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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설일 : 2004/12/07
 

준왕(準王)

  고조선의 왕으로 부왕(否王)의 아들이다. 준왕은 중국의 진(秦)나라 말기와 한(漢)나라 초기에 걸치는 시대에 재위(在位)하였다. BC 206년 중국의 통일제국 진(秦)이 멸망하고 혼란이 계속되다가 한(漢)에 의해 다시 통일이 이루어졌는데, 그 과정에서 많은 유이민이 파상적으로 랴오둥[療東]과 한반도에 유입되었다. 한(漢)이 중국을 통일한 뒤 건국과정에 적극 참여했던 노관(盧)은 이성(異姓) 제후 7명의 한 사람으로 연왕(燕王)에 봉해졌다. 그러나 곧 이성 제후에 대한 정치적 압박이 가해지면서 노관은 흉노(匈奴)로 망명했고, 연나라 지역은 한군(漢軍)에 의해 점령되어 혼란이 초래되었다. 이때 연나라의 부장이었던  위만(衛滿)은 자신이 거느리던 무리 1,000여 명을 이끌고 고조선에 망명했다. 그 시기는 BC 3세기말에서 2세기초로 추정된다.

  위만(衛滿)은 고조선의 준왕(準王)에게 번병(藩屛)이 되기를 청하여 고조선의 서쪽 변경을 수비하는 일을 맡았고, 준왕의 신임을 얻어서 박사(博士)에 임명되었으며 100리의 땅을 받는 한편, 규[圭:천자가 제후에게 주는 상원하방(上圓下方; 위는 둥글고 아래는 네모난)의 옥(玉)]도 하사받았다.

  그뒤 위만(衛滿)이 준왕을 몰아내려 하였다. 당시 고조선 사회는 철기문화가 전해져 생산력 수준이 향상되어 가진 자와 못 가진 자와의 대립이 꽤 진행되고 있었고 조정안에는 실력자들 사이에 암투가 벌어지고 있었다.

  위만(衛滿)은 자신의 세력이 커졌음을 믿고 준왕에게 사람을 보내어 한(漢)의 군사가 쳐들어오니 왕을 보호할 수 있게 해달라고 거짓 보고를 올렸다. 준왕은 이를 의심하지 않고 위만을 부르니 위만은 군사를 이끌고 와서 준왕을 쫓아 버리고 자신이 왕이 되었다(BC 194). 준왕은 바다로 달아나 진국(辰國)을 점령하고 한왕(韓王)이 되었다.

  한편, 이승휴(李承休)《제왕운기(帝王韻記)》·〈고려사〉·〈세종실록〉지리지·〈동국여지승람(東國輿地勝覽)〉 등에서는 그가 정착한 지역을 지금의 전라북도 익산으로 비정했으나, 충청남도 직산으로 보는 견해도 있다. 〈삼국지〉 위지 동이전에 따르면 3세기 무렵에는 그 후손이 끊어졌으나 삼한 지역에서 그의 제사를 받드는 사람이 있었다고 한다. 같은 책에 인용된 위략(魏略)에는 준왕의 아들과 친척 중 고조선에 남은 사람들은 한씨(韓氏) 성을 칭했고, 준왕은 한왕이 되었으나 고조선과 왕래하지 않았다고 전한다.

<두산대백과사전>참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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