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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제 14대 왕으로서 근초고왕(近肖古王;재위346-375년)의 아들이다. 후비(后妃)는 아이부인(阿爾夫人)이며, 제15대 침류왕(枕流王)은 아이부인의 아들이다. 이름은 《삼국사기》에 수(須), 《성씨록》에는 귀수(貴首) 또는 근귀수(近貴首), 그리고 《속일본기(續日本紀)》에는 귀류(貴流) ·구소(久素)로 되어 있다. 태자(太子) 때인 369년 고구려 고국원왕(故國原王)의 침입을 받자 부왕의 명을 따라 반걸양(半乞壤: 지금의 황해도 배천?)에서 싸워 이들을 격퇴하고 추격해 수곡성(水谷城: 新溪)까지 영토를 넓혔다. 이 전투를 승리할 수 있었던 것은 백제 사람으로 왕의 말의 말굽을 상하게 한 죄를 짓고 고구려로 도망갔다가 다시 귀순해 온 사기(斯紀)의 군사기밀 제보로 고구려군을 대파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즉, 사기의 제보에 따라 고구려군의 허실을 파악한 뒤 고구려군 제일의 정예인 적기부대(赤旗部隊)를 공격하여 크게 격파하였다. 승세를 잡아 패주하는 고구려군을 추격하여 수곡성(水谷城: 지금의 황해도 신계)까지 진군한 뒤, 돌을 쌓아 경계를 표시하고서 회군하였다. 이때 더 북진하려 하자 서북장군 막고해(莫古解)가 “만족할 줄 알면 욕되지 않고, 그칠 줄 알면 위태롭지 않다”는 노자의 《도덕경 道德經》의 구절을 인용하면서 만류하였다. 376년 왕의 장인 진고도(眞高道)를 내신좌평(內臣佐平)으로 삼아 정사(政事)를 맡겼다. 11월에 고구려가 북쪽 변경에 쳐들어 왔다. 377년 10월 군사 3만으로 고구려의 평양성을 침공하는 등 국력을 신장하였다. 379년 3월에 사신을 진(晉)나라에 보내 조공하였는데 그 사신이 바다에서 모진 바람을 만나 도달하지 못하고 돌아왔다. 4월에 하루 종일 흙이 비처럼 내렸다[雨土]. 380년 전염병이 크게 번졌다. 여름 5월에 땅이 갈라져 깊이 다섯 장, 너비 세 장이나 되었는데 삼일만에 합쳐졌다. 382년 봄에 비가 오지 않았는데 6월까지 계속되었다. 백성들이 굶주려 자식을 파는 자까지 있게 되었으므로 왕이 나라의 곡식[官穀]을 내어 그것을 물러 주었다[贖之]. 384년 2월에 해 무리[暈;해나 달의 둘레에 생긴 둥근 테 모양의 빛을 말함]가 세 겹으로 둘러졌다. 궁중의 큰 나무가 저절로 뽑혔다. 4월에 왕이 죽었다. 그 뒤 아들이 침류왕이 되었다. <두산대백과사전>참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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