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차대전후 장제스는 국공(國共)내전에서 마오제둥(毛澤東)이 이끄는 중공군에 본토를 빼앗기고 국민당 정부를 대만으로 옮겼다. 그는 거대 대륙을 마오제둥에게 내주고 망명지 대만에서 뒤늦게나마 군부의 부정부패를 척결하고 토지개혁을 단행, 정치적 안정과 경제번영을 이룩했다. 미소를 중심으로 한 동서냉전시기 대만은 한때 한국과 함께 아시아지역의 자유반공 보루로서의 역할을 했다.
장제스의 아호는 중정(中正). 1887년 10월 31일 샹하이 인근 저장성(浙江省) 펑화현[奉化縣]에서 농업겸 소상업 가정에서 태어난 그는 이런 전통적 가업을 떠나 원대한 꿈을 이룩하기 위해 군인의 길을 선택했다.
1906년 바오딩(保定)군관학교에 입학, 짧은 교육기간을 거쳐 다음해 일본 도쿄로 건너가 일본육사에서 유학했다. 거기서 장제스는 辛亥혁명을 주도한 쑨원(孫文)을 만났다.
그는 도쿄에서 국민당 전신인 <중국통일혁명동맹>에 가입했고 이단체는 얼마후 신해혁명을 일으켜 300년간의 봉건전제국가인 청조(淸朝)를 전복하고 중국을 근대국가의 공화정으로 통일했다. 장제스는 그 후 5, 6년간 중국과 일본을 오가면서 그의 군사정보지식을 확대하고 중국통일의 정치적 야망을 가다듬었다.
장제스는 1911년 쑨원의 신해혁명에 참가했고 이혁명은 마침내 중국을 중화민국으로 변모시켰다. 그는 1918년 쑨원(孫文)의 부하로서 주로 군사면에서 활약하고 1923년 소련을 방문, 적군(赤軍)편제에 대해서도 공부했다. 장제스는 이때 소련에서 소련식 군사교육과 사회제도를 연구하고 신 중국건설을 위해 필요한 재정지원도 받아왔다.
국민혁명군 총사령관으로 군벌 타도와 중국 통일에 힘씀장제스는 다음 10년간 중국북부에서 군벌을 토벌하고 일본에서 군사교육을 받는등 미래 중국통치자로서의 바쁜 나날을 보냈다. 1924년 귀국하자 그는 황푸(黃浦)군관학교 교장에 발탁되었고 1926년에는 국민혁명군 총사령관에 취임해 북벌(北伐)을 개시했다. 황푸 군관학교시절 그는 젊은 장교들에게 자기의 정치적 영향력을 넓히고 성장하는 권력기반을 더욱 확충해나갈 기회를 잡았다.
쑨원이 지도자였던 국민당 광동정부는 1925년 쑨원이 서거하자 집단지도체제의 국민정부로 개편해 군을 국민혁명군이라 불렀다. 이때 장제스는 국민혁명군(북벌군) 총사령관으로서 군벌을 타도하고 중국을 통일하고자 1926년 7월 북벌에 나선 것이다. 이때 장제스는 8개사단을 조직해 북부와 중부 중국의 북벌을 했다. 24년 시작된 1차국공합작이 깨진것도 이 무렵이었다.
장제스는 북벌 첫해 국민당내에서 공산주의자들을 숙청했다. 축출된 공산주의자들은 국민당 창당때 부터 참가한 창당 당원들이었다. 그다음해 그는 중국 최고갑부의 딸 세자매중 막내인 송미령(宋美齡)과 결혼했다.
송미령 친정의 막대한 부와 서구교육을 바탕으로 한 송씨네 금융가문은 장제스의 정치적 야망과 영향력 확대에 크게 기여했다. 북벌 성공으로 그의 당내 위치는 확고해졌다. 북벌 때 국민정부 좌파와 중공(中共)은 장(蔣)의 정치적 세력이 확대되는 것을 염려해 북벌에 극력 반대했다.
거기다 북벌군은 10만여 명에 불과했으나 군벌세력은 약 1백만 명으로 10대 1의 열세였다. 그 가운데 오패부(吳佩孚) 장작림(張作霖)의 세력이 제일 컸고, 손전방(孫傳芳)이나 염석산(閻錫山), 풍옥상(馮玉祥)의 세력도 만만치 않았다.
북벌은 중공과 일본의 제남사변(濟南事變)등의 방해로 한때 차질을 겪기도 했으나 풍옥상과 염석산이 국민혁명군에 협조해 순조롭게 진행되었다. 북경에 있었던 장작림(張作霖)은 동북으로 돌아가다 매복 일본군에게 황고둔(皇姑屯)에서 폭사당했다. 그후 그의 아들 장학량(張學良)이 국민정부의 깃발로 바꾸어 달고 장제스의 국민 정부에 합류 함으로써 장제스의 북벌은 성공으로 끝나고 그는 전중국을 통일할수 있게 되었다.
국민정부 총통이 되어 통일 중국을 통치하다장제스는 북벌에 성공함과 동시 1928년 10월 10일 국민정부 총통이 되어 통일 중국을 통치했다. 이로써 국민정부는 군정(軍政) 단계를 마감하고 혁명 2단계인 훈정(訓政)의 단계로 접어 들었다. 훈정은 무력통일된 성(省)의 자치과정을 말하며 혁명의 마지막 단계가 헌정(憲政)이다.
장제스의 초기 공산당과의 군사 및 정치투쟁은 일방적인 우세였다. 1924년 국민당은 소련과 손잡고 중공당을 산하에 포용하는 연소용공(聯蘇容共)정책을 썼다. 이때 공산당은 개인적으로 국민당에 가입했다.
그러나 그는 쑨원이 병사한후 국민당에서 좌파 및 공산당을 몰아냈다. 장제스는 1927년 상하이(上海) 쿠데타를 일으켜 1928년 베이징을 점령했다. 그는 난징(南京)에 새로운 단독 국민정부를 세우고 주석과 육해공군 총사령관이 되어 당과 정부의 지배권을 확립했다.
장제스는 유일한 반대세력인 공산당을 불법화하고 그들에게 정면 승부수를 던졌다.
글쓴이 : 여영무 인터넷신문 뉴스앤피플 대표 겸 주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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