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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설일 : 2004/12/07
 

고구려(高句麗)

관련 항목 : 남북국시대, 삼국시대

세부항목

고구려
고구려(성립과 발전) 1
고구려(성립과 발전) 2
고구려(제도)
고구려(문화)
고구려(연구사)
고구려(참고문헌)

[개관]

삼국 시대의 고대 국가 중의 하나. 서기 전후 무렵 성립되어 668년에 멸망하였다. ‘고구려’의 ‘구려’는 고구려어의 성(城)·읍·골(谷,洞) 등을 의미하는 ‘홀(忽,Khor)’·‘골 (Kor)’·‘구루(溝鷺, Kuru)’ 등의 음을 표기한 데에서 유래하였다. 고(高)는 크다는 뜻의 한자어로 이에 덧붙여진 것으로 보인다. 즉 ‘큰 고을’ 또는 ‘큰 성’이란 뜻으로 쓰인 것 같다.

6세기 이후 내륙아시아 유목민들은 고구려를 맥구려(貊句麗)라고 불러 이를 ‘매크리’ 또는 ‘무크리’라고 기술했는데, 이는 고구려라는 국호의 어간이 ‘구려’였음을 말해준다. 한편 5세기 이후 국내외에서는 고구려를 줄여 ‘고려’라고 하기도 했다. 고구려를 세운 족속은 압록강 중류 유역에 거주했던 맥(貊)족이었다. 이들의 기원은 북중국이나 서부 만주 지역에서 동으로 이주해 온 족속이라는 설이 일찍부터 제기되어 왔으나, 뚜렷한 고고학적 근거는 없다.

중국 고대의 선진(先秦)문헌에서 맥족은 특정한 족속을 지칭한다기보다 북방 종족에 대한 일반적인 명칭이었다. 고구려를 세운 맥족의 기원은 그들이 남긴 무덤인 적석총을 통해 검토해 볼 수 있다. 압록강 중류 지역의 적석총의 기원은 기원전 5-4세기까지 거슬러 올라가나, 그 이전은 어떠한지 현재로선 불분명하다. 고구려가 형성되는 과정에서 부여 방면에서 이주해 온 일부 예(濊)족이 융합되어 들어왔다. 이어 고구려의 성장과 함께 인근의 여러 족속들이 흡수되어 점차 상호 융합을 거처 고구려인이 형성되었다.

5세기 이후 고구려의 영역은 북으로는 북류 송화강 유역을 아울렀고 남으로는 한강 유역과 경상북도 북부지역을 포괄하였다. 서로는 요하 서쪽에 미쳤으며, 동으로는 오늘날의 연변 지역에 달하였다. 한강 유역을 제외한 대부분의 지역은 고구려 멸망기까지 유지되었다. 고구려 멸망 후 고구려인들 중 일부는 당나라로 끌려갔고 일부는 몽고 고원으로 흘러갔으며, 일부는 신라에 합쳐졌다. 또 다른 일부는 발해국의 중심 세력이 되었으며, 그 뒤 10세기 초 발해가 멸망한 후 다시 그 일부가 고려에 합류해 중세 한국인의 한 부분이 되었다.

<노태돈>

출전 : [디지털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동방미디어, 2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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