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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제의 2대 왕으로서 시조 온조왕(溫祚王;재위BC18-AD28년)의 원자(元子;큰아들)로서 서기 10년(온조왕 28)에 태자(太子)로 책봉되었다가 온조왕이 죽자 그 뒤를 이어 즉위하였다. (서기28년) 29년 정월에 시조 동명묘(東明廟)에 배알하였다. 2월에 남쪽 제단[南壇]에서 천지에 제사지냈다. 30년 10월에 동부의 홀우(屹于)가 마수산(馬首山) 서쪽에서 말갈(靺鞨)과 싸워 크게 이겼다. 왕이 기뻐하며 홀우에게 말 10필과 벼 5백 석을 상으로 주었다. 31년 8월에 고목성(高木城)의 곤우(昆優)가 말갈과 싸워 크게 이기고 적병 2백여 명을 죽였다. 9월에 왕이 횡악(橫岳) 아래에서 사냥을 했는데, 한쌍의 사슴을 연달아 맞혀 모든 사람들이 감탄하였다. 33년 정월에 맏아들 기루(己婁; 뒤에 기루왕)를 태자로 삼고, 크게 사면하였다. 2월에 나라 남쪽의 주·군(州郡)에 영을 내려 처음으로 논[稻田]을 만들게 하였다. 34년 우보(右輔) 해루(解婁)가 90세로 죽어 동부(東部) 흘우(屹于)를 우보로 삼았다. 9월 말갈군에게 마수성(馬首城)이 함락되었다. 10월 말갈군이 병산(甁山) 책을 습격하였다. 37년 10월에 우보 흘우를 좌보(左輔)로 삼고, 북부의 진회(眞會)를 우보로 삼았다. 11월에 지진이 일어났는데 소리가 우뢰와 같았다. 38년 전국적으로 흉년이 들자 술의 양조(釀造)를 금지하였고, 나라의 동부(東部)와 서부(西部)를 순시하였다. 여러 차례 침입해온 북방의 말갈족(靺鞨族)을 격퇴하였다. 48년 2월에 궁중의 큰 홰나무[槐樹]가 저절로 말랐다. 3월에 좌보 흘우(屹于)가 죽으니[卒] 왕이 슬피 곡하였다. 55년 봄과 여름에 가물었다. 죄수를 살펴 사형할 죄[死罪]도 사면하였다. 8월에 말갈이 북쪽 변경에 쳐들어 왔다. 56년 우곡성(牛谷城)을 쌓아서 말갈족의 침입에 대비하였다. 한편 신라와도 자주 충돌하였는데, 63년 10월, 왕은 낭자곡성(娘子谷城; 오늘날의 청주)까지 국토를 넓히고 신라에 사신을 보내어 만나기를 청했지만, 신라가 거절하였다. 64년 왕은 군사를 보내 신라의 와산성(蛙山城)을 공격하였으나 이기지 못하자, 군사를 옮겨 구양성(狗壤城)을 공격하였다. 신라가 기병 2천 명을 일으켜 맞아 쳐서 패주시켰다. 66년 신라의 와산성(蛙山城)을 점령하는 등 영토를 넓혔다. 70년 군사를 보내 신라를 쳤다. 73년 5월 그믐 무오에 일식이 있었다. 74년 8월 군사를 내어 신라를 침략하였다. 75년 10월에 또 와산성(蛙山城)을 공격하여 함락시켰다. 76년 9월 9월에 와산성이 신라에게 회복되었다. 77년 9월, 왕이 세상을 떠났다. 맏아들 기루(己婁)가 왕이 되었다. <두산대백과사전>참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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