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정왕(忠定王) | 휘는 저(駙)이며 몽고명은 迷思監朶兒只이다. 시호는 충정(忠定)이며 충혜왕의 서자로서 어머니는 찬성(贊成)윤계종(尹繼宗)의 딸 희비(禧妃)이다. 1348년(충목왕 4) 경창부원군(慶昌府院君)에 책봉되고, 같은 해에 충목왕(忠穆王)이 후사가 없이 죽자 1349년 원나라로부터 왕으로 책봉되어 7월에 강안전(康安殿)에서 즉위하였다. 외척 윤시우(尹時遇)와 배전(裵佺) 등이 세도를 부려 기강이 해이해지고, 밖으로는 왜구의 침입이 잦아 국정이 문란하였다. 즉, 1350년에 왜구가 고성(固城)·죽림(竹林)·거제(巨濟) 등에 침입한 것을 합포(合浦:馬山)의 천호(千戶) 최선(崔禪) 등이 물리쳤는데, 이로부터 왜구가 기승을 부리기 시작하여 순천부(順天府)에 침입하여 조선(漕船)을 약탈하기도 하고 뒤이어 합포·장흥(長興)·동래(東萊) 등지에도 침입하였다. 그리하여 이권(李權)을 경상·전라도도지휘사(慶尙全羅道都指揮使), 유탁(柳濯)을 전라·양광도도순문사(全羅楊廣道都巡問使)로 삼아 왜구에 대비하게 하는 한편, 왜구의 피해에 대비하여 진도현(珍島縣)을 내지(內地)로 옮겼다. 한편, 안으로는 외척 윤시우(尹時遇)와 배전(裵佺) 등이 횡포를 부려 정치를 문란하게 하였다. 그리고 그해 운남왕(雲南王)이 사신을 보내왔다. 1351년에 왜구가 자연도(紫燕島:仁川)·남양(南陽) 등지를 침범하였다. 이때 충정왕과 함께 충목왕의 후계자로 물망에 올랐던 강릉대군(江陵大君:공민왕(恭愍王))에게로 민심이 쏠리자, 1351년 윤택(尹澤) ·이승로(李承老) 등이, “충정왕은 나이가 어려 국정을 감당할 수 없으니 폐위시켜 달라”고 원나라에 요청하였다. 공민왕이 즉위한 후 그는 강화도로 추방되었다가 다음해에 독살되었다. 능은 총릉(聰陵:開城)이다. <두산대백과사전>참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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