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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조계종 종정 법전스님은 11월 24일(음력 10월 15일) 동안거 결제일을 맞아 전국의 수행납자들의 분발을 격려하는 결제 법어를 내렸다.
종정 법전스님은 "유有다 무無라는 상대적인 차별의 세계속에 살고 있는 우리들이 화두정진을 통하여 유무가 없는 평등의 세계라는 깨침을 만나는 겨울 안거가 되어야 할 것"이라고 법어했다.
조계종은 올 동안거에는 2200여 수좌들이 전국 100여 선방에서 정진한다고 밝혔다.
다음은 동안거 결제법어 전문.
자비와 채찍 보인 곳을 알고자 한다면
세존께 어떤 외도가 물었습니다.
“유언有言으로도 묻지 않고 무언無言으로도 묻지 않겠습니다.
있는 것도 아니고 없는 것도 아닌 바를 한 마디로 말씀해 주십시오.”
그러자 세존께서 ‘양구良久’ 하였습니다.
이에 외도가 찬탄하여 말했습니다.
“세존의 큰 자비로 모든 미망의 구름을 걷어주시어 깨달음에 들게 하였습니다.”
그리고 물러갔습니다. 외도가 떠나간 뒤에 아난이 물었습니다.
“외도는 무엇을 증득했기에 깨달음에 들게 했다고 하였습니까?”
이에 세존께서 말했습니다.
“좋은 말은 채찍의 그림자만 보고도 달리는 것과 같은 것이니라.”
세존께서 자비를 내리시고 채찍을 보이신 곳을 알고자 한다면 오로지 화두를 간절하게 드는 일뿐입니다.
결 제대중들은 세존이 ‘양구’한 곳에서 알아차리려고 해서도 안 될 것이고, 채찍을 든 곳에서 알아차리려고 해서도 안 될 것입니다.
그렇다고 해서 세존이 ‘양구’할 때가 세존이 채찍을 든 곳이라고 말하는 것도 옳지 않은 일입니다.
만약에 화두를 타파하여 이러한 도리를 분명히 알아차릴 수만 있다면 천하의 모든 종사들이 외도와 도반이 되겠지만 만일 서로가 인증印證할 수 없다면 동토의 납자라고 할지라도 서천의 외도보다도 더 못하게 될 것입니다.
세존의 한 눈은 삼세三世를 관통하였고 외도의 두 눈은 오천축국五天竺國을 관통하였습니다.
외도는 유언과 무언을 떠나서 한마디 할 것을 요구하였는데 이는 ‘사구四句와 백비百非를 떠나서 한마디 하라’는 말입니다. 이는 마조도일 선사에게 어떤 납자가 찾아와서 ‘사구와 백비를 떠나서 조사께서 서쪽에서 오신 뜻을 곧장 보여 주십시오’라고 한 그 질문과 같은 것입니다.
이번 동안거 결제철에는 조사께서 서쪽에서 오신 뜻을 사구와 백비를 떠나서 곧장 볼 수 있는 안목이 열리도록 삼동한철 동안 일주문을 걸어 잠그고 사관死關에서 용맹 정진해야 할 것입니다.
우사체도수미 藕絲?倒須彌하고
개자곤번뇌전 芥子?飜雷電이로다
연뿌리 속의 실로써 수미산을 끌어 넘어뜨리고
겨자씨가 우레와 번개를 흔들어 일으킨다.
불기 2551(2007) 동안거 결제일
신혁진 기자 webmaster@budgate.net
입력 : 2007년 11월 23일 09:54:10 / 수정 : 2007년 11월 24일 11:18: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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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정스님의 자비심이 참으로 과도하구나.
누군가 노랑에게
세존께서 양구하신 뜻을 묻는다면
앞산에서 벼락을 쳤다 할 것이요,
채찍 그림자로 인하야 달리는 말이 뭐냐 묻는다면
도적 지나간 뒤 활 당기는 이라하리니
살피고 또 살펴야 하리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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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07/12/01
(토) 오전 12:54 [노랑할배] from 151.196.126.216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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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인터뷰> 해인사 수좌 원융스님
[연합뉴스] 2007년 11월 24일(토) 오후 01:45
"누구나 화두 정진하면 홀연히 깨칠 날 옵니다"
(합천=연합뉴스) 정천기 기자 = "누구나 화두(話頭)를 받아 지니고 쉼없이 참구하면 어느 날 홀연히 깨치는 순간이 옵니다".
올해는 해인사가 조계종의 첫 총림(叢林.불교 종합 수도원)이 된지 40주년이 된 해이자 해인총림의 초대 방장인 성철(性徹.1912-1993)스님이 겨울철 참선수행을 위한 동안거(冬安居. 음력 10월15일-1월15일)에 든 스님들에게 불교 철학과 사상의 진수를 설법한 '백일법문(百日法門)'을 한지 40주년이 되는 해이기도 하다.
현재 해인총림 선(禪)수행의 총책임자격인 해인사 수좌(首座)를 맡고 있는 원융(圓融.69)스님은 24일 "불법(佛法)의 도리를 만난 금생(今生)에 깨침을 얻는다는 각오로 정진해야 한다"고 올해 동안거에 들어가는 스님들에게 당부했다.
원융스님은 성균관대 영문학과를 나와 공무원으로 근무하다가 1972년 삼십대 중반의 늦은 나이에 성철스님 문하에 들어가 해인사 백련암과 퇴설당 등에서 지금껏 수행정진해 왔다. 그는 스승인 성철스님이 열반할 때까지 곁에서 모셨으며, 한때 스승을 본받아 장좌불와(長坐不臥.잘 때도 눕지 않고 수행)의 고된 수행을 하기도 했다.
"수십 년간 수행의 길을 걸었지만 깨침의 경지는 아직도 멀기만 합니다. 올해가 해인총림 40주년인데 그동안 이곳에서 큰 깨달음을 얻은 도인이 나왔다고 자부할 수 없는 지경이니 수행자로서 부끄럽기만 합니다".
원융스님은 "깨달음의 경지에 이르기 위해선 아직 멀었다"고 자신을 낮추면서도 "스님 뿐만이 아니라 일반 대중 누구라도 화두를 지니고 한순간도 끊어짐 없이 간절히 참구하면 어느 날 홀연히 깨칠 순간이 온다"고 수행정진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그는 "불교는 지식으로 도달할 수 없으며 이론이나 논리가 아니라 한순간 깨침을 통해 핵심에 이르는 종교"라면서 "화두 참선이야말로 깨침의 핵심에 이르는 수행법"이라고 덧붙였다.
화두를 참구하는 수행법인 간화선(看話禪)의 창시자격인 송(宋)나라 대혜종고 스님의 '서장(書狀)'을 최근 편역해낸 원융스님은 "불법(佛法)에 대해 편지로 질문하는 40여명에게 답장하는 글로 꾸민 '서장'은 '깨침을 법칙으로 삼으라(以悟而則)'며 참선의 도리에 대해 자상하게 설명하고 있다"면서 "수행자는 소란스러운 시장바닥에서도 화두를 들 수 있어야 하며, 간절한 마음을 갖고 있으면 아무리 시끄러워도 화두에 몰입할 수 있게 된다"고 말했다.
스승인 성철스님이 생전에 "부처님 앞에 밥값을 했다"고 자부했던 법어록 '본지풍광(本地風光)'과 '선문정로(禪門正路)' 등을 훗날 법정스님, 원택스님 등과 함께 책으로 엮어내기도 했던 그는 "성철스님이 펼쳐보인 심오한 불법의 세계가 머리로는 이해되면서도 깨침의 세계에 이르지 못한 것이 부끄러울 뿐"이라고 말했다.
그는 "요즘은 수행환경이 너무 좋은 것이 오히려 진정한 공부에 방해가 되는 것 같다"고 말한뒤 "매화가 찬 기운 속에서 아름답게 피어나듯 뼛골에 사무칠 정도로 애써 수행한 기억이 온몸을 한 번 스치고 지나가야 진짜 공부"라며 진리에 이르는 길은 끊임없는 수행정진 뿐이라고 거듭 강조했다.
ckchung@yna.co.kr
(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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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약 홀연히 깨칠날이 참으로 온다면 그날은 필시 사람마다 콧구멍이 네개씩 되는 날이리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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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07/11/26
(월) 오후 10:46 [노랑할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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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삶 속의 부처 - 그럼에도 불구하고
입력일자:2007-11-23
박 재 욱
(로메리카 불교대학 교수)
‘죽은 고기도 걸려 마음대로 못하면서, 어떻게 산고기인 중생들을 제도한다는 말씀이요.’
1960년대 초 한국 불교 조계종단의 초청으로 내한한 남방불교권인 태국의 스님들이, 대승불교권인 한국불교에서는 스님들의 육식을 철저히 금하고 있다는 소리에, 그렇게 냉소적인 한마디를 던진 바 있다고 합니다.
스리랑카, 미얀마, 태국, 라오스 등 소위 남방 상좌부 불교 권에서는 출가자가 고기를 먹는 것, 즉 육식을 허용하고 있으나, 중국, 대만, 한국, 등 대승불교권에서는 육식을 금하고 있습니다.
남방불교 쪽에서 육식이 허용되고 있는 것은, 육식에 대한 초기불교의 전통에 따른 것이며, 또한 그곳에서는 아직도 스님들이 식사를 걸식에 전적으로 의존하고 있어, 음식에 대해 선택의 여지가 없기 때문일 것입니다.
한편 서력 기원 전후 흥기한 대승불교권에서 육식을 금하게 된 배경에는 극단적인 육식 금지사상을 담고 있는 초기 대승불교 경전들이 있습니다.
특 히 그 경전들 중 열반경은 모든 중생은 부처가 될 성품을 지니고 있다는 ‘일체중생 실유불성’ 사상을 주장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주장이 결국, 살생은 물론 모든 생물의 고기는 절대 먹어서는 안 된다는, 엄격한 불식육 사상으로 전개 되었다고 하겠습니다.
그 러나 약 이천 오륙백 년 전 초기 불교에서는 출가자나 재가자를 막론하고 고기를 먹어서는 안 된다고 하는 계율은 찾아볼 수 없습니다. 다만 샤카무니 붓다께서는 ‘산 것을 몸소 죽여서는 아니 된다. 또 남을 시켜 죽여서도 아니 된다. 그리고 죽이는 것을 보고 묵인해서도 아니 된다’라고 가르쳤습니다.
붓다께서는 그러나 세 가지 점에 있어서 깨끗한 고기, 즉 삼종정육(三種淨肉)은 먹어도 된다고 하셨습니다. ‘수행자들이여, 만일 자기를 위해 죽이는 것을 보지 않았고, 자기를 위해 죽였다는 소리를 듣지 않았고, 자기를 위해 죽였다는 의심이 없다면, 즉 세 가지 점에서 깨끗한 생선과 고기는 먹어도 좋다고 나는 허락한다.’
이어서 붓다께서는 ‘이 세상에서 욕망을 억제하지 않고 맛있는 것을 탐하며, 훔치고 거짓말 하는 일, 그리고 험담하고 이간질하며, 인색해서 아무것도 남에게 베풀지 않는 사람들, 이것이 비린 것이지 육식이 비린 것이 아니다’라고도 말씀하셨습니다.
그렇다고 해서 붓다께서 육식을 권장하신 것은 결코 아닙니다. 그렇다고 육식을 엄격히 금지하시고 채식만을 고집하신 것도 아닙니다. 붓다께서는 결국, 음식은 다만 이 신체를 유지하기 위한 수단에 불과한 것으로 여기고, 삼종정육으로 제한된 육식과 식탐 없이 취한 여타의 음식에서 얻어진 에너지를, 수행에 잘 활용해야 한다는 가르침을 주신 것이라 여겨집니다.
한데, 그러한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은 이의 이름이 알려져 있지 않은 ‘제자의 눈물’이란 제목의 이 시는, 왠지 나의 가슴을 싸하고 알알하게 파고듭니다.
‘수 척해진 노스님을 생각하면서/ 약이라도 드시라고 아뢰었더니/ 일부러 죽는 것도 죄이련마는/ 억지로 사는 것도 업이러니라./ 앞산에 송화가 한창이라니/ 솔가루나 몇 숟갈 받아 오너라./ 파리해진 큰스님을 생각하면서/ 고기라도 드시라고 부러 아뢰었더니/ 내 몸 주어 남을 살린 고행 있어도/ 남을 먹어 내 몸 불린 수행은 없다/ 뒷산에 송화가 한창이라니/ 솔잎이나 몇 바늘 솎아 오너라.’
미주 한국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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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 육식을 해야합니까? 말아야 합니까?
노랑; 바지나 갈아 입고 오시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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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07/11/26
(월) 오후 10:48 [노랑할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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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혼에 직면한 한 미국여인이 선원에 찾아와 눈물을 흘리며 고통을 호소했다.
노랑이 묻기를; "두 산이 서로 마주 보고 있소.
한 산은 여름이요. 다른 쪽은 겨울이라오.
이 두 산이 어떻게 해야 같은 계절에 만날수 있는지를 일러 보시오."
여인이 한참을 궁리해도 대답을 못하자.
노랑이 자대하기를, "늙은 원숭이 우는 곳에 벽이 층층하오."
여인이 기뻐하며 떠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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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가워용..
구경잘하고 갑니다...
주말잘 보내세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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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07/11/26
(월) 오전 8:12 [한서조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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