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 조 | 널길[羨道]을 따라 들어가면 사각형의 제1실과, 통로로 연결된 구형(矩形)의 제2·3실이 있다. ◈ 높이 4.4m. 밑부분의 지름 20m 널길 입구에서 제1실 맞은편 벽까지는 약 7m, 제1실 남쪽 벽에서 제2실 북쪽 벽까지는 약 6m, 제2실과 제3실의 길이는 약 6.5m이다. 널길[羨道]을 따라 들어가면 사각형의 제1실과, 통로로 연결된 구형(矩形)의 제2·3실이 있다. 널길 입구에서 제1실 맞은편 벽까지는 약 7 m, 제1실 남쪽 벽에서 제2실 북쪽 벽까지는 약 6 m, 제2실과 제3실의 길이는 약 6.5 m이다. |
벽 화 | 무덤 밑부분의 지름 20 m, 높이 4.4 m. 회칠을 한 위에 그린 벽화는 무용총·각저총보다 선명치 못하고 갈색 황갈색 붉은 색이 기조를 이루고 있어 전체적으로 무겁고 어두운 느낌을 준다. 그러나 그림의 내용은 행렬도, 기마무사 전투도, 매사냥 그림, 갑옷 입은 무사 그림, 고구려 성곽도, 각종 이상한 짐승 그림 등으로, 집안의 어느 고분보다 다양하고 아기자기하다. 널방은 돌로 쌓고 그 위에 회(灰)를 바르고 그림을 그렸는데, 회가 마르기 전에 그림을 그리는 프레스코 방법을 썼다. 회칠을 한 위에 그린 벽화는 무용총 각저총보다 선명치 못하고 갈색 황갈색 붉은 색이 기조를 이루고 있어 전체적으로 무겁고 어두운 느낌을 준다. 그러나 그림의 내용은 행렬도, 기마무사 전투도, 매사냥 그림, 갑옷 입은 무사 그림, 고구려 무사 그림, 고구려 성곽도, 각종 이상한 짐승 그림 등으로 어느 고분보다 다양하고 아기자기하다. 널방은 돌로 쌓고 그 위에 회(灰)를 바르고 그림을 그렸는데, 회가 마르기 전에 그림을 그리는 프레스코 방법을 썼다. 제1실 남벽에는 귀인 남녀 한 쌍이 앞뒤에 시종(侍從)을 거느리고 걸어가는 그림이 있다. 그 아래에는 말을 타고 사냥을 하는 그림이 있는데, 앞사람은 활을 당기고 뒷사람은 깎은 머리 위에 매를 앉히고 그 앞으로 날아가는 두 마리의 새를 쫓고 있다. 제2실 동면의 천장받침 1층과 4층에는 사신도(四神圖)가 있고, 서벽에 무사도(武士圖), 천장에 주악도(奏樂圖)가 있다. 제3실 동벽에는 들보 모양의 굄대를 양손으로 받쳐들고 목에는 뱀이 감긴 역사상(力士像)이 있는데, 이는 수호신으로서 위력을 과시하는 것이다. 남벽에는 뱀 그림도 있고 천장에는 사신도가 그려 있으며, 이것은 사신도의 초기 형태이다. 제1실 남벽에는 귀인 남녀 한쌍이 앞뒤에 시종(侍從)을 거느리고 걸어가는 그림이 있다. 그 아래에는 말을 타고 사냥을 하는 그림이 있는데, 앞사람은 활을 당기고 뒷사람은 깎은 머리 위에 매를 앉히고 그 앞으로 날아가는 두 마리의 새를 쫓고 있다. 제2실 동면의 천장받침 1층과 4층에는 사신도(四神圖)가 있고, 서벽에 무사도(武士圖), 천장에 주악도(奏樂圖)가 있다. 제3실 동벽에는 들보 모양의 굄대를 양손으로 받쳐들고 목에는 뱀이 감긴 역사상(力士像)이 있는데, 이는 수호신으로서 위력을 과시하는 것이다. 남벽에는 뱀 그림도 있고 천장에는 사신도가 그려 있으며, 이것은 사신도의 초기 형태이다. 삼실총에서 우선 주목되는 벽화는 제1실 남쪽벽의 행렬도이다. 무덤 주인공 부부와 시녀 등을 포함해 11명의 고구려 인들이 어디론가 나들이를 떠나는 듯한 모습을 담은 그림이다. 일행 모두가 신분과 성에 따라 서로 다른 복장을 하고 있어 고구려 복식사 연구에 가장 귀중한 자료를 제공한다. 제1실 남쪽 벽의 11명 행렬도. 고구려 고분 벽화를 통틀어 북한 수산리의 잡기도에 등장하는 인물 군상 다음으로 많은 남녀 인물들이 그려졌다. 행렬길에는 꼭 일산을 든 시녀가 다르는 것이 재미있다. 11명이 모두 제각각의 복장을 하고 있어 고구려 복식사 연구에 있어서 큰 보물의 역활을 한다. 삼실총에서 또 하나 유명한 그림 중 하나가 1실 북쪽 벽면에 그려진 기마무사 전투도이다. 자신은 물론 말에게까지 갑옷으로 무장을 시킨 두 명의 무사가 서로 창을 겨누며 쫓고 쫓기는 장면은 을지문덕이나 양만춘 장군의 풍모를 연상시킨다. 이들이 전투하는 앞쪽으로 지그재그형으로 축조된 고구려의 성곽이 그려져 있다. 한편 제2실의 서쪽 벽에는 투구를 쓰고 갑옷을 입었으며, 허리에 환두대도까지 찬 무사상이 그려져 있어 삼실총이 서기 5세기경 매우 지체높은 무인 귀족의 묘일 것이라는 추측을 뒷받침하고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