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먼저 우주비행의 성공을 온 국민과 같이 축하합니다.” 고 육영수 여사가 1963년 5월25일 제임스 밴플리트 전 주한 유엔군사령관에게 보낸 친필편지(사진)의 도입 부분이다. 옛 소련에 우주개발의 선두 자리를 빼앗긴 미국이 그해 5월16일 머큐리 9호의 우주비행을 성공시키자 이에 관심을 표명한 것이다.
육 여사는 이어 “즐거운 구라파 여행을 하셨으리라 믿으며 이번에 부인께서도 함께 오실 것으로 기대하였었는데 유감스러웠습니다만 다정하신 부인의 편지는 다소의 위로가 되었습니다”라며 밴플리트 부인의 서한에 감사의 뜻을 전했다.
그리고 주미 한국대사관을 통한 미국 방문 초청 사실을 확인하면서 “한국 재건의 뒷받침이 되고 있는 미국을 직접 가봄으로써 친밀감이 더욱 새로워지리라고 믿으나 여러 가지 사정이 허락되지 않아 가보지 못함을 유감으로 생각합니다”며 정중히 거절했다. 육 여사는 이후 1965년과 1969년 박정희 대통령과 함께 방미해 뉴욕 세계박람회 등을 관람했다. 밴플리트 사령관은 한국전쟁에서 아들을 잃었는데, 이후 한국을 제2의 고향이라면서 비료공장 건설 등 전후 한국 재건 지원에 노력을 아끼지 않았다. 그는 친한파 인사들을 모아서 코리아 소사이어티를 설립, 한국 지원의 필요성을 미국 정부에 전달하는 등 한미동맹 구축에 막중한 역할을 했다. 육 여사는 편지 말미에 ‘아리랑 드레스’를 보낸다면서 “부인의 단정하신 자태를 더욱 아름답게 하여주기를 바란다”고 말해 밴플리트 부인에게 각별한 관심을 보였다. ‘5월 25일 대한민국최고회의 의장공관 육영수’라고 서명이 된 편지는 퍼스트레이디가 내조 외교를 어떻게 해야 하는지 보여주는 사례가 되고 있다. 검은색 잉크로 쓴 이 편지는 버지니아주 렉싱턴 소재 버지니아군사학교의 마셜도서관에 보관된 밴플리트 장군의 문서철에서 발견됐다.
너무나 존경하는분 입니다 육영수 여사 이후
스스로 존경심이 우러나오는 영부인을 아직까지 보지 못한거 같아요
무엇보다도 우리나라는 쳥렴결백한 분이 이나라의 지도자가 되어야 하것만
누구든 정권 한번잡으면 억억억하는 재산 축척에 국민들 등골 빼먹는거 같아요
억억 유행시킨 장본인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