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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석사(浮石寺)를 창건(創建)한 의상대사(義湘大師)(625∼702)의 진영(眞影)을 봉안(奉安)하고 있는 곳으로 고려(高麗) 우왕(禑王) 3년(1377)에 건립(建立)되었고, 조선(朝鮮) 성종(成宗) 21년(1490)에 중수(重修)되었으며 동(同) 24년(1493)에 개채(改彩)되었다.
이 건물은 주심포양식(柱心包樣式)에 맞배집으로 무량수전(無量壽殿)에 비해 기둥의 배흘림이 약해졌고, 주두(柱頭)와 소로(小累)의 굽은 직선(直線)이며 굽받침이 없고, 공포(공包)와 가구(架構)의 수법은 간략하다. 구조양식(構造樣式)으로 보아 무량痔煥릿?훨씬 후대의 것으로 보인다.
건물 내부(內部) 입구(入口) 좌우(左右)에 제석천(帝釋天), 범천(梵天), 사천왕상(四天王像)의 벽화(壁畵)가 있었는데 이들은 고려시대의 회화사상(繪畵史上) 희귀한 것이며, 고분(古墳) 벽화(壁畵)를 제외하면 가장 오래된 채색(彩色)그림 중 하나로서 지금은 새로 지은 벽화보존각(壁畵保存閣)에 보관되어 있다.
조사당 앞 동쪽 처마 아래서 자라고 있는 나무는 의상국사가 꽂은 지팡이였다는 전설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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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비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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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사당 처마 끝에서 해마다 꽃을 피우는 작은 나무가 바로 선비화(仙비花)이다. 의상 조사가 부석사를 떠날 때 지팡이를 꽂으며, "내가 여기를 떠난 뒤 이 지팡이에서 반드시 가지와 잎이 날 것이다. 이 나무가 말라 죽지 않으면 내가 죽지 않으리라."라고 일렀는데, 처마 밑에서 비와 이슬 한 방울 맞지 않고도 싹이 돋고 가지가 자라났다고 한다. 더욱 신비스러운 것은 천년이 넘도록 일정한 크기를 유지하며, 봄이면 어김없이 노란꽃을 피우고 있다는 것이다. 이 나무의 잎을 달여 먹으면 아기를 낳을 수 있다는 속설이 전하여, 아기를 낳고 싶어 하는 부인들의 손에 피해를 입지 않도록, 현재는 철책으로 막아 보호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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측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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측면에서 보는 조사당의 모습은 또 다른 느낌을 준다. 비록 측면 1칸의 작은 규모이지만 맞배 형식으로 올린 지붕은 넉넉하고도 늠름하게 뻗어 나와 결코 작은 건물이라는 느낌을 주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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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둥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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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나라 주심포계의 과도기적 건물로 양식과 기법에서 특이한 요소들을 보여 준다. 기둥의 배흘림은 고려 때의 다른 건물에 비추어 약화된 편이다. 기둥에 주두를 얹기 전에 머리에는 헛첨차를 끼워 공포를 받쳐 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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