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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설일 : 2005/06/19
 

 2001년 지식공작소 펴냄

패트릭 맥컬리 지음 /
유경수 옮김 / 강호정 옮김 / 고동욱 옮김 / 김은숙 옮김 / 박상규 옮김 /
박수진 옮김 / 박은진 옮김 / 안창우 옮김 / 옥기영 옮김 



책 정보

책 소개
대형 댐의 생태와 정치 사회학. 전력과 물, 식량의 공급원으로서, 홍수의 조련사로서, 사막의 젖줄로서, 국가 독립의 보증서로서, 인류가 건설한 가장 거대한 단일 구조물로서 댐은 지난 세기 진보의 상징이었다. 엔지니어와 관료들, 국가주의자들과 혁명가들에게, 대형 댐은 애국적 자부심과 자연 정복의 잠재적 상징이 되었다. 하지만 정말 그런가.
이 책은 오늘날 당연한 일처럼 되어버린 댐 건설과 그 정책에 근본적인 문제제기를 던지고 있다. 책에 따르면, 댐의 혜택은 지속적으로 과장된 반면, 비용과 악영향은 끊임없이 과소평가 되어왔으며, 덜 파괴적이고 공동의 이익을 보장하는 많은 대안들이 논의조차 되지 못하고 있다. 이런 문제의식에 기반해 이 책은 댐 건설이라는 인간 행위가 끼치는 광범위한 파장에 관해 지난 세기 동안 축적된 연구 결과를 종합하고 있다.

흔히 댐 건설의 현실적인 이유들로 내세워지는 전력공급, 가뭄 및 홍수 조절과 같은 것들이 사실은 미래에 댐 건설의 발목을 잡을 것임을 이 책은 방대한 자료와 연구를 토대로 설득력 있게 보여준다. 아울러 환경보호론자나 피해 주민이 아니더라도 모든 납세자가 댐 건설을 반대할 충분한 이유가 있다는 것을 끈질긴 논쟁으로 분명히 한다. 궁극적으로는 강 유역과 생태계, 인류공동체의 어울림에 대한 이해가 깊어갈수록 댐 해체 운동이 활성화되고 무조건 댐을 짓는 관행이 사라질 것으로 예견한다. 무엇보다도 이 책은 댐을 짓는 관행이 댐 건설 기관의 정치경제적 이해관계와 모순 때문임을 밝히고 있다.

「소리 잃은 강」의 핵심 메시지는 강은 강줄기에서 분수령에 미치는 하나의 분리될 수 없는 시스템이며, 이 시스템의 가장 중요한 본질은 강이 '흐른다'는 점이라는 것이다. 따라서 강을 '자유롭게 흐르는' 것이 아닌, 저수지처럼 가두어 놓는 것에 반대한다. 이런 관점에서 이 책은 강과 강 유역의 생태 및 지질 작용에 많은 지면을 할애하고 있다. 이미 동강 댐으로 많은 홍역을 치렀고, 댐 건설만이 우리의 물 부족을 해결하고 전력생산을 할 수 있는 유일한 대안으로 아는 우리에게 이 책은 신선한 문제제기를 넘어 댐에 대한 사고 자체를 근본적으로 바꿀 수 있는 계기가 될 것이다.

저자 소개
패트릭 맥컬리(Partick McCully)

캘리포니아에 있는 국제 하천 연대의 캠페인 디렉터이다. 우루과이의 환경 비정부 기구에서 일했고, 1992년부터 나르마다강의 사다사로바 댐에 반대하는 인도 활동가들과 함께 일했다. 지금은 'The Ecologist'의 부편집인을 맡고 있으며, 'Multinational Monigot'에 환경 관련 글을 기고하고 있다. 저서로는「위기의 행성 Imperilled Planet」「지구 정상회담 NGO 행동 가이드 An NGO Action Guide to the Earth Summit」가 있다.

책 표지 글
이 책은 내가 아는 한, 전세계 댐 산업체에 대한 가장 완벽하고 강력한 비판이다. 인상적인 사례 연구와 지칠 줄 모르는 논박으로, 자연의 정복이 얼마나 시대에 뒤떨어진 위험한 생각인지를 설득력 있게 보여준다. - 도날드 위스터(캔자스 대학 석좌교수,「제국의 강 Rivers of Empire」의 저자)

우리는 강에 무슨 일을 저질렀는지에 관한 최고의 연구, 최고의 저작. 댐을 둘러싼 비극과 낭비, 허울과 사리사욕들. 맥컬리는 이 모든 것들을 펼쳐 보인다. 또한 훨씬 더 분별 있게 창조의 넉넉하고 아름다운 산물을 다룰 수 있다는 돌멩이 같은 증거를 제공한다. - 캐서린 코필드(「우림에서 In the Rainforest」의 저자)

'최고의 저작' 대형 댐에 관해 가장 포괄적인 사례들을 제공한다. 전 세계에서 수집한, 넘치는 경험적인 증거를 토대로, 대형 댐을 정당화하기 위해 사용된 모든 논점들을 분석하고 분쇄했다. 모두가 읽을 수 있는 뛰어나 학술서이다. 이제, 대형 댐의 건설이 어떻게 이성적인 것으로 여겨질 수 있었는지 궁금해질 것이다. - 가우탐 아파

댐과 강의 물질 전환이 지구상의 강변 경관을 영원토록 바꾸어 놓았다. 패트릭 맥컬리는 강을 조절하려는 잘못된 판단의 유산과 그로 인해 잃어버린 건전한 환경, 생태계 및 종다양성을 기술하고 있다. 강의 조절이 문제의 해법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이라면 이 책을 꼭 읽어야 한다. - 데이브 웨그너·글렌 캐니언

넘쳐나는 댐 문제에 관한 최고의 설명서. 댐으로 강을 막음으로써 일어나는 일련의 가공할 충격과, 대안을 찾고 막강한 댐 로비에 맞서기 위해 무슨 일이 일어나는지 알고자 하는 이에게 맥컬리는 생생한 정보를 제공한다. 맥컬리의 책은 모든 정치가의 필독서이며, 공과 대학의 주요 교재로 마땅하다. - 브렌트 블렉웰더(미국 지구의 친구들 대표

[월간 함께사는길 기고문]지리산댐, 수도사업민영화의 음모

2008.07.23 16:34 | 수몰, 감정의 적체... | 파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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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간 함께사는길 기고문]지리산댐, 수도사업민영화의 음모

지리산댐, 수도사업민영화를 대비한 한국수자원공사의 음모

김석봉(진주환경운동연합 상임의장)


건설교통부와 한국수자원공사는 댐건설장기계획변경(안)을 작성하여 지난 4월 공청회를 개최하였다. 이후 6월 27일 「중앙하천심의위원회」의 의결을 거쳐 최종확정하였고, 7월 중 발표할 예정이었으나 어찌된 영문인지 발표를 미루고 있다. 이번 계획은 전국에 총 9개 댐을 건설하는 것이며, 지난 2002년 댐 반대운동으로 계획에서 배제되었던 남강상류댐(일명 지리산댐) 건설계획이 포함되어 있다.
  지리산댐은 1997년 댐건설장기계획에서 처음 선을 보였다가 전국적인 댐반대운동을 불러오는 계기가 되었었다. 건설교통부와 한국수자원공사의 무리한 댐 건설계획은 당시 낙동강 수질문제와 연계되어 4대강특별법을 제정하는 결정적인 계기가 되기도 했었다. 이런 문제로 정부합동 「낙동강물이용조사단」이 구성되었고, ‘댐 연계운영을 통한 수자원의 효율적인 이용으로 문제를 해소할 수 있을 것’이란 연구결과가 나오면서 지리산댐 건설계획의 당위성은 사라졌던 것이다.
  그런 역사를 가진 지리산댐이 이번 댐건설장기계획변경(안)에 다시 망령처럼 되살아났다. 건설교통부와 한국수자원공사가 밝힌 지리산댐 건설 이유는 하류지역 부족한 용수공급과, 홍수조절기능으로 인한 피해저감, 댐주변지역의 관광자원개발이 그것이다. 특히 눈길을 끄는 것은 지리산댐 예정지인 경상남도 함양군수가 한국수자원공사를 수차례 방문해 지리산댐을 지역숙원사업이라면서 댐 유치활동을 했고, 이 점을 긍정적으로 평가했다고 한다.

오로지 댐을 건설하기 위한 짜맞추기식 계획
  지리산댐 건설계획은 짜맞추기식 계획이라는 사실이 곳곳에서 드러나고 있다. 댐건설장기계획은 상위계획인 수자원장기종합계획이 수립된 후 그 계획에서 나타난 유역별 수자원의 과부족량을 근거로 수립해야 한다. 그러나 수자원장기종합계획은 2006년 7월 수립되었는데 비해 이 계획은 2004년에 이미 착수했으며, 2005년 7월엔 댐건설 현지조사에 들어가는 등 비상식적으로 진행되었고, 2006년 12월 초안이 작성된 것으로 드러났다. 이는 댐 건설을 합리화하기 위해 수자원장기종합계획의 수자원 과부족량을 짜맞추지 않고는 근거를 마련할 수 없는 일이다.
  뿐만 아니라 이번 계획에서 나타난 지리산댐은 처음 계획 당시보다 4m가량 높이가 낮아진 것으로 나타났다. 높이 4m를 낮춘 이유는 상시만수위선을 경상남도 함양군에만 국한시켜 상류 전라북도 지역과 실상사의 댐 반대운동을 차단하려는 것이다. 2000년 전국적인 댐 반대운동이 실상사에서 시작되어 불교계, 나아가 전국적으로 번진 것을 고려해 댐 건설로 인한 실상사의 피해를 해소하겠다는 속셈이다. 댐 반대운동이 일어나는 지역을 위해 댐 높낮이를 고무줄처럼 변경하는 것 또한 댐을 만들기 위한 짜맞추기식 계획이다.
  하류지역 홍수조절효과를 강조하지만 부산지방국토관리청은 지난 2002년 이후 산청군 경호강 본류에만 수백억 원이 넘는 예산을 들여 홍수에 대비한 하도개량사업을 추진했다. 그동안 남강 본류에 시행한 홍수피해방지용 하도개량사업만 해도 지리산 댐의 홍수조절효과를 크게 뛰어넘는 것이다. 게다가 한국수자원공사는 이번 계획을 다른 댐과의 연계운용방안을 포함했다고 밝히고 있다. 그러나 계획 어디에도 중소규모 저수지를 반영한 내용이 없다. 농촌공사는 1997년 이후 남강 상류에 많은 농업용수댐을 완공했고, 몇 개의 대형댐은 건설 중에 있다. 이들 댐의 저수량을 합치면 지리산 댐의 총 저수량에 육박할 것으로 판단되지만 수자원공사는 이 농업용수댐을 계획에 전혀 반영하지 않았다.

국가계획이라고 볼 수 없을 정도로 허접하고 황당한 계획
  이번 계획에 지리산댐이 포함된 결정적 배경은 댐 건설예정지인 경상남도 함양군수의 로비다. 함양군수는 한국수자원공사를 수차에 걸쳐 방문해 지역숙원사업 운운하면서 댐 건설을 요청했다. 함양군이 댐 건설을 요청한 이유는 용수공급이나 홍수피해예방이 목적이 아닌 관광개발이었다. 지리산 기슭에 인공호수를 만들어 관광지로 개발한다는 것이 함양군의 속셈이었다. 한국수자원공사도 함양군의 의견을 반영해 댐 주변지역 경제활성화를 지리산댐 건설계획의 중요한 이유로 든 것이다.
  다목적댐 건설계획은 국가의 장기적인 수자원정책 속에서 수립되는 것이지 일개 지방자치단체가 유치한다고 될 일이 아니다. 그런데도 한국수자원공사는 지리산댐을 지방자치단체가 요청했고, 댐이 지역경제활성화에 기여할 것이라는 점을 계획에 반영했다. 이런 사실대로라면 댐의 본래 기능은 뒷전이고, 관광자원으로 활용하는데 초점을 맞춘 참으로 황당한 계획이라 아니할 수 없다.
  무엇보다 황당한 것은 이번 변경안에 댐을 건설해야할 근거가 되는 각종 수치가 전혀 구체적이지 않다는 점이다. 이 자료에 의하면 남강상류에 용수부족현상이 일어나 2016년이면 연간 1천5백만톤의 용수가 부족하다고 한다. 남강댐 하류에도 연간 7백만톤의 용수가 부족하여 총 2천2백만톤의 용수를 공급해야 한다고 한다. 그러나 어떤 요인으로 용수가 부족한지에 대한 충분한 근거자료는 제시되지 않았다. 하류지역 어느 지방자치단체에도 물부족으로 인한 피해자료는 존재하지 않았고, 유역 주민들의 면접조사에서도 물부족을 겪은 경험이 전무하다고 했다. 물이 풍부하기로 이름난 함양군과 산청군에 용수가 부족할 것이라는 논리는 상식적으로 납득이 되지 않는다.

수도사업민영화를 대비해 양질의 상수원을 확보하기 위한 음모
  지리산댐이 세상에 나온 1997년 처음 계획 당시에는 부산광역상수도사업의 일환으로 추진되었다. 부산시민들의 상수원인 낙동강 수질이 4급수를 오르내리자 부산지역 국회의원들이 부산광역시 상수도사업본부와 함께 다른 상수원을 확보키로 했다. 이에 정부가 예산을 반영해 지리산 일대에 상수원을 개발하고, 강변여과수를 개발해 1급수 수질의 원수를 확보하여 현재의 상수원수에 섞으면 2급수의 상수원수가 된다는 참으로 한심한 논리로 시작된 것이다.
  당시 일일 약 10만 톤의 생활용수를 지리산 일대에서 취수해 부산지역으로 양질의 상수원수를 공급한다는 것이 댐 건설의 중요한 이유였다. 그러나 이번 계획은 부산광역상수도사업과는 무관하게 진행되었다. 다시 말해 당장에 특히 필요한 상수원수는 아니라는 것이다. 그런데 왜 굳이 지리산댐을 추진하려는 것일까.
  근간에 와서 한국수자원공사는 대형댐의 폐해를 인정하는 듯한 발언을 하면서 중소규모 댐을 전국 각지에 많이 만들어 장래 물부족에 대비하겠다고 한다. ‘장래 물부족’이라는 전혀 구체적이지 못한 계획으로 1억톤 내외의 댐을 많이 만들려는 저의는 무엇인가? 이는 정부가 추진하려는 상하수도사업의 민영화를 대비하여 양질의 상수원을 미리 확보하려는 치졸한 음모다. 수도사업이 민영화 되면 지방자치단체마다 수리권을 보호하기 위한 정책을 강력하게 추진할 것이고, 그럴 경우 상수원을 확보하기란 그리 쉬운 일이 아닐 것이다.
  따라서 지리산 댐 건설계획은 한국수자원공사가 지역 주민들로부터 수리권을 강탈하기 위해 수립한 계획에 다름 아니다. 이런 음모를 간파하지 못하고 관광개발이라는 전혀 다른 목적으로 댐 유치를 추진한 함양군수의 어리석은 판단이 한 몫 했지만 궁극적으로는 한국수자원공사에 문제가 있다. 자신들의 사업을 유지하기 위해 그릇된 절차와 근거를 만들어 유역 주민들의 수리권을 강탈하는 작금의 댐건설장기계획은 전면 재검토되어야 한다.

  댐이 과연 필요한가?
  여하튼 지리산댐은 이미 건설해야할 명분을 잃었다. 수리권을 강탈하여 수도사업민영화에 대비하려는 음모 외에도, 홍수조절에 대한 근거도, 용수공급의 명분도 사라져버렸기 때문이다. 게다가 댐 건설의 본래 목적과는 전혀 생뚱맞게도 관광개발사업과 지역경제활성화가 주된 이유였으니 두말할 나위도 없다. 군수의 일방적인 댐 유치활동이 수몰지구 혹은 주변지역 주민들의 삶을 담보로 하고 있다는 사실 또한 간과할 수 없는 일이다.
  댐이 필요한가 아닌가에 대한 근본적인 논의는 차치하더라도 명분도 근거도 없이 추진하는, 건설을 위한 건설에 목적을 둔 토건이데올로기는 사라져야 한다. 지리산댐이 그 대표적인 예이다. 지리산댐에서 댐의 진면목을 발견하였다면 전국에서 추진되는 다른 크고작은 댐들 또한 마찬가지일 것이다. 그동안 전국 각지에 수없이 많은 댐을 만들었는데도 문제가 더 많이 발생하는 현실이 그것을 증명한다.
  지난 7월31일 지리산댐 건설예정지 수몰지역 주민들은 한목소리로 외쳤다. “우리는 물난리도, 물부족도 한번 겪어보지 못했다.” “치적자랑 하려고 주민들 속이고 댐 유치한 함양군수 퇴진하라.” “우리 마을을 지도에서 없애지 마셔요.” 댐에 대한 평가도 없이 주민들의 살림터를 혹독하게 짓밟는 댐 건설계획은 개발이익을 독점해온 토건세력의 것이지 더 이상 국가계획이 아니다.
  우리는 이번 댐건설장기계획이 이처럼 엄청난 문제점을 포함하고 있다는 점에 주목하면서현재 계획된 상하수도사업 민영화와 국가수자원정책을 우려하지 않을 수 없다. 유역 주민들과 지방자치단체가 수리권을 잃고 민영화된 수도사업에 매달린다면 앞으로 얼마마한 희생이 따를 것인지는 불을 보듯 뻔하다. 지리산댐은 물론 전국에 걸쳐 추진되는 중소규모 댐 건설계획, 물과 관련된 기본적인 정책까지 엄격한 평가가 이루어져야 한다.

천당보다 가기 힘든 방울재

문순태 소설 『징소리』의 무대 장성댐

고향은 어머니의 자궁 속이며 발원이다. 문순태 소설이 소외된 농촌의 현실과 고향상실을 지류로 삼고 흐르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문순태의 이름을 세상에 알린 연작 장편 『징소리』도 수몰이라는 처참한 현실로 인해 근원인 고향을 송두리째 잃어버린 사람들의 이야기다. 수몰과 함께 사라져버린 고향은 곧 존재의 상실을 의미했고, 근원에서 아득히 멀어진 수몰민들은 형체조차 없는 그림자 같은 모습으로 다른 삶의 현장(도시)에 편입된다.

형체가 온전치 못하니 정신이라고 완전할 수 있을까. 『징소리』에 등장하는 사람들은 대부분 어딘지 한군데가 어긋난 사람들이다. 현재의 시각으로만 대하면 설득력 자체가 성립되지 않는 설정이지만 『징소리』가 세상으로 나온 시점이 30년에 가깝다는 것을 상기하면 모든 것이 인정된다. “지금이야 고향에 남아 있는 사람들이 이상하게 여겨지기도 하지만 그때 사람들은 대부분 고향 떠나면 죽는 줄 알았다”는 것이 문순태의 말이다.

70년대 후반 산업화의 물결이 급속도로 한반도를 점령해 나가고는 있었지만 여전히 기본 축은 농업이었다. 고향을 떠나는 축들은 씻어낼 수 없는 죄를 범한 사람들, “어쩌다 일가천척들 간에 배 맞추고 밤 보따리 싸는 이들”을 제외하면 제 발로 고향을 등지는 사람이 거의 없던 시절이었다.

전라도 지역에서는 처음으로 만들어진 장성댐은 한 개 면 전체를 완전히 수장시켜버렸다. “수몰지구였던 장성군 북상면 사람들에게 댐은 죽음의 그늘과 다름없었다”는 것이 문순태의 증언이다. 댐의 건설과 함께 북상면은 지도에서조차 이름이 사라져버렸다.

뭍과 가까운 곳으로만 엷은 살얼음을 깔고 있는 장성댐 위에 서서 문순태는 “장성호를 보기 위해 찾아온 사람들에게는 아름다움으로 비치는 저 호수의 물이 수몰민에게는 무덤이다”고 했다. 실제로 수많은 사람들이 장성댐 물무덤을 찾아 염치없이 아름다움을 떠올리고 떠났다. 장성댐 주변에는 넓은 주차장까지 마련돼 있다. 댐이 처음 만들어지던 시점에는 신기한 구경거리를 보러온 사람들이나 낚시꾼들로 장성댐은 크게 붐볐다. 숫자가 많이 줄기는 했지만 최근까지도 그 발길은 여전히 이어지고 있다.

수몰된 땅의 징채잡이
『징소리』가 씌어진 계기는 아주 사소한 사건에서 비롯된다. 당시 문순태는 여러 글짓기 대회에 심사위원으로 불려 다녔다. 저축 작문 심사 도중 문순태는 저금통장을 가지고 싶어하는 아이의 투정에 벽에 걸린 징을 고물상에 팔아 돈을 만들어주는 아버지의 이야기를 만난다. 아버지의 고향은 수몰된 장성댐이었다. 징은 마을 대대로 물려 내려온 물건이었고, 아버지는 마을에서 이름난 징채잡이였다. 어린 학생의 짧은 작문에서 그는 가슴을 치는 징소리의 울림을 만났고, 수없이 많이 장성행 버스에 몸을 실었다.

<벼락맞을 소리 말어. 여그에 방울재 사람들 혼이 들어 있는 겨. 허칠복이 혼도 순덕이 혼도, 장말재 혼도, 모두들 이 속에 움씰하게 남아 있는 겨. 방울재 사람들 목소리가 들어있는겨.>
『징소리』의 허칠복은 방울재의 징채잡이로 마을이 수장될 때 가지고 나온 징에 마을의 혼이 오롯하게 들어가 있다고 믿는다. 주위 사람들의 타박에도 허칠복은 징을 목숨처럼 소중하게 간직하며 잠을 잘 때도 징을 머리에 베고 잔다. 허칠복의 눈에는 물 속에 잠긴 방울재가 훤하게 보이고, 징은 곧 방울재가 아직 세상에 존재한다는 징표가 된다.

방울재는 장성댐 아래 가라앉은 북상면에 실제로 있었던 마을이다. 다만 마을 이름이 다르다. 실제 지명은 ‘덕재’로 수몰된 뒤로도 오랫동안 물 속에서 수장되기 전의 모습을 그대로 간직하고 있었다. 지금이야 환경에 대한 생각이 일반에 확산되었지만 당시만 해도 댐을 만들 때 마을의 철거는 고려사항에도 끼지 못했다. 단지 사람만 빠져나가고 마을은 그대로 둔 채 물이 들어찼다.

문순태는 보트를 타고 장성호를 한바퀴 둘러보았던 당시의 기억을 아직도 잊지 못한다고 했다. 콘크리트 구조물 위에서 바라보았던 호수와 호수의 한가운데서 내려다 본 물 속은 충격일 만큼 다른 모습을 하고 있었다.
물 속에는 마을 앞 팽나무며 좁고 구불구불 휘어지는 고샅길 두껍다리, 우물, 돌담, 불에 그을린 감나무와 굴뚝이며 장독대까지도 그대로 잠들어 있었다. “물 속으로 시선을 두고 있는 동안 물 속의 마을에 아직도 사람이 살고 있는 듯한 착각이 일었다. 낮닭우는 소리나 송아지 울음소리가 환청으로 들려올 정도였다”는 게 문순태의 말이다. 당연히 실제 수몰민들에게는 수몰 자체가 인정되지 않았다.

『징소리』에서 도시 밑바닥에 모래처럼 흩어졌던 북상면 사람들이 몇 해를 넘기지 못하고 하나 둘 장성댐 근처로 모여든 이유는 표면적으로 생계의 막막함이지만 그 안에는 근원에 대한 회귀의 의미가 숨어 있는 것이다.

“아직도 저 물만 보문 눈물이 나”
다시 돌아온 사람들은 호수 주변에 새로운 마을을 만들었다. ‘남은바우’(북하면 쌍웅리)라는 이름을 가진 마을은 이십 수년의 시간차를 둔 지금에도 『징소리』에 나타난 시절의 향기를 많이 간직하고 있었다. 다만 낚시꾼을 상대로 하던 매운탕 집들은 규모가 커진 대신  숫자가 줄어 있었다. 소설에서처럼 판자를 잇대 만든 허름한 매운탕집은 찾아볼 수 없었다. 행정구역은 장성군 북상면에서 북하면으로 편입된 지 오래였다. 다만 우체국과 파출소, 분교가 돼버린 초등학교만이 북상이라는 이름을 그대로 간직하고 있었다. “수몰민들의 건의에 의한 상징적인 조치”였다는 게 수몰민인 북상우체국장 변동화씨의 말이다.

<지금 이 세상 어디에 방울재가 있다던가. 자네 면사무소에 가서 방울재라는 마을이 있나 물어보소. 아니면 우체국에 가서 방울재로 편지를 부쳐보소. 그 편지가 가는가 되돌아 오는가 말이여. 시방 방울재 찾기란 천당가기보담 어렵다는 것을 알아야지. 방울재는 삼 년 전에 시푸런 물 속에 잠겨 버렸네…>

세상에는 사라졌지만 여전히 존재하는 것들이 있다. 수몰민들에게는 방울재가 그랬다. 다시 고향땅 언저리로 돌아온 수몰민들은 자신들의 지붕 위로 낚시바늘을 던지는 낚시꾼들을 상대로 생계를 잇는다. 그러나 요즘은 낚시꾼들의 발길도 예전 같지 않고, 고향에 돌아왔지만 뚜렷이 해먹을 것을 찾지 못했던 수몰민들은 하나둘 다시 고향을 등졌다. ‘남은바우’ 마을은 사람의 온기가 없는 빈집으로 넘쳤다. 결국 방울재는 수몰민들의 마음 속에 존재하는 곳일 뿐이며 현실에서는 편지를 부쳐도 갈 곳이 없다.
 
“오메 슬펐제. 수몰된 뒤에도 고향 떠나지 못하고 여그서 이라고 살제만 아직도 저 물만 보문 눈물이 난당께. 지금이라도 저 물 빼고 그 땅 들으가서 살라고 하문 원도 한도 없을 것이여.” 마당 앞에 물이 차 오를 때까지 ‘덕재’를 지키다가 가장 마지막에 마을을 나왔다는 구인순(71)씨의 말이다.

장성댐은 5826명의 북상 주민을 고향에서 강제로 밀어냈고, 삶을 해체시켜 버렸다. 문순태는 여전히 푸르게 넘실거리는 장성댐을 보며 “수몰민들이 잃어버린 것은 그들이 태어나고 자라온 공간으로서의 고향만이 아니다. 그들이 그 땅 안에서 겪어온 역사도 문화도 정서도 사람들 사이의 관계까지도 모두 함께 수장되었다”고 말했다. 높이 36m, 길이 1920m의 장성댐은 수몰민들의 눈물이 고여 만들어진 호수일 터이다.
정상철 기자 
dreams@jeonlado.com

                            문순태
지금껏 문순태를 붙들고 있었던 것은 역사의 흐름 앞에 선 인간이었다. 한국전쟁과 그 연장선에서 바라본 80년 오월은 작가 문순태에게 쉽게 벗어 던질 수 없는 짐이었다. 그는 “광주의 작가라면 80년 오월에서 완전히 자유로울 수는 없다”고 말했다. 문순태의 소설이 역사의 흐름 앞에 몸 부딪쳐 살아온 민중들의 질긴 생명력과 거대담론을 담아온 이유가 여기에 있다. 그러나 나이 60 중반에 이른 요즘 그는 다시 한국 정서에 천착하고 있다. “나이가 부드러움에 내재된 강한 힘을 깨닫게 했다”는 것이 그의 말이다.
문순태는 1941년 담양에서 태어났으며 『한국문학』에 「백제의 미소」를 발표하며 작품 활동을 시작했다. 이후 『시간의 샘물』 『고향으로 가는 바람』 『철쭉제』 『타오르는 강』 『그들의 새벽』 『된장』을 세상에 내놓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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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출력  2003-03-17 17:53:50  
ⓒ 전라도닷컴  

처형의 땅, 수장되는 삶의 뿌리

이종구

수몰지를 찾아가면, 흡사 처형장의 스산함과 잃어버리는 땅의 아름다움이 모순되어 공존하고 있는 풍경을 본다. 붉은 스프레이 페인트로 담벼락에 써 놓은 '철거' 표시는 마치 '사형'하고 가슴을 찌르는 판결문 같기도 하고, 그래서 곧 수장될 풍경들은 사립문 옆 잡초마저 한층 아름답고 정겨워 보이는 것이다.

그러나, 그 아름다움은 얼마나 슬픈 것인가. 자신의 고향을 소위 '국토개발'의 그늘 속에 수장시켜야 하는 수몰민들의 마음은 자신의 삶의 뿌리를 땅에 묻는 것과 다름없는 것이다. 조상의 숨결과 자식의 탯줄까지 묻어 놓은 땅, 내 집의 안방과 그 아랫목, 그리고 핏줄 같은 문전옥답을 물 속에 버리고 이웃들과도 헤어져 낯선 땅으로 떠나야 한다. 설사 부근의 산비탈에 새로이 만든 동네로 이사간들 무엇이 정겹고, 대대로 평생을 지켜온 땅을 삼킨 바다 같은 호수를 바라보며 사는 일이 어찌 마음 편할 수 있으랴. 잘못된 농정과 농산물 수입개방에 쪼들리고 황폐해진 땅이었지만, 그나마 천길 물 속에 빼앗겨야 하는 삶을, 내 무딘 붓으로는 도저히 헤아릴 수가 없다. 마지막 농사를 지었으나 여물지도 않아 쭉정이가 된 들판을 불태우고, 일당 일만 원에 농약병 폐비닐 주워 떠날 자리를 깨끗이 치우는 수몰민. 이제 다시는 밟을 수 없는 땅 영혼이 되어서 혹은 꿈속에서나 밟을 수 있는 물 속 고향. '국토개발' 의 실향민.

이 수장 당하는 삶의 뿌리와 한의 풍경을 내 작은 몇 점 그림으로는 도저히 설명할 수가 없다.

1992년 10월

출처:http://www.kcaf.or.kr/art500/leejonggu/self_text_7.htm

수장(水葬)시켜버려!...밤11시59분45초

2007.03.18 21:53 | 수몰, 감정의 적체... | 파랑

http://kr.blog.yahoo.com/pleamore/3391 주소복사

수장(水葬)시켜버려!...밤11시59분45초
[노동효의 길 위에서] 경기도 연천, 재인폭포를 찾아서
2007-03-17 오전 10:15:22        
[노동효 _ 자유기고가] 

- 난 보사노바가 좋아요. 내 취향에 딱 맞는 거 같아! L형은 어떻게 생각해?
- 들어도 듣는 것 같지 않고, 다른 일할 때 방해도 안되고, 살랑 살랑거리는 음악이지.

연천의 재인폭포를 향해 달리며 우리는 앤 샐리가 노래하는 보사노바 곡을 듣고 있었다. 사실 L형이 표현한 보사노바의 느낌이 보사노바에 대한 세인들의 일반적인 평가인지 확인하지는 않았지만, 적어도 내게 있어서 ‘들어도 듣는 것 같지 않고, 다른 일할 때 방해 안되고, 살랑살랑 거린다’는 표현은 내가 보사노바란 음악장르에 보이는 호의와 정확히 일치했다. 보사노바의 ‘살랑살랑’에서 느껴지는 ‘가벼움’은 흔히 10대들을 대상으로 하는 가벼운 유행가들에 대해서 대중음악평론가들이 지적하는 그 ‘가벼움’과도 사뭇 다른 것인데, 보사노바는 말하자면 바로 오늘처럼 차창을 활짝 열고 따뜻한 바람을 맞으며 봄날의 한가운데를 지나가는 길, 바로 그런 느낌이었다. 어쩌면 최근 와서 유난히 보사노바를 들었던 건 오락가락하는 꽃샘추위 탓에 청각으로나마 봄을 먼저 느끼고 싶었던 조바심 때문이지도 모르겠다. 경칩도 지났는데 귀 속의 달팽이, 너도 이제 일어날 때가 되지 않았니? (귀 속에 있는 건 달팽이관이지, 달팽이가 살 수는 없다고 주장하고 싶은 사람은 박민규의 『갑을고시원 체류기』를 읽어보길 바람)

이어 동두천을 지나며 L형과 나는 사람들이 보사노바처럼, 소리 내어 웃게 하지는 않더라도 들으면 미소 짓게 하는 노래를 많이 들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에 동의했다. 사실 미니홈피라든가, 블로그라든가 하는 열려 있는 집들을 가끔 기웃거려보면 일년 내내 침울하고 애조 띤 곡들을 틀어 놓는 사람을 자주 보게 된다. 가사의 의미는 깊고, 곡에서 흐르는 정조는 쓸쓸하다. 그들은 겨울엔 겨울이고, 봄이 와도 겨울이고, 여름이 와도 겨울이고, 겨울이 오면 다시 겨울이다. 더러 ‘가을파’도 있다. 그들은 슬픈 노래를 듣고, 슬퍼하지만 한걸음 더 나아가 성찰해보면 그들이 ‘우울한 자아’를 즐기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러니 그들이 일년 내내 겨울을 즐기고, 일년 내내 가을을 즐기는 것은 그들의 취향이니 뭐라고 얘기할 바는 아니지만 너무 오래 그곳에 머무르면 일조량이 부족한 식물처럼 어둡게 시들고 말 것이다. 뭐니 뭐니 해도, 나는 이 땅의 사계가 좋다. 봄, 여름, 가을, 겨울.

말 나온 김에 나의 음악 듣기에 관해 몇 걸음 더 샛길로 빠져보자면, 나는 음반을 사도 그것이 한국가요든 아메리칸 팝송이든 가사지를 보지 않고 음악을 듣는 편이다. 그 이유는 가사를 모르면 그때그때 기분이나 상황에 따라 다른 부분의 가사가 들리고, 그러면 언제나 새로운 곡을 듣고 있는 듯한 느낌이 들기 때문이다. 가사지를 버려두고 음악을 듣는 버릇은 사실 학창시절에 조덕배의 <꿈에>를 무척 좋아했는데, 단체여행에서 노래를 부를 일이 생겨 미리 가사를 외워 부른 뒤로는 그 노래를 잘 흥얼거리지 않게 된 이후였다. 싫증내는 것을 사전에 방지하는 방법이 가사지 없이 노래 듣기. 그래, 나는 싫증을 잘 내는 편이다. 아니 이런 걸 싫증을 잘 낸다, 안 낸다고 말할 수 있는 것인지는 모호하다. 난 한번 꽂히면 만사 제쳐두고 (심지어 똥오줌을 참기도 한다) 몰입하는데, 어느 순간 딱 싫증이 나면 다시는 몰입했던 대상에 관심을 두지 않는다. 우스개 삼아 과거 사례를 하나 들자면, 어느 날 ‘돼지바’를 먹었는데 너무 맛있는 것이다. 그래서 아이스크림을 사먹을 때마다 돼지바만 먹었다, 무려 3년 동안. 그러다 어느 여름날 단 한입을 베어 먹는 순간, 싫증이 났다. 그리곤 다시는 내 돈으로 돼지바를 사먹지 않았다. 안 웃겼으면 말고. 이런! ‘후천성 샛길 증후군 환자’를 위한 내복약을 복용할 시간이다. 꼴딱.

재인폭포란 이름의 폭포가 이 땅에 존재한다는 것을 알게 된 것은 <컬쳐뉴스>의 안효원 기자를 통해서였다. 지난 설 연휴 포천을 향해 귀성길에 오르는 그에게 설 인사를 겸해서 숙제(?)를 하나 냈는데, 포천근교에서 가 볼만한 곳 베스트 5를 설 연휴 숙제로 해오시오! 

나의 학창시절 방학 과제물마냥, 그는 5개 중 3개만 먼저(먼저라고 해두는 것은 늦게라도 반드시 5개를 채워줄 것이라고 믿기 때문이다!) 제출했는데, 베스트 오브 베스트는 앞 뒤로 산(山), 가까이 저수지(水)에, 조용한 초등학교(校)가 있는 경기도 포천군 관인면 삼율리. 다름 아닌 자신의 고향집이었고, 두 번 째는 민통선 인근의 길들, 그리고 세 번 째가 아직 자신이 가보지 않아서 잘 모르지만 장정일의 ‘강정’마냥 다들 좋다 한다는 재인폭포였다. 씨암탉에 눈이 어두운 나는 언제 시간 나면 그를 나의 로시난테에 태우고 고향마을을 찾기로 하고 (자동차 수명이 Made in Korea에선 개의 수명처럼 통상 7배를 곱한 나이와 비슷한데, 나의 로시난테는 사람으로 치자면 77살로 동키호테의 로시난테만큼이나 늙었다. 물론 동키호테에게 로시난테가 그러했듯이 나에겐 세상에 둘도 없이 늠름한 명마지), 민통선 인근 길은 지지난해 왕다방을 가는 길에 많이 느꼈으니 뒤로 넘기고, 과제물의 끝에 매달려 있는 재인(才人)이란, 마치 <왕의 남자>의 광대들을 떠올리게 하는 폭포 이름에 탁 꽂혀 버렸던 것이다. 더더구나 정부와 시민단체․환경단체가 줄다리기를 하고 있는 한탄강댐이 수자원공사의 계획대로 지어지기라도 하면 폭삭 수장(水葬)될 폭포라니! 지구가 천년, 만년, 어떤 경우에는 수억 년에 걸쳐 만들어 낸 경이로운 모습을, 45억년이란 지구 역사를 하루로 환산하자면 밤 11시 59분, 그것도 45초 즈음에 등장한 인류가 0.000001초만에 수장시켜버리는 시대를 우리는 살고 있다. 어이, 앞으로 물이 많이 부족할 거라는데? 그럼, 쟤 수장시켜버려! 


아직 재인폭포의 실체와 맞닥뜨리지 않았으니 일단 이쯤에서 얘기를 접고, L형과 나는 최근 각자의 일로 부산하느라고 못 만난 사이. 보고, 듣고, 겪은 일들에 대해서 이런 저런 얘기들을 나누었다. 최근 1970년대 활동하다 사라진 밴드 [RFD: Rural Free Delivery] 리더의 애칭을 알아낸 뒤, 인터넷의 바다를 샅샅이 뒤져 그야말로 심해에서 바늘을 찾아내는 작업에 성공한 L형은 이제 어엿한 대학교수가 되어 있는 ‘프레드’와 라이센스 계약을 치르고, 그 자신도 한 장 밖에 없다는 <Lead Me Home>LP를 국제우편으로 받아 복각작업에 몰두해 있었다. 똥오줌을 참을 정도는 아니지만, 최근 몇 개월간 개봉한 영화도 한 편 보지 못한 채.

한탄강을 건너 사거리의 빨간 불 앞에서 잠시 멈추자, 야릇한 이정표 하나가 눈에 들어온다. 구석기사거리. 국사 시간에 익히 들었던 지명, 연천 전곡리. 구석기 유물이 발견되고, 박물관이 세워지고, 구석기 축제가 열리는 마을의 거리 이름은 구석기사거리. 이정표를 골똘히 바라보자니 돌도끼, 돌칼을 들고 네거리에 빽빽하게 서 있는 구석기인들의 모습이 떠오른다. 그들이 들고 있는 깃발에는 이런 글귀가 나부끼고 있다. [한탄강댐 건설 중단하라].

며칠 전 9시 뉴스에서 한탄강댐 수몰 예정지에서 선사시대 유적이 발견되었다는 소식을 들었다. 일본의 구석기유물 사기극이 떠올랐다. 1990년대 초반까지 일본에는 전기구석기 문화가 없었다. 그러던 중 일본 고고학자 후지무라 신이치의 전기구석기 유물 발굴로 인해 불과 몇 년 사이 일본의 역사시대는 3만여 년에서 70만년 전까지 연대가 올라갔다. 그러나 2000년 11월 그가 발견한 유물이 조작된 것이라는 사실이 밝혀지면서 전 세계 사학계를 떠들썩하게 했던 일. ‘없는 유물’도 만들어 내고 할리우드의 <내셔널 트레져>에서 보듯이 수백 년도 안 된 유물을 들고서 호들갑을 떠는 판에, 수십만 년 묵은 ‘있는 유물’도 제대로 발굴하지 않은 채 수장시켜 버린다면, 먼 훗날 우리들의 후세들은 우리들의 선택에 대해서 어떤 평가를 해줄까?

연천군청에 못 미처, 오른쪽으로 난 길로 재인폭포 가는 길이 나왔다. 78번 국지도. 완연한 시골길이고, 완연한 시골길의 구멍가게다. 구멍가게의 냉장고엔 캔맥주 종류도 달랑 한 가지. 나는 캔맥주 두 개와 스낵 한 봉지를 샀다. 시원한 캔맥주를 한 모금 털어 넣자, 금새 개나리 피고, 벚꽃이 날리고, 가로수마다 연둣빛 잎눈들이 파릇파릇 아지랑이 사이로 눈을 땡그랗게 뜨는 봄날인 것만 같다. 그래, 다시 ‘음주 중 운전’의 계절이 돌아온 것이다. 드문드문 위병소를 드나드는 장교들의 승용차를 제외하면 차 한대 지나가지 않는 한적한 길 위로 키 큰 미류나무들이 제 가지들을 마치 드레드락을 한 아프로 아메리칸처럼 중력의 반대방향으로 꼬아 올리고, 산세를 따라 암석들이 가파르게 내려다보고, 내 입에서는 정말 오래간만에 길 위의 추임새가 튀어 나온다. 햐아, 좋다, 좋아!

그러나 광대의 전설이 깃들어 있는 재인폭포의 실체를 만가기도 전에 좋다, 좋아! 라는 나의 추임새는 끝이 나버렸다. 길의 앞으로 철조망이 쳐진 쇠문이 굳게 닫혀 있었다. ‘재인폭포 개방 - 2006년 4월 ~ 9월’, 철 지난 플랜카드가 팔락거리고. 개구멍을 통해 쇠문을 통과해서 걸어가면 되지 않을까? 문 앞에서 이리 저리 서성거리자, 미처 눈치 채지 못했던 허름한 건물 채에서 두 명의 군인이 문을 열고 다가온다. 출입금지입니다. 


- 재인폭포 가는 길인데, 어떻게 된 겁니까?
- 지금 안에서 군사훈련 중이라 주말에만 개방합니다.        
- 여기서 가까운가요?
- 네, 50미터쯤 가서 협곡으로 내려가면 됩니다.
- 그럼 여기서 몇 분 걸리지도 않는데……. 재인폭포 보려고 정말 먼 길 왔어요. 사진만 찍고 가면 안될까요?
- 안됩니다.

계급장을 보자, 일병. 일병을 단지도 얼마 되지 않은 듯하다. 젠장, 상병 말호봉이나 병장만 되어도 다른 부대원들 눈치 같은 건 안 볼 테고, 적당히 구슬리면 들어갈 수도 있을 거리인데. 죄송하다며 깍듯이 인사를 하며 일병들은 등을 돌리고, 나는 철조망 너머 사진으로만 보았던 재인폭포를 떠올린다. 한껏 기대하며 여기까지 왔는데 이게 뭐람. 만약 한탄강댐이 만약 들어서기라도 하면, 그리고 한탄강 일대의 자연, 역사, 문화적 유산들이 벌써 수장되었는지도 모르고 찾아오는 사람이 있다면, 한탄강댐 공원 관리공단 관계자랑 이런 대화를 주고 받겠지.

- OO 가는 길인데, 어떻게 된 겁니까?
- 한탄강댐 지으면서 수장되었어요.         
- 몇 미터 아래에 있나요?
- 수면에서 20미터쯤 아래에 있는데, 물 속에 들어가 보지 않는 바에야 볼 수가 없죠.
   

그는 아마도 지금의 내가 출입금지 ‘철조망’을 바라보듯, 자신과 그곳을 나누는 경계인 ‘수면’을 안타깝게 쳐다볼 수밖에 없을 테지, 이미 엎질러진 물을.


 
*노동효는 1970년대 산 길 위의 사내. 보조석엔 L, K, J, S, P, H, R……. 뒷좌석엔 존레넌, 링고스타, 조지해리슨, 폴매카트니를 태우고 여행 중. 목적지는 가르강튀아 은하계, 팡타그뤼엘 행성, 바벨타워 36th 지점 무위당(無爲堂). [길 위에서]는 현재 마가라테아 행성의 건축가 슬라티바패스트에게 3차원으로 시공해달라고 발주를 해 둔 상태이니 완공이 될 때까지는 일단 텍스트 버전으로 산책해 주시기 바랍니다.   

 

출처:컬쳐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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