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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4=10,10은만수 만수는 완성이고, 1은 출발이다 만수를 위해서 완성을 위해서 매진하자 그리고 출발의 초심을 잃지말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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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설일 : 2004/12/07
 

6.10 만세운동 70주년 기념 (1996.6.10. 발행)

2009.06.21 21:29 | 우표속 역사 | 하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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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6.10 만세운동 70주년 기념 (1996.6.10. 발행)
 

- 6.10 만세운동 75주년 기념 (2001.6.10. 발행)

 

6·10 만세운동 []

1926년 6월 10일 조선의 마지막 국왕인 융희() 순종 황제의 인산일( 출상일)을 기하여 일어난 독립운동.

병인()만세운동이라고도 한다. 주동자는 연희전문의 이병립(), 박하균(), 경성대학이천진(), 천도교박내원(), 권동진(), 양재식(), 손재기(), 박내홍(), 백명천(), YMCA의 박두종(), 중앙고보의 이선호(), 이광호(), 이황희(), 사회주의 측의 권오설(), 김단야(), 이지탁(), 박민영(), 인쇄직공으로 민창식(), 이용재(), 김항준() 등이었다. 
권오설은 자금을 조달하였고, 박내원은 전단지 살포와 연락을 담당하였다. 양재식, 이용재, 백명천 등은 안국동 감고당() 민창식의 집에서 10만매의 전단지를 인쇄하였고, 태극기도 준비하였다. 전단의 내용은 우리의 교육은 우리들 손에 맡겨라, 일본 제국주의를 타파하라, 토지는 농민에게 돌리라, 8시간 노동제를 채택하라는 내용을 담았다. 그리고 3·1운동과 같은 독립운동을 일으키기 위해 시민들이 많이 모일 수 있는 황제 국장일을 거사일로 택하였다. 
조선 황제의 국장일을 맞아 일본정부와 조선총독부는 과거 3·1운동의 일을 거울삼아 매우 민감하게 경비에 대비하였다. 조선총독부 산하 전경찰과 일본군 5000여명이 경비에 투입되었다. 그러나 이날 오전 8시 30분경 황제의 상여가 종로 단성사 앞을 통과할 때 중앙고보생이 전단을 뿌리며 만세를 부르기 시작하였다. 이에 모든 민중이 호응하여 관수교, 황금정 3정목(3가), 훈련원, 동대문 동묘(), 청량리에 이르는 상여통과 예상 연도에서 독립만세를 불렀다. 만세운동은 그 후 전국으로 전파 확산되어, 순창, 군산(이상 전라북도), 정주( 평안북도), 홍성, 공주(이상 충청남도) 등지에서도 만세운동이 일어났다. 
사회주의 계열의 권오설, 박내원, 민창식 등은 상하이에 있는 여운형()과 연락하여, 전국적인 민족운동으로 확산시키고자 전단 10만 매를 인쇄하며 준비하다가, 일본 경찰에 사전에 발각되어 체포되고 말았다. 
 ‘6·10 만세운동’으로 서울에서 이병립, 박하균 등 200여명이 체포되었고, 전국적으로는 1000여 명이 동모자 또는 관련자로 체포, 투옥되었다. 이 만세운동은 3·1 독립운동만큼 전국적이지는 못했으나, 여전히 우리민족의 독립을 쟁취하기 위한 욕망이 내재되어 있음을 보여주는 민족운동이었다. /naver

 

6·10 만세운동은 3·1 운동을 잇는 전국적·전민중적인 항일운동으로, 사전에 치밀하게 준비되었다. 그러나 일제는 3·1운동의 전철을 밟지 않기 위하여 철저한 경계 태세를 갖추었고, 경성부에는 7000여 명의 육·해군을 집결시켰으며, 부산·인천에는 함대를 정박시켰다. 주동자는 사회주의계의 권오설, 김단야, 이지탁, 인쇄직공 민창식, 이용재, 연희전문이병립, 박하균, 중앙고보이광호, 경성대학이천진, 천도교박내원, 권동진 등으로, 이들은 10만장에 달하는 격문을 준비하고, 오전 8시 30분경 순종의 상여가 종로를 지날 때 일제히 만세를 부르고 격문을 살포, 수많은 사람들이 이에 호응했다.

격문의 내용은 "일본 제국주의 타도," "토지는 농민에게," "8시간 노동제 채택," "우리의 교육은 우리들 손에" 등이었다. 6월 10일 순종의 인산에 참가한 학생은 2만 4000여 명이었다. 군중의 호응으로 시위가 확대되었으나 조직 사이의 유대 결여와 민족진영의 조직약화, 노총계 사회주의계열의 사전체포 등으로 일본 경찰에 저지당하여 6·10 만세운동은 실패하였다.

이 만세운동은 곧 전국으로 번져, 고창, 원산, 개성, 홍성, 평양, 강경, 대구, 공주 등지에서 대규모의 만세시위운동이 일어났다. 이 사건으로 천여 명이 체포, 투옥되었으며, 제2차 고려공산청년회 책임비서 권오설을 비롯한 다수의 공산당원이 체포됨으로써 제2차 조선공산당이 무너지는 결과를 가져왔다. 또한 1927년 신간회·근우회·신정회 등의 조직과 1929년 광주학생운동에도 영향을 끼쳤다. /위키백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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