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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문화재명 |
은해사거조암영산전(銀海寺居祖庵靈山殿) |
거조암은 당초 거조사(居祖寺)라하여 은해사 창건보다 앞서는데 신라(新羅) 효성왕(孝成王) 2년(738) 원참조사(元참祖師)가 창건했다고도 하고 경덕왕(景德王)(742∼764) 때 창건했다고도 한다. 은해사와 거조사와의 관계는 언제부터 맺어졌는지 확실히 알 수 없으나 근래에 와서 은해사를 본사(本寺)로 하고 거조사는 그 말사(末寺)로 편입되어 거조암이라 불리게 된 것으로 보인다.
영산전은 해체(解體) 보수시(補修時)에 발견된 묵서명(墨書銘)에 의하면 고려(高麗) 우왕(禑王) 원년(元年)(1375)에 건립되었으며 여러 차례 중수(重修)되었다고 한다.
소박하고 간결한 주심포계(柱心包系) 형식을 취하고 있는 전·후퇴칸5량구조(前·後退間五樑構造)의 맞배집으로 공포(공包), 보(樑)의 단면(斷面), 솟을합장(八字臺工), 포대공(包臺工) 등에서 일부 고식(古式)을 볼 수 있으나 일반적인 조각수법(彫刻手法)으로 보아 조선(朝鮮) 초기(初期)에 중수하면서 많은 부분이 변형된 것으로 보인다. 내부에는 석가모니불상(釋迦牟尼佛像)과 526분의 석조나한상(石造羅漢像)을 凋챨?있다.
영산전 앞에 있는 삼층석탑(三層石塔)은 통일신라(統一新羅) 말기(末期)에 제작된 것으로 추정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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