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
|
|
|
|
|
상모리 소년 .
대통령 시절에 쓴 박정희의 수기 '나의 소년시절'에 나오는 다음 대 목은 여러 각도로
음미해볼 만한 것이다. 이것은 김종신(당시 공보비서 관)이 '급장시절에 참고가 될 만한
이야기'를 적어달라는 주문에 답한 글이다.
사진설명 : 나폴레옹이 열여섯살 소년으로 파리에서 사관학교에 다니고 있을 때의 스케치. 나폴레옹에 대한
그림으로는 최초의 것이다. 나폴레옹은 동료들이 자신을 코르시카 출신이라고 경멸하듯 말하면 강하게 반발했다.
그는 자신의 출신을 감추지 않고 오히려 자랑스럽게 생각했다고 한다.
'힘이 세고 말을 잘 들어먹지 않는 급우가 한 놈 있었음. 그러나 이 자가 수학을 전연
못하고 늘 선생님에게 꾸지람 듣는 것을 보고 그 자를내 말을 잘 듣도록 하는 방법을
생각하다가 휴식시간에 산술문제를 가르쳐 주고 숙제 못해온 것을 휴식시간에 몇 번
가르쳐주었더니 그 다 음부터는내 말이라면 무조건 굴복하던 생각이 남.'.
이 소년은 생각을 하고 있다. 계산을 하고 있다. 완력에서는 당할 수 없는 상대를, 그의
마음을 사로잡는 방법으로 통제하고 있다. 이 소 년은 벌써부터 사물을 선과 악이란
기준으로 보지 않고 있다. 이기기 위해서 먼저 져주는 방법을 알고 있다. 전략적 발상을
하고 있는 것이 다. 정권을 잡은 뒤에 박정희는 깊은 사색 끝에 원대한 전략을 만들어
내곤했다. 그는 '생각한다'는 것의 힘을 안 사람이었다. 구미보통학교 의 박정희 학생은
말이 없고 생각은 많은 아이였다. 박정희 소년을 생 각에 빠지게 만든 것은 이순신에
이어 나폴레옹이었다. 김종신 청와대 공보비서관은 1970년 9월15일에 '박정희 대통령
농민의 아들이 대통령 이 되기까지'라는 책을 냈다. 김종신은 이책을 쓰기 위해서
대통령을 여러번 만나 취재했고 원고를 대통령에게 보여주어 교열까지 받았다.이 책은
박정희와 나폴레옹의 만남을 이렇게 묘사하고 있다.
'정희 소년의 마음에 크게 감명을 주었던 나폴레옹 전기를 읽은 것 도 이때였습니다.
황소를 몰면서 읽었던 것입니다. 코르시카의 조그마 한 섬에서 태어나서 군대에 들어간
이름없는 시골청년 나폴레옹이 프랑 스의 황제가 되기까지의 이야기는 너무도
흥미로웠습니다. 눈보라 치는 알프스 산맥을 백마를 타고 넘을 때의 모습! 정희 소년은
이 세상에 이 같이 멋있는 사람이 또 있을까 하고 감탄했습니다. 문득 책에서 눈을
떼니옆에서 풀을 뜯던 황소는 어디로 갔는지 보이지 않고 어느덧 해는 서산에 잠기고
빨간 노을이 져 있었습니다. 나폴레옹 전기를 읽고난 며 칠동안은, 밤에 잘 때도
백만대군을 호령하는 나폴레옹의 모습이 나타 나곤했습니다. 학교 갈 때에도, 학교에서
돌아올 때도 말을 몰고 적진 을 뚫고다니는 나폴레옹의 모습이 머리 속에
오락가락했습니다. 정희 소년은 달리 읽을 책도 없고 해서, 나폴레옹 전기를 두 번, 세
번 읽었 습니다. 이 무렵부터 벌써 그 전의 정희 소년은 아니었습니다. 마음의 창문이
넓은 곳으로 열리고 있었습니다. 전에는 무심코 보이던 마을 사 람들의 사는 모양이
새로운 눈으로 바라다보였습니다. 추수가 끝나고 겨울이 오면 마을 사람들이 이 집 저
집에 몰려서, 돈을 걸고 투전을 하고 있었습니다. 투전판에서는 가끔 싸움이
벌어졌습니다. (왜, 저런 노름들을 할까. 봄이면 양식이 떨어지고 무서운 가난이
찾아올텐데, 그 것을 막고 이길 생각은 하지 않고 저렇게 놀고만 있을까)'.
박정희의 생애에 가장 큰 영향을 끼친 책은 이 나폴레옹 전기였다. 이 전기를 통해서
소년은 권력, 군대, 정복, 지배, 남자다움을 동경하 게 된다.
힘에 대한 동경뿐이 아니었다. 식민지에서 태어나 군대의 힘을 등에 업고본국의 황제가
된 뒤 전유럽을 석권한 나폴레옹은 "나의 사전에는 불가능이란 단어가 없다"고 하지
않았던가. '비록 조선에서 가난한 농 민의 아들로 태어났지만 군인만 된다면….'.
박정희 소년에게 소설 '이순신'은 비장한 애국심을 심어주었지만 꿈 많은 시절의
상상력을 자극하기에는 너무 슬픈 이야기였다. 이순신에 대한 박정희 소년의 관심은 그의
머리에 잠복해 있다가 집권한 뒤에 비 슷한 처지에서 동병상련의 공감을 느끼게 되고
충무공과 시공을 넘나드 는 역사와의 대화를 하도록 했다. 나폴레옹은 이순신보다 더욱
강하게 소년의 가슴과 감성을 직격했다. 나폴레옹은 그를 흥분시키고 그를 군 인과
권력의 길로 내몰았다. 이순신은 그의 뇌리에 남았고 나폴레옹은 그의 심장에 들어갔다.
이순신은 비장함으로, 나폴레옹은 야망으로 박 정희소년을 사로잡았다. 대구사범을
졸업한 박정희가 1930년대말에 문 경보통학교에서 교사로 일하고 있을 때 학생 정순옥은
동무들 몇명과 함께 새로 오신선생님의 하숙집을 찾아갔다. '이낙선 비망록'에 실린
정순옥의 수기--.
'어린 호기심에 선생님의 방을 살펴보았더니 책상 위에 커다란 사진 액자가 걸려
있었는데 배가 불룩 나오고 앞가슴 양편에 단추가 죽 달려 있는 외국사람이었다. "저
사람이 누구냐"고 물었더니 선생님은 "영웅 나폴레옹이다"고 말씀하시며 나폴레옹에
대해서 자세히 이야기해 주셨 다.'.
대구사범 동기생들은 "박정희가 들고 있던 책은 한두 번인가 히틀러 의 '나의 투쟁'인가
'플루타크 영웅전'인가를 빼고는 번번이 '나폴레옹 전기'였다"고 말하고 있다. 박정희는
여러 사람들이 쓴 나폴레옹 전기 를 죄다 읽으려고 했다. '삼국지'에 빠진 소년들이
처음에는 되풀이하 여 읽다가 나중에는 저자를 바꾸어가면서 읽는 것과 같은 열광상태가
박정희에게는 상당기간 계속되었다. 박정희는 김종신이 교사직을 그만 두고
만주군관학교로 간 이유에 대해서 묻자 간단하게 답했다.
"긴 칼 차고싶어서 갔지.".
박정희에게 그러한 권력의지를 항구적으로 심어준 나폴레옹 전기가 그토록 이 소년을
사로잡은 것은 나폴레옹의 소년시절과 자신의 처지가 비슷한 데서 온 공감대였다.
나폴레옹이 1769년 8월15일에 지중해의 섬 코르시카에서 태어났을 때 그의 어머니는
박정희의 어머니처럼 임신중 에 건강을 상하여 아기 나폴레옹은 작고 아팠다. 당시
코르시카에서는 프랑스의 지배에 반항하는 독립전쟁이 벌어지고 있었다. 이 섬의 유지
로서 독립전쟁에 참여하고 있던 부모는 산속을 헤매고 다니느라고 산모 의 건강이 상했던
것이다. 박정희의 어머니처럼 나폴레옹의 어머니는 귀족출신으로서 아들의 인격형성에 큰
영향을 주었다. 나폴레옹은 세인 트헬레나 섬에서 죽기 전에 어머니에 대해서 이렇게
회고했다(나폴레옹 의 어머니는 아들보다 16년 뒤인 86세에 죽었다).
"어머니는 나를 잘 길러주셨다. 나는 어머니에게 큰 은혜를 입었다. 어머니는 나에게
자부심을 심어주셨고 좋은 성품을 가르쳐주셨다.".
1815년 나폴레옹이 황제 자리에서 쫓겨나서 엘바 섬에서 귀양살이를 하고 있을 때 아들을
찾아와서 용기를 준 것도 어머니였다. 그녀는 아 들에게 말했다.
"얘야, 여기를 나가 너의 숙명을 따르도록 해라. 너는 이 섬에서 죽 도록 운명지어지지는
않았어.".
나폴레옹은 후일 세인트 헬레나에서 어머니의 이 격려가 엘바 섬을 탈출하도록 만든
결정적인 자극이었다고 고백했다.
"나를 자극한 것은 내가 비겁하다는 비판이었다. 나는 그런 비난은 견딜수 없었다.".
박정희가 보통학교에 입학했던 나이에 나폴레옹은 프랑스의 브리엔느 유년사관학교에
입학했다. 이 학교에서 프랑스 귀족의 아들들과 섞여 5년간 공부하면서도 나폴레옹
소년은 자신이 코르시카 출신이란 것을 감추려하지도, 부끄러워하지도 않았다. 그는
악명높던 코르시카의 복수 문화를 자랑스럽게 생각했고 프랑스의 코르시카 지배는
부당하다는 것 을 끊임없이 주장했다. 이는, 박정희가 만군과 일군의 군복을입고도 조
선인임을 잊지 않았고 정권을 잡고도 농민출신임을 잊지 않았던 것과 비슷하다. 위대한
인물들의 이런 토종성은 모성애가 모국애로 전환된 때문이 아닐까 생각되기도 한다.
|
http://kr.blog.yahoo.com/ppis4988/trackback/112/24899
|
|
|
|
|
|
|
|
오늘 |
전체 |
|
| 방문자 |
161 |
1442039 |
|
| 구독자 |
0 |
704 |
|
| 댓글 |
0 |
13513 |
|
| 참조글 |
0 |
183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