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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설일 : 2004/12/07
 

세계 명장열전(10) - 헨리 H. 아놀드

2006.12.18 23:29 | 세계 전쟁사 | 하늘

http://kr.blog.yahoo.com/ppis4988/23482 주소복사

아놀드는 2차대전에서 연합군 승리를 도운 항공이론과 조직, 절차등을 확립했다. 그의 이런 이론은 오늘날에 이르기까지 미국 공군과 다른 나라들 공군들의 발전에 커다란 영향을 미쳤다.


라이트 형제로 부터 비행교습을 받고 조종사 자격을 얻다

그는 1886년 6월 25일 펜실베이니아 그래드윈에서 의사의 아들과 남북전쟁 참전군인의 손자로 태어났다. 그는 1907년 웨스트 포인트를 나와 보병소위로 임관되었다. 아놀드는 육사졸업후 기갑부대를 지원했으나 성적이 좋지않아 보병으로 배치되었다.

필리핀 근무를 마친후 다시 기갑부대를 지원했으나 두 번째로 거부당했다. 그의 실망은 컸다. 그는 하는수 없이 통신부대로 배치돼 1911년 오하이오 데이턴에서 라이트형제로 부터 비행교습을 받고 조종사 자격증을 받게 된다.

아놀드는 미국군에서 기십명에 지나지 않는 최초의 조종사집단에 들어갔다. 그의 조종사 자격증은 미국에서 발부된 자격증중 29번째였다. 이것이 그가 미국 항공 부대를 발전시키고 독립공군 창설의 산파역을 맡게된 인연이자 배경이 되었다. 아놀드 는 1911년 9월 미국정부 우편물을 항공기로 실어나르는 최초의 비행을 했고 1912년에는 6,540피트의 고도비행을 하는 기록을 세웠다.


비행 신기록을 수립하며 항공계의 주목을 받았던 아놀드

아놀드는 초창기 항공사상 이런 저런 신기록들을 수립하면서 항공계의 주목을 받게 되었다. 그는 이때 매리랜드 파크 대학 활주로에 소수그룹의 조종사들과 항공기 기술자들을 불러 모았다. 여기서 이 소수그룹 조종사들은 신참비행사들을 훈련시키는외 비행기부품과 비행절차에 관한 군사 노멘크라투르(특권계층)를 형성했다.

이들은 또 항공무기와 폭격조준기 그리고 공대지 통신들에 관해서도 실험을 했다. 아놀드의 초급장교시절 하늘을 나르는 초창기 항공술은 엄청나게 위험한 일이었다. 몇 차례 추락을 경험한후 그는 스스로 지상근무를 선택했다. 그는 3년이상의 지상근무를 한다음 초기의 추락공포에서 겨우 벗어나 다시 조종사로 복귀했다.


1,2차 세계대전에서의 활약

아놀드는 비교적 풍부한 조종경험을 쌓아올렸기 때문에 그가 원치않았는데도 1차대전동안 항공본부 참모로서 워싱턴근무 명령을 받았다. 그는 워싱턴 본부보다 전선에 나가 조종사로서 항공근무를 하고싶었으나 뜻대로 되지 않았다.

1차대전 종전후 그는 계급과 직책에서 천천히 그러나 착실하게 승진의 사닥다리를 오르기 시작했다. 아놀드는 항공부대를 공군으로 독립시켜야 한다는 빌리 미첼의 주장을 적극 지지하고 따랐다. 미첼은 미국 조종사로서 1차대전때 미국 항공부대 최고사령관이었고 대량폭격편대 전술을 창안했다. 그는 이때 부터 공군의 독립을 주장했고 미래전에서 폭격기가 전함을 대체할 것으로 예측했다.

아놀드는 이어 항공전술에 끼친 업적으로 제 1회 맥케이 토로피를 받았다. 그런가 하면 그는 전략공군의 항속거리를 실험하기 위해 본토에서 알라스카까지 B10폭격기 편대 비행을 성공적으로 지휘한 공로로 최고의 비행십자훈장을 받기도 했다. 맥케이 트로피는 클레렌스 맥케이가 1911년 제정했다. 맥케이는 당시 우편전신회사 사장이었다.

항공과 전신은 조종사들이 공대지 항공 통신을 하는데 밀접한 관계를 가지고 있다. 그는 1935년 육군항공대 부사령관이 되었다. 오스카 웨스토버 사령관이 1938년 비행기 추락사고로 사망하자 아놀드는 그의 후임으로 그 자리에 승진 임명되었다.

아놀드는 항공 사령관으로서 전쟁에 필요한 대량군수산업 확장을 위한 토대를 세우는데 크게 기여했다. 그는 2차대전동안 합동참모본부 고위간부의 한사람으로서 여러곳 전투현장에 대한 공군전략을 지휘하는 최고 책임을 맡고 있었다.


까다롭지만 타고난 감각을 지녔던 공군 지휘관

아놀드는‘햅’(Hap·행복을 뜻함)이란 자기별명과는 달리 언제나 까다로운 지휘관이었다. 그는 끊임없이 부하들 업무에 간섭하면서도 자기 막료들을 효율적으로 부리고 조직하는 것을 거부했다. 그뿐 아니라 그의 변덕스런 기질은 일면 자신을 가볍게 보이도록 만들기도 했다.

그러나 그는 이런 커다란 단점을 동시에 훌륭한 장점으로도 만드는 비범한 수완을 가지고 있었다. 그의 공세적 드라이브와 비전, 사물을 주도하는 감각등은 거대 공군을 지휘하는데 불가결한 요소였다.

1913년 아놀드는 보병부대로 돌아와 필리핀에서 또 다른 직무를 맡게 된다. 그는 필리핀 바탕가에서 야전훈련중 유명한 조지 마셜 중위(후에 국무장관과 국방장관이 됨)를 만나게 된다. 두사람의 두터운 우정과 직업적 관계는 그후 일생동안 계속되었다.

지금까지 아이젠하워, 맥아더 원수등 적잖은 전쟁영웅들을 소개했지만 거대한 아메리카 대륙에는 아직도 많은 영웅들이 남아있다. 이들도 이 아메리카 영웅그룹중의 한사람이다.

전세계 수백 인종들의 다양한 이민들로 구성된 거대한 아메리카 대륙이 200여년 역사의 큰 나라로 발전하면서 나라규모와 정비례해서 수많은 영웅들이 차례차례 탄생했다.


글쓴이 : 여영무 인터넷신문 뉴스앤피플 대표 겸 주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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