후 골수이식 수술을 받았다.

하지만 더 큰 문제는 퇴원 후에 발생했다. 집에서 요양 중이던 수진 씨가 화장실에서 넘어지고 말았고, 이 사고로 척추 뼈 네 군데에 골절상을 입었다. 항암제가 워낙 독하다 보니 부작용으로 골다공증이 생겨 작은 충격에도 쉽게 뼈가 부러져 버린 것.

항암치료의 부작용은 이 뿐만이 아니었다. 위장에 구멍이 나서 중환자실 신세를 지기도 했고, 최근에는 면역력이 떨어진 탓에 대상포진까지 생겨 시력이 많이 떨어졌다. 오랫동안 누워서 지내다보니 허리통증과 다리의 부종도 심각한 상태다. 하지만 병원에 입원할 돈이 없어 일주일에 한 번씩 보건소 방문간호사가 찾아와 상태를 체크해주는 것으로 만족하고 있다.


◈이혼 후 어린 두 자녀들의 보살핌 받아
설상가상, 양 씨가 골수 이식 수술을 받고 난 후 평소 불화를 겪던 남편과 정식으로 이혼했다. 남편은 이혼 전에도 그랬지만 이혼 후에도 생계에 대해 책임을 지지 않고 있는 상황. 정부보조금 50만 원으로 생활하던 수진 씨 가족은 병원비와 생활비가 쌓이면서 4천여만 원의 빚까지 생겼다. 이를 도저히 감당할 수 없어 지난 해 여름에 파산 신청을 하고 한차례 구제를 받았지만, 그 후에도 천만 원의 빚이 또 쌓였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수진 씨의 딸 김은솔(11) 양과 아들 김형옥(9) 군이 그녀의 손과 발이 돼주고 있다. 일주일에 두 번씩 복지관에서 나온 가사도우미가 밥과 반찬을 만들어 놓고 가면 아이들이 밥상을 차려서 가져온다. 엄마의 식사를 챙겨주고 있는 것이다.

약 먹는 것, 기저귀 가는 것, 물수건으로 온 몸을 닦아주는 것 외에도 아이들은 엄마의 각종 심부름을 들어주고 있다. 그나마 아이들이 함께 있을 때는 다행이지만 등교하고 난 후에는 수진 씨 혼자 아무 것도 할 수가 없다. 물 한 잔도 혼자서 마실 수가 없다. 아이들이 올 때까지 점심도 굶어야 한다.

◈절망적인 상황에서도 희망의 끈 놓지 않아
햇빛이 들지 않는 월 4만 원의 지하 셋방도 올 여름이면 계약이 끝나지만 대책이 없다. 백혈병 환자에게는 지하 셋방이 치명적인 환경인 것을 알면서도 갈 곳이 없다. 절망적인 상황, 그러나 양수진 씨는 희망을 놓지 않는다. 바로 어린 두 아이들 때문이다.

불평 한 마디 없이 엄마를 돌보는 아이들. “한 번도 가족 여행을 가본 적이 없다”며 “빨리 엄마가 다 나아서 함께 여행가고 싶다”는 소박한 바람을 간직한 아이들을 생각하며 양 씨는 오늘도 병마와의 힘겨운 싸움을 벌이고 있다.

가난과 질병으로 고통 받는 양수진 씨의 눈물겨운 사연은 CBS TV ‘수호천사 사랑의 달란트를 나눕시다’를 통해 오는 4월 5일(일) 오후 4시 35분에 다시 방송된다.
(skylife 412번, 각 지역 케이블 TV)
※ 후원방법
① 계좌 : 기업은행 1004-1009-91 (예금주 (재) 기독교 방송) ② ARS : 060-808-1009 (건당 2,000원)

※ 문의전화 : 02-2650-7840 ※ 보내주신 성금은 전액 ‘ 양수진 ’씨에게 전달됩니다.

'수호천사 사랑의 달란트를 나눕시다'
는 빈곤, 질병, 장애, 결손 등의 이유로 고통을 겪고 있는 많은 소외된 이들의 안타까운 사연을 소개하여, 우리 주위의 어려운 이웃을 돌아볼 있는 계기를 마련하는 프로그램입니다. 지난 2004년 방송 시작 후 지역사회와 전문기관과 함께 나눔과 섬김을 실천해왔습니다. (2009년 3월, 세계한인기독교방송대상 TV부문 최우수상 수상)

banpd@cbs.co.kr

[포토다큐]희망을 찾아준 꼬리아
입력: 2007년 10월 14일 18:06:48
“조르 슈파스 보 갈리 꼬리아(한국 사람들 정말 고맙습니다).”
“사랑해 미노야” 수술에 들어가기 전 미노양과 어머니 나이안씨(왼쪽)가 입맞춤을 하고 있다.

심장병 수술을 무사히 마친 미노양(1)의 어머니 나이안씨(31)는 검은 머리 의사에게 쿠르드어로 고맙다는 말을 반복했다. 다섯 시간 동안 끊임없이 알라신에게 기도하던 그녀는 수술로 곤히 잠들어 있는 딸아이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소리 없이 눈물을 흘렸다.
간절한 기도 괴저현상으로 오른팔을 절단한 아즈힌양의 아버지 딜샤드씨(왼쪽)가 기도를 하고 있다.

지난 3일, 이라크 아르빌 어린이 5명이 한국을 찾았다. 오랜 전쟁의 상처와 경제적인 문제로 치료를 받지 못한 아이들을 위해 외환은행 나눔재단 후원으로 이라크 평화재건사단 자이툰 부대의 초청으로 마련된 자리다. 이 행사는 2005년 10월, 자이툰 부대원들이 한국 심장병 어린이들을 위해 파병수당의 1%를 기부한 것에 감사해 한국 심장병 재단에서 이라크 어린이 환자들을 초청한 것이 시초가 되었다. 지난 3월과 5월 두 차례 총 9명의 이라크 어린이들을 치료해 민간 외교사절 역할했고 이번에 다시 다섯 명의 어린 생명에게 새로운 삶의 기회를 만들어 주게 된 것이다.
“툭구할 날만 기다려요” 한 살 때 지뢰로 양쪽 발을 잃은 티와나군(17)이 새로 받은 의족을 찬 뒤 첫 걸음을 떼고 있다.

부천 세종병원 흉부외과 임홍국 과장은 “선천성 심장병의 경우 수술시기를 놓치게 되면 불치병이 되지만 다행히 이번에 온 아이들이 경우 늦지 않게 수술을 받았다”며 “국경을 뛰어넘어 이라크 어린이들에게 새 생명을 찾아주게 되어 기쁘다”고 소감을 밝혔다.
이 어둠 끝나면… 심방중격결손증으로 입원한 비완군(9)이 흉부외과 이창하 과장으로부터 수술을 받고 있다.

이번 초청에는 팔과 다리를 잃은 어린이 두 명도 포함되어 있다. 태어날 때부터 살이 썩어 들어가는 괴저현상으로 오른팔을 절단한 아즈힌양(7)은 유난히 수줍음을 많이 탄다. 아르빌에서 판사로 재직 중인 아버지 딜샤드씨(38)는 “딸 아이의 수줍음이 팔 때문인 것 같아 안타까웠는데 의수를 달면 좀 낫지 않을까 기대한다”며 딸의 오른쪽 어깨를 어루만졌다. 합동참모본부 관계자는 “쿠르드 보건부(KRG)를 통해 아이들을 추천받아 하루 빨리 수술이 필요한 환자들을 중심으로 초청하고 있다”며 “더 많은 기회를 마련하기 위해 국내 후원단체들을 찾고 있으나 쉽지만은 않은 형편이다”라고 설명했다.
아픔없는 내일을 위해 폐동맥협착증과 심방중격결손증을 앓고 있는 미노양이 수술 전 마취에 들어가고 있다.

하지만 아이들의 천진난만한 표정에서 전쟁의 상처와 질병의 고통은 찾아보기 힘들다. 한 살 때 지뢰를 밟아 발목과 무릎이 절단된 채 살아온 티와나군(17)은 “한국에 온 뒤 밤마다 새로운 다리로 친구들과 축구를 하는 꿈을 꾼다”며 오랫동안 가슴 속에 간직했던 ‘희망’을 품고 고국으로 돌아갈 날을 손꼽아 기다리고 있다.

사진.글/남호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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