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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설일 : 2004/12/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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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 표 제 목  
작 성 자 전쟁기념관
감 수 자 전쟁기념관
발 행 일 2004/10/18
갱 신 일 2004/07/15
요 약 정 보
 
● 전투시기 : 1950.6.26
● 전투지역 : 경기도 동두천
● 주요지휘관 : 유재흥 준장, 함준호 대령
● 참고문헌 : 한국전쟁사(국방부), 한국전쟁사(전쟁기념사업회), 38도선 초기전투(국방부 전사편찬위원회)
상 세 설 명
 

1. 동두천지구 전투의 개요

  본 전투는 1950년 6월 26일, 한국전쟁 발발 당시에 서울 북쪽 17km의 의정부 정면에서 유재흥 준장이 지휘하는 제 7사단과 이형근 준장이 지휘하는 제 2사단이 북괴 제 1군단(군단장 중장 김웅) 예하의 2개 사단과 1개 기갑여단으로 구성된 공격집단의 침공을 맞아, 이를 격멸코자 한 방어전이다.
그 경과의 개요를 보면, 벽두에 제 7사단이 포천과 동두천 부근에서 서전을 치른 데 이어, 대전에서 증원한 제 2사단이 의정부 부근에서 격돌하게 되는 바, 바로 이 지역은 수도 서울의 관문과도 같아 피아간에 주력으로써 대결하게 되었던 것이다.
특히 이 지역은 경원 본도인 3번 도로를 비롯하여 동측의 43번과 서측의 316번이 모두 양호한 노면에 열을 지은 듯 남북으로 뻗힌 데다 광천산맥과 천보산맥이 종벽을 이루어, 방어하는 쪽은 횡적연계와 종심배치에 불리한 데 비하여 공격하는 쪽은 기계화 부대의 운영과 종격돌입이 용이하였다.


2. 동두천지구 전투의 주요 지휘관

*아군          제 7사단장                     준장  유재흥(6월26일 14:00부로 의정부지구 전투사령관)
                  제 1연대장                     대령    함준호
                  제 1대대장                     중령    한태원
                  제 2대대장                     소령    이의명
                  제 3대대장                     소령    김황목
                  제 9연대장                     중령    윤춘근
                  제 1대대장                     소령    류환박
                  제 2대대장                     소령    전순기
                  제 3대대장                     소령    이철원
                  제 5포병대대장               소령    이규삼
          배속부대(수도경비사 예하)
                  제 3연대장                     중령    이상근
                  제 1대대장                     소령    임백진
                  제 2대대장                     소령    박남표
                  제 3대대장                     소령    김붕상
                  제 18연대장                   중령    임충식
                  제 2대대장                     소령    장춘권
                  제 3대대장                     소령    안민일
                  보국대대 제 2중대장        중위    박창암
                  기갑연대 장갑차 1개소대
                  포병학교 대전차포 2개중대
                  제 2사단장                     준장    이형근
                  제 5연대장(대리)            중령    박기성
                  제 1대대장                     소령    이정도
                  제 2대대장                     소령    차갑준
                  제 16연대장                    대령    문용채
                  제 1대대장                     중령    유의준
                  제 2대대장                     중령    김 헌
          배속부대
                  제 25연대장                   중령    김병휘
                  제 2대대장(대리)            대위    나희필
                  제 3대대장                     소령    고동석
                  포병학교 제 2교도대장    소령    김풍익
                  육군사령학교장              준장    이준식
                  생도대대장                    중령    조 암
          배속부대
                  서울시경 전투경찰대대
          인접부대
               우 인접 : 제 6사단장         대령    김종오
               좌 인접 : 제 1사단장         대령    백선엽

*북한군       제 1군단장                    중장    김웅
                  제 3사단장                    소장    이영호
                  제 7연대장                    대좌    김창봉
                  제 8연대장                    중좌    김병종
                  제 9연대장                    대좌    김만익
                  포병연대장                   대좌    안백성
                  제 4사단장                    소장    이권무
                  제 5연대장                    대좌    최인덕
                  제 16연대장                  대좌    박승희
                  제 18연대장                  대좌    김희준
                  제 105기갑여단장          소장    유경수
                  제 107, 109 전차연대기간


3. 동두천지구 전투의 진행과정

  적의 제 4사단(사단장 소장 이권무(李權武))은 초성리(哨城里), 양원리(兩遠里), 적암(積岩) 일대에 맹렬한 공격준비사격을 집중한 후 전곡-동두천간 3번 도로에 보.전 협동부대로 편성된 부공을 투입하고 그 서쪽의 적암-봉암리(鳳岩里) 접근로에 조공을 투입하여 병진공격을 개시하였다.
  적은 38도 분계선 일대의 아군진지가 거의 무개호이며 배치된 병력도 1개 초소 당 분대나 소대규모인 것을 지상관측으로 확인하고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단 내의 가용한 모든 화력을 총동원하여 30여 분간이나 3번 도로와 그 주변을 맹타하였다. 다시 말하면 포격으로 인한 도로파괴가 그들 공격부대의 기동에 제한이 된다는 것을 전혀 고려하지 않은 포격이었다.
  이는 당시 북한군의 정보수집능력이 매우 낮은 수준이었음을 입증해 주는 전투행동이었으며, 표적의 성질과 기동로의 상태 및 적정을 감안하지 않고 계획된 공격준비사격을 기계적으로 실시한 사실은 소련 군사고문단에 의해 공격명령이 작성되었음을 시사해 주는 것이었다.
  이때 의정부에 전투력의 대부분을 주둔시키고 있던 제7사단은 당황하지 않을 수 없었다. 외출과 외박자의 비상소집, 출동준비, 수송장비의 징발, 철도수송을 위한 협조 등 혼란의 와중에서 아군은 점차 침착하게 긴박한 사태를 수습해 나갔다.
  이러한 가운데 제 1연대(연대장 대령 함준호(咸俊鎬))는 비상출동대기부대인 제 3중대를 비상발령과 동시에 초성리 남쪽 176고지로 진출시켰다. 이곳에서 제 3중대는 전차 2대를 앞세우고 전술행군종대로 남하중인 1개 대대규모의 적을 기습하여 격퇴시키고 소요산에 위치하고 있던 제 2대대장(소령 이의명(李義明))의 지휘 하에 들어갔다.
  이때부터 소요산에서는 밀고 밀리는 치열한 육박전이 펼쳐졌으며 제 2대대는 11시가 넘도록 소요산진지를 사수하고 있었다. 이처럼 소요산에서 아군이 넓은 방어지대를 지탱할 수 있었던 원동력은 대대장 이하 전장병들이 불타는 투지와 적의 강력한 포화에도 유선통신망이 절단되지 않아 지휘체계가 유지되었기 때문이었다고 한다.
  제 2대대가 소요산에서 고군분투하는 동안 제 1연대는 제 1대대를 마차산에 투입하고 뒤를 이어 제 3대대(대대장 소령 김황목(金煌穆))를 봉암리에 배치하였다. 그러나 제 1대대가 마차산의 방어진지를 점령하였을 무렵에는 적이 이미 이 고지를 우회하여 간파리(干坡里)방향으로 남하 중에 있었다. 따라서 제 1대대는 마차산 정상에서 소요산의 교전상황을 구경하는 처지가 되었으나 대대를 지휘하던 김봉룡(金鳳龍) 대위는 상황변화에 따른 조치를 취하지 않고 다만 연대에서 어떠한 명령이 하달되기만을 기다리고 있었다.
  또한 제 3대대 지역에도 적이 출현하지 않았으므로 제 1연대는 그와 같은 긴박한 상황 하에서 2개 대대를 유휴병력으로 대기시킨 채 시간만 허송한 결과가 되었다.
  한편 제 1연대를 직접 지원하던 제 5야전포병대대 제 2중대는 주저항선 남쪽 보산리(保山里) 부근에 준비된 진지를 점령한 지 얼마 후에 밀집대형으로 남하하는 적의 1개 대대를 집중포격하여 대부분을 격멸하는 수훈을 세웠다. 그로부터 몇 시간이 지난 후 패주했던 적은 전차를 앞세우고 공격을 재개하였다. 이때 제 1연대 57mm 전차포중대장은 창말고개(동두천 북쪽 2km 지점)에서 선두 전차 2대의 측면을 사격하여 모두 파괴하였다. 이에 당황한 적은 다시 초성리 쪽으로 철수해 버렸다.
  이러한 승리의 쾌보가 육군본부와 국방부를 거쳐 방송되는 과정에서 국군의 반격이 개시되었다고 비약되기도 하였다. 그러나 이 무렵 제 1연대는 탄약이 떨어져 재보급을 애타게 기다리고 있었으나 보급사정이 풀릴 기미는 보이지 않았다.
  한편 적 제 4사단은 이날 15:00를 전후하여 제 107전차연대를 선봉에 내세우고 동두천을 맹공격하기 시작하였다. 이와 맞선 제 2대대는 10시간 동안이나 힘겨운 싸움을 계속하였으나 마침내 동두천으로 철수하게 되었다.
  적은 아군의 주저항선을 돌파한 여세를 몰아 일몰과 더불어 동두천시내로 진입하였다. 아군은 어둠 속에서 시가전을 펼쳤으나 역부족하여 덕정으로 철수하여 집결하게 되었다. 그러나 이때 마차산의 제 1대대는 유, 무선 통신의 두절로 철수명령이 전달되지 않았다.


4. 동두천지구 전투의 결과

  포천-동두천-의정부 전선이 무너진 뒤로 그 파급영향은 거의 전 전선에 미치게 되었다. 그 가운데서도 특히 좌 인접인 제 1사단(사단장 대령 백선엽)은 아직 임진강 방어진을 사수하고 있는데, 동측방이 폭로되어 그 위협으로 말미암아 철퇴를 강요당하는 상황에 놓이고, 태릉 정면에서도 선도대대가 적선 후방에 위치케 되는가 하면 춘천의 제 6사단과 강릉의 제 8사단까지도 수도 서울의 위기에 따른 전술적 및 심리적인 충격으로 작전지도에 혼미를 거듭하게 되었다.
  이에 반하여 적은 서울 탈환을 제1목표로 삼아 의정부 지역의 전과확대를 획책하는 한편 일부의 병력을 27일에 벌써 김포반도로 상륙시켜 서측방에서 위협을 가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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