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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nak Tomb No. 3. (안악 3호분(安岳三號墳) | 개 요 | 황해도 안악군 용순면(龍順面) 유순리(兪順里)에 있는 고구려시대 벽화고분. 북한 국보 제28호. 북한의 지정 명칭은 ‘하무덤’이다. 1949년에 발굴 조사 357년(고국원왕 27) 널방[玄室] 안에 진(晉)나라 때 사경체(寫經體)로 쓴 묵서(墨書)가 있어 이 고분이 357년(고국원왕 27)에 조성된 한국 최고(最古)의 벽화고분임이 밝혀졌으며 고구려 미술의 아름다움을 발견할 수 있는 벽화이다. 앞방 서쪽 벽에는 앞서 말한 묵서가 있고, 남쪽에는 ‘전리(戰吏)’라는 붉은 글씨와 깃발을 든 7명의 인물이 그려져 있으며, 서쪽 옆방의 좌우 벽에는 각각 칼을 짚고 서 있는 한 사람씩의 그림과 그 위에 붉은 글씨로 ‘장하독(帳下督)’ 이라고 쓰여 있다. 남쪽 옆방 벽에는 이 무덤의 주인인 동수와 동수 부인이 시녀들을 거느리고 각각 가마 위에 앉아 있는 호화로운 그림이 있으며, 또한 이 동수묘에서는 절대연대를 알 수 있는 명문이 발견되었다. 이 명문에서 보인 “永和十三年”은 동진의 연호로서 서기 357년이며 낙랑 옛땅의 중국계 주민들이 해상교통을 통하여 강남의 동진과 연락을 가지고 동진의 연호를 쓰고 있음을 말하여주고 있다. 동수묘의 주인공인 동수는 326년(미천왕 27) 에 랴오둥에서 고구려로 귀투한 무장이며, 357년(고국원왕 27)에 죽어서 안악 유순리에 묻힌 것이다. 결국, 연대가 확실한 가장 오래된 고구려의 고분벽화인 동수묘는 랴오둥지방에서 넘어온 동수의 무덤이며 그것은 중국의 한.위진대의 벽화고분의 전통을 그대로 받아들인 것으로 고구려 영토 안에 세워진 최초의 중국계 벽화고분이라 할 수 있다. 그리고 묘실 평면·모줄임천장·돌기둥·벽화내용 등 여러 면에서 그뒤 고구려 벽화고분의 출발점이 되고 있는 것이며 고구려 벽화고분의 발생과정에서 중국벽화고분과 고구려벽화고분을 연결하는 과도기적 존재라 할 수 있다. | 구 조 | 높이 7m, 남북 길이 33m, 동서 길이 약 30m에 이르는 방대원형(方臺圓形)의 토분. 총면적 81m2에 달하는 널방 벽은 잘 연마한 석회암의 대판석(大板石)으로 구축하였고, 그 위에 직채(直彩)로 벽화가 그려져 있다. 이 무덤은 현무암과 석회암의 큰 판석으로 짜여진 돌방무덤. 앞방과 뒷방은 4개의 팔각돌기둥으로 구분되어 서로 투시할 수 있고, 주실 즉 뒷방은 동벽과 뒷벽의 안쪽에 판석벽과 돌기둥을 각각 세워 회랑부를 만들고 있다. 그리고 각 방의 천장은 네 귀에 각각 삼각형 돌을 얹어 천장 공간을 좁히기를 두 번 반복하고 그 위에 뚜껑돌을 얹는 모줄임천장으로 되어 있다. 이것은 우리나라에서 현재까지 알려진 가장 오래된 모줄임천장이다. 고분 내부에 들어서면 높이가 2.34 m나 되는 두 짝의 돌문이 있고, 돌문을 들어서면 앞방이 있고, 앞방 좌우에는 작은 옆방이 있으며, 앞방 안쪽에는 8각 돌기둥 3개를 사이에 두고 시신을 안치한 널방이 있다. 널방 동쪽과 북쪽에는 4각 기둥을 세워 복도를 설치하였다. 천장은 모두 굄식으로 짜올렸으며, 4각·8각의 돌기둥 위에는 주두(柱頭)가 있고 그 위에 첨차(遮)와 접시받침을 얹어 공포(包)를 만들었다. 총면적 81 m2에 달하는 널방 벽은 잘 연마한 석회암의 대판석(大板石)으로 구축하였고, 그 위에 직채(直彩)로 벽화가 그려져 있다. 즉 널방 복도에는 높이 2 m, 길이 6 m의 큰 판석에 250여 명의 기사(騎士)·보졸(步卒)의 대행렬도(大行列圖)가 있고, 앞방 동쪽에는 씨름도와 그 밑에 도끼를 들고 행진하는 무사들의 그림이 있다. 고분 내부에 들어서면 높이가 2.34m나 되는 두 짝의 돌문이 있고, 돌문을 들어서면 앞방이 있고, 앞방 좌우에는 작은 옆방이 있으며, 앞방 안쪽에는 8각 돌기둥 3개를 사이에 두고 시신을 안치한 널방이 있다. 널방 동쪽과 북쪽에는 4각 기둥을 세워 복도를 설치하였다. 천장은 모두 굄식으로 짜올렸으며, 4각 ·8각의 돌기둥 위에는 주두(柱頭)가 있고 그 위에 첨차(遮)와 접시받침을 얹어 공포(包)를 만들었다. 동수묘의 구조는 여러 점에서 당대의 중국묘 형식을 본받고 있다. 즉, 남북일렬로 여러 방을 배열하는 것이나 앞방 좌우에 옆방을 설치하는 것은 한 대의 벽돌무덤의 기본 설계방법이며, 또 옆으로 넓어진 앞방에 사각형의 주실을 달아 T 자형 평면을 만드는 것은 낙랑의 덧널무덤이나 벽돌무덤에서 흔히 보는 형식이다. 또, 큰 판석으로 묘실을 짜는 것은 랴오둥반도의 한대 묘에서 볼 수 있는 것이다. 이 동수묘에서 처음 보이는 고구려 고분의 특색처럼 되어 있는 모줄임천장도 산둥성 기남의 후한 대 돌무덤에 나타나 있고 팔각형 돌기둥도 이 기남묘에 있거니와 기둥 꼭대기에 두공을 얹어 천장석을 받들게 하고 있는 점이 똑같다. 모줄임천장은 원래 근동지방에서 일어난 수법이며, 그것이 중앙아시아를 거쳐 3세기에는 이미 중국본토로 들어와 있던 것이다. 고분벽화 자체도 한대에서 시행한 것이며, 특히 동수묘와 같은 고구려 전기 고분벽화에서 묘주들이 휘장을 친 방 안에 앉아 있는 모습으로 그려지고 있는 것도 랴오둥 지방의 고분들과 같다. 벽화 : 널길벽에 위병, 앞방의 동쪽 옆방에 부엌·도살실·우사·차고 등, 서쪽 옆방에 주인공 내외의 좌상, 앞방 남벽에 무악의장도와 묵서묘지, 뒷방 동벽·서벽에 각각 무악도, 회랑벽에 대행렬도가 그려져 있다. 결국 벽화내용은 무악대와 장송대에 둘러싸인 주실 앞에 주인 내외의 초상도를 모신 혼전과 하인들이 있는 부엌·우사·마구고 등을 두고 맨 앞은 위병이 지키는 설계이며, 이것은 왕·귀족·대관들의 생전주택을 재현시키고 있는 것이나 다름없는 것이다. 벽화는 벽의 면적 81㎡ , 천장의 면적 58㎡ 나 되는 넓은 널방에 가득차게 그려져 있다. 총면적 81m 2에 달하는 널방 벽은 잘 연마한 석회암의 대판석(大板石)으로 구축하였고, 그 위에 직채(直彩)로 벽화가 그려져 있다. 즉 널방 복도에는 높이 2m, 길이 6m의 큰 판석에 250여 명의 기사(騎士) ·보졸(步卒)의 대행렬도(大行列圖)가 있고, 앞방 동쪽에는 씨름도와 그 밑에 도끼를 들고 행진하는 무사들의 그림이 있다. 앞방 서쪽 벽에는 앞서 말한 묵서가 있고, 남쪽에는 ‘전리(戰吏)’라는 붉은 글씨와 깃발을 든 7명의 인물이 그려져 있으며, 서쪽 옆방의 좌우 벽에는 각각 칼을 짚고 서 있는 한 사람씩의 그림과 그 위에 붉은 글씨로 ‘장하독(帳下督)’이라고 쓰여 있다. 남쪽 옆방 벽에는 이 무덤의 주인인 동수와 동수 부인이 시녀들을 거느리고 각각 가마 위에 앉아 있는 호화로운 그림이 있으며, 이 밖에도 일상생활 ·기구 등 많은 벽화가 그려져 있다. | 출토유품 | 출토된 유품으로는 토기류와 철제창(鐵製槍) ·관정(棺釘) ·관재칠피(棺材漆皮) 등이 있으며 인골(人骨)도 있다. 동수는 전연(前燕)의 모용인(慕容人) 휘하의 부장(部將)으로, 336년 고구려에 투항한 사람이다. 그런데 묵서에 그가 낙랑 ·대방(帶方) ·현도(玄)의 태수(太守)로 적혀 있는 것은 근거 없는 기록이다. |  | Survey Map - 실측도 | |
 | Tomb Host(Women) - 여주인공(전실 서측실 남벽)
| 호화로운 장방의 좌상에 앉아 있는 왕비의 그림이다. 3명의 시녀등이 왕비의 시중을 들고 있다. 풍만한 얼굴과 눈초리가 약간 올라간 가느다란 눈매 등 개성적인 표정을 나타내고 있어 왕과 마찬가지로 개성적인 표정을 나타내고 있어 왕과 마찬가지로 부인의 특징을 표현하려는 화가의 노력을 찾아볼 수 있다. |

| Illustration of the Parade on the East Wall of the Passage- 행렬도(회랑 동벽) | 높이 2미터, 길이 10이터에 달하는 회랑의 ㄱ형 벽면에 도합 250명의 기병, 보병, 악사 등이 꽉 들어차게 그려진 웅장한 대행렬도이다. 이 행렬도는 벽화의 규모와 복잡하고 다채로운 내용 때문에 고구려 벽화 무덤 중 최대의 벽화이다. 벽화의 남쪽(마주보아서 오른쪽)은 제법 선명하지만 북쪽으로 갈수록 희미해지고 있으며 북쪽 끝에 이르러서는 인물과 의장구의 형체를 알아볼 수 있을 정도 유실되었다. 행렬도는 수레를 탄 왕(무덤 주인공)을 호위하는 중배와 그 앞을 가는 전배만을 그리고 있다. 행렬의 구성으로 보아 생략된 후배까지 합하면 500명 규모의 대행렬이었음을 쉬이 가늠할 수 있다. 행렬은 대체로 3줄이지만 주인공의 좌우는 7줄이다. 벽화는 행렬을 높은 곳에서 굽어보는 조감도식으로 그렸기에 인물들이 여러 겹으로 겹쳐 복잡한 화면구성을 이루고 있다. 당대의 회화기법에 비추어 보아도 매우 주목된다. 도판의 선두에는 홀을 든 기마인물이 서고 이어서 긴 깃발을 가진 기수들, 왕의 '어승마', 메는 북이나 메는 종을 치는 사람들이 끊임없이 나아간다. 그 좌우로는 창, 환도, 도끼, 활 등을 가진 보병등과 개마무사등이 정연히 행진하고 있다. 왕이 탄 수레의 뒤쪽에는 의장 기수, 시녀, 기마문관, 기마고취악대가 열을 이어 간다. 위풍 당당한 이 행렬도는 이조시대의 '능행도'나 '거동반차도'를 상기시키지만 그것에 비할 바 없이 율동적이고 자유로우며 생기발랄하다. 말 그대로 왕이 거느리고 있는 웅장한 대행렬에 상응한 벽화라고 해야할 것이다. |
 | Illustration of Grand March on the East Wall of the Passage- 행렬도 부분도(회랑 동벽) | 소 수레의 앉는 의자에 몸을 내맡겨서 위엄을 풍기고 있는 주인공의 옷차림은 전실 서쪽 곁간에 그려진 주인공 그림의 옷과 같다. 또한 수레를 끄는 황소의 뿔이 전실 동쪽 곁간의 외양간 그림과 같은 것이다. 소 수에의 앞에는 짧은 깃발을 든 기구들을 그렸다. 수레를 끄는 소의 바로 앞을 걸어가는 사람도 깃발을 들었는데 거기에는 검은색 바탕에 '성상변'이라는 붉은 글이 희미하게 보인다. '성왕' 혹은'성상'은 왕에 대한 최상의 존칭이다. '성상변'의 표식을 한 깃발은 무덤 주인공의 신분적 성격을 밝히는 매우 중요한 근거가 될 것이다. |
  
| Cart - 수레 | 고구려인들의 뛰어난 과학기술과 풍요로운 생활을 엿볼 수 있다. 현재 세계 7위권에 들어있는 자동차 산업은 2010년 경 세계 4위로 도약할 것으로 예상되며. 이는 고구려인들의 뛰어난 과학기술이 오늘날에 이르고 있음을 증명해주고 있음이다. |
  
| 부월수(전실 남벽 동쪽 구석 하단)
| 도끼를 든 무사의 그림인데 전실 동벽 하단에도 그려져 있다. 이들의 옷차림은 긴저고리에 바지를 입고 허리에는 띠를 매었다. 이것은 장하독 그림의 인물과 똑같은 것이다. 다만 옷깃, 옷자락, 소매끝에 붉은 천을 두른 점이 다르다. 또한 긴 옷고름이 달린 저고리를 입은 인물도 있어 조선에서 저고리에 옷고름을 다는 풍습이 오랜 역사를 가지고 있음을 시사해 주고 있다. 도끼는 당시 전투를 할 때에 중요한 공격무기였다. 회랑의 대행렬도에도 도끼를 든 대열이 왕의 행차를 호위하면서 행진하는 것을 찾아볼 수 있다. |
 
| Illustration of Subak(Soobahk) - a Sports Similar to Taekwondo - 수박도 | 수박(전실 동벽 상단) : 수박은 권법의 한 종류로서 주먹으로 상대방을 때려 눕히는 격투기이다. 이 그림은 다른 벽화에 비하여 예술적 과장이 풍부하고 회화적인 해학성이 풍기는 점에서 이채를 띠고 있다. 상무를 중요시하는 고구려에 있어서 수박은 대중들 속에서 널리 성행한 경기였음을 알 수 있다. 이와 같은 그림이 무용총(집안)에도 있다. |
  
| A Wall - 우물도 | 우물(전실 동쪽 곁간 북벽) : 지난 시기 조선의 농촌에서는 흔히 볼 수 있었던 전형적인 용두레 우물의 그림이다. 다양한 물항아리와 함께마소용의 구유도 볼 수 있는데 통나무를 파서 만든 것으로서 최근까지 일상생활에서 쓰이곤 했다. 우물가에 서 있는 올림머리의 여성 곁에는 '아광'이라는 붉은 글이 쓰여져 있다. |
  | Kitchen, Meat Storage, Garage - 부엌, 육고, 차고(전실 동쪽 곁간 동벽) | 차고(전실 동쪽 곁간 동벽) : 두대의 수레 중 왼쪽은 왕의 수레이다. 이것은 앉는 자리 위에 곡산개를 치고 사방이 트인 수레이다. 한편 오른쪽에 있는 왕비의 수레는 앞만 내다보게 되어 있고 그 밖의 부분은 들여다 보이지 않게 막고 있다. 왕비의 수레 옆에는 '독거'라는 붉은 글이 쓰여 있다. 또한 아랫단에는 앉는 자리 위에 곡산개를 세운 수레의 위부분이 그려져 있는데 퇴색이 심해서 뚜럿하지 않다. 이 수레들은 소가 끄는 수레로서 이것과 똑같은 것이 약수리 벽화 무덤의 행렬도에도 그려져 있다. |
 
| Kitchen - 부엌 | 이 벽화는 고구려의 생활 풍속을 전하는 풍부한 자료를 제공해 주고 있다.1600여년이 지난 지금도 아궁이의 불꽃이 선명하다 |
 | An Old Mill - 방앗간 | |
 | A Horn Player - 나팔수 | |
  | View of Inside - 실내모습 | 
| Lotus Flower on the Ceiling of the Ante Chamber / 전실 천정의 연꽃 벽화 | 천정 중심부에 붉은색으로 그려진 끝이 뾰족한 8엽겹꽃의 연꽃무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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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Hair Style- 머리모양 | 고구려복식사 연구에 귀중한 자료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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