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백제 11대 왕으로서 제6대 구수왕(仇首王;재위214-234년)의 둘째 아들이다. 제10대 분서왕(汾西王;재위298-304년)이 죽자 그의 아들이 아직 어려서 비류가 신민(臣民)의 추대를 받아 304년 즉위하였다. 성품이 너그럽고 인자하였으며, 힘이 세어 활을 잘 쏘았다. 또, 오랫동안 민간에서 생활하였으므로 서민의 실정을 잘 알아 선정을 베풀었다. 308년 정월 초하루 병자에 일식이 있었다. 312년 2월 신하를 보내어 백성의 질고(疾苦)를 살피고, 홀아비·과부·고아, 그리고 늙어서 자식없이 외롭게 지내는 자를 도와주었다. 그 중에서도 특히 자활할 수 없는 자에게는 곡식을 매인당 3섬씩 주었다. 4월에 동명왕의 사당에 제사하고, 해구(解仇)에게 병관(兵官)좌평의 일을 맡겼다. 313년 정월에 남쪽 교외[南郊]에서 천지에 제사지냈는 데 왕이 제물로 쓸 짐승을 친히 베었다. 316년 봄에 가물었다. 큰 별이 서쪽으로 흘러갔다. 4월에 서울[王都]의 우물물이 넘치더니 검은 용이 그 속에서 나타났다. 320년 8월, 궁성 서쪽에 활 쏘는 사대(射臺)를 짓고 매월 초하루와 보름에 활 쏘는 연습을 하였다. 321년 정월에 왕이 이복 동생 우복(優福)을 내신좌평(內臣佐平)으로 삼았다. 남쪽 지방에 메뚜기 떼가 나타나 곡식을 헤쳤다. 7월에 금성[太白]이 낮에 나타났다. 나라 남쪽에 누리[;우박의 옛말]가 곡식을 해쳤다. 325년 10월에 하늘에서 소리가 들렸는데 풍랑(風浪)이 서로 부딪치는 것과 같았다. 11월에 왕이 구원(狗原) 북쪽에서 사냥하여 손수 사슴을 쏘아 맞혔다. 327년 7월에 붉은 까마귀와 같은 구름이 해를 끼고 있었다. 9월 내신좌평(內臣佐平)으로 있던 그의 이모제(異母弟) 우복(優福)이 북한산성을 근거로 반란을 일으키자 이를 토벌하였다. 330년 김제 벽골제를 완공하였다. 331년 봄과 여름에 크게 가물어서 풀과 나무가 마르고 강물이 말랐다. 7월에 이르러서야 비가 왔다. 이 해에 기근이 들어 사람들이 서로 잡아먹었다. 333년 5월에 별이 떨어졌다. 왕궁에 불이 나서 민가까지 연달아 태웠다. 7월에 궁실을 수리하였다. 진의(眞義)를 내신좌평으로 삼았다. 12월에 우뢰가 쳤다. 335년 10월 초하루 을미에 일식이 있었다. 336년 정월 신사에 살별[彗星;혜성의 옛말]이 규(奎) [별자리]에 나타났다. 337년에는 2월에 신라가 사신을 보내 와서 예방하였다. 344년 10월, 왕이 세상을 떠났다. 재위 41년 만에 죽자 분서왕의 아들인 계왕(契王)이 왕위를 계승했으나 곧 사망하고, 비류왕의 둘째 아들인 근초고왕(近肖古王)이 계왕에 이어 즉위했다. 근초고왕은 초고왕과의 계승관계를 분명히 하기 위해 초고왕에 근(近)자를 관칭했다. 이로써 초고왕계는 왕위계승에서 고이왕계를 완전히 배제할 수 있었으며, 이를 기반으로 왕권을 강화할 수 있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