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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대 표 제 목 | 강릉지구 포병전투 | | 작 성 자 | 전쟁기념관 | | 감 수 자 | 전쟁기념관 | | 발 행 일 | 2004/10/18 | | 갱 신 일 | 2004/07/15 | | 요 약 정 보 | | ● 전투시기 : 1950.6.25-6.27 ● 전투지역 : 강원도 강릉, 주문진 ● 주요지휘관 : 이정일 대령, 고근홍 중령, 김찬호 대위 ● 참고문헌 : 한국전쟁사(국방부), 한국전쟁사(전쟁기념사업회), 38도선 초기전투(국방부 전사편찬위원회) | | 상 세 설 명 | 1. 강릉지구 포병전투의 개요 적의 기습 남침으로 강릉지역의 제 8사단은 밀려오는 적의 공격을 막아내고 있었다. 강릉지구 전투에 있어서 제 18 포병대대는 밀려오는 적에 맞서 필사적으로 저항하였으며, 그러한 노력으로 주저항선을 돌파한 적을 지연시킬 수 있었다.
2. 강릉지구 포병전투의 주요 지휘관 *아군 제 8사단장 대령 이정일 제 10연대장 중령 고근홍 제 1대대장 소령 박치옥 제 2대대장 소령 조원영 소령 이도헌(7월 3일부터) 제 3대대장 소령 하병래 57mm대전차포중대장 대위 김찬호 중위 최면호(6월 26일부터) 제 21연대장 중령 김용배 제 1대대장 소령 박서권 제 2대대장 소령 조규영 대위 최취성(6월 29일부터) 제 3대대장 소령 이창률 57mm대전차포중대장 중위 서봉교 지원부대 제 18포병대대장(대리) 대위 이남구 소령 장경석 야전공병대대장(대리) 대위 정원하 대위 김묵 *적군 제 2군단장 소장 김광협 제 5사단장 소장 마상철(제 10, 11, 12연대 기간) 제 766부대 장 총좌 오진우 제 549부대
3. 강릉지구 포병전투의 진행과정 사천 초등학교와 그 서쪽도로 건너편 밤나무 밭에 포진한 제 18야전포병대대(대대장 소령 장경석(張庚石)0)는 적이 주저항선까지 쇄도한 후에는 사격을 통제할 여유가 없었다. 그래서 포 단위로 사격을 계속하게 되었다. 이때 중대장의 명령은 한결같이 “각포! 계속 쏴!”라는 한마디뿐 이었다. 그러한 필사적인 포병의 저항은 주저항선을 돌파한 적의 진출을 지연시키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하게 되었고, 주저항선에서 철수한 병력이 사천선에 저지진지를 편성할 시간적 여유를 가질 수 있게 하였다. 그러나 보병의 엄호를 받을 수 없는 상황에서 지원사격에만 열중하던 포병 제 1중대는 좌측방으로 침투한 적을 영거리 사격으로 맞서다가 급기야는 진내에서 백병전을 펼치게 되었다. 제 1중대 장병들은 소총, 야전삽, 곡괭이 등을 닥치는 대로 손에 잡고 적과 맞붙어 싸운 끝에 적을 격멸하고야 말았다. 포병 제 1중대는 계속해서 밀려오는 적을 포격하면서 포병 제 2중대의 엄호 하에 철수를 개시하였지만 포 2문은 폐쇄기만 분해 제거한 채 포기하지 않을 수 없었다. 바로 그 무렵 제 21연대 3대대가 현지에 증원되어 엄호함으로써 제 18야전포병대대(-)는 오죽헌(烏竹軒) 부근으로 철수하여 다시 화력지원을 계속하게 되었다.
4. 강릉지구 포병전투의 결과 강릉지구 전투에서 포병의 필사적인 저항으로 주저항선을 돌파한 적의 진출을 지연시켰을 뿐만 아니라 철수한 아군 병력이 사천선에 저지진지를 편성할 시간적 여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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