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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설일 : 2004/12/07
 

근초고왕(近肖古王),백제 제왕 13대

2009.07.04 15:03 | 백제사 발자취 | 하늘

http://kr.blog.yahoo.com/ppis4988/28199 주소복사

백제 13대 왕으로서 일본의 《고사기》에는 ‘조고왕(照古王)’으로, 《일본서기》에는 ‘초고왕(肖古王)’으로 표기되어 있다. 비류왕(比流王; 재위304-334년)의 둘째아들이다. 고이왕 계의 후손인 10대 분서왕(汾西王;재위298-304년)의 맏아들인 계왕(;재위344-346년)이 재위 3년 만인 346년에 죽으면서 그 뒤를 이어 즉위하였다. 체구와 용모가 남달리 잘생겼으며, 세상을 널리 살필 줄 알았다. 

  347년 정월, 하늘과 땅의 신에게 제사하였다. 진정(眞淨)을 조정 좌평으로 삼았다. 진정은 왕후의 친척으로 성품이 사납고 어질지 못하여 일을 까다롭게 처리했으며, 세력을 믿고 일을 제 마음대로 처리하니 백성들이 모두 그를 미워하였다.

  366년 3월에 사신을 신라에 보내 예방하였다.

  368년 3월 초하루 정사에 일식이 있었다. 신라에 사신을 보내고, 좋은 말 두 필을 주었다. 

  369년경 마한(馬韓)과 대방(帶方)을 병합했다. 9월에 고구려 왕 사유(斯由;고국원왕의 이름임)가 보병과 기병 2만 명을 거느리고 치양(雉壤)에 와서 진을 치고는 군사를 나누어 민가를 약탈하였다. 왕이 태자[;뒤에 근구수왕]를 보내 군사를 [거느리고] 지름길로 치양에 이르러 고구려 군사를 급히 쳐서 깨뜨리고 5천여 명을 죽이거나 사로잡았는데, 그 사로잡은 적[虜獲]들은 장수와 군사들에게 나누어주었다. 11월에 한수(漢水) 남쪽에서 크게 사열하였는 데 깃발은 모두 누른 색[黃色]을 사용하였다.

  371년 국왕이 친히 태자를  이끌고 3만의 정예병을 이끌고 고구려 군사를 대동강(大同江)에서 무찌르고 평양성(平壤城)을 점령하여 고국원왕(故國原王)을 전사시켰다. 이 전투를 승리할 수 있었던 것은 백제 사람으로 왕의 말의 말굽을 상하게 한 죄를 짓고 고구려로 도망갔다가 다시 귀순해 온 사기(斯紀)의 군사기밀 제보로 고구려군을 대파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즉, 사기의 제보에 따라 고구려군의 허실을 파악한 뒤 고구려군 제일의 정예인 적기부대(赤旗部隊)를 공격하여 크게 격파하였다. 승세를 잡아 패주하는 고구려군을 추격하여 수곡성(水谷城: 지금의 황해도 신계)까지 진군한 뒤, 돌을 쌓아 경계를 표시하고서 회군하였다. 이때 더 북진하려 하자 서북장군 막고해(莫古解)가 “만족할 줄 알면 욕되지 않고, 그칠 줄 알면 위태롭지 않다”는 노자의 《도덕경 道德經》의 구절을 인용하면서 만류하였다. 이로써 백제는 지금의 경기, 충청, 전라도의 전부와 강원, 황해도의 일부를 차지하는 강력한 고대국가(古代國家)의 기반을 마련하게 되었다. 이 무렵 한산(漢山: 서울)으로 천도하였다.

  372년 동진(東晋)에 조공(朝貢)을 바쳤으며 영동장군영낙랑태수(領東將軍領樂浪太守)에 책봉되기도 하였다. 그해 7월 지진이 일어났다.

  373년 2월에 사신을 진나라에 보내 조공하였다. 가을 7월에 청목령(靑木嶺)에 성을 쌓았다. 독산성(禿山城)의 성주가 군사 3백 명을 이끌고 신라로 달아났다. 

  375년 7월에 고구려가 북쪽의 수곡성(水谷城)을 쳐서 빼앗았다. 왕이 장수를 보내어 막게 했지만 이기지 못하였다. 왕은 군사를 크게 일으켜 보복하려 했지만 흉년이 들어 할 수 없었다.  박사(博士) 고흥(高興)이 서기(書記)를 만들었다. 11월에 왕이 죽었다. 그 뒤를 이어 태자가  근구수왕이 되었다.

  그리고 남조문화(南朝文化)를 수입하여 일본에 전하였다. 아직기(阿直岐), 왕인(王仁)을 일본에 파견해서 학문을 전파하는 등 외교적 수완도 발휘하였다. 또 박사(博士) 고흥(高興)에게 백제의 국사 《서기(書記)》를 쓰게 하였다. 그의 여러 차례에 걸친 영토 확장으로 백제의 왕권(王權)은 점차 전제화(專制化)되었으며, 그 결과 부족연맹의 세력을 누르고 부자상속(父子相續)에 의한 왕위계승이 시작되었다.

  뿐만 아니라 근초고왕은 해상무역에도 힘을 기울여 요서(遼西)지방에 무역기지로서 백제군(百濟郡)을 설치하였고, 또 일본열도에도 진출하여 한반도를 중심으로 중국과 일본을 연결하는 고대상업의 중심부를 이룩하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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