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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4=10,10은만수 만수는 완성이고, 1은 출발이다 만수를 위해서 완성을 위해서 매진하자 그리고 출발의 초심을 잃지말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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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설일 : 2004/12/07
 

 김종필
 
 공화당 김종필의원은 새벽3시쯤 청구동 집에서 전화를 받았다. 대통 령 민정수석비서관 박승규였다. 김종필이 전화기를 드니 울음소리부터 들렸다.
 
 "여보세요, 김종필입니다. 누구십니까." "저, 박승그니다. 엉 엉…." "왜 그래요, 무슨 일입니까." "하여간 빨리 들어오십시오. 들어오시면 압니다.".
 
 김종필은 예감이 나빴다. 지난 밤에 그는 이태원의 음식점에서 언론사 사장들과 저녁식사를 하고 있었다. 밤 9시쯤 궁정동 근방에서 총성이 들렸다는 보고가 음식점으로 들어왔다. 청와대 주변이 어수선하다는 얘기도 들렸다. 참석자들은 술도 제대로 마시지 않고 뿔뿔이 흩어져 돌아갔던 것이다.
 
 김종필이 청와대 본관에 도착하니 이상했다. 검문도 제대로 하지 않고 멍하니 서 있는 사람들이 있는가 하면 현관으로 들어가도 알아보는 사람이 없었다. 소접견실에서 경호원들이 흰 천을 탁자 위에 깔고 있었다."이게 뭐야"하니 경호원들은 엉엉 울기만 했다. 이때 2층에서 박승규가 내려오더니 김종필을 붙들고 "각하가 돌아가셨습니다"라고 하는 것이었다.
 
 "뭐이 각하가 돌아가시다니!" "조금 전에 병원에서 운명하셨습니다. 처리를 하느라고 늦어지고 있는데 여기로 오시는 중입니다.".
 
 김종필은 망치로 뒤통수를 얻어맞은 것처럼 아무 생각이 나질 않았다. 대통령의 시신이 도착했다. 김종필은 탁자 위에 눕혀진 처삼촌을 내려다보면서 생각했다.
 
 "원래 조그마한 분이지만 눕혀놓으니 애기 같아요. 문득 무슨 생각이 났느냐 하면 댈라스에서 저격당한 케네디가 병원으로 가지 않았습니까. 전기를 읽어보니까 그는 '위대한 거인'이었다는 대목이 있었습니다. 수술대 위에 눕혀놓으니 그렇게 크게 보이더랍니다. 그런데 이 분을 보니까 세상에 이렇게 몸이 작을 수가 없어요. 손을 만지니까 싸늘하고 오른쪽 귀 윗부분에 총탄이 들어간 자리에서는 혈청 같이 뿌연 것이 흘 러내리고 있었습니다. 이 분이 이렇게 가셨구나. 천하를 주름잡던 분이 숨을 거두니까 이런데 누우시는구나! 아주 별별 생각이 다 들었습니다.".
 
 김계원비서실장이 피묻은 양복차림 그대로 내려왔다. 김종필은 함께 2층 비서실장실로 올라갔다. 두 사람만 남게 되자 김종필이 따지듯 물 었다.
 
 "어떻게 된 일이오." "김재규란 놈이 그랬어요, 김재규란 놈이…." "실장도 거기 있었을텐데 뭣했어요.".
 
 김실장은 고개를 숙이고 잠시 말을 못하더니 울먹이며 이렇게 말하 더란 것이다.
 
 "제가 죽일 놈입니다. 아무 것도 못했습니다. 제가 죽일 놈입니다." "자초지종을 이야기 좀 해봐요.".
 
 김계원은 차지철에 대한 대통령의 편애를 하소연하듯 털어놓더라고 한다.
 
 "아침에 내려오시면 경호실장이 각하를 모시고 무슨 이야기인지 모르지만 그렇게 오래 하면서 시간을 보내고, 장관이 오면 비서실장에게 이야기하고 가라고 하는 판이니 저는 여기서 뭘 하는 사람입니까, 허수아비입니까.".
 
 김종필은 "김재규가 총 쏠 때 실장은 뭣했어요"하고 추궁했다.
 
 "제가 그렇게 따져 물었더니 김실장은 '저도 겁이 나서 밖으로 나갔습니다'라고 합디다. 김 실장이 밖에서 들었는데 대통령이 '나는 괜 찮아. 아가씨들 괜찮아?'라고 하시며 여자들을 오히려 걱정하시더랍니다. 박 대통령의 평소 실력대로 나온 겁니다.".
 
 김종필이 마지막으로 처삼촌을 만난 것은 그 열흘 전인 10월17일 밤이었다. 이날 유신선포 7주년 연회가 청와대 영빈관에서 열렸다. 김 종필은 대통령과 같은 식탁에 앉았다. 이 순간 부산에서는 연 이틀째 '유신철폐'를 외치는 격렬한 야간 시위가 계속되고 있었다. 구자춘내 무장관이 대통령에게 오더니 이 사태에 대해서 보고하고 대통령의 표 정은 굳어졌다. 노래시간이 시작되어 정재호 최재구같은 가수급 국회 의원들이 목청을 자랑해도 분위기는 고조되지 않았다. 김종필은 영흥 도 안나고 밥맛도 없었다. 그냥 먹는 시늉만 하는데 대통령이 유심히 보고있다가.
 
 "왜 그렇게 식사를 안해"라고 했다.
 
 "먹고 있습니다." "안먹고 있는데 뭘 그래. 청와대 밥이 그렇게 맛이 없나."..
 
 그날 밤 헤어지는데 대통령이 물었다.
 
 "어디 안 가지?" "예, 갈 데 없습니다. 서울에 있겠습니다." "내 곧 부를테니까 연락하거든 들어와.".
 
 이 연회가 끝나자마자 박대통령은 임시국무회의를 소집하여 부산에 비상계엄령을 선포한다. 그 직후 청와대 본관 2층 침실에서 박 대통령은 일기장에 이렇게 적었다.
 
 [7년 전을 회고하니 감회가 깊으나 지나간 7년간은 우리나라 역사에 기록될 중요한 시기이기도 하였다. 일부 반체제 인사들은 현체제에 대하여 집요하게 반발을 하지만 모든 것은 후세에 사가들이 공정히 평가하기를 바랄 뿐.]
 
 이 글이 일기장의 마지막 페이지가 되었다. 김종필은 대통령의 연락을 기다렸다. 이 무렵 이상한 소문이 여권에서 퍼지고 있었다. 28일 아니면 29일에 차지철경호실장이 친위쿠데타를 일으킨다는 것이었다. 김종필은 대통령의 연락이 없는 것은 그 주변에서 자신의 접근을 차단하고 있기 때문이라고 생각했다. 끝내 전화는 오지 않았다.
 
 김종필은 10·26사건 뒤 사석에서 "대통령께서 격랑 속에 선장 없는 조각배를 나에게 남겨주셨다"는 취지의 말을 한 적이 있다. 박 대통령의 죽음은 그의 정치적 운명을 크게 바꾸어놓았다. 김정렴 전 대통령비서실 장에 따르면 박 대통령은 1978년에 유신체제를 근본적으로 개혁하는 비 밀연구작업을 자신에게 지시했다는 것이다. 그 핵심은 유신헌법을 개정 하여 대통령 후보의 실질적인 경선이 가능하도록 한 다음에 자신은 대통 령임기 만료 1년 전인 1983년에 하야하겠다는 뜻을 비쳤다는 것이다.
 
 박 대통령은 후계자로는 김종필을 염두에 두고 있었다는 것이 김정렴의 증언이다. 미리 김종필을 국무총리에 임명하여 자신의 하야 뒤에는 그가 헌법에 따라 대통령권한대행에 취임하도록 하겠다는 복안이었다는 것이 다. 박 대통령은 "주한미군 철수에 따른 안보상의 대비를 그때까지 해놓고 물러나 나도 좀 쉬어야겠고 애들도 시집 장가 보내야겠다"고 말했다.
 
 [조갑제 출판국부국장·이동욱 월간조선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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