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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전하는 여성의 삶은 아름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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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설일 : 2005/02/28
 

위    치 : 경북 울릉군 울릉읍  
우리나라에서 7번째로 큰 섬이자 동해바다의 유일한 유인도인 울릉도는 동해바다의 외로이 고립된 섬이라
는 인상과 달리 그렇게 외롭거나 삭막하지 않다. 7만3천여 평방미터의 섬 안에는 현재 785세대, 1만1천여
명의 주민이 살고 있고, 섬 전체는 자연의 보고이자 관광의 천국이다. 다른 섬들과는 달리 물이 풍부하여
살아가는데 어려움이 없으며, 울릉도 인근 해역은 동해바다 최대의 황금어장으로 동해안 어업의 전진기지
로서의 역할도 맡고 있다. 

신비의 섬 울릉도라는 이름만큼이나 울릉도는 항구에 들어서면서부터 예사롭지 않다. 좌우로 울릉도의 관
문인 양 우뚝 솟아있는 기암 절벽을 통과하여 부두에 내리면 울릉도의 행정, 문화의 중심지인 도동읍이다
울릉도 기행의 시작점인 이곳에서 우선은 도동항 좌우로 나 있는 해안절벽 산책로를 따라 걸어볼 일이다.
화산암으로 이루어진 해벽에 부딪히는 파도와 깊은 해식동굴 아래의 투명한 바닷물을 바라보면 탄성이 절
로 나온다. 좌우측 모두 돌아보는데 왕복 1시간 정도 소요되며, 왼편 산책로 중간에는 도동등대로 올라가
는 길이 있으나 급경사에다 갈림길이 많으므로 주의를 요한다. 
울릉도의 가장 큰 마을이자, 동해안 어업전진기지인 저동에는 유명한 봉래폭포가 있다. 부두를 지나 계속
나아가면 내수전 화력발전소 위쪽에 내수전 약수터가 있는데 탄산약수로서 도동약수와 더불어 위장 및 피
부질환에 효험이 있다고 한다. 약수터 위로 이어진 구불구불 한 비포장 도로를 약 30분 정도 걸어 올라가
서 고갯마루 정상에 다다르면 넓은 길은 끝나고 멀리 바다를 바라보고 있는 조그만 석포마을이 보인다.
석포마을까지는 하늘이 거의 보이지 않는 트레킹코스로 땀을 씻을 수 있는 작은 계곡이 중간에 있으며 때
때로 바다 위에 떠 있는 죽도와 관음도를 조망하면서 걷기에 좋다. 도보시간은 2시간 정도.

석포마을에서 오른쪽으로 내려가면 관음도가 정면으로 보이는 선창마을 해안절경지대이다. 우측의 콘크리
트 도로를 계속 따라가면 이내 길은 끝나고 섬목도선장이 나온다. 여기서 도선을 타면 다시 도동, 저동으
로 갈 수 있고, 원하면 경유지인 죽도에 내려 죽도관광도 할 수 있지만 이 경우 도선 시간을 잘 맞추어야
한다.  
섬목도선장에서 시계반대방향으로 현포마을까지 이어진 길은 절경과 절경의 연속인 해안도로이다. 섬목에
서 약 2km 거리에 삼선암이 있으며, 죽암등대를 지나 다시 1km를 더 가서 딴바우가 바라 보이는 죽암마을
앞 해변은 해수욕을 즐기기에 좋다. 죽암마을 위로는 석포마을로 올라가는 길이 있다.

죽암마을에서 다시 해안길로 약 2km를 더 가면, 조선 태종 때 공도 정책 실시 이후 울릉도 개척민이 제일
처음 도착했던 천부항 천부리 마을이다. 이곳 천부항 방파제 위에서 보는 일몰의 광경은 가히 장관이다.
지척에 송곳처럼 뾰족한 송곳바위가 웅장하게 버티고 있는 모습과 바다밑으로 석양의 노을이 서서히 잠기
는 모습을 바라보며 하루 일과를 마무리하는 것도 좋을 듯 하다. 
천부마을 위쪽으로는 성인봉 나리분지로 가는 도로가 나 있으며, 천부항에서 해안길로 약 1.5km 지점에는
우리나라에서 유일하게 지하수로 발전을 하는 추산 수력발전소가 있다. 위로는 거대하게 솟은 송곳바위를
바라보며 수력 발전 원천인 용출소를 지나 나리분지 야영장으로 가는 길이 있다. 추산 앞바다로 흘러내리
는 계곡수는 해수욕을 즐긴 후 소금기에 절은 몸을 씻기에도 좋다.
태하리 대풍령 절벽(사진:양진수 님)
추산 앞바다에 떠 있는 구멍바위(공암)을 바라보며 해안 도로를 따라 3km 가량 나아가면 현포항 현포마을에 이르 고 열두구비 현포령을 넘어 태하리에는 동남동녀의 전설 을 간직한 성하 신당이 있으며, 선착장 위쪽의 해안절벽 산책길을 따라 태하등대에 올라갈 수 있다. 태하등대 앞 전망대에서 바라 본 대풍령 해안절벽과 그곳에서 자생하 는 천연기념물 향나무의 모습도 잊지 못할 장관이다. 태하리에서 학포를 거쳐 구암마을로 넘어 가는 일주도로 가 최근에 완공되어, 한결 편리하게 울릉도를 일주할 수 있게 되었다. 구암마을에서 다시 해안도로가 이어지고 약 3km 쯤 가다 두 개의 터널을 지나면 남양리 사자바위와 투구봉이 보인다. 해수욕 하기에도 좋은 남양해변을 따라 2km 지점에는 통구미 마을의 거북바위가 보이고 다시 1km 거리의 가두봉 등대를 지나면 사동리 해변이다. 사동해변은 울릉도에서 유일하게 백사장이 펼쳐져 있어 비교적 해수욕을 원하는 사람들은 이곳을 많이 찾 는다. 사동을 지나 도동으로 넘어가는 나선형 고갯길은 육지에서는 볼 수 없는 울릉도만의 특이한 도로이 다.
태하등대 언저리의 억새밭(사진:양진수 님)단풍이 절정인 태하리 해변(사진:양진수 님)

비록 작은 섬이지만 울릉도만큼 훌륭한 배낭여행지는 많지 않다. 해안 절경을 감상하며, 때로는 더할나위 없이 깨끗한 바닷물에 몸을 적셔 보고, 길을 걷다가 인심 좋은 트럭운전사를 만나 차를 얻어타고 이 얘기 저 얘기 들으며 힘겨운 고갯길도 넘어 보고 곳곳에 널려있는 전설과 아름다운 자연경관을 마주대할 수 있 는, 한번쯤은 시도해 볼만한 여행일 듯 싶다. 기호와 취미, 능력에 따라 다양하게 일정을 계획할 수 있으 며 배낭여행이 아니더라도 최고봉 성인봉에도 올라보고, 사방으로 보이는 망망대해를 바라보며 올 여름휴 가를 국토의 최동단 울릉도에서 의미있게 보내는 것을 권해본다. (글 이광재) 문 의 처 : 울릉군청 문화관광과(054-790-6393) 트레킹코스(도보코스) 1. 성인봉 : . 도동(사동)-성인봉-나리분지-추산-천부-섬목-저동-도동 (8시간 정도 소요) . 천부-나리분지-알봉-성인봉-사동-도동 . 등반협조 : 울릉산악회(054-791-0660) 2. 육로일주(도보) 저동(30분)-내수전(2시간30분)-석포(30분)-선창(30분)-죽암(30분)-천부(30분)-추산(1시간)-현포(2시 간)-태하리 태하등대(2시간)-학포(1시간)-구암(30분)-남양(30분)-통구미(30분)-가두봉 등대(1시간)- 사동(1시간)-도동 ※ 이상 도보이동 시간이며, 선창-태하-학포-구암-도동 구간은 일주 노선버스 운행. 문의: 우산버스(054-791-2179) 3. 육상관광, 해상관광 울릉도는 육상관광과 해상관광코스가 개발되어 관광편의를 제공하고 있다. * 육상관광은 관광버스(12~30인승)나 택시를 이용하여 일주도로를 따라 섬 비경을 둘러보는 코스다. 1) 소요시간 : 3 ~ 4시간 2) 요 금 : 자율책정임으로 직접 문의 3) 문 의 : 울릉관광 054-791-0066 울릉도개발관광 054-791-6866 두레고속관광 054-791-7020 개인택시 054-791-2612 울릉택시 054-791-2315 * 해상관광은 유람선으로 섬을 일주하며 울릉도의 신비로움을 감상하는 코스다. 삼선암, 공암 등 주요 명승지의 비경을 가까이에서 볼 수 있다. 1) 소요시간 : 2시간 정도(08:00, 10:00, 14:00) 2) 요 금 : 일반개인 13,000원/인(단체할인가능) 중.고등학생 11,000원 초등학생 6,500원 3) 문 의 : 유람선협회 054-791-4468 주요경승지 : 약수공원 삭도 케이블카(독도 및 도동항 전망대), 봉래폭포, 성인봉 원시림(천연기념물), 나리분지 투막집, 죽도, 통구미 거북바위, 남양 투구봉·사자바위, 태하리 태하등대· 대풍감, 추산 송곳산·구멍바위, 선창 삼선암·관음도 해수욕장 : 울릉도엔 특별히 해수욕장 시설이 갖추어져 있지 않다. 그러나 사동, 남양, 추산, 죽암, 태하 해변 일대가 수심도 얕아서 해수욕하기 좋다. 특 산 물 : 오징어, 호박엿, 더덕, 약소고기, 돌미역 기 타 : 도동과 저동 이외의 지역은 물품 구하기가 여의치 않을 수 있다. 필요한 물품과 부식 등은 도 동이나 저동에서 미리 준비해 가는 것이 좋다. 물이 풍부한 울릉도는 마을마다 깨끗한 수세식 공중화장실이 구비되어 있으므로 그리 염려하지 않아도 된다. 홈페이지: 울릉군청 - http://www.ulleung.go.kr 울릉도닷컴 - http://www.ullungdo.com/index-1.htm

배편안내 : 1) 포항→울릉도/포항여객선터미널(054-242-5111)에서 대아고속(02-514-6766)의 대형쾌속선 썬플라워호가 매일 10시에 출항하며, 도동항까지는 약 3시간이 걸린다. 2) 동해→울릉도/지난해 9월 8일부터 신규 취항한 한겨레호가 묵호항 여객선터미널(033-531- 5891)에서 하루 1회(10:00) 출항하며, 화요일과 수요일에는 기존의 카타마란호로 교체 운 항된다. 소요시간은 2시20분(한겨레호), 3시간(카타마란호). 요금은 한겨레호가 조금 비싸다. 그러나 요일과 승객수에 따라 운항편수가 증감되기도 하 고, 운항시간이 변동되기도 한다. 그러므로 미리 전화로 알아보고 예약을 하는 게 좋다. 3) 묵호→울릉도/카타마란호 (육지출항 10:00 울릉출항 15:00, 2시간 50분 소요) 한겨레호(육지출항 10:00 울릉출항 15:00, 2시간 20분 소요) ※울릉도를 왕복운항하는 여객선은 날씨와 계절에 따라 출항 날짜와 시간이 크게 달라지므 로 출항 전날이나 당일에 반드시 출항 여부를 미리 확인해야한다. 또한 여름 성수기기간 은 후포항에서도 운항하며 필히 사전예약을 해야한다. 4) 독도순회관광(부정기노선)은 도동항에서 독도간 부정기적으로 운항, 해당운수업체에 문의. >> 독도관광해운

 


 

 
 
울릉도에서 나는 부지갱이와 취(미역취)나물
겨울에도 싱싱하게 자라고 있다.
 

                              

                                         

                                      나물을 수확할 때 쓰는 모노레일


 

 


 

 
 
울릉도 어디를 가나 오징어 말리는 모습을 볼 수 있는데
겨울은 물론 여름에도 파리가 없다고 한다.
 
참, 울릉도에서는 바닷가 특유의 비릿한 냄새가 나지 않았다.
여름에도 그렇다고 한다.


 

 


 

 
 
호박엿을 만들고 있는 공장 안

 

독도

※독도가 우리땅인 이유(역사)

독도의 내력은 일찍부터 기록에 오르내린 울릉도와 관련지어 살펴보아야 한다.본토 유민들에 의해서 세워진 것으로 추정되는 울릉도의 우산국이 신라에 귀속된 것은 6세기 초 (512) 후였다. 이 사실은 삼국사기 신라본기 지증왕 13(512)년에 "6월에 우산국이 신라에 속했다"는 기록에서 찾을 수 있다.이후 울릉도라는 명칭이 정착됨에 따라 그 부속 도서인 독도로 우산이라는 명칭이 이동하게 되었다. 조선 1432년 (세종 14)에 편찬된 지리지 강원도 울진현조에서도 "우산, 무릉 두 섬이 (울진)현 정동(正東) 바다 한가운데 있다"하여 동해 상에 무릉과 우산의 두 섬이 있다는 것을 더욱 분명히 하였다. 1531년 (중종 26)에 편찬된 <신증동국여지승람> 강원도 울진현조에 "우산도, 울릉도 가 현의 정동 바다 한가운데 있다"하여 <세종실록> 지리지의 기록을 잇고 있다.1694년 삼척청사 장한상이 울릉도의 300여리 근처에 울릉도의 3분의 1 크기의 섬을 발견한 기록을 담은 <장한상 울릉도사적기>를 펴냈다. 이것은 한국 문헌에 나오는 울릉과 우산(독도) 의 지명은 모두 울릉도를 가리키는 말이라는 일본의 주장에 대해 울릉도와 그 부근에 있던 독도를 우리가 17세기에 이미 알고 있었다는 사실을 생생히 입증하는 것이다. 18세기 에 나온 정상익의 <동국지도>에 이르러서는 울릉도와 우산도의 위치와 크기가 정확하게 표시되었으며, 조선 후기의 지도첩에는 으레 울릉도 옆에 우산도 또는 자산도를 표기하고 있다. 일본 스스로도 독도를 한국 땅이라고 인정한 자료가 줄을 잇는다.

독도는 512년 울릉도와 함께 신라에 귀복되었으며, 고려에서는 행정 구역에 편입시키고 백성을 옮겨살게 하는 등 울릉도와 독도 경영에 적극적인 관심을 나타내었다. 조선시대에는 독도를 '우산도', '삼봉도', '가산도', '가지도'등으로 불렀다.조선은 한때 백성들을 보호하기 위하여 행정력이 미치지 않는 모든 섬에 공도정책을 폈다. 이러한 과정에서 울릉도와 독도 근해에 일본 어민들의 출어가 잦아지자, 안용복은 일본으로 건너가 울릉도와 독도가 우리 땅임을 확인 받고 일본 어부의 어로 활동을 금지토록 하였다.1667년 일본인이 편찬한 <은주시현합기>, 1869년 일본 외무성 고관들이 편찬한 <조선국교제시말내탐서>, 1876년 일본 내무성에서 만든 <태정宮> 결정서, 1876년 일본 해군성이 작성한 <朝鮮東海 岸圖>, 1905년 동경박물관에서 펴낸 <일본전쟁실기>, 1936년 일본육군참모본부에서 나온 <지도구역일람도> 등의 자료 등에서 독도가 한국의 영토임을 밝혔다.기인 1899년(광무 3년)에 당시 중등과정 신식교육기관에서 활용됐던 <대한지지> 제 1권에 삽입 돼 있는 지도 대한전도에는 울릉도 옆에 '于山'이라는 표기와 함께 섬이 그려져 있으며 좌 측 상단에는 '光武 3년 12월 15일 學部 편집국 刊'이라는 표시가 선명히 적혀져 있다. 강원도 울진현에 속해 있던 독도를 1900년 고종황제의 칙령 41조에 의해 독도를 울릉군의 한 부속도서로서 공식적으로 강원도에 편입했다는 사실이다. 이는 일본이 독도를 1905년 시마네현에 편입시켰다고 주장하는 것보다 5년 앞선 것으로 일본의 독도 영유권 주장 사실을 뒤엎을 수 있는 귀중한 발견으로 평가된다.'독도'라는 이름은 1906년 울릉군수 심흥택에 의해서 처음 사용되었으며, 1914년 행정 구역 개편으로 경상 북도에 편입되었고, 2000년 4월 7일을 기점으로 행정구역상 주소를 경상북도 울릉군 독도리 산1~산37로 정하였다.

※ 독도가 일본땅이라고 우기는 이유

1.타케시마의 현상

(1) 지지
○시마네현 오키섬북서 85 해리(북위 37도 9부, 동경 131도 55부)에 위치.
○히가시지마(메지마), 니시시마(남도)로 불리는 두 개의 작은 섬과 그 주변의 수십의 암초로부터 되어, 총면적은 약 0.23평방 km(히비야코우엔과 거의 동면적).

(2) 한국의 점거의 상황
○타케시마의 히가시지마에 1954년 7월 무렵부터 한국 경비대원(경찰)이 상주.
○숙소, 등대, 감시소, 안테나등이 설치되어 해마다 강화되고 있는 모양.
○1996년 2월 8일, 외무부는 타케시마에 접안 시설의 건설을 실시하는 취지 발표.

2.타케시마 영유권에 관한 양국의 주장

(1) 타케시마 영유에 관한 역사적인 사실
일본:우리 나라에서는 낡고 「마츠시마」의 이름에 의해 오늘의 타케시마가 잘 알려져 있었던 것은 많은 문헌, 지도등에 의해 명백.(예를 들면, 1650년대에 호키번(톳토리)의 오오타니, 촌천양가가 「마츠시마」를 막부로부터 배령 해 경영하고 있었다고 하는 기록이 있어, 또, 경위선투영의 간행 일본도로서 가장 대표적인 나가쿠보 세키스이의 「개정 일본여지 노정 전도」(1779년)에서는 현재의 타케시마를 위치 관계 올바르게 기재.그 외에도 메이지에 이를 때까지 다수의 자료 있어.)
한국:15~16 세기무렵의 고문헌에, 우야마시마또는 산포우섬이라고 하는 이름으로 타케시마의 기술 있어.
(주:우야마시마나 산포우섬이 타케시마에 해당하고 있는 것을 실증 할 수 있는 적극적 근거는 없다.오히려, 우문헌은 그것이 타케시마가 아닌 것을 나타낸다.)

(2) 1905년의 일본 정부에 의한 타케시마 편입의 유효성
일본:1905년(메이지 38년) 2월에는, 각의 결정 및 거기에 계속되는 시마네현 고시에 의해, 일본 정부는 근대국가로서 타케시마를 영유 하는 의지를 재확인.
한국:1905년의 타케시마 편입의 시마네현 고시는, 하지메 지방관청에 의해 은밀뒤에 행해진 것이어 무효.또 이 편입은, 일본이 그것까지 타케시마를 그 영토의 일부라고 생각하지 않았다 유력한 증거.
(주:고시는 정식으로 공시된 후, 신문보도도 되어 있어 은밀뒤는 아니다.타케시마의 시마네현 편입은 역사적 근거를 근거로 해 근대국가의 행정구분에 집어 넣어 영유를 재확인한 것.)

(3) 일본 점령 및 전후 처리를 위한 제문서 중(안)에서의 타케시마의 취급
한국:전후의 대일 점령정책 실시에 해당해, 1946년 1월 29 일자 총사령부 각서 제 677호가, 오가사와라제도등의 약간의 외곽 지역의 일본으로부터의 분리를 실시했을 때, 타케시마는 일본 영토로부터 분리되어 일본 어선의 조업 구역을 규정한 막카서라인의 설치에 해당해도, 타케시마가 그 선의 밖에 있었다.또, 1943년의 카이로 선언에 있는 「일본은, 폭력 및 탐욕에 의해 탈취한 모두의 지역에서 구축 떠날것」의 규정은, 시마네현 편입이라고 하는 침략 행위에 의해 일본에 병합 된 타케시마에도 적용 있어.

일본:대일 평화 조약전의 일련의 조치는, 모두 일본 영토의 최종결정에 관한 것은 아니라고 명기되어 있어 타케시마가 일본의 영역으로부터 제외된 것은 아닌 것은 명백.또, 원래 우리 나라의 영토인 타케시마는 카이로 선언에 말하는 「폭력 및 탐욕에 의해 탈취한 지역」에 해당하지 않고.
(주:1954년(쇼와 29년) 9월, 우리 나라는 본건 문제에 대해 국제사법재판소에 제소하는 것을 제안했지만, 한국측은 오른쪽 제안을 거부.덧붙여 일한 양국간으로는 국교 정상화 시에 「분쟁의 해결에 관한 교환 공문」을 체결.)

3.타케시마 문제에 대한 양국의 기본적 방침
(1) 일본 정부
○ 「타케시마는 역사적 사실에 비추어도 국제법상도 분명하게 일본의 영토이다」라고 하는 우리 나라의 일관한 입장에 근거해, 한국의 점거에 대해서 문서 또는 구두에 의해, 동섬에 있어서의 한국측 건축물 및 관헌의 철거등을 반복해 요구.
○또, 타케시마 문제는 평화적으로 해결 되는 것이 당연해, 정부로서는 외교상의 경로를 통해서 끈질기고 본건 분쟁의 해결을 꾀해, 해결의 방도에 대해서는 제반의 정세를 감안하면서 효과적인 방도를 탐구해 나갈 방침.

(2) 한국 정부
타케시마는 역사적으로도 국제법상도 한국의 영토인 것이 분명하고, 일본측이, 일본의 타케시마 영유권을 주장하고 있는 것은 한국으로서 용인 할 수 있지 않고 유감스럽다라는 입장.

※참고자료
울릉도에서 뱃길로 3시간 여 소요(군함이나 해경정일때 소요시간)되는 '경상북도 울릉군 울릉읍 독도리'라는 행정구역을 가진 독 도. 해발 98m의 동도와 해발 168m의 서도라는 두 개의 주요 섬과 주변의 가제바위, 지네바위, 구멍바위, 미륵바 위 등 각각의 생김새에 따라 이름이 붙여진 36개의 암초로 구성된 독도. 250만년 이상 전에 울릉도, 제주도 보다 먼저 형성된 해저산의 진화과정을 한눈에 알아볼 수 있는 세계적인 지질유적이라는 독도. 천연기념물 336호로 지 정된 바다제비, 슴새, 괭이갈매기의 번식지 등 다양한 그들만의 아름다운 생태계가 형성된 독도

*도대체 가로세로 400m의 이 조그마한 땅덩이에 무엇이 있길래, 한국과 일본은 이리도 오랜 세월 한치도 양보할 수 없는 영유권 전쟁을 벌이고 있는가?

㉮ 독도의 일반적인 경제적 가치.. 독도주변 해역은 황금어장이다.독도주변해역이 풍성한 황금어장이라는 것은 이미 널리 알려진 사실이다. 북쪽에서 내려오는 북한한류와 남쪽 에서 북상하는 대마난류계의 흐름들이 교차하는 해역인 독도주변해역은 플랑크톤이 풍부하여 회유성 어족이 풍부 하기 때문에 좋은 어장을 형성한다. 어민들의 주요 수입원이 되는 회유성 어족인 연어, 송어, 대구를 비롯해 명태, 꽁치, 오징어, 상어가 주종을 이루고 있으며, 특히 오징어잡이 철인 겨울이면 오징어 집어등의 맑은 불빛이 독도 주변 해역의 밤을 하얗게 밝히 곤 한다. 또한 해저암초에는 다시마, 미역, 소라, 전복등의 해양동물과 해조류들이 풍성히 자라고 있어 어민들의 주요한 수입원이 되며, 특히 1981년 서울대 식물학과 이인규 교수팀의 조사에 의하면, 독도의 해조식생이 남해안이나 제 주도와 다른 북반구의 아열대지역이나 지중해 식생형으로 볼 수 있기에, 별도의 독립생태계 지역으로 분할할 수 있을 정도로 특유의 생태계를 구성하고 있다.

㉯ 독도의 군사적 가치 및 해양 과학적 가치
1905년 노일전쟁의 최후를 장식한 이른바 '동해의 대해전'에서 독도의 군사적 가치는 유감없이 발휘되었다고 한 다. 당시 일본은 한국령 독도를 일본령 '다케시마'로 개명하며 시마네현 은기도(隱岐島)의 소관으로 1905년 2월 15 일에 일본내무성의 결정으로 독도를 강제적으로 일본령으로 편입하였으며, 1905년 8월 19일에는 독도에 망루를 준 공하였<극비 명치삼십칠팔년 해전사>기에, 러시아 함대를 맞아 대승을 거두게 되었다. 현재 우리나라 정부에서는 독도에 고성능 방공레이더 기지를 구축하여 전략적 기지로 관리하고 있으며, 이곳 관측소에서 러시아의 태평양함대와 일본 및 북한 해·공군의 이동상황을 손쉽게 파악하여 동북아 및 국가안보에 필요한 군사정보를 제공하고 있다고 한다. 또한 경상북도에 의하면 1998년부터 2001년까지 72억원을 들여 독도 북서쪽 800m 해상에 50평 규모의 철골 구 조물인 해양과학기지를 설치할 계획이라고 한다.(대구매일신문.98년 12월 4일자) 이 독도 해양과학기지를 통해 독도주변해역의 해양상태를 보다 명확하게 파악하여 기상예보모델의 초기값 중 해양상태를 나타내는 값을 보다 정확하게 입력시킴으로서 보다 적중률 높은 기상예보가 가능함은 물론, 지구환경 연구, 해양산업활동 지원과 해양오염방지에 효율적으로 대처할 수 있을것으로 기대되고 있다.실제 1993년 10월 북한 청진항 동쪽 300km 해상에서 러시아가 핵 폐기물을 투기한 행위가 환동해권 국가인 한 국 및 일본을 극도로 자극하였으며, 이후 동해 내에 투기된 오염물질의 이동, 확산, 분해, 해저 침적과정 등을 이 해하고 정확히 예측하는 과학적 검토가 요구되고 있다.(동해의 해수 및 물질순환에 관한 연구 3차년도 최종보고 서. 과학기술처. 1997)

㉰ 독도의 지질학적 가치 .. 독도는 세계적인 지질유적
앞서 잠깐 언급되었지만, 독도의 생성연도는 지금으로부터 약 450만년 전부터 250만년전 사이인 신생대 3기의 플라이오세(Pliocene epoch)기간의 해저 화산 할동에 의해 형성되어졌으며, 이 시기는 울릉도(약 250만 전∼1만년 전)및 제주도(약 120만년 전∼1만년 전)의 생성시기 보다 앞선 시기이다. 생성시기로 따진다면 울릉도, 제주도의 형인 셈이다. 애국가의 표현대로 '동해물과 백두산이 마르고 닳은다면', 독도는 더 이상의 작은 바위섬이 아니고, 높이 2천여m의 거대한 산의 꼭대기라고 한다.

지질학적으로 보면 독도는 동해의 해저로부터 해저의 지각활동에 의해 불쑥 솟구친 용암이 오랜 세월동안 굳 어지면서 생긴 화산성 해산이다. 이러한 독도는 원래 동도,서도가 한덩리인 화산섬이었다. 몇십만년의 세월이 흐르며 바닷물에 의해 침식작용 과 바람에 의한 풍화작용을 거듭하며 원래 부드러운 성질의 돌이 천천이 깍여들어갔다.(파랑에 의한 해식작용) 이 러한 해식작용의 결과로 칼로 깍은듯 날카롭고 가파른 해식애(sea cliff)들이 만들어졌으며, 한편에서는 서도의 북 쪽과 서쪽 해안처럼 파식대지(wave-cut platform:파도에 깍여 만들어진 바닷가 해저의 평탄면) 이 형성되었다. 이러한 지질구조를 갖는 독도는 지질학적으로 큰 중요성을 갖고 있다. 독도는 해저 밑바닥에서 형성된 벼개용 암과 급격한 냉각으로 깨어진 부스러기인 파쇄각력암이 쌓여 올라오다가 해수면 근처에서 폭발적인 분출을 일으켜 물위로 솟다가 대기와 접촉할때 생기는 암석인 조면암, 안산암, 관입암 등으로 구성된 '암석학의 보고'라고 한다. 해저산이 수면위로 모습을 드러내는 경우는 드문 예이며, 또한 오랜세월 동안 파식 및 침강작용에 의해 원래 의 모양을 간직하기가 매우 어려운데, 독도는 해저산의 진화과정을 한눈에 알아볼 수 있는 세계적인 지질유적이라고 한다.

일본이 독도에 관심을 갖는 진짜 이유 - 독도주변 해역에 천연 가스층이 존재한다. 1997년 12월 러시아과학원 소속 무기화학 연구소에서 연구중인 경상대 화학과의 백우현 교수는 연구소장 쿠즈 네초프(Kuznetsov)로부터 '한국의 동해바다 한 지점에 붉은 색으로 하이드레이트 분포 추정지역임을 분명히 표기 하고 있는 지도'를 선물로 받았다.(신동아, 98년 9월호)'하이드레이트'란 메탄이 주성분인 천연가스가 얼음처럼 고체화된 상태로서, 기존 천연가스의 매장량보다 수십배 많은데다가 그 자체가 훌륭한 에너지 자원이면서도 석유자원이 묻혀 있는지를 알려주는 '지시자원'이라고 한다. 98년 5월 백우현 교수가 러시아를 재방문했을 때 '동해에 관련된 하이드레이트의 자세한 정보'를 부탁하자, 쿠즈 네초프 소장은 다음과 같은 의미 있는 답변을 했다고 한다. 『우리 연구소 규칙상 공개할 수 없는 자료입니다. 그런데 일본이 동해의 독도영유권을 끈질기게 주장하고 있 다지요?』. 신동아는 이 부분의 이야기를 매우 충격적으로 다루고 있다. "지금까지 일본이 한국의 영토인 독도를 자기네들 땅이라고 우겨온 중요한 이유가 동해상의 풍부한 해양자원 확 보를 염두에 둔 전략이라는 항간의 소문이 근거있는 것임을 보여주는 대목"이기 때문이란다.

현재 하이드레이트의 개발수준은 그 매장량이 막대한데도 개발기술이 초보단계이므로 러시아 만을 제외하고 상 업적 생산이 이루어지지 않고 있으며, 일본은 하이드레이트층에 대한 매우 축척된 탐사자료를 통해 99년 11월에는 난카이 해구에서 시험생산체계에 돌입한다고 한다. 1997년 기준 우리의 원유소비량은 전세계6위이며, 원유 수입량은 세계 4위이며, 에너지의 해외 의존도는 97.8%라고 한다.(신동아 98년 9월호. 1997년 에너지 경제연구원) 이러한 이유로 정부는 1970년부터 30만㎢에 달하는 대륙붕에 7개의 광구를 설정하여 해저탐사를 벌여왔으며, 실제 89년과 93년에는 비록 경제성이 미흡했지만 동해중심해역에서 가스층이 발견되었으며, 최근 98년 7월 27일에 는 울산 남동쪽 50km 해상의 대륙붕에서 이전의 것과 비교 안되게 뛰어난 천연가스층이 발견되었다. 실제 국내 대륙붕 및 인접 중국과 일본의 석유 발견지점을 지도를 보면, 동중국해에서 동북방향으로 울산남동 쪽을 거쳐 독도인근해역을 거쳐 일본 서부연안을 향해 유전지대가 펼쳐진다고 한다. 30만㎢의 광할한 대륙붕에서 단지 30개의 시추공만을 꽂았을 뿐이며(일본은 38만㎢의 대륙붕에서 175개의 시추 공을 꽂았다고 한다), 이중 12개는 외국계회사가 국내에 석유를 팔려면 의무적으로 한반도 대륙붕에서 석유를 탐 사해야 한다는 의무조항 때문에 그나마 형식적으로 시추공을 박았다고 한다.

금번 러시아 과학원의 연구소에서 제공한 동해의 '하이트레이트층' 의 분포추정 지도나 석유발견지도의 경향을 보았을 때 독도주변해역의 해양석유자원의 보유가능성은 매우 명확하다고 하며, 그 경제적인 가치 또한 매우 높다 고 한다독도주변해역의 새로운 경제적 가치를 정부는 분명 상기해야 할 것이며, 결코 독도주변해역의 경제적 가치와 무관하지 않을 일본정부의 독도영유권 주장을 의미깊게 상기해야 할 필요성이 재기된다.



출 처 : [인터넷] http://www.tokdo.co.kr/kor/index.htm, http://www.truthofdokdo.or.kr/kor/html/story_main.html

일본이 독도를 노리는 숨은 이유는?

정 준
편집인


국제간의 선린우호를 표방하고 있는 일본정부가 도대체 무엇 때문인지 엄연한 우리 나라 영토인 독도를 '일본영토'라고 줄기차게 주장하고 잇는 것은 선뜻 이해하기 어려운 처사이다. 순진무후한 우리 국민들은 일본의 진정한 노림수를 모르고 "아마도 생선을 좋아하는 일본인들이 독도 근해 황금어장이 탐나서 그러나 보다" 라고 생각했을 뿐, 독도 인근 해역에 엄청난 자원이 매장돼 있다는 사실을 감감 모르고 있었다. 그러나 눈이 밝은 러시아와 일본은 이미 오래 전부터 이 사실을 알고 있었다. 본지는 이 엄청난 비밀자료를 러시아의 '무기화학연구소'에서 입수한 백우현 교수(白禹縣 : 진주경상대학교 화학과)로부터 직접 확인했고, 그 비밀자료 일부를 지면에 공개한다.


▶ 원유와 천연가스가 발견되지 못했던 이유

인접국인 중국의 동해안에서도 대형유전이 발견됐고, 일본의 서해안에도 유전이 있는데 유독 그 중간에 위치한 한반도에서만 원유와 천연가스가 발견되지 못한 이유는 과연 무엇일까? 물론 여러 가지 문제점이 있었겠지만 그 동안 우리 나라에 축적된 기술과 자료도 불충분했고 국내 대륙붕 시추작업을 해저유전 탐사기술을 가진 외국석유회사들에 의존했었기 때문이었다는 탄식이 상당한 설득력이 있다.

왜냐하면 외국계 석유회사들이 국내에 석유를 공급하려면 의무적으로 한반도 대륙붕을 시추해야 한다는 단서조항이 있었다. 따라서 일부 외국석유회사들은 잿밥인 석유공급에만 관심이 있었고 단서조항인 대륙붕 시추는 아무런 체계적인 사전조사 없이 눈가림으로 아무데나 시추공을 두드려 박는 시늉을 하기도 했었다는 증언조차 있다.

현재 우리 나라 석유공사의 자료에 의하면 우리 나라 동해상에 분명히 양질의 천연가스가 존재하며, 이 사실은 이미 지난 2월 23일 울산 앞 바다 6-1광구 가스전개발선언식으로 입증된 바 있다.

그런데 울산 천연가스 굴착실무자중 한 사람인 김성원씨(한국석유공사 가스개발사업단)의 설명에 의하면, 지난번 울산 대륙붕에서 발견된 천연가스 중에는 약 백만 배럴로 추정되는 콘덴세이트(Condensate : 기화(氣化)상태인 천연가스와 액화(液化)상태인 원유의 중간물질)가 포함된 것으로 알려졌다. 따라서 상업성 여부는 논외로 하고, 우리 나라도 엄연한 산유국임을 먼저 기억해 주시기 바란다.

▶ 증언자의 신분과 비밀의 실마리

백우현 교수는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군복무를 마친 후 뒤늦게 대학공부를 시작한 만학도(晩學徒)의 한사람이다. 화학을 전공하는 학자로 '원적외선 연구'에 전념하다가 한국과 러시아간에 국교가 수립되기 이전인 1990년 9월부터 러시아 학자들과 공동연구를 시작했고 현재까지 교류를 계획하고 있다.

그는 지난 1979년부터 현재까지 경남진주 소재 경상대학교 화학과 교수로 근무중이다. 지난 1997년 12월 어느날 러시아 노보시비르스크 주에 있는 과학단지(Akadem Gorodok)내에 있는 러시아 과학원 소속 무기화학연구소(Institude of Inorganic Chemistry)의 쿠즈네토프(Vladimir Kuzenest-sov)소장이 그에게 건네준 한 장의 사진(도표 참조)이 바로 비밀의 실마리였던 것. "백 교수, 우리 연구소는 그 동안 당신의 연구성과를 인정, 명예박사 학위를 수여하기로 결정했습니다. 연구소가 개설된지 40년만에 최초로 외국인인 당신에게 명예박사학위를 수여하는 것이며, 이제 당신은 학문적으로 우리와 동반자가 됐기 때문에 당신을 위해 귀국선물을 준비했습니다. 이것은 한국의 천연가스 연구개발에 도움이 될 만한 자료입니다" 그것은 바로 러시아 측에서 파악하고 있는 전세계 '가스 하이드레이트(Gas Hydrates)'에 관한 기초자료 였고, 우리나라 동해바다 한 지점에 붉은 색으로 표기(편집자 주 : 하이드레이트 분포 추정지역임을 나타냄)하고 있는 지도가 포함돼 있었다.

▶ 하이드레이트(Gas Hydrates)란 무엇인가?


일반인들에게는 전혀 생소한 '하이드레이트'는 에너지자원을 연구하는 고학자들이 '21세기의 새로운 에너지원'으로 주목하고 있는 귀중한 자원이다. 화학적으로는 물분자들 내에 메탄분자가 끌려 들어간 일종의 셔벗(Sherbet : 과즙(果汁)을 얼린 빙과(氷菓)같이 버석거리는 얼음상태)같은 결정체이고, 바꾸어 말한다면 메탄이 주성분인 천연가스가 얼음처럼 고체화된 상태를 말하는 것이다.

러시아의 시베리아 같은 툰드라(凍土)지대와 심해 해저의 퇴적물 또는 퇴적암 층에 광범위하게 분포돼 있는 하이드레이트는 온도가 매우 낮고 압력이 높은 고압상태에서 고체상태로 존재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 물질의 존재가 알려진 것은 지난 1930년대였지만 당시로서는 원유와 천연가스 수요가 지금처럼 않았고 하이드레이트를 개발할 기술이 축적돼 있지 않았기 때문에 지금껏 각광을 받지 못했던 것이다.

그러나 천연가스처럼 95퍼센트 이상이 메탄으로 구성된 하이드레이트는 매장량이 천연가스보다 수십 배 이상 많고, 이것을 연소시킬 때 이산화탄소 발생양이 미미하여 공해가 크나큰 사회문제로 부각되고 있는 현재 각국 고학자들의 유별난 관심의 대상이 되고 있다.

그런데 문제는 하이드레이트 자체가 훌륭한 에너지 자원인 것은 물론, 석유자원이 부존되어 있는지 여부를 알려주는 지표(Index)역할을 한다는 사실이다.『해저에 석유자원이 부존되어 있는 지역을 탐사해 보면 통상 맨 위쪽에 셔벗(Sherbet)처럼 얼어붙어 있는 하이드레이트 층이 나타나고, 그 아래층에 천연가스와 원유가 있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증언이다.

21세기의 새로운 에너지로 각광받고 있는 하이드레이트는 매장량은 막대하지만 전세계적으로 개발기술이 초보단계이기 때문에 러시아를 제외하고는 아직껏 상업적 생산이 이루어지지 않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 하이드레이트 연구에 관한 한 러시아가 세계 최고수준이며 그 뒤를 이어 미국과 일본 및 캐나다가 이 분야 연구에 전념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 독도 주변해역에 하이드레이트 매장

백우현 교수는 이듬해인 1998년 5월 18일 러시아의 무기화학연구소로부터 명예박사학위를 수여 받았다. 학위수여식이 끝난 후 연구소에서 베풀어준 축하파티 석상에서 어지간히 취기가 오르자 그는 단도직입적으로 쿠즈네토르 연구소장에게 말문을 열었다. "지난번에 주신 자료는 잘 보았습니다. 그러나 동해에 관련된 하이드레이트 자료가 지나치게 개략적입니다. 좀 더 상세한 자료를 보고 싶습니다 " 불그레한 얼굴로 한참동안 백 교수를 물끄러미 바라보던 쿠즈네토프 연구소장은 "백 교수, 그것은 우리 연구소 규칙상 공개가 불가능한 자료입니다. 그런데 일본이 동해상에 있는 독도의 영유권을 끈질기게 주장하고 있다지요?" 하고 말머리를 돌리고 말았다.

러시아의 무기화학연구소는 현재 캐나다와 일본 등과 합작으로 하이드레이트에 관한 공동연구를 진행중이며, 쿠즈네토르 소장은 아직도 현직에 근무중이다. 따라서 이 연구소에는 일본 지역의 하이드레이트 매장에 관한 자료가 축적도 있을 것이고, 자료제공 대신 독도 인근지역에 하이드레이트층이 있다는 사실을 슬쩍 암시해 준 것으로 밖에 이해될 수 없다.

한편 동남아 산유국에는 '천연가스나 원유가 매장된 해저 대륙붕에는 원유성분에 포함된 유황성분 때문에 새우가 모인다. 이 새우를 잡아 먹기 위해 고기들이 모이고, 작은 고기를 잡아먹기 위해 큰고기가 몰리는 먹이사슬 때문에 황금어장이 된다."는 특이한 속설이 전해 오는데. 대부분의 원유채굴 현장이 황금어장으로 손꼽히고 있는 것은 틀림없는 사실이다. 독도에는 하이드레이트 층이 매장돼 있고 인근에 황금어장이 형성되어 있다는 사실은 과연 무엇을 의미하는 것인지 미루어 짐작하기 어렵지 않다.

그뿐만이 아니라, 대한석유공사에서 작성한 대륙붕지도(천연색사진 참조)와 러시아에서 작성된 '하이드레이트 분포도'는 놀랄 만큼 일치해 있고 우리나라 해저에 천연가스가 매장돼 있음이 확인됐으므로 풍부한 원유가 매장돼 있을 개연성 역시 지극히 높다. 한마디 사족을 덧붙인다면, 가장 유망한 광구위치는 독도인근 황금어장 지역일 것으로 추정된다.

▶ 일본의 하이드레이트 연구상황

백 교수는 러시아의 무기화학연구소 측에서 상세한 자료공개 대신 호의로 건네준 일본의 하이드레이트 개발 위원회 조직도표만을 손에 쥔 채 허탈한 마음으로 귀국했다. 지난 98년 6월 학회 논문발표차 일본을 방문했던 그는 일본측 연구팀 접촉을 시도했고 추가정보 입수를 위해 노력했지만 그것은 애시당초 불가능한 도전이었다.

증언자인 백 교수는 "일본은 이미 지난 89년 호카이도(北海島)서쪽 근해에 하이드레이트가 부존돼 있음을 확인했고, 90년에는 시코쿠(四國) 근해에서 또 다시 하이드레이트 층을 발견했으며, 이밖에도 혼슈(本州)를 비롯하여 대여섯군데서도 하이드레이트를 찾아냈다.

일본측 추산에 의하면 일본령 내에 매장된 하이드레이트 층이 현재 일본에서 소모되고 있는 천연가스 100년분에 상당한 어마어마한 양이라고 한다. 99년 11월에는 시즈오까현 오마에자키 앞 바다(난카이 해구)에서 하이드레이트 시험생산체제에 돌입했다는 정보도 있다" 라고 안타까운 마음을 토로했다.

▶ 러시아가 던진 화두

지난 98년 여름 백 교수는 쿠즈네토프 연구소장과 다음과 같은 대화를 나누었다고 밝혔다. "한국의 동해상에서 최근 천연가스가 발견되었습니다. 그런데 한국과 일본 및 중국의 천연가스 분포도를 살펴보면 일종의 벨트(Belt)가 형성돼 있는 것 같습니다. 이것이 하이드레이트 분포도와 어떤 연관성이 있다고 생각하십니까?" "우리 연구소는 캐나다 및 일본과 공동으로 하이드레이트 지대를 연구한 결과 캐나다 북쪽 비포트해(海), 러시아와 알래스카 사이의 베링해(海), 오호츠크해(海)일본열도 근해에서 하이드레이트 층을 발견했습니다.

그리고 중국 동남지역 바다에서도 하이드레이트 추정지대가 있음을 알았습니다. 이것이 하나의 벨트를 형성하고 있으리라는 것이 우리의 판단입니다. 그리고 그 결정적 단서는 한국이 제공할 수 있을 것입니다. 한국은 전세계 하이드레이트 분포층 탐사에서 잃어버린 연결고리를 이어줄 수 있는 중요한 지역 중의 하나입니다. 하이드레이트 분포는 바로 아래에 석유부존을 의미하기 때문에 말씀하신 것처럼 상관관계가 있을 것은 분명합니다. 한국이 부디 인류 미래의 에너지가 될 하이드레이트 탐사에 참여해 주셨으면 합니다 " ···그의 답변이 함축한 의미를 뒤집어 본다면, 만약 한국이 하이드레이트 연구에 선두를 달리고 있는 러시아와의 공동연구에 참여한다면 이미 연구된 일본의 하이드레이트 연구상황을 입수할 수 있을 것이라는 확대해석이 가능하다고 인식된다.

▶ 무신경한 정부, 무식한 한보

한편 증언자인 백 교수는 "얼마전 한보가 설립했던 동아시아가스(주)회사가 보유하고 있던 러시아의 루시아 석유회사 주식 대부분을 영국의 석유회사에 매각처분한 사건이 있었다.

루시아 석유회사는 확인된 매장량이 6억톤에 달하는 이르쿠츠크 가스전 개발사업권과 유전매장량이 세계최대규모로 알려진 베르네촘스크 개발권을 가진 회사였다. 만약 한국측이 루시아 석유회사의 지분을 보유하고만 있었다면 러시아측이 확보한 하이드레이트 관련정보를 부수적으로 손쉽게 입수할 수 있었던 절호의 기회였다. 내가 잘 알고 지내는 러시아 친구들도 한국이 왜 그런 짓을 했는지 무척 안타까워 하더라" 고 장탄식을 마지않았다.

백 교수의 보충설명에 의하면, 러시아의 천연가스 개발사업은 한국과 영국만이 사업권을 보유하고 있었고, 아무런 지분이 없는 일본과 중국은 물론 식량난에 허덕이는 북한까지도 군침을 흘리던 유망한 사업이었다고 한다. 특히 하이드레이트와 관련해서는 자료를 비밀분류하고 있는 선두 일본을 제치고, 이미 연구개발된 기술을 획득할 수도 있었다는 것. 그러나 '처녀가 애를 배도 할말이 있는 법'. 러시아의 루시아 석유회사 주식을 모랠 영국에 매각 처분하여 비자금을 만들었다가 공개된 매각대금이 너무나도 헐값이라는 사실에 놀란 영국교포 과학자의 제보로 꼬리가 밟혀 검찰에 구속된 정한근 한보 부회장의 하수인 전 모씨는 "정부는 관심을 가져 주지도 않았고, 국내회사들은 자산은 제대로 평가하지도 않고 헐값으로 거져 먹을 작정만 해서, 영국회사에 팔아치웠다"라고 태연하게 검찰에서 진술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이런 경우를 일러 '개발에 편자(鞭子) 신기기요, 돼지 목에 진주목걸이'라고 한다던가?

▶ 독도 수호에 국민들이 나서야

신한일 어업협정을 졸속 체결하면서 엄연한 우리 영토인 독도를 '한일공동수역'에 포함시키고 "독도문제를 거론하면 국익에 손상이 된다"는 헛소리를 뇌까리는 정부당국을 더 이상 신뢰할 수 없다. 이제는 뜻있는 국민들과 민간단체들이 힘을 모아 '독도수호운동'에 일어서야 한다.

현재 본 기자가 파악하고 있는 독도관련 민간단체들만 손꼽아 보아도 독도학회, 독도박물관, 독도수호대, 독도향우회 등등 부지기수다. 그런데 이들 단체 대부분이 유명무실(有名無實)하다는 것은 지난 5월 31일(수)오후 2시 시내 프레스센터 20층에서 개최된 「독도 학술 발표회」에 참석한 인사들이 100명 미만에 불과했다는 사실이 이를 웅변으로 증명하고 있다.

한때 잘나가던 시민단체(NGO)들과는 달리 정부당국으로부터 국고보조 등의 예산 지원이 있는 것도 아니므로 가냘픈 호주머니 돈을 털어 모아 하는 행사로서는 다른 방도가 있었을 리 없었겠지만···. 그것보다는 대의(大義)를 위해 결성된 이런 단체들이 대동단결하지 못하고 사소한 문제로 상호 비방하고 있다는 사실이 더욱 심가한 문제점일 것이다.

『시마네현(島根縣)고시(告示) 제 40조 존재 여부가 대세에 무슨 영향이 있다는 얘기인가?』우리가 대결할 상대는 일본이지, 국내 단체들간의 경쟁이 아닐 것이다. 동지들간의 상호비방을 즉시중단하고 부족한 힘을 한데 모아야 한다.거창한 케치프레이스를 내걸지 말고 일단 가칭 「독도수호단체연합」이라는 기치(旗幟)아래 일렬횡대(一列橫隊 : 상하의 구분없이)로 굳게 뭉쳐서 먼저 각 단체가 땀흘려 수집한 정보를 상호교환하고, 다른 단체가 주최하는 행사에도 함께 힘을 실어준다면, 지난번 「독도 학술발표회」같은 한심한 모습을 보이지 않게 될 것이고, 조만간 뜻을 같이하는 자원봉사자들도 참여하게 될 것으로 기대된다.

"뭉치면 살고, 흩어지면 죽는다"는 구호는 만고불변의 진리라고 믿고 싶다

▶ 백우현 교수 프로필

- 1941년 1월 17일 일본에서 출생
- 1961년 안동 경안고등학교 졸업
- 육군 복무후 대학진학
- 1970년 동국대학교 화학과 졸업
- 과학기술연구소(KIST) 근무
- 동국대학교 석사 및 박사과정(화학전공)
- 1997년 11월 러시아과학원 무기화학연구소 명예이학박사
79-현재 경상대학교 화학과 교수
88-89 한국과학기술원 교환교수
91-93 경상대학교 부속 전자계산소장
91-현재 러시아과학원 무기화학 연구소 연구교수
98-현재 한국환경과학회 회장
98-현재 한국노벨과학상 수상지원본부 정회원

2004-06-05 입력

일본이 독도가 자기네 영토라면 지금까지 가만있었을까?

2005.03.24 10:29 | ♣관심이슈/독도♣ | 플러스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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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독도가 우리땅인 이유(역사)

독도의 내력은 일찍부터 기록에 오르내린 울릉도와 관련지어 살펴보아야 한다.본토 유민들에 의해서 세워진 것으로 추정되는 울릉도의 우산국이 신라에 귀속된 것은 6세기 초 (512) 후였다. 이 사실은 삼국사기 신라본기 지증왕 13(512)년에 "6월에 우산국이 신라에 속했다"는 기록에서 찾을 수 있다.이후 울릉도라는 명칭이 정착됨에 따라 그 부속 도서인 독도로 우산이라는 명칭이 이동하게 되었다.
조선 1432년 (세종 14)에 편찬된 지리지 강원도 울진현조에서도 "우산, 무릉 두 섬이 (울진)현 정동(正東) 바다 한가운데 있다"하여 동해 상에 무릉과 우산의 두 섬이 있다는 것을 더욱 분명히 하였다. 1531년 (중종 26)에 편찬된 <신증동국여지승람> 강원도 울진현조에 "우산도, 울릉도 가 현의 정동 바다 한가운데 있다"하여 <세종실록> 지리지의 기록을 잇고 있다.1694년 삼척청사 장한상이 울릉도의 300여리 근처에 울릉도의 3분의 1 크기의 섬을 발견한 기록을 담은 <장한상 울릉도사적기>를 펴냈다.

이것은 한국 문헌에 나오는 울릉과 우산(독도) 의 지명은 모두 울릉도를 가리키는 말이라는 일본의 주장에 대해 울릉도와 그 부근에 있던 독도를 우리가 17세기에 이미 알고 있었다는 사실을 생생히 입증하는 것이다. 18세기 에 나온 정상익의 <동국지도>에 이르러서는 울릉도와 우산도의 위치와 크기가 정확하게 표시되었으며, 조선 후기의 지도첩에는 으레 울릉도 옆에 우산도 또는 자산도를 표기하고 있다. 일본 스스로도 독도를 한국 땅이라고 인정한 자료가 줄을 잇는다.

독도는 512년 울릉도와 함께 신라에 귀복되었으며, 고려에서는 행정 구역에 편입시키고 백성을 옮겨살게 하는 등 울릉도와 독도 경영에 적극적인 관심을 나타내었다. 조선시대에는 독도를 '우산도', '삼봉도', '가산도', '가지도'등으로 불렀다.조선은 한때 백성들을 보호하기 위하여 행정력이 미치지 않는 모든 섬에 공도정책을 폈다.

이러한 과정에서 울릉도와 독도 근해에 일본 어민들의 출어가 잦아지자, 안용복은 일본으로 건너가 울릉도와 독도가 우리 땅임을 확인 받고 일본 어부의 어로 활동을 금지토록 하였다.1667년 일본인이 편찬한 <은주시현합기>, 1869년 일본 외무성 고관들이 편찬한 <조선국교제시말내탐서>, 1876년 일본 내무성에서 만든 <태정宮> 결정서, 1876년 일본 해군성이 작성한 <朝鮮東海 岸圖>, 1905년 동경박물관에서 펴낸 <일본전쟁실기>, 1936년 일본육군참모본부에서 나온 <지도구역일람도> 등의 자료 등에서 독도가 한국의 영토임을 밝혔다.

기인 1899년(광무 3년)에 당시 중등과정 신식교육기관에서 활용됐던 <대한지지> 제 1권에 삽입 돼 있는 지도 대한전도에는 울릉도 옆에 '于山'이라는 표기와 함께 섬이 그려져 있으며 좌 측 상단에는 '光武 3년 12월 15일 學部 편집국 刊'이라는 표시가 선명히 적혀져 있다.

강원도 울진현에 속해 있던 독도를 1900년 고종황제의 칙령 41조에 의해 독도를 울릉군의 한 부속도서로서 공식적으로 강원도에 편입했다는 사실이다. 이는 일본이 독도를 1905년 시마네현에 편입시켰다고 주장하는 것보다 5년 앞선 것으로 일본의 독도 영유권 주장 사실을 뒤엎을 수 있는 귀중한 발견으로 평가된다.'독도'라는 이름은 1906년 울릉군수 심흥택에 의해서 처음 사용되었으며, 1914년 행정 구역 개편으로 경상 북도에 편입되었고, 2000년 4월 7일을 기점으로 행정구역상 주소를 경상북도 울릉군 독도리 산1~산37로 정하였다.

※ 독도가 일본땅이라고 우기는 이유

일본의 입장
일본 정부가 독도를 일본영토로 편입한 것은 1905년 1월28일. 그로부터 4주 뒤인 2월22일 시마네 현(縣)은 현(縣) 고시40호로 우리의 독도를 「다케시마 」죽도(竹島)로 명명, 오키도사(隱岐島司)의 소관으로 둔다고 공시했다. 그후 독도는 1952년 1월 18일, 대한민국 국무원 고시 제14호로 「인접 해양의 주권에 관한 대통령 선언」을 발표하였다. 이 선언에서 규정하는 해양 경계선은 한˙일 두 나라 사이의 평화가 유지되기를 바란다는 뜻으로 '평화선(Peace Line)'을 규정하였고, 그 뒤 51∼65년의 한일국교정상화 협상과정에서 두 나라간의 외교문제로 논쟁대상이 되었으나 그 해결이 뒤로 미뤄져 지금에 이르고 있다.

집권 자민당은 최근 선거공약과 정책지침에까지 공공연히 독도 영유권주장을 포함시키는 등 독도문제를 수면 하의 영토문제」에서 「수면 위의 영토분쟁」으로 부상시키고 있다. 일본이 독도 영토편입을 주장하는 근거는 첫번째로, 근세초기 이래 독도는 일본영토였고 영토편입 직전까지 오랫동안 일본이 「실효적 경영」을 했으며 두 번째로, 영토편입 당시 독도는 주인 없는 돌 섬이었으므로 「무주물선점(無主物先占)」을 한 것이라는 두 가지 논리로 집약될 수 있다.

또한 일본은 제2차 세계대전의 결과를 마무리하기 위해 연합국과 일본 사이에 맺어진「대일평화조약(Treaty of Peace with Japan)」에 실려있는 제2조 (a)항 일본은 한국의 독립을 인정하고, 제주도, 거문도 그리고 울릉도를 포함하는 " 한국에 대한 모든 권리(right), 권원(title)과 청구권(claim)을 포기한다."의 세 섬에 대한 해석에 있어서 우리 나라와 일본은 큰 의견차이를 보이고 있다.

우리 나라는 이 세 섬의 한국의 영토에 포함되는 중요한 섬의 예로서 언급된 것이며, 따라서 울릉도에 딸린 섬인 독도는 당연히 한국의 영토에 포함된다고 보고 있다. 반면에 일본은 이 세 섬은 한국 영토의 가장 바깥쪽에 있는 외곽선을 표시하는 섬들이며, 따라서 독도는 한국 영토에서 제외된다고 주장하고 있다 

외무성 관료 출신의 관변학자 가와카미 겐조(川上 健三)를 중심으로 다수파를 이루고 있는「고유영토=실효. 메이지(明治)시대에 와서도 오키 도민(島民)들은 울릉도로 가는 길에 죽도(竹島)에서 전복 등 해산물채취에 종사했다. 1898년께 부터는 오로지 강치(물개 비슷한 바다동물)잡이에 전념하게 됐다.

그러자 「강치적 경영론」은 1966년 가와카미가 펴낸 「다케시마(竹島)의 역사지리학적 연구」에 매우 상세하게 기술돼 있다. 저자가 외무성조사관이었을 때 쓴 이 책은 일본측이 독도영유권을 정당화하는데 인용되는 가장 유력한 문건이다. 독도의 실효적 경영에 관한 가와카미의 주장은 다음과 같이 요약된다.
 

죽도(竹島)의 개발럭嚥동 관해서는 1618년에 오타니(大谷)레ザ粲タ(村川) 양인이 막부정부로부터 울릉도로 가는 도항권을 얻어 이 섬의 개발에 종사했고 울릉도를 오가는 길에 지금의 竹島에 들러 어획을 했다. 이에 관한 고문서는 많다. 또한 이 섬의 경영을 단적으로 말해주는 1696년 작성된 것으로 추정되는 「정확한 지도」도 있다.
 

강치잡이에 나서는 사람이 급속히 늘어나 강치가 절멸위기에 처하게 됐기 때문에 1904년 9월 나카이(中井 養三郞)가 독도의 영토편입렝鍛釉 요청하게 됐다』「국사대사전(國史大辭典)」제9권「죽도(竹島)」항; 길천홍문관(吉川弘文館) 1988년간) 이는 그 자신이 집필한 독도연구서의 핵심적 내용을 일반인이 알기 쉽게 간략하게 정리한 것이다.


일본측은 울릉도가 조선조의「공도정책(空島政策)」으로 4백50년 동안 무인화해 있는 사이에 오타니(大谷)등이 울릉도를 「발견」, 그곳에서 벌목에 종사하면서 독도에서 어로활동을 한 것을 중시한다. 가와카미와 같은 「실효적 경영론자」들은 수 백년 동안 비어있던 울릉도로 본토의 한국인들이 직접 나가서 개발에 손을 댄다는 것은 불가능했으며 따라서 더 멀리 떨어진 독도로 나가는 일은 더더욱 어려웠다는 주장이다.


이상이 일본측 독도영유권주장의 주요핵심이다. 이를 철저하게 논박하고 제압하기 위해서는 현재 확보하고 있는 우리측의 자료와 사료를 한층 더 보강해야 한다는 지적이다. 영토문제는 가장 민족주의적인 성격을 띠기 때문에 그것이 일본측에서 제기될 때 감정폭발이 먼저 일어날 가능성이 크다. 감정을 진정시키면서 일본을 침묵케 하는 길을 찾는 것은 미래지향적 한렝構喚甕 위해 한국인이 발휘해야할 지혜다.
 

우리의 입장

정부는 독도문제에 관해 「무대응」이 최선책이라는 인식을 갖고 있다. 현재 우리가 독도를 실효적으로 지배하고 있는 만큼 일본측의 「시비」에 일일이 대꾸할 필요가 없다는 것이다. 우리측 입장의 근거는 아래와 같다

지정학적 근거

우리 영토인 울릉도에서 독도까지의 거리는 48해리인데, 일본 은기도에서는 이 거리의 약 2배인 82해리이다.
따라서 지정학적으로 가까운 우리 나라에 포함되어야 한다


역사적 근거

1. 독도는 신라시대에 울릉도와 더불어 우산국을 형성하였으며, 우산국은 신라 지증왕 13년 (512년) 신라에 귀순하여 왔다. 그 이후 계속 고려와 조선을 거쳐 현재까지도 우리 나라의 관리하에 있다.

2. 일본이 1905년 도근현시 40호 행정초지를 취한것은 독도가 일본의 고유영토가 아님을 실증하는 것이다.


국제법상 근거

1. 그 지역의 주인이 없어야 한다.
2.영역취득의 국가의사가 있고, 그 의사를 대외적으로 공표 하여야 한다.
3.실효적인 점유가 있어야 한다


카이로 선언

포츠담선언 '카이로선언'을 보면 폭력과강요에 의해 취득한 모든 영토를 돌려준다는 구절이 있으며, 일본은 포츠담선언을 통해 카이로선언을 전적으로 수용한다는 것을 선언하였으므로, 폭력과 강요에 의해 빼앗겼던 독도를 일본은 당연히 포기해야 한다.

당시 일본의 폭력성을 증명하는 대표적 예가 '고종강제퇴위'사건이다. 일본은 1905년 그들의 강요로 체결된 을사조약으로 대한제국의 외교권을 빼앗는다. 이에 대항하여 고종황제가 국가의 자주권회복을 위해 헤이그로 밀사를 파견한자 일본은 이를 빌미로 궁궐밖에 대포를 배치한 채 고종황제를 위협하여 강제 퇴위시켰다


국제사회 상황에 따른 우리의 입장


독도가 역사적으로나 국제법상으로 대한민국의 영토라는 정부의 입장은 확고하다. 그러나 일본이 독도에 대한 영유권을 주장하고 나올 경우 우리도 같이 영유권을 주장하며 맞대응 하면 국제적으로 독도가 분쟁 수역이라는 인식을 심으려고 하는 일본측의 의도에 말려드는 꼴이 된다. 따라서 소리나지 않게 독도에 대한 실질적 점유를 강화함으로써 일본이 제풀에 지쳐 포기하도록 만드는 것이 정부의 전략이라고 할 수 있다.


현재 독도에 접안시설 공사를 벌이고 있는 것도 이러한 전략의 일환이다.일본이 독도 영유권을 「탈환」하기 위해 당분간 실력행사에 나설 가능성은 없다는 것이 정부의 판단이다. 이는 한·일관계를 돌이킬 수 없는 상태로 만들뿐만 아니라 국제적으로도 커다란 비난의 대상이 될 것이기 때문이다. 일본의 문제제기는 훗날을 기약하기 위한 「기록용」인 셈이다.

그러나 정부의 「무대응」 전략에도 한계는 있다. 94년 발효된유엔해양법협약에 따라 전세계가 바다의 경계선을 긋기 위한 작업에 들어갔고 한·일양국도 그 예외가 아니기 때문이다. 흔히 말하는 배타적 경제수역(EEZ : Exlusive Economic Zone)은 그 수역의 주인이 되는 연안국이 그 수역 안에서 돈벌이가 될 만한 모든 경제적인 활동을 배타적(독점적)으로 할 수 있는 수역을 가리킨다.

이 수역은 영해와 공해의 중간에 자리잡는 '제3의 수역' 이다. 이 수역의 성격은 경제 활동 면에서는 영해와 같고, 선박이나 비행기의 통과와 국제 통신 등에 있어서는 공해와 같다. 이 수역의 주인이 되는 연안국이 배타적으로 누릴 수 있는 권리는 대강 다음과 같다.


◎생물, 비생물 자원의 탐사와 개발 및 보존과 관리

◎수력, 조력, 풍력 발전을 비롯한 경제적 탐사와 개발

◎인공섬 시설 및 구조물을 설치 운영 하는 권리

◎해양 환경의 보호 보존에 대한 관할권

◎해양에 대한 과학적 조사권

이상과 같은 특성 때문에 이 수역을 '자원 영해'라고 부르기도 한다. 하지만 이 수역에서 다른 나라들의 모든 권리가 박탈되는 것은 아니다. 다른 나라들은 이 수역에서 선박 항해 및 비행기상공 비행의 자유와 해저 전선 파이프라인 부설 등의 자유를 지닌다.


앞으로의 협상추이에 따라서는 독도문제가 국제해양법재판소등의 심판대상이 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그러면 정부가 아무리 무시하려고 해도 일본과의 영유권 다툼은 피할 수 없게 된다.정부는 이런 상황이 오더라도일본측의 논리를 제압할 수 있는 아직 공개하지 않고 있는 각종 역사적 자료와 지도들을 충분히 확보하고 있다고 자신하고 있다.


※참고자료

울릉도에서 뱃길로 3시간 여 소요(군함이나 해경정일때 소요시간)되는 '경상북도 울릉군 울릉읍 독도리'라는 행정구역을 가진 독 도. 해발 98m의 동도와 해발 168m의 서도라는 두 개의 주요 섬과 주변의 가제바위, 지네바위, 구멍바위, 미륵바 위 등 각각의 생김새에 따라 이름이 붙여진 36개의 암초로 구성된 독도. 250만년 이상 전에 울릉도, 제주도 보다 먼저 형성된 해저산의 진화과정을 한눈에 알아볼 수 있는 세계적인 지질유적이라는 독도. 천연기념물 336호로 지 정된 바다제비, 슴새, 괭이갈매기의 번식지 등 다양한 그들만의 아름다운 생태계가 형성된 독도

*도대체 가로세로 400m의 이 조그마한 땅덩이에 무엇이 있길래, 한국과 일본은 이리도 오랜 세월 한치도 양보할 수 없는 영유권 전쟁을 벌이고 있는가?

㉮ 독도의 일반적인 경제적 가치.

독도주변 해역은 황금어장이다.독도주변해역이 풍성한 황금어장이라는 것은 이미 널리 알려진 사실이다. 북쪽에서 내려오는 북한한류와 남쪽 에서 북상하는 대마난류계의 흐름들이 교차하는 해역인 독도주변해역은 플랑크톤이 풍부하여 회유성 어족이 풍부 하기 때문에 좋은 어장을 형성한다.

어민들의 주요 수입원이 되는 회유성 어족인 연어, 송어, 대구를 비롯해 명태, 꽁치, 오징어, 상어가 주종을 이루고 있으며, 특히 오징어잡이 철인 겨울이면 오징어 집어등의 맑은 불빛이 독도 주변 해역의 밤을 하얗게 밝히곤 한다. 또한 해저암초에는 다시마, 미역, 소라, 전복등의 해양동물과 해조류들이 풍성히 자라고 있어 어민들의 주요한 수입원이 되며, 특히 1981년 서울대 식물학과 이인규 교수팀의 조사에 의하면, 독도의 해조식생이 남해안이나 제 주도와 다른 북반구의 아열대지역이나 지중해 식생형으로 볼 수 있기에, 별도의 독립생태계 지역으로 분할할 수 있을 정도로 특유의 생태계를 구성하고 있다.

㉯ 독도의 군사적 가치 및 해양 과학적 가치

1905년 노일전쟁의 최후를 장식한 이른바 '동해의 대해전'에서 독도의 군사적 가치는 유감없이 발휘되었다고 한다. 당시 일본은 한국령 독도를 일본령 '다케시마'로 개명하며 시마네현 은기도(隱岐島)의 소관으로 1905년 2월 15 일에 일본내무성의 결정으로 독도를 강제적으로 일본령으로 편입하였으며, 1905년 8월 19일에는 독도에 망루를 준 공하였<극비 명치삼십칠팔년 해전사>기에, 러시아 함대를 맞아 대승을 거두게 되었다. 현재 우리나라 정부에서는 독도에 고성능 방공레이더 기지를 구축하여 전략적 기지로 관리하고 있으며, 이곳 관측소에서 러시아의 태평양함대와 일본 및 북한 해·공군의 이동상황을 손쉽게 파악하여 동북아 및 국가안보에 필요한 군사정보를 제공하고 있다고 한다.

또한 경상북도에 의하면 1998년부터 2001년까지 72억원을 들여 독도 북서쪽 800m 해상에 50평 규모의 철골 구 조물인 해양과학기지를 설치할 계획이라고 한다.(대구매일신문.98년 12월 4일자) 이 독도 해양과학기지를 통해 독도주변해역의 해양상태를 보다 명확하게 파악하여 기상예보모델의 초기값 중 해양상태를 나타내는 값을 보다 정확하게 입력시킴으로서 보다 적중률 높은 기상예보가 가능함은 물론, 지구환경 연구, 해양산업활동 지원과 해양오염방지에 효율적으로 대처할 수 있을것으로 기대되고 있다.

실제 1993년 10월 북한 청진항 동쪽 300km 해상에서 러시아가 핵 폐기물을 투기한 행위가 환동해권 국가인 한 국 및 일본을 극도로 자극하였으며, 이후 동해 내에 투기된 오염물질의 이동, 확산, 분해, 해저 침적과정 등을 이 해하고 정확히 예측하는 과학적 검토가 요구되고 있다.(동해의 해수 및 물질순환에 관한 연구 3차년도 최종보고 서. 과학기술처. 1997)

㉰ 독도의 지질학적 가치 .. 독도는 세계적인 지질유적

앞서 잠깐 언급되었지만, 독도의 생성연도는 지금으로부터 약 450만년 전부터 250만년전 사이인 신생대 3기의 플라이오세(Pliocene epoch)기간의 해저 화산 할동에 의해 형성되어졌으며, 이 시기는 울릉도(약 250만 전∼1만년 전)및 제주도(약 120만년 전∼1만년 전)의 생성시기 보다 앞선 시기이다. 생성시기로 따진다면 울릉도, 제주도의 형인 셈이다. 애국가의 표현대로 '동해물과 백두산이 마르고 닳은다면', 독도는 더 이상의 작은 바위섬이 아니고, 높이 2천여m의 거대한 산의 꼭대기라고 한다.

지질학적으로 보면 독도는 동해의 해저로부터 해저의 지각활동에 의해 불쑥 솟구친 용암이 오랜 세월동안 굳 어지면서 생긴 화산성 해산이다. 이러한 독도는 원래 동도,서도가 한덩리인 화산섬이었다. 몇십만년의 세월이 흐르며 바닷물에 의해 침식작용 과 바람에 의한 풍화작용을 거듭하며 원래 부드러운 성질의 돌이 천천이 깍여들어갔다.(파랑에 의한 해식작용) 이 러한 해식작용의 결과로 칼로 깍은듯 날카롭고 가파른 해식애(sea cliff)들이 만들어졌으며, 한편에서는 서도의 북 쪽과 서쪽 해안처럼 파식대지(wave-cut platform:파도에 깍여 만들어진 바닷가 해저의 평탄면) 이 형성되었다.

이러한 지질구조를 갖는 독도는 지질학적으로 큰 중요성을 갖고 있다. 독도는 해저 밑바닥에서 형성된 벼개용 암과 급격한 냉각으로 깨어진 부스러기인 파쇄각력암이 쌓여 올라오다가 해수면 근처에서 폭발적인 분출을 일으켜 물위로 솟다가 대기와 접촉할때 생기는 암석인 조면암, 안산암, 관입암 등으로 구성된 '암석학의 보고'라고 한다. 해저산이 수면위로 모습을 드러내는 경우는 드문 예이며, 또한 오랜세월 동안 파식 및 침강작용에 의해 원래 의 모양을 간직하기가 매우 어려운데, 독도는 해저산의 진화과정을 한눈에 알아볼 수 있는 세계적인 지질유적이라고 한다.

일본이 독도에 관심을 갖는 진짜 이유 - 독도주변 해역에 천연 가스층이 존재한다. 1997년 12월 러시아과학원 소속 무기화학 연구소에서 연구중인 경상대 화학과의 백우현 교수는 연구소장 쿠즈 네초프(Kuznetsov)로부터 '한국의 동해바다 한 지점에 붉은 색으로 하이드레이트 분포 추정지역임을 분명히 표기 하고 있는 지도'를 선물로 받았다.(신동아, 98년 9월호)'하이드레이트'란 메탄이 주성분인 천연가스가 얼음처럼 고체화된 상태로서, 기존 천연가스의 매장량보다 수십배 많은데다가 그 자체가 훌륭한 에너지 자원이면서도 석유자원이 묻혀 있는지를 알려주는 '지시자원'이라고 한다.

98년 5월 백우현 교수가 러시아를 재방문했을 때 '동해에 관련된 하이드레이트의 자세한 정보'를 부탁하자, 쿠즈 네초프 소장은 다음과 같은 의미 있는 답변을 했다고 한다. 『우리 연구소 규칙상 공개할 수 없는 자료입니다. 그런데 일본이 동해의 독도영유권을 끈질기게 주장하고 있 다지요?』. 신동아는 이 부분의 이야기를 매우 충격적으로 다루고 있다. "지금까지 일본이 한국의 영토인 독도를 자기네들 땅이라고 우겨온 중요한 이유가 동해상의 풍부한 해양자원 확 보를 염두에 둔 전략이라는 항간의 소문이 근거있는 것임을 보여주는 대목"이기 때문이란다.

현재 하이드레이트의 개발수준은 그 매장량이 막대한데도 개발기술이 초보단계이므로 러시아 만을 제외하고 상 업적 생산이 이루어지지 않고 있으며, 일본은 하이드레이트층에 대한 매우 축척된 탐사자료를 통해 99년 11월에는 난카이 해구에서 시험생산체계에 돌입한다고 한다. 1997년 기준 우리의 원유소비량은 전세계6위이며, 원유 수입량은 세계 4위이며, 에너지의 해외 의존도는 97.8%라고 한다.(신동아 98년 9월호. 1997년 에너지 경제연구원) 이러한 이유로 정부는 1970년부터 30만㎢에 달하는 대륙붕에 7개의 광구를 설정하여 해저탐사를 벌여왔으며, 실제 89년과 93년에는 비록 경제성이 미흡했지만 동해중심해역에서 가스층이 발견되었으며, 최근 98년 7월 27일에 는 울산 남동쪽 50km 해상의 대륙붕에서 이전의 것과 비교 안되게 뛰어난 천연가스층이 발견되었다.

실제 국내 대륙붕 및 인접 중국과 일본의 석유 발견지점을 지도를 보면, 동중국해에서 동북방향으로 울산남동 쪽을 거쳐 독도인근해역을 거쳐 일본 서부연안을 향해 유전지대가 펼쳐진다고 한다. 30만㎢의 광할한 대륙붕에서 단지 30개의 시추공만을 꽂았을 뿐이며(일본은 38만㎢의 대륙붕에서 175개의 시추 공을 꽂았다고 한다), 이중 12개는 외국계회사가 국내에 석유를 팔려면 의무적으로 한반도 대륙붕에서 석유를 탐 사해야 한다는 의무조항 때문에 그나마 형식적으로 시추공을 박았다고 한다.

금번 러시아 과학원의 연구소에서 제공한 동해의 '하이트레이트층' 의 분포추정 지도나 석유발견지도의 경향을 보았을 때 독도주변해역의 해양석유자원의 보유가능성은 매우 명확하다고 하며, 그 경제적인 가치 또한 매우 높다 고 한다독도주변해역의 새로운 경제적 가치를 정부는 분명 상기해야 할 것이며, 결코 독도주변해역의 경제적 가치와 무관하지 않을 일본정부의 독도영유권 주장을 의미깊게 상기해야 할 필요성이 재기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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