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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 조선 사람 일찌기 1810년대로 20년대에 구주정계에서 보수주의의 화신 노릇을 하던 메테르니히는 당시에 혼란상태에 있는 이태리를 멸시하여 말하기를 이태리는 지리학상의 명칭뿐이라고 한 일이 있다. 그러나 그런지 얼마가 못되어서 이태리 사람들은 자기네 손으로 완전한 통일국가를 건설함에 의하여 그 말이 무지맹단(無知盲斷)임을 반증했다. 그 통일 운동의 초석을 놓은 것은 마찌니요, 그 마찌니는 그 운동을 청년 이태리인에게 그 옛날의 빛나는 역사를 가르침으로써 시작했다. 개인에게 생활이 있는곳에 인격이 있는 것같이 민족에도 역사가 있는 이상 개성이 있다.조선역사라는 것이 엄연히 있으면 조선사람이 있을 수밖에 없다. 나라를 지켰던지 잃었던지, 문화를 발달시켰던지 퇴보시켰던지 좌우간 조선역사라는 지구상의 일우(一隅)에 이루어진 사실에 대하여 책임을 지는 조선 사람이 있어야한다. 지리가 역사상에 가지는 의미가 크기는하나 요컨대 그는 소여(所與)의 환경일뿐이요 책임을 질 수 있는 인격자는 아니다. 환경이란, 그환경을 생활의 장소(場所)로 하고 자료로 삼아가지고, 생활할 수 있는 인격자를 놓고서야 비로소 의미를 가지는 것이다. 조선의 지리가 고난의 장소로 되었다고해서 곳 불가피적(不可避的)으로 고난의 역사가 나오는 것은 아니다. 만일 그렇다면 그는 자연현상이지 역사는 아니다. 사건의 산출자(産出者)는 생활의 의식을 소유하는 민족이다. 이점이 환경의 중요성을 같이 말하면서도 유물론자와 다른 소이(所以)다. 고로 조선의 역사가 고난의 역사라면 그근거를 지리에서만 아니라, 또 한가지 더 깊은 것을 조선사람에서 구하지 않으면 안된다.
그러면 고난의 역사의 하담자(荷擔者)로서 조선사람의 민족적 개성은 어떤것인가. 고래로 내외의 모든 사람들이 조선민족을 논할 때에 그 근본성질로 『인(仁)』을 말하는 것은 일치하는 바다. 즉, 조선 사람은 근본에서 착하다는 것이다. 이 점에 관해서는 이광수씨가 그 민족개조론에서 자세히 논한 바가 있으므로 그 일절을 인용하기로 하자. 우리 민족에 대한 가장 낡은 비평은 산해경에 나온 한족의 비평이니, 『君子國在其北衣冠帶劍食獸使二文虎在其傍其人好讓不爭 (군자국재기북의관대검식수사이문호재기방기인호양부쟁)』이라 하였고, 이에 대한 곽박(郭璞)의 찬(讚)에 『東方氣仁國有君子薰華是食彫虎是使惟好禮讓禮讓委論理 (동방기인국유군자훈화시식조호시사유호례양례양위논리)』라 하였습니다. 우리 민족이 이민족에게 처음 준 인상이 「군자」외다. 공자도 「군자거지(君子居之)」라 하여 자국민의 부패무도함에 분개하여 아족(我族) 중에 오려 하였습니다. 『기인호양부쟁(其人好讓不爭)』이란 것으로 군자인 것을 설명하였습니다. 『호양부쟁』이라는 것을 현대적 관념으로 분석하면 관대, 박애, 예의, 겸손, 자존 등이 될 것이외다. 다시 이 네 가지 덕목을 한데 뭉치면 곽박의 산해경찬에 있는 바와 같이 「인」이 될 것이외다. 그런데 이를 조선민족의 역사에 참고해 보건대 「인」은 조선민족의 근본성격인 듯 합니다. 국제적으로도 일찍 남을 침략해 본 일이 없고, 또 외국인을 심히 애경(愛敬)하는 성질이 있으며, 민족끼리도 잔인강폭한 행위는 극히 적습니다. 살인강도 같은 잔인성의 죄악은 현금(現今)에도 심히 적다합니다. 조선인처럼 관대한 자는 타민족에게는 보기 어려웁니다. 혹 누가 자기에게 모욕을 가하면 흔히는 껄껄 웃고 구태 보복하려 아니합니다. 외국인은 혹 이를 겁나한 까닭이라고 할는지도 모르나, 껄껄 웃는 그의 심리는 일종 관서(寬恕)와 자존(自尊)이외다. 그래서 조선인은 원수을 기억할 줄 모릅니다. 곧 잊어버립니다. 심지어 자기의 혈족을 죽인 자까지도 흔히는 용서합니다. 그러므로 조선의 전설이나 문학에 보수(報誰)에 관한 것은 극히 적고, 일본민족과 같이 이를 한 미덕으로 아는 생각은 조금도 없습니다. 다음에 조선인은 애인하는 성질이 많습니다. 처음 대할 때는 좀 뚝뚝하고 찬 듯 하지마는 속마음에는 극히 인정이 많습니다. 10년전까지 사랑에 들어오는 손님이 있으면 알거나 모르거나 숙식을 주어 관대합니다. 예의를 중히 여기는 것은 오족(吾族)의 특성이이외다. 군자국이라는 칭호로부터도 예의를 연상케하거니와 의관대검(衣冠帶劍)이라던지 호양부쟁(好讓不爭)이라던지 하는 말에도 예의를 연상케합니다. 또 동방삭 신이경(東方朔 神異經)에 『東方有人男皆縞帶玄冠女皆采衣恒恭坐而不相犯相譽而不相毁見人有患投死救之倉卒見之如癡名曰善人 (동방무인남개호대현관여개채의항공좌이불상범상예이불상훼견인유환투사구지창졸견지여치명왈선인)』이라한 것이있음을 보아, 어떻게 고대오족(吾族)의 예의를 숭상하는 것을 알 것이외다. 또 후한서에 부여인의 예의있음을 평하여 『飮食用俎豆會同拜爵洗爵揖讓升降(음식용조두회동배작세작읍양승강)』이라고 하였고, 또 삼국지에 마한을 평하여 『其俗行者相逢皆住讓路(기속행자상봉개주양로)』라 하였습니다. 이렇게 예의를 숭상하는 본성이 있었으므로 이조의 당쟁도 거의 예문(禮文)의 해석이 그 원인이 되었으며, 현금의 조선인도 예의를 숭상하는 풍이 많으니 우리나라를 예의지방(禮儀之邦)이라한 것은 참으로 적평이라 하겠습니다. 「그러면 예의란 무엇이뇨, 규율에 복종하여 질서를 지키는 것이외다. 규율 밑에는 극히 순복한다는 뜻이외다. 예의란 곧 의(義)외다.」 이상에 인용한 논중에 「호양부쟁(好讓不爭)」을 네 덕목으로 분석하는데는 반드시 찬동할 수 없고, 더구나 자존을 넣는데 대해서는 아래서도 말할 것과 같이 정반대의 생각을 나는 가진다. 그러나 대체로 합하여 「인」이라 한데는 이론할 여지가 없다. 나는 이를 분석하는 것 보다 우리말로 「착하다」 할 때에 우리 사람의 본성을 가장 잘 표시하는 것이라고 믿는다. 한족이라면 다 아는바와 같이 자존심이 강한 민족으로 자족(自族)외에는 모두다 이적(夷狄)라고 해서 멸시하는 사람들인데, 그 입으로 그만한 찬사가 나왔다면 고대조선사람이 어지간히 착했던 것을 알 수 있는 일이지만, 타인의 평을 기다릴 것 없이 직접 사실을 보면 더욱 잘 알 수 있다. 우리 사람들의 일반으로 즐겨 쓰는 명자(名字)를 보면 모두 착한 성질을 표하는 것이다. 인(仁), 의(義), 예(禮), 신(信), 순(順), 순(淳), 화(和), 덕(德), 명(明), 이런 자들이 제일 흔히 쓰이는 것들이다. 이름이라면 제일 소중한 것이요, 최고 이상을 포함시키는 것인데, 그것으로 쓰이는 것이 모두 그러한 성질의 것이라면 조선사람 자체가 선천적으로 거기 대한 애모(愛慕)의 념(念)이 두터운 소이(所以)일 것이다.혹은 이것을 유교 도덕의 영향이라 할지 모르겠으나, 그보다도 유교의 도덕사상에 의하여 본래 선천적으로 들어있던 착한 경향이 명확한 덕목으로 표시됨을 얻었다는 것이 적당할 것이요, 또 유교도덕의 영향이라고 가정을 한다 하더라도, 같은 유교 밑에서 자라나는 새 민족에서도 중국과 일본과를 보면, 그 특성의 다름을 알 수 있다. 일본사람들의 명자를 보면 가장 흔히 쓰이는 것이 준(俊), 웅(雄), 수(秀), 남(男), 무(武), 이런 것들이다. 양자를 비교해 볼 때 양자가 다 저다운 이름을 가지고 있음을 알 수 있다. 다음에 조선사람의 특성은「용(勇)」이다. 위에 인용문 중에 나왔던 동방삭 신이경(東方朔 神異經)본문중의 「상거이불상훼(相擧而不相毁)」 「견인유환투사구지(見人有患投死救之) 라는 구가 그를 잘 표시한다. 그외에도 「기인추대강용이근후불위구초(其人추大强勇而謹厚不爲寇초)」 「인성직강용(人性直彊勇)」(후한서後漢書) 같은 평을 처처에서 볼 수 있다. 착한 중에도 용기가 있다는 것이다. 이것이 그릇된 관찰이 아닌 것은 사상(史上)의 사실이 증명한다. 신라의 박제상, 김유신, 고구려의 밀우, 유유, 백제의 계백의 사적(事蹟)같은 것은 너무나도 익히 아는 것이니 말할 것 없거니와 삼국사기를 보면 지금 조선사람으로서는 몽상조차 못할 의용(義勇)의 사실이 수두룩하다. 이야기 삼아 이삼 예거(例擧) 한다면 고구려의 제2세 유리(琉璃)의 아들에 해명(解明)이라는 인물이 있어 유력호용(有力好勇)하였다. 인방(隣邦)황용국(黃龍國)의 왕이 이를 듣고, 선물로 강궁(强弓)을 보내었다. 해명이 그것을 당기어 꺾고 사자(使者)를 대하여 말하기를 내가 힘이 있는 것이 아니라 활이 약하다고 하였다. 황용국왕이 듣고 부끄러워 했단 말을 그 부왕이 듣고 노하였다. 그리하여 황용국왕을 보고 해명은 불효자니 나를 위하여 해명을 버여달라 하였다. 황용국왕이 그 말대로 들어 사자를 보내어 태자 를 초청하였다. 태자가 가려고함을 보고 위험하다고 간하는 자가 있었다.태자가 대답하기를 '하늘이 나를 죽이려 하지 않을새 황용국왕이 제 어찌리오'하고 갔다. 죽이려던 황룡국왕이 보고는 도리어 예로 대접하여 보내었다. 그리하였더니 그후 부왕과 불화하여, 유리는 해명이 부명(父命)을 부종(不從)하고 힘을 믿어 린국(隣國)에 결원(結怨)한다는 죄로 사검(賜劍)하여 자재(自裁)하게 하였다. 해명이 곧 자살하려 함을 보고 만류하는 자가 있은즉 해명이 대답하기를, 내가 황룡국왕의 활을 꺾은 것은 그가 강궁을 보내어 아국(我國 )을 경히 여기려는 고로 한 것인데, 부왕이 노하여 나다려 불효라 하여 자재하라 하시니 부명을 어찌 도망하랴. 그리고는 여진동원(礪津東原)에 나가 창을 땅에 꽂고 말을 달려 스스로 꿰여 죽었다. 시년(時年)이 21. 후인이 그 땅을 불러 창원(槍原)이라 했다. 또 이것도 고구려 시대의 일인데 고국천왕의 제(弟)에 발기(發岐)라는 사람이 있었다. 왕이 무자(無子)하고 붕(崩)하매 후(后) 우씨가 가만이 발상하지 않고, 야반(夜半)에 발기 집에 가서 보고 사위(嗣位)를 하도록 함이 어떠냐고 권하였다. 한즉 발기 말이 하늘 역수(曆數)는 귀처(歸處)가 있는 법이라 경경히 의논할 바 아니요, 또 부인이 야행하니 어찌 예라 하겠느냐고 책했다. 우씨 부끄러워 나와 차제 연우(延優)에게로 가서, 같은 말로 권하여 허락을 얻은 후 익일에 왕명이라 하고 연우로 사위(嗣位)하게 하였다. 발기가 이를 듣고 노하여 군사를 이르켜 왕궁을 에웠다. 하나, 응하는 자가 없으므로 도망하여 한의 요동태수 공손탁에게 강복(降服)하고, 삼만병을 얻어 가지고 본국으로 침입하였다. 연우 그 소식을 듣고 말제(末弟) 계수를 보내어 치게 하였다. 한병이 대패하여 도망할 때에 발기가 계수를 보고 외쳐 말하기를 네가 참아 노형을 죽이려느냐 한즉 계수가 그 말을 듣고 감히 해하지 못하고 말하기를, 연우는 나라를 사양하지 않았으니 불의하다 하겠지만, 아무렴은 일시의 분을 가지고 제 종국을 치는 것은 무엇이요, 무슨 면목으로 죽은 후에 선인을 뵈올 터이오 하였다. 이 말을 듣고 발기는 부끄럼을 못이겨 자살하였다. 이를 보고 계수는 애곡하고 그 시체를 걷우어 장사한 후 돌아 왔다. 연우 이를 보고 한편으로 기뻐하나 또 하는 말이 발기가 외국병을 빌어 본국을 치니 죄가 막대한 것이라, 이제 네가 이기고도 죽이지 않은 것은 또 모르지만, 자살함을 보고 애곡했으니 그러면 나다려 무도(無道)하단 말이냐고 노하였다. 계수 그 말을 듣고 슬피 울고 하는 말이 내 말 한마디만 드리고 죽으리다. 형이 비록 왕후의 명으로 사위(嗣位)는 한 것이지마는 예로써 사양하지 않았으니 형제간 우공(友恭)의 의가 없는 것이라. 나는 왕의 미를 이루기 위하여 장사한 것인데, 도리어 노할 줄을 어찌 알았겠소, 그러지 말고 형상(兄喪)으로 예장(禮葬)하면 누가 왕을 불의하다 하겠소, 나는 할 말을 하였으니 죽어도 오히려 사는 것이라, 청컨데 유사에 명하여 죽여 주시오 하였다. 이 말을 듣고 왕도 감복하여, 그 잘못을 뉘우치고 그 아우를 항하여 절하고 서로 즐긴 후 발기를 다시 왕례(王禮)로 장사하였다고 한다. 물론 사전(史傳)에 기록되는 것은 특출한 것이니까 그런 것은 일반적 사실은 아니라고 하기도 하겠지만, 아무리 초출(超出)한 인물이라도 단체적 정신생활의 배경이 없이는 불가능한 것이다. 고구려 사람이 다 겁한데 해명 일인만이 유독 장했고, 신라 사람은 다 유약한데 박제상 일인만이 오직 장부(丈夫)이었을 수는 없는 일이다. 일시의 분으로 인하여 외국병력을 빌어 종국을 치는 것은 무엇이냐고 책하는 말이나, 동생의 그 일언을 듣고 양심에 부끄러워 자살하는 일을 「견인유환역사구지(見人有患投死救之)」라는 동방삭 신이경(東方朔 神異經)의 말과 병(竝)하여, 당시 조선 사람의 의기가 어떠 했고 절의심(節義心)이 어떠 했더라 하는 것을 잘 표시하는 말이다. 인후하고 의용심이 풍부한 것은 대민족의 자격이다. 이것은 모두 대국가를 건설하고 고상한 문화를 산출하는데 필요한 성격이다. 이 점에서 조선은 남에게 후(後)하지 않는다. 또 대민족이 되는데 필요한 기여(其餘)의 조건인 조직력과 재능에 있어서도 조선은 빈약하지 않았다. 질서 있는 사회를 조직한데서는 세계최고의 역사를 가지는 민족중의 하나이요, 재능에서 말하면 세계에 자랑할만 한 독창적인 제종(諸種)의 발명이 있다. 이런 점에서 보아서 조선의 역사는 고난의 순례일 하등의 이유가 없다. 그러나 이상의 소론은 모두 고대의 조선을 가리킨 것이요, 한번 눈을 현재에 돌리면 전혀 딴 종족을 대하지 않았나 하리만큼 현격(懸隔)한 것이 있다. 조선 사람의 근본성이 착하다고 하였지만, 오늘날 조선사회는 질투음해(嫉妬陰害)로 서로 쟁탈(爭奪)하는 수라장이 아닌가. 삼백년 정치가 붕당(朋黨)의 싸움으로 종시(終始)한 것은 차치하고, 소위 현대 데모크라시 문명을 배웠다는 신인물들의 한다는 교육계에도 왈 기호니 서북이니 하는 것이 있고 이천만의 여론을 지도하노라고 하는 언론계에도 나는 전라니 너는 황평이니 하는 것이 있다. 조선 사람은 강용(剛勇)하다 했지만 지금은 유약 이것이 조선사람의 대명사가 아닌가. 의분은 조선사람의 성질이라 했지만 지금은 구차가 그 천성같이 되지 않았나. 다른 사람의 잘 되는 것을 보면 기어 방해하려하고 내 지위를 견고하게 하기 위하여는 골육도 돌아볼 것 없고, 사회의 병폐는 날로 심해 갔건만도 참 의용적 정신에서 민족적으로 살길을 찾아보자는 노력을 위한 기관은 얻어 볼 수 없고 잔패(殘敗)민족의 표지(票紙)를 숨길 수 없이 얼굴에 붙쳤건만도, 일편참괴(一片참愧)의 념도 강개(慷慨)의 지(志)도 발하는 것이 없이 스스로 신사인줄 알고 안연(晏然)하고, 권세를 주마 약속하면 오천년의 역사를 버리기 폐리(弊履)를 버리듯이 쉽게하고 이익이 있을만 하면 동족을 팔아먹기 단 일전에도 서슴지 않고 한다. 이를 보고 누가 인(仁)한 민족이라 하며 용감한 민족이라 할까. 이런 생각을 하고 조선역사를 볼 때 우리는 이것이 중도에 변경된 각본이라는 감을 가지게 된다. 지리에서 그리했던 것과 같이 민족성에서도 당초에는 대민족으로서의 소임을 가졌던 것이 중도에 변하여 고난의 길을 밟게 되었다. 이 변동은 삼국시대를 경계로 하고 일어났다. 그리하여 고구려 사람의 혈관 속에 흐르고, 신라 사람의 머리에 솟고, 백제 사람의 가슴에 끓던 착하고 질직(質直)하고 근후(謹厚)하고 강용(剛勇)했던 정신은 사막으로 흘러드는 냇물 모양으로 어느덧 사라지고 말았다. 그러면 그렇게 되는 이유는 무엇일까. 거기 대하여 나는 다음과 같이 대답한다. 조선 사람에게는 심각성이 부족하였던 탓이라고. 현상의 배후에 실재를 파악하려 하고, 무상의 밑에 상주(常住)를 찾는 철학적, 시적, 종교적 성질이 박약했던 탓이라고 한다. 종교가 없었던 것은 아니다. 그러나 그 종교는 유태나 인도의 종교와 같이 깊은 진리의 종교가 아니요, 낙천적인 의식의 종교였다. 고대문헌에 나타난 것을 보면 춘추로 국신(國神)에게 제사를 지낼 때는 「군취가무 주야부절(群聚歌舞 晝夜不絶)」이라, 「연일가무(連日歌舞)」라고 했다. 이를 보아서 그 종교가 대개 어떤 종교임을 알 수 있다. 그 종교가 그런지라 그 생활이 낙천적이었다. 중국문헌에 나타난 것을 보면 조선 사람들은 가무를 매우 좋아 한다는 말이 여러곳에 있다. 항상 쾌락한 기분을 가지고 노래로 날을 보낸다면 매우 행복스러운 일이라고 할 수도 있고, 오늘날 조선 사람에게는 좀 그런 성질이 다시 자랐으면 하는 생각도 있으나, 낙천적인 인생에서 깊은 것을 볼 수가 없다. 그리고 인생은 깊은 정신적인 것이 없이는 가치를 가질 수 없고, 누리는 향락(享樂)까지도 거품으로 돌아가 버리고 만다. (이하 12행 略) 자아에 관한 깊은 응시가 없는 고로 자존심이 없다. 이광수씨는 우리 사람에게 자존심이 매우 강하다고 했지만 나는 반대의 의견이다. 자존심이 없는 고로 자유정신이 부족하다. 자유! 이는 사람의 생명이 아닌가. 자유없이는 모처럼의 인(仁)도 얼빠진 것에 지날 것이 없고, 그 장한 용맹도 수성(獸性)에 다를 것이 없다. 노예는 불행일 뿐만 아니라 죄악이다. 자유정신이 불가한 조선 사람은 이중의 짐을 지는 자다. (이하 3행 略) 조선 사람의 성질 중에 그러한 큰 결함이 있는 것은 그 지어놓은 역사 위에 드러나 있다. 구차한 외교로 나라의 명맥을 유지해 오기에 무사했던 것은 다시 말할 것도 없는 일이요, 그 문화적 산출물을 보면 알 수 있다. 특수한 역사를 가지는 처지인 고로 고래(古來)의 모든 유물이 파괴되어 그렇기는 하지만은, 조선에는 거대한 건축물이 없다. 집으로는 제일 큰 것이 경복궁일 것이나, 이를 외국의 것에 비하면 실로 빈약한 것이다. 애급에는 금자탑이 있고, 로마에는 콜로세움이 있고, 중국에는 대운하, 만리장성이 있다. 조선에는 석조물로 제일 큰 것이 은진미륵(恩津彌勒), 높이 겨우 육장(丈)이다. 외국에는 한가지 건축이 족히 수백년에 완성되는 것이 있는데, 조선에서는 그런 것을 보지 못한다. 직업을 택하면 호구를 하는데서 더 지나는 생각이 없고, 사업을 한다면 당장 명일로 보수가 돌아오기를 기다린다. 주몽의 출분(出奔)을 아브라함의 가나안 이주에 비할 수 있고, 온조의 건국을 티벹하반(河畔) 칠강(七岡) 위에 로마시를 건설하던 라틴인의 일에 비할 수 있으나, 삼국이후에 이런 기상을 보지 못한다. 계획의 원대한 것이 없고, 이상의 구원(久遠)한 것이 없다. 통(通)히 소요, 일시요, 그저 고식이요, 구차다. 이런 모든 것이 다 심각성의 부족에서 나온 것이다. (이하 12행 略) 모든 것은 결국 정신문제에 귀착하고 만다. 건축의 대소가 그 지하공사의 심천(深淺)에 비례하는 것 같이, 사람의 생활도 개인, 사회를 막론하고 그 정신적 공작의 심천(深淺)에 비하여 그 높고 낮고가 결정된다. 조선 사람의 본성인 그 인, 그 용(勇)이 진가를 발휘하여 미를 이루려면 이 큰 결함을 반드시 고치지 않고는 안된다. 조물주는 이를 위하여 특히 고려하는 바가 있었을 것이다. 그리하여 우리가 알기에는 그를 위하여 택한 방법이 고난의 역사라는 것이다. 일거(逸居)는 죄악의 온상이다. 낙천적인 인후한, 그리고 심각성 없는 평화의 백성을 명랑하고 온화한 중용적인 지리의 조선 안에 그저 두면, 침체부패(沈滯腐敗)할 것은 정한 일이다. 고로 고난으로써 짐을 지워 그 결함을 보충하게 하였다. 고난은 인생을 심화한다. 고난은 역사를 정화한다. 평면적인 인물도 이를 통하고 나서 입체적인 신앙을 가지게 된고, 더러운 압박, 쟁탈의 역사도 눈물을 통하여 볼 때 선에의 노력 아닌 것이 없다. 조선이 고난의 길을 걷는 것은 자기의 사명을 다하기 위하여 필요한 일이었다. 우리는 우리의 대임을 위하여 이 고통스러운 교훈의 초달을 견디지 않으면 아니된다. BACK 사단법인 함석헌 기념사업회 ssialsori.net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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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 지리적으로 결정된 조선사의 성립
조선역사가 수난의 역사라는 단정은 막연한 공상으로 된 것이어서는 아니된다. 사실에 실증되는 것이여야 한다. 그 지리와 그 민족성과 그 역사변천에서 고난을 볼 수 있어야 한다. 우선 지리에서 보기로 하자. 지리와 역사간에 산 관계가 있는 것은 위에서 이미 말한 바다. 말하자면 지리는 역사의 일부분이다. 지리 없이 역사를 논할 수 없는 것이 마치 경지를 아니 보고 농작(農作)을 말할 수 없는 것과 같다. 고로 조선역사가 만일 수난의 역사라면 반드시 그 지리 위에 그것이 결정되어 있을 것이다. 사실 우리가 조선의 지리를 은미하여 보면 그 각 조건에 고난의 문자가 써 있음을 알 수 있다. 이하 우리는 위치, 지세, 기후, 경개(景槪) 등 몇 가지 조건으로 나누어 그것을 설명하기로 하자. 1 위치로는 조선은 북온대 중에서 아시아주의 동안(東岸)에 있다. 이 점에서 보면 조선의 위치는 좋다. 문명의 발달에는 온대지방이 가장 좋다고 또 세계문명국의 대부분은 북온대에 있는데 조선은 그 중에 있고 아시아주에서도 동안일때는 교통이 편하여 인문발달에 좋은 곳인데 조선은 그 중앙에 있다. 이 점에서 보면 남이 부러워 할만 할지언정 못하지 않은 위치를 가지고 있다 할 수 있고 특별히 고난을 당할 이유가 없다. 마는 위치에는 그런 경위도의 위치만 아니라 관계적 위치라는 것이 또 있다. 즉 주위의 다른 나라와의 관계에서 논하는 위치다. 전자는 주로 경제생활 위에 의미를 가지지만 후자는 정치생활 위에 지대한 의미를 가지고 있다. 이 관계적 위치에서 말하면 조선은 소위 중간적 위치라는 것이다. 즉 대륙과 일본열도 간에 개제(介在)하여 있어서 통과지대가 된것이다. 이런 따위 실례는 다른 나라에도 있다. 폴란드, 그리스, 팔레스타인 같은 것이다. 이 종류의 위치의 이로운 점은 문물수입에 편하고 문화전파에 편한 것이요 해로운 점은 외적의 침입을 받기가 쉬워서 독립을 유지하기 어려운 것이다. 이상에 열거한 나라들을 보면 모두 다 그러한 역사를 가지고 있고 우리 조선도 남들이 모욕하여 일찍이 독립해 본 일이 없는 민족이라고까지 하고 또 그렇게까지는 안더라도 사실 반만년의 역사가 압박과 약탈의 연속이기도 하지만 그 원인의 적어도 반분은 이 위치에 있다 할 수 있다.
지도를 펼쳐놓고 보면 조선반도 삼면에서 육박하여오는 삼 세력 앞에 포위되어 있음을 알 수 있다. 즉 서의 중국과 북의 만주와 동의 일본이다. 이 위치는 다이나 마이트 같이 능동적인 힘을 가지는 자가 서면 진동의 중심이요, 호령의 사령탑이요, 지배의 수도일 수 있다. 그리스와 이탈리아가 일찍이 이를 보여 주었다. 그러나 만일 그렇게 강자가 되지 못하는 자가 가진다면 그는 수난의 골목이요, 압박의 틈바구니다. 조선은 불행히 그 후자인 편이다. 지도를 살펴보면 중국본토는 한 개의 풋볼과 같은 형상이다. 이제 그 안에 공기를 불어넣어 팽창시킨다면 부득이 약한 곳을 뚫고 나갈 수 밖에 없을 것이다. 중국 본토의 지도를 보면 그런 약처가 몇 곳 있다. 북에는 내몽고로 통하는 길이요, 서에는 천산로로, 남에는 안남(베트남)에 들어가는 길이요, 동에는 산동반도에서 해로로 조선에 나오는 길과 산해관을 넘어 요동도로 만주로 들어오는 길이다. 고로 중국 본토 안에서 인문이 성하는 때면 반드시 이 출구를 통하여 그 세력이 뻗쳐 나오는 것이었다. 그리하여 한족이 강성할 때마다 조선은 그 침입의 화를 면치 못하였다. 자(自) 부여시대로 이조(李朝)에 이르기까지 그러하다. 북의 만주는 고래(古來)로 한용( 勇)한 여러 민족의 출몰지였다. 그리고 거기 일어난 자는 반드시 남하운동을 하는 것이었다. 지금일새 만주의 부고(富庫)라고 제각기 눈이 빨갛지만 인문발달이 되지 못한 전대에는 한랭한 만주는 살기에 좋은 곳이 못되었다. 고로 만주에 일어난 자가 남국을 탐하여 나려오려 하는 것은 자연의 세(勢)였다. 우리 단군조선이 남천(南遷)을 한 것은 필시 그 때문이요, 거란(契丹), 금(金), 청(淸), 몽고(蒙古) 하는 것들이 침입한 것도 그 때문이다. 물론 조고마한 조선을 삼키려는 것이 구경(究竟)의 목적은 아니다. 욕심은 중국에 있는 것이다. 그러나 정략상 군사상 조선을 그대로 두고 중국에 들어갈 수는 없는 일이다. 고로 조선은 반드시 화를 받게 되는 것이었다. 현대에 와서 러시아(露西亞)가 침입한 것은 조선이라는 중앙점을 점유하여 가지고 동아일대(東亞一帶)에 군림하려는 것이었다. 다음에 일본열도를 보면 크기로 보아서 전이자(前二者)에 비할 바는 못 되는 수개(數個)의 고도지만 조선반도보다는 오히려 큰 편이요, 고도인 점에 도리어 강처(强處)가 있었다. 고대에 인연(人煙)이 희소한 때는 물론 조선에서 성히 식민하였던 형편이다. 그러나 일단 들어간 후는 다시 갈 곳 없는 섬인지라, 인문의 발달이 어떤 정도에 달하면 자연히 대륙을 향하여 반동의 물결이 건너오게 된다. 일본열도를 보면 동북에서 서남으로 뻗쳤는데, 그 중심은 중부에 있다. 이제 그 중부에 압력을 가한다면 힘은 부득불 양단(兩端)으로 빠질 수 밖에 없다. 그런데 상단은 기후한랭하고 살 수 없는 곳이요, 하단은 일위대수(一葦帶水)를 격(隔)하여 조선에 대하고 있다. 고로 우선(爲先) 조선으로 향하여 대륙을 목표삼고 올 것은 정한 일이다. 자(自) 신라로부터 현대에 이르기까지 역사는 이를 증명한다.
이것이 조선의 위치다. 이러한 위치에 서서 고난을 면하려면 거기 강대한 민족이 있는 것 밖에 타도(他道)가 없었다. 그런데 섭리는 그렇지 않았다. 고로 역사는 부득불 고난의 역사되지 안될 수 없었다. 2. 지세
섭리가 반도에 강대한 민족을 아니두었다고 하였지만 반도의 지세를 보면 대민족을 양성할 수가 없었다. 그 증거로는 우선(爲先) 조선에는 대평원이 없다. 대민족이 되려면 그를 기를만한 대평원이 있고서야 한다. 한족(漢族)은 중국평원이 있어서야 가능한 것이요, 미국은 록키(Rocky)산맥에서 애팔래치아(Appalachia)산맥에 및는(미치는) 일망무제(一望無際)의 대평원이 있고서 된 나라다. 영국 같은 것은 평원이 아니고도 대민족이 되었다고 하겠지만 영국은 위치에 특수한 혜택을 입어 된 나라요, 또 본국에 평원이 없다면 인도나 캐나다(加奈陀)의 것을 도적질을 하여가지고라도 된 것이다. 그런데 조선은 삼천리가 다 평원이라도 크다 할 수 없는데, 그 중의 팔할(八割)은 산지요 평야라고는 불과 이할(二割)이다. 이것을 가지고는 도저히 대국민을 양성해 낼 수는 없다. 또 그 다음은 대하류(大河流)가 없다. 고래로 문명이 대하류역(大河流域)에 발달하는 것은 역사상에 조연(照然)하다. 하류(河流) 없는 평원은 죽은 평원이다. 거기는 유목문화 이외에 있을 수 없다. 그런데 조선에는 제일 장류(長流)라는 것이 압록강이다. 이것을 양자강이나 미시시피(Mississippi)강에 비하면 일지류(一支流)도 못된다.
그렇게 대민족 양성이 지(地)로써의 조건이 부비(不備)한데 한가지 기현상이 있다. 그는 항만이 많은 일이다. 조그마한 반도에 해안선의 굴곡과 항만은 부자연스러우리만큼 많이 있다. 항만이라면 요컨대 대륙의 출입구요, 출입구가 많다는 것은 활동이 성하다는 것을 의미하는데, 배경이 없이 항구만이 많은 것은 무슨 일인가, 신의 섭리 없다면이어니와 만일 모든 배포(配布)의 이면에 성의(聖意)의 잠재하는 것이 있다면 이 부자연을 어떻게 설명할 것인가. 우리는 다시 지도를 재고할 필요가 있다. 그리하여 주의하여 본다면 곧 반도의 북린(北隣)에서 그와는 반대의 기현상을 볼 수 있을 것이다. 즉 광대한 만주의 평원에 출입구가 도무지 없는 것이다. 이 두 사실을 종합하여 볼 때 만주와 조선과는 상보적 관계에 있다는 결론을 나리지 않을 수 없다. 대륙은 실력 양성의 처소요 해양은 힘(力)의 발휘를 할 장소다. 만주평원은 조선이라는 잔교(棧橋)를 얻어서만 비로소 발달될 수 있는 곳이요, 조선은 만주라는 배경을 얻어서만 안정할 수 가 있다. 그러나 이렇게 생각하려 하면 의심이 되는 점이 하나 있다. 즉 장백산맥과 압록강과 두만강으로 된 자연적 경계선이다. 조선의 산맥은 중부이남에서는 모두 남북의 방향을 취하는데 북으로 만주에 가까워 올수록 동서의 방향을 취하게 된다. 만주도 북으로는 평평탄탄의 평원인데 조선반도와의 접경에는 수조(數條)의 산맥이 가로 놓인다. 만주, 조선이 만일 상보적이라면 이 경계선은 왜 있을까? 왜 양자를 두 개의 단원으로 구분하였을까? 또 다시 구분할 터이면 아주 완전한 경계선이 되었으면 차라리 조선을 위하여는 장벽이 되었겠는데, 그렇지도 못해서 북에서 오는 강자에게는 그다지 어려운 장애가 될 것 없고, 남에 있는 자에게는 북상을 방해하는 것이 되어버린 것은 무슨 연고인가. 여기 고난의 원인이 들어있다. 분리할 수 없는 것을 분리해 놓고, 분리를 하되 불완전하게 한데 고난의 역사로서의 특질이 결정되어 있는 것이다. 이렇게 만주, 조선 연결설을 말함은 군국주의적 야심이 있어서 하는 것이 아니다. 신의 섭리를 믿는데서 하는 말이다. 또 과거역사에 근거가 있어서 하는 말이지 그저 막연히 하는 말이 아니다. 고대사를 보면 조선민족의 요람은 조선반도가 아니고 만주다. 장백산록(長白山麓), 송화강유역 여기는 항상 국가의 부화소(孵化巢)였다. 단군조선이 나오고, 부여가 나오고, 고구려가 나오고, 금,청이 나왔다. 그러나 섭리는 이상하였다. 송화강은 남류(南流) 하지 않고 빙설의 북해로 흘러버렸다. 하필 북류(北流)를 하였던가. 이런 고로 남하할 때는 발전을 할 것이 건만도 후에는 근간은 사라져 버리고 남하한 일지 만이 간신히 남아 있어서 다행히 조선족을 대표하게 되었다. 이 모든 것이 잠간(暫間) 날이 올 때까지 고난의 짐을 지우기 위한 것이라는 해석을 내놓고는 설명할 수 없는 일들이다. 3. 기후(氣候) 기후가 문화 위에 영향을 미치는 것은 실로 심대한 것이 있다. 먼저는 의식주의 생활자료를 공급하는데서다. 사막지방이 사람 살 수 없는 것은 물론 기후 때문이요, 영국이 세계제일의 방적업국(紡績業國)인 것은 그 다습한 기후 때문이다. 그 다음은 건강상에 주는 영향이다. 열대지방이 천산(天産)이 풍부함에도 불구하고 문화발달이 어려운 이유는 그 혹렬한 기후가 사람의 활동능률을 저하시키기 때문이다. 문명국이 온대에 있는 것은 우연이 아니다. 또 그 다음은 정신상에 주는 자극이다. 온난한 기후가 경쾌한 사람을 내고, 북방의 기후가 침중음울(沈重陰鬱)한 성질을 가지게 하는 일이 많이 있다. 유대민족의 유일신 신앙의 심각하고 열정적인 특성은 그 살던 사막지방의 기후의 영향에서 자란 것이다. 이상의 세가지 중에 제일, 제이는 주로 물질생활 위에 관계를 가지는 것이요, 정신생활 위에는 간접으로 관계될 뿐이다. 만은 제삼은 직접 정신생활 위에 영향을 미치는 고로 그 민족의 문화의 특질을 조성시키는데 의미가 크다. 이제 조선의 기후를 본다면 북으로는 다소 대륙성을 띠지만은 대체로 매우 온화하다. 특징 없는 기후다. 고로 산업에는 매우 적당하다. 자라는 동식물도 매우 다종류요, 토지도 적기는 할지언정 비옥하고 광물의 함유량이 많아서 농업에나 공업에나 적당하지 않은 것이 없다. 바다에는 한난양류(寒暖兩流)가 다 교류하여 어족이 풍다하다. 정신생활에 주는 자극도 반드시 나쁜 것 이라고 할 수는 없다. 본래 온순, 인후한 민족인 고로 이 기후에서 더구나 온량한 성질을 가지게 되었다. 그러나 구태여 불평을 말하자는 것은 아니지만, 차라리 조선의 기후가 좀 열하던지 냉하던지 기타 어떻던지 자극성 있는 것이었더라면 하는 생각이 있다. 본래가 부드러웠던 성질인 고로 이 특징 없는 자극력 적은 기후에서 아주 미온적인 성질이 조장되고 말았다. 고식적인 성질이 생기고 말았다. 고구려 사람에게 있던 그 용감한 성질이 지금 조선 사람에게서 볼 수 없게 된 것은, 그 원인이 전체로 역사의 되어간데도 있겠지만 북을 버리고 남에 있게 된 것이 기중(其中)의 큰 것의 하나일 것이다. 삼한사온이라고 하지만 삼한사온은 조선다운 기후다. 사온이 있을 줄로 믿고 삼한을 참아가는 것은 고난의 역사를 지으면서 내일내일을 기다리는 자에게 부합한 기후라 할 수 있다.
4. 경개(景槪)
그 산천의 형세다. 자연미다. 경제적 실리와는 별로 관계 없는 조건이다. 그러나 자연은 결코 실리만을 위하여 이용될 것이 아니다. 깊은 교훈을 주는 교사가 된다. 그 나라의 산수풍경의 여하가 그 민족의 정신생활상에 주는 영향은 막대한 것이다. 고래로 인물은 산천에서 난다고 하지만 진리를 함유(含有)한 말이다. 물론 풍수설 같은 미신으로써 하는 말이 아니지만 위대한 자연이 있어 위대한 사람을 낳는다. 스위스 사람의 자유정신은 알프스의 영봉(靈峰)에서 난 것이 아니며, 노르만 민족의 용감은 북해의 파랑에서 난 것이 아닌가. 불교의 심원한 인생관은 그 인도, 그 설산의 전당에서 얻는 것이 적당한 것이지 중국평원에서 될 수는 없는 것이요, 미국의 호담분방(豪膽奔放)은 그 프레이리에서 자라나는 것이 그럴듯한 일이지 일본열도위에서 될 수 있는 일이 아니다. 화산풍경의 일본열도에서는 대화혼(大和魂), 무사도가 나는 것이 자연한 일이다.
조선은 자연미로는 풍부한 나라다. 금강산은 세계적이지만 금강산이 아니고도 처처에 명승이 있다. 그러나 기후가 그러했던 것 같이 산수도 온하고 화(和)한 산수다. 어느 점으로든지 조선은 평화의 나라다. 일점의 살벌이 기를 먹음은 것이 없고 패기를 띤 것이 없다. 조선이라는 명칭이 본래의 의미는 어디 있던지 말할 것 없이 지금의 자의대로 보아서 적당한 명칭이다. 더구나 영어로 번역하여 Land of Morning Calm이라 할 때 일층 더 그 진미가 표시된다. Calm이다. 정온이다. 조선의 산수는 정온(靜穩)의 산수다. 장(莊)도 엄(嚴)도 아니다. 산은 대개 노년기의 산이므로 남화산수를 보는듯한 산세들이요, 바다도 내해이므로 별로 거도(巨濤)를 보지 못하는 바다다. 고로 보아서 평화의 기분을 주는 수려한 경개이지 도발적이 아니다. 이 점에서도 조선은 만주와 상보적이다. 양자를 비하면 서로 다르다. 합하여서 비로소 완전한 일개를 얻는다. 시험하여 둘을 비교해 본다면 만주는 어디까지 활대(活大)인데 조선은 어디까지 가려(佳麗)다. 만주는 통일적인데 조선은 분산적이다. 저에는 일망무애(一望無涯)의 들에 해가 지평선에서 나와서 지평선에 들어가는 곳이요, 흑룡강 일하가 통일을 하는 곳이다. 이는 산맥사이에 열리는 적은 평야요, 봉이 일륜(日輪)을 토하고 물결이 월영을 감추는 곳이다. 만주는 소위 호마삭풍(胡馬朔風)에 장시(長嘶)하는 곳, 무용의 지요 영웅심을 도발하는 나라요, 조선은 우왈(又曰) 금수강산(錦繡江山)이라, 문의 나라요 지의 나라다. 전자는 후자를 얻어 그 야(野)를 씻고 조(粗)를 면하여야 할 것이요, 후자는 전자를 얻어 그 소를 보하고 그 약을 길러야 할 것이다. 뿌리를 북원에 두고 꽃을 남해에 피울 것이다.
그렇듯이 조선반도의 지리를 여러 방면에서 볼 때 그는 고난의 집으로 되어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그 지리 그 풍물을 가지고 자라나는 자가 고난의 주인공이 안될 수 없다. 그리고 그렇게 되는 주원인은 만주평원과 본래 분리하지 않을 것이 분리되었다는데 들어 있다. 물론 조선의 지세나 위치나 기후, 풍경을 가지고도 구라파(歐羅巴)같은 어느 모퉁이에 앉았더라면 능히 일대 자유의 민으로 강성한 나라를 일우었을 수 도 있었을는지 모른다. 그러나 아시아인 다음에는 그렇지 못하다. 아시아와 구라파와는 규모가 다르다. 후자는 본래부터 소구분적(小區分的)이요 전자는 대구분적(大區分的)이다. 중국, 인도, 시베리아(西伯利亞) 만주, 土耳其(터키), 아라비아(亞刺比亞) 등 모두 다 그 단원이 크게 되었다. 구라파가 사분오열하여 각장문호(各張門戶)하는 것과 다르다. 그 가운데서 조선은 유일의 소단원이다. 더구나 그 위치가 서로 중국을 끼고 동으로 일본을 벌려놓고 북으로 만주를 업은 것이 아무리 보아도 반도 그것만으로 자족적이 아니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장백산맥으로 국한을 하려 하였다. 거기 고난의 역사의 지리적 원인이 들어 있다. 나는 조선의 운명을 생각할 때마다 인도 타고르의 기탄잘리 중의 좌(左)의 일가가 연상됨을 금치 못한다. 우리는 이를 길다 말고 우리의 노래로 불러보자.
「오 내 사랑이여 당신은 그 모든 사람의 뒤에 그 그늘속에 서서 어디 계십니까. 저들은 홍진 이는 큰길에서 당신을 몰라보고 떠밀고 지나갔습니다. 내가 여기서 지리(支離)한 시간 당신께 드리올 선물을 펴놓고 있는 동안에 오고 가는 행객들이 내 꽃을 한송이 두송이 모두다 가져가 버리고 이제는 거의 빈 바구니만 남게 되었습니다.
아침이 지나고 낮도 지났습니다. 저녁 그림자가 나릴 때 내 눈은 피곤에 졸립니다. 집으로 돌아가는 사람들이 나를 보고 미소하고 입을 비죽입니다. 나는 거러지 처녀처럼 얼굴을 치마폭에 파묻고 앉아서 무엇을 위해 앉았느냐고 저들이 물을 때마다 눈을 내리깔고 대답하지 않습니다.
오 참말 내가 어떻게 사람들을 보고 당신을 기다린다고 당신이 오마 약속하셨다고 말할 수 있사오리까. 지키고 있는 이 빈곤이 지참금으로 삼을 것이라는 것을 부끄러워 어찌 말하오리까. 오 나는 이 비밀을 내 가슴에만 품고 있습니다. 나는 잔디밭 위에 앉아 하늘을 우러러 보고 당신 오실 때의 영광을 꿈꿉니다. 그때에 찬란한 광휘 속에 타신 수레 위에 금기는 날리고 당신이 그 자리로부터 나려와 티끌 속에서 나를 거누십니다. 여름날 서늘한 바람 밑으로 기어드는 버러지 같이 부끄럼과 사랑 속에서 떨고 있는 남루한 거러지 계집을 당신이 그 옆에 앉히우실 때 저들을 길가에 서서 입을 벌리고 놀랍니다.
그러나 시간은 지나고 당신의 수레소리는 들리지도 않습니다. 여러 행렬이 지나고 소리치고 떠들고 영광을 자랑하며 갑니다. 그러면 당신은 그저 그 모든 사람들 뒤에 서시어서 그늘과 고적(孤寂) 속에 숨으십니까. 나는 그저 기다리고 울고 쓸데 없는 고대(苦待)에 애를 끓고 말 것이옵니까.」
과연 우리의 역사는 큰 길가에 앉은 처녀의 신세다. 선물의 꽃바구니는 약탈을 당하고 분수없는 바람을 한다고 비웃음을 받고, 쓸데없는 듯한 고대에 애를 끓는 역사다. 그래도 신랑을 맞을 날이 올 줄을 믿는다. BACK 사단법인 함석헌 기념사업회 ssialsori.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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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조선사의 기조(基調) 역사를 산출하는 자가 아가페라면 조선역사도 그 구경(究竟)의 의미가 아가페에 있는 것은 틀림 없는 일이다. 그러나 이 구경의 의미를 지적하는 것으로 조선역사의 이해가 다 되었느냐 하면 그렇지 않다. 구경의 의미가 실지(實地)의 사실(史實)에 있어서 여하(如何)히 현현(顯現)되는가를 알지 않으면 그 의미는 결국 일개의 가설에 지나지 않는다. 고로 우리는 우주사의 구극(究極)의 목적인 아가페가 조선사에 있어서는 어떤 방식으로 어떤 골자로 되는가 하는 것을 구명할 필요가 있다. 그것을 나는 조선사의 기조라 불렀다. 역사를 비(比)하면 한 음악이라 할 수 있다. 보통음악이 소리로써 되는 것이라면 역사는 생명약진(生命躍進)으로 되는 음악이다. 여기도 음악에서와 마찬가지로 리듬이 있고 멜로디가 있고 하-모니가 있다. 여기도 구절 구절의 사실은 전체의 의미에 의하여 규정되는 것이요, 조화적 통일 밑에서 생명의 부여(賦與)를 받는다. 세계사는 말하자면 한 위대한 교향악이다. 영원에서 흘러나와 영원으로 흘러드는 행진곡이다. 우리가 세계사의 윤곽이라고 말한 것은 그 하-모니가 어떤 선을 그으면서 전개되어 가는가 그것을 그려 본 것이다. 이제 조선역사를 이해한다는 것은 그 연주(演奏)에 있어서 조선이라는 악기는 어떤 음색을 가지고 어떤 소리를 어떻게 발하는가를 아는 일이다. 이것을 하여서야만 우리는 그 우주곡의 연주에 있어서 조자(調子) 어그러진 소리를 발하지 않을 수가 있다. 세계사의 정해(正解)는 각 민족 각 국가의 역사를 한 하-모니로 들을 수 있는 종합적 음미력(吟味力)이 있고서야 가능하다. 그러나 그렇게 말하는 것은 모든 역사를 단일화하라는 말이 아니다. 도리어 역사의 생명은 개별화에 있다. 즉 각 민족의 역사는 각 민족 특유의 성질을 발휘하는 것으로 이해해야만 된다. 호금(胡琴)은 호금 특유의 소리를 내고 나팔은 나팔 고유의 소리를 발하여서만 참 조화가 나오는 것 같이, 조선은 조선식을 발휘하고 중국은 중국식을 발휘하여서만 세계사는 옳게 진행된다. 고로 조선사를 이해하려 할 때는 이 조선식을 즉 조선의 개성을 먼저 알 필요가 있다. 많은 사람들이 역사를 논하다가 군맹(群盲)이 코끼리를 더듬는 것 같은 무통일 무의미한 말을 하고 마는 것은 조선사의 각혈(各頁) 각절(各節)에 잠겨 있는 이 조선사의 기조(基調)가 무엇임을 파악하지 못하는데 그이유가 있다. 희랍(希臘)의 역사는 인도주의의 산출이라는 것을 기조로 삼고 음미할 때에만 잘 알 수 있고, 로마의 역사는 서양문명에 주기 위한 역(力)의 단련(鍛鍊)이라는 것을 기조 삼고야만 정해할 수 가 있다. 동양민족에 대한 일상도덕의 교사인 줄 알고 보면 천편일률식의 중국역사도 그 의미가 한 층 더 밝아지고, 압두(壓頭)하는 환고(患苦)중에 단좌(端坐)하여 인생의 영성이 여하히 고귀한 것임을 설교하는 자로 알고 보면 비참과 고난의 인도역사도 그 가치가 일층 더 높아짐을 알 수 있다. 조선사에 관해서도 흔히 듣는말이 우리 역사같이 자미(滋味)없는 것은 없다. 더러운 것은 없다 하는 것이지만, 문제는 어떻게 했더라면 조선역사도 좀 더 자미 있었을가 하고 생각하는데 있는 것이 아니요, 어떻게 하여서 이미 있고 지금 이루워지고 있는 이 역사에서 그 속에 잠재(潛在)하는 의미를 읽어 내는가 하는데 있다. 눈이 있는 자에게는 한 떨기 풀도 무한한 우주의 진리를 깃들이거든 하물며 억만의 생명이 수천년을 두고 나고, 죽고, 울고, 웃고 혹은 서로 손을 잡고, 혹은 서로 목을 찌르고, 안타까운 가슴을 쥐어 뜯기도 하고 비지땀을 흘리기도 하고, 끌른 피를 붓기도 하여서 지어온 이 역사가 우주적 영원의 가치를 가지지 않을 수 없다는 확신쯤은 깊이 생각하지 않고도 가질 수 있는 것이다. 조선이라는 이 거문고는 어떤 성질의 음향을 발하는 것인가 장엄인가, 웅대(雄大)인가, 희열(喜悅)인가, 비애(悲哀)인가, 또는 침통(沈痛)인가 이것이 먼저 알아야 할 것이다. 그러면 조선사의 기조가 되는 것은 무엇인가. 우리는 그것을 알기 위하여 세 가지 방면으로 생각할 필요가 있다. 1은 조선역사가 이루어진 그 지리요, 2는 그 역사를 지은 조선민족의 특성이요, 3은 그 민족으로 그땅에서 그 역사를 있게 한 조물주의 섭리다. 그 1은 마치 연극에서 말하면 무대요, 그 2는 배우요 그 3은 각본이다. 또 혹은 헌팅톤의 비유(譬喩)를 인용한다면(Huntington Civilization and Climate) 지리는 기후토질과 같고, 민족은 과수의 성질과 같다. 그렇다면 조물주는 과수재배자라 할 수 있다. 지리가 역사에 대하여 중요한 관계를 가지는 것은 기후토질이 과실의 품질을 결정하는 것과 같다. 사과의 양품은 황주 진남포에서만 날 수 있고, 귤은 제주도가 아니고는 볼 수 없다. 동양(同樣)으로 그 위치의 여하(如何), 그 지세(地勢)의 여하, 그 해안선, 그 기후 그 토질의 여하에 따라 그 역사의 일정의 색체가 생긴다. 같은 조선 사람이되 경기도 사람과 평안도 사람이 다르고, 같은 중국이되 북중국의 풍물과 남중국의 그것이 상이하다. 남구인의 경쾌 우아한 특성은 지중해 기후의 영향으로 설명할 수 있고, 북구인의 심해성은 또 그 기후로 설명할 수가 있다. 구라파 안에는 수십국이 분립하는데 중국이나 미국이 일국으로 통일되는 것은 각각 그 지세의 소치(所致)라 하지 않을 수 없고, 대영제국의 부강은 주로 그 위치의 선물임이 사실이다. 사람은 환경의 소산이라는 말은 1면의 진리를 함유한 말이다. 그러나 그는 일면의 진리일 뿐이다. 역사의 특이성은 그 지리적 조건만으로 결정되는 것이 아니다. 먼저 들었던 과수의 비유를 다시 들면 황주는 양품의 사과를 내지만 아무리 황주라도 재래종 나무에 개량종 과실이 맺히지는 않는다. 국광은 황주에서도 국광이요 경성에서도 국광이다. 물론 풍토를 따라 다소의 품질의 변화는 있겠지만 국광으로서의 특성은 불변한다. 변한다 하더라도 극히 서서히 될 것이다. 그와 같이 민족특질도 비교적 항구성을 띤다. 그리하여 그 민족의 역사는 이 민족이 아니고는 될 수 없는 식양(式樣)의 역사가 되고 만다. 한족은 중국본부에 있어서만 한족문화를 산출하는 것이 아니라 남양에 가서도 한족식이요, 미주에 가서도 한족식이다. 현금(現今)에 존재하는 현저한 실례를 든다면 남북 양미주의 문화의 차이다. 양주가 지리적으로 볼 때 상이점이 많은 것은 누구나 잘 아는 일이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그 둘의 인문장태(人文狀態)는 심한 차이가 있다. 북미에 있는 합중국이나 가나타(Canada)가 국세융융한 대신에 남미제국은 항상 동란이 불절(不絶)하고 양자가 다 구주인의 식민개척지임은 동양(同樣)이것만도 북은 문화의 모든 방면에서 세계제일을 자랑하는데 남은 아직 먼 상태에 있다. 그러면 그 차이의 원인은 어디 있는가 하면 하나는 튜톤족이요, 하나는 라틴족인데있다 할 수 밖에 없다. 구주본토(歐洲本土)의 것과는 서로 다르지만 북미(北美)는 아무래도 어디까지 튜톤적이요 남미(南美)는 라틴적이다. 혹은 이것은 사회생활의 변천이 급격한 현대기 때문이라고 할는지는 모르겠으나 동양(同樣)의 사실은 사회변천이 비교적 완완했던 고대에서도 볼 수 있다. 누구나 희랍(希臘)의 예술이 그 거주했던 희랍(希臘)반도(半島)의 자연의 영향을 받은 것이 많다는 말을 하고 또 그 것이 사실이기도 하지만, 같은 희랍(希臘)반도(半島)에서도 희랍인(希臘人)이 오기 전에 선주민족(先住民族)이 거주하던 시대의 것은 희랍인(希臘人)의 손으로 된 것과는 대단(大端) 다른 성질을 가진다. 또 로마제국이 아무리 지중해와 그 중심적 위치인 이태리반도(伊太利半島)가 있어서 된 것이라 하더라도, 그 반도에 아프리카 흑인종을 가져다 두고 그 제국을 기대(期待)할 수 있었겠는가 하면 누구나 시인(是認)하는 대답(對答)을 하는 이는 있을 것 같지 않다. 그렇듯 민족의 특질(特質)이라는 것은 어느 정도까지 지리적 조건의 영향을 초월하여 항구성(恒久性)을 띠는 것이다. 그러나 이렇게 역사의 구성요소로 민족적 특질을 들면 반대하는 의견이 많이 있다. 그 중에 가장 두드러진 것은 영웅사관(英雄史觀)과 계급사관(階級史觀)이다. 전자는 역사의 하담자(荷擔者)를 개인이라고 보는 사상이요, 후자는 대립(對立)하는 계급으로 보는 것이다. 여기서 이것을 논하는 것이 주지(主旨)는 아니나 이미 문제많은 제목(題目)이요, 더구나 현대에는 여기 대한 불안정적인 태도가 많은 때이므로 간단한 수언(數言)을 비(費)하기로 하자. 영웅사관에는 더구나 카-라일의 가르치는 영웅사관에는 들어서 옷깃을 정히하고, 진지엄숙(眞摯嚴肅)한 태도로 인생의 전선에 출진(出陣)하고자 하는 숭고한 인생관을 환기하는 진리가 있다 그러나 이는 아무리하여도 인생의 개인적 방향만을 강조한 이상이다. 개인은 그 자체로 자족적인 것이 아니다. 그의 배후에는 항상 사회가 선다. 고로 인생의 일은 그 개인의 독자의 일로보다도 전체의 대표자의 일로 보아서, 보다더 의미심중해진다. 어떤 개인이나 다 그렇지만 더구나 세계적 사건에 공적을 끼친 영웅적 인물로써 민족적 노력의 대표자 아니고서 된 자가 없다. 종교개혁에 루터가 그 중심적 지도인물이라고 하지만 루터는 단히 개인으로서의 루터가 아니요 독일인 루터로서다. 아무리 루터를 존중하는 자라도 종교개혁을 루터 1인의 사업으로 말할 자는 없을것이다. 종교개혁은 루터의 것도 아니요 츠빙글리의 것도 아니요 북구인의 일이다. 루터가 이태리에서 출현하지 못한 것은 우연이 아니요 당연이다. 루터는 고사하고 전인류의 구원자인 그리스도의 일부터 그렇다. 유태의 역사를 모르고서 기독교를 알 수 없는 일이요, 유태민족을 망각하고 예수의 출현을 상상할 수 없다. 그렇게 말하는 것은 기독교의 세계성을 부인하는 말이 아니요 예수를 한 민족인으로 한정하자는 것도 아니다 오직 민족적 배경 없이, 민족적 저수지의 축적(蓄積)이 없이, 우주에 울리는 생명의 폭포가 떨어질 수는 없다는것뿐이다. 계급사관은 영웅사관과는 반대로 사람을 사회생활에서 가지는 경제적 이해관계에 예속시키는 사상이다. 이해관계가 역사적 사건 변천의 동인(動因)이 되는 일이 많은 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인생의 모든 일을 전연 그리로만 돌리자는 것은 분명한 독단이다. 그 독단은 세계사상에 오직 일인의 소크라테스만이 존재하였다 하더라도 이미 파괴된 것이다. 혹 소크라테스는 수 천년 전 희랍에만 있었던 것 아니요 누구나 제각기 그 가슴 속에 숨어 있는 소크라테스가 있다. 또 계급에는 영속적 자기의식이 없다. 과연 역사상에 지배, 피지배의 양계급이 대립하여 있은 것은 사실이요 「우리 계급의 이익을 위하여」하는 의식이 그 계급을 조성하는 분자의 머리 속에 있었던 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그 계급은 항상 신진대사되어 왔다. 고로 전연 추상적으로 생각하면 계속하는 계급의 대립이 있으나, 구체적 사실에 있어서는 단군시대의 지배계급과 오늘날의 지배계급과를 동일한 자아의식 속에 통일하여 「우리」라는 일인칭을 쓰게 될 수 있겠는가 하면 전연 불능이다. 그러나 민족은 그렇지 않다. 안시성(安市城)의 분전을 읽을 때는 지금 우리도 오히려 자신이 안시성민이 되는 것이요, 병자호란의 이야기를 들을 때는 내가 바로 임경업인 듯이 주먹을 쥔다. 과거 민족주의적 교육의 결과라고 하는 사람이 있을 수도 있다. 그러나 저는 계급사상이 이렇듯 유행하는 시대에 있어서 동양의 감정이 역사상의 계급에 대하여 일어나지 않는 것은 웬일인가하고 반성해볼 필요가 있다. 물론 교육에 의한다. 그러나 어떤 위대한 교사라도 허공에서 실재를 만들어 낼 수는 없을 것이다. 영웅사관이나 계급사관이 다 국부적 진실을 말하는 것이다. 그러나 분석적 진(眞)이 반드시 진인 것은 아니다. 금강산의 봉봉 곡곡(峯峯 谷谷)을 분석해 본다면 다른 산과 다를 것 없는 돌과 나무와 흙과 물로 된 것이겠지만 금강산은 의연히 금강산으로 군산(群山)에 초월한다. 사상에 영웅의 활동이 없다는 것은 아니요, 계급의 동인이 없다는 것은 아니나 그것이 전부를 싸는 진리는 아니다. 개인의 활동이던지 단체의 활동이던지 그것이 사상에 깉을 때는 어쩔 수 없이 민족의 일로 깉는다. 모세의 일은 유태의 일로, 쨔코벤당의 일은 불란서의 일로 깉는다. 조로아스타의 종교는 그의 입에서 나온 것이건만도 이는 파사(페르시아)문화의 골수요, 희랍철학은 아테네의 귀족계급의 산물이건만도 희랍철학이라고 부른다. 이렇게 말하면 매우 심한 민족주의가 된 것 같으나 그런 것도 아니다. 무엇보다도 더 배타적 민족주의는 타기(唾棄)할 것이다. 그러나 개인주의를 배척하여도 개인의 가치를 존중하라는 것 같이 민족주의를 버려도 민족의 가치를 알아야 한다. 이를 모르고 역사를 알 수 없기 때문이다. 고로 역사의 가담자는 민족이다. 개인도 계급도 아니다. 개인도 계급도 다 민족적 세력의 대표자 대행자다. 조선역사는 조선사람의 역사다. 어쩔 수 없이 조선 사람의 역사다. 조선역사 상에는 한(漢)족의 간섭도 많았고 몽고족의 관계도 있었으나 그렇다고 조선역사가 한족이나 몽고족과 조선족의 공동소유라고 하지는 않는다. 잘 했던지 못 했던지, 책임이 내게 많았든지 저편에 많았든지 할 것 없이, 조선사로 결과된 것은 조선사람이 책임지는 것임을 잊어서는 아니된다. 이태리의 마찌니의 일언을 빌어서 민족과 문화에 대한 생각을 약언하자 「신은 그 성지의 일행식(一行式)을 각 민족의 요람(搖籃) 위에 썼다.」 이제 다시 본론에 돌아온다. 이상에 말한 바와 같이 조선사의 기조(基調)를 결정하는데는 조선의 지리와 민족적 특질이 중요한 조건이 된다. 그러나 그보다도 결정적인 것은 제3의 조물주의 섭리다. 하고(何故)뇨 하면 전(前) 2자는 그 자체로 자족적 존재가 아니요, 구경(究竟 )에 있어서는 신의 섭리 안에 그 존재이유를 구하지 않으면 안되기 때문이다. 적당한 성질의 과수(果樹)를 적당한 풍토에 재배하여 결실(結實)하게 하는 것은 전혀 재배자의 심중에 있는 일이다. 역사를 우연으로 보지 않는 자에게는 조선의 지리나 조선인의 특질이 우연적인 것일 수가 없다. 그는 어떤 특정한 계획을 아는 것이야 말로 가장 긴요한 일이다. 민중의 역사가 목표로 삼는 것은 이것이다. 민중에게 자기네 위에 일하는 보이지 않는 손의 작위(作爲)를 체득시키는 일이다. 그대들은 높은 산에 올라 그 밑에 있는 사람의 세상을 부감(俯瞰)하여 본 일이 있는가. 대하고루(大廈高樓)의 윤환(輪奐)의 미를 자랑하는 그 대건축들이 게딱지 같이 보이는 그 곳에서 굽어 볼 때는, 기어들고 기어나고 길거(拮据)하고 도약하는 그 모양이 채찍에 몰려 의구하며 몰려가는 그대네의 네발 가진 친고(親故)와 같지 않던가. 거기서 보면 스스로 풍채를 도치는 신사(紳士)의 모양도 절세의 수자(秀姿)를 자랑하는 미인의 얼굴도 다 없다. 거기서 들으면 환호도 노호도 훤화도 비탄도 다 없다. 모든 빛은 다 섞이어서 뿌연 점 밖에 되는 것이 없고, 모든 소리는 서로 녹아 들어 알아들을 수 없는 음성(吟聲)을 풍변(風便)에 희미하게 보낼 분이다. 그럴 때 그대들은 가엾은 2족 동물이어! 하는 소리를 하지는 않았는가. 사람의 아들들이어 그대들의 생활은 바로 그런 것이 아닌가. 그렇게 무지 속에 꾸물거리는 것이 아닌가. 그렇게 암흑 속에 더듬는 것이 아닌가. 그렇게 잔혹한 운명에 우롱되는 것이 아닌가. 그러한 행렬이 영원의 해무(海霧) 속에서 나와서 영원의 해무속으로 사라진다고 상상하여 보라. 현재라는 구상에서 각하(脚下)에 그 완연하여 가는 일절을 보여 주고 이것이 영원히 계속된다고 알려 주는 말을 들었다고 가정하라. 그대들은 구룡폭의 폭호 속에 의식을 잊어버리자는 것 외에 또다시 더 좋은 생각이 있을 수 있겠는가. 신의 섭리를 모르면 역사는 이것이다. 고로 민중에 향하여 그 역사 위에 일하는 신의 계획을 알기 위하여 노력하도록 가르칠 일이다. 역사는 고담(古談)의 자료도 아니요 취미를 위한 것도 아니다. 개인적 도덕 교훈만을 위한 것도 아니다. 역사상 세계정신을 파악시키는 일이다. 미래에 대한 일정한 지시를 주는 일이다 물론 역사는 우리의 의지를 초월하여가지고 진행한다. 우리가 의식하던지 못하던지 역사는 전개될대로 전개된다. 그러나 조물주의 경륜을 알고 알지 못하고 하는데 따라 우리게는 큰 차이가 생긴다. 알면 자유요 모르면 필연이다. 알면 은총이요 모르면 숙명이다. 아는 것으로 자녀 될 수 있고 모르는 것으로 노예가 될 수 있다. 그러면 섭리는 조선사의 기조(基調)를 어떤 것으로 정하였나. 그것이 지리와 민족성과 실지 역사의 변천(變遷) 위에 어떻게 나타나 있는가 하는 것은 이하에 장을 나누어 담론할 것이다. 여기서는 그 결론만을 먼저 제시하겠다. 그러나 이리 말하면서 나는 주저하지 않을 수 없다. 나는 지금 전인미답(前人未踏)의 지경에 일보를 들여 놓으려 하기 때문이다. 연구와 조사의, 더구나 재식(才識)의 준비가 있는 사람이면 개척자가 가지는 즐거운 자부심을 가지면서 「전인미답의 지경」이라고 부르겠지만, 그렇지 못한 나로서는 사람에게서는 무모와 우매라는 비난을, 조물주로부터는 독신(瀆神)에 대한 벌화(罰禍)를 예기하면서 전인미답의 지경에 모험을 하지 않으면 아니된다. 선생을 가지지 못한 자는 불행할진저! 그러나 안심하고 따라갈 선생을 가지지 못한 나보다도 그 나에게다가 전인미답의 처녀지에 넣는 제일보를 강요하지 않으면 안되는 조선은 더욱이도 불행하다는 생각을 할 때 나는 용기를 떨어친다. 그러나 그보다도 더 주저시키는 것이 있다. 도달한 결론은 너무나도 반갑지 못한 것이기 때문이다. 그 내놓을 선물이 영광스럽기만 한 것이다면 자기의 부족도 무엇도 다 잊고 대범히 나서겠지만 이것을 말할 때 듣는 사람은 실망하지 않을까, 심하면 매도(罵倒)와 모욕(侮辱)으로써 답례하지 않을까 할 때 내 손을 떨리지 않을 수 없다. 그러나 이때에 그런 것은 무용(無用)한 염려(念慮)라고 몰아쳐 내는 것은 선지자의 영이다. 고로 나는 이것을 말하도록 명함을 받은 줄로 믿으면서 다음과 같이 단언한다. 조선역사는 고난의 역사라고. 고난의 역사다. 조선역사의 밑에 숨어 있는 기조는 고난이다. 이 말을 듣는 사람은 놀라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그러나 섭섭한 사실이다. 나는 6,7년 이내 중학생에게 역사를 가르치게 되었으므로 어떻게 하면 그 젊은 가슴 안에 광영있는 역사를 파악시킬까 하고 노력하여 보았다. 그러나 무용(無用)이었다. 어렸을 때 듣던 모양으로 을지문덕, 강감찬의 이름을 크게 불러보려 힘썼으나 그것으로써 묻어버리기에 조선역사 전체에서 발하는 신음의 소리는 너무도 컸다. 남들이 하는 모양으로 생생자, 거북선, 석굴암, 다보탑을 출동을 시켜서 관병식을 거행해 보려 하였으나 그것으로써 숨겨버리기에는 속에 있는 남루(襤褸)가 너무도 심했다. 드디어 나는 자기성찰을 하지 않고는 유행식의 "광휘(光輝)있는 조국의 역사"를 가르칠 수 없음을 깨달았다. 대체 우리는 대민족이 아니다. 중국이나 로마, 페르시아나 터키가 건설했던 것 같은 대국가를 건설해 본 적이 없다. 또 지금껏 역사극에서 주역을 연(演)해본 일도 없다. 애굽이나 로마나, 희랍이나 중국 모양으로 세계문화 위에서 뛰어나는 위대한 자랑거리도 없다. 피라미드 같은 만리장성 같은 광대한 유물이 있는 것도 없고 대 발명가도 없다. 인물이 있기는 하나 그 사람으로 인하여 세계사에 일대변화가 생겼다 할 만한 이는 없고 사상이 없었던 것은 아니나 세계사조의 한 주류를 이룰 만한 것은 없다. 그보다도 있는 것은 치욕이요 압박이요, 상실이요, 추락의 역사다. 공정한 눈으로 볼 때 그렇다. 이는 실로 견딜 수 없는 비애의 발견이었다. 세계의 모든 민족이 다 제 각기 조물주 앞에서 가지고 갈 선물이 있는데 우리는 오직 고난을 가졌을 뿐인가 할 때는 천지가 아득하였다. 애굽, 바빌론은 문명의 창시자의 영예(榮譽)를 가지었고 중국은 그 도덕을, 그리스는 그 예술을, 로마는 그 정치를 가지고 갈 터이지만 조선은 무엇을 가지고 갈 터인가? 인도는 망해도 불교를 남길 수 있고, 유대는 없어져도 기독교가 깉을 수 있으며, 영국은 오히려 헌정을 자랑할 수 있고, 독일도 오히려 철학을 자랑할 수 있으나 조선은 무엇을 남기고 무엇을 자랑할 터인가? 이 사실을 이 참담한 사실, 이것을 희망과 자부심에 작약(雀躍)하는 젊은 혼들에게 말하지 않으면 안되는 것인가 생각할 때 나는 "왜 역사교사가 되었던고" 하고 탄식하지 않을 수 없었다. 끓는 물을 돋아나는 싹 위에 붓는 일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성경은 그 가운데서 진리를 보여주었다. 이 고난이야 말로 조선이 쓰는 가시 면류관이라고 했다. 그리고 세계의 역사는 요컨데 고난의 역사라고 깨달을 때 지금껏 학대(虐待)받는 비녀(婢女)로만 알았던 것이 그녀야말로 가시면류관의 여주인공임을 알았다. 이제 우리는 '마치니와'처럼 "그녀의 일은 아직 다되지 않았다"라고 원기를 낼 수 있다. 과연 그녀의 역할은 이제부터다. 형산(荊山)에서 박옥(璞玉)을 얻은 화씨(和氏) 모양으로 나는 이렇듯 하여 얻은 진리를 다듬을 겨를도 없고 갈힘도 없이 얻은 그대로를 세상에 내놓는 것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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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세계사의 윤곽(輪廓)
조선역사에 대하여 말한다는 것이 서언이 너무 길어진 듯 하나, 조선사의 이야기에 들어가기 전에 한가지 더 말할 것이 있다. 즉, 세계사 윤곽을 우선 마음속에 그려 두자는 것이다. 이는 조선사를 이해하는데 절대 필요한 일이다. 옛날에는 각 민족은 자기네 유일로 고립한 것인 줄로 생각하는데 사상이 있은 결과, 역사라면 거의 고립된 민족사 혹은 국가사에 국한되어 있었다. 그러나 점점 그렇지 않은 것이 알려졌고, 더구나 성서에 있어서는 각 민족이 한 신에 의하여 한 혈맥으로 창조되었고 한 곳으로 향하고 간다는 것이 명료하게 나타나 있다. 고로 조선은 고립한 조선으로 알아서 다 알 수 있는 것이 아니오 세계 전체와 유기적 관련을 가지는 조선으로 알아서만 비로소 조선을 깊이 알았고 참으로 알았다 할 수 있다. 조선사를 알기 위하여 세계사의 조감이 필요하다는 이유는 거기 있다. 그리하여서만 조선의 지위가 어떤 것인지 사명이 어떤 것인지, 따라서 조선 사람이 한 일의 시비가 어떤지 조선사의 총의미가 어떤지를 말할 수 있다. 고로 우리는 조선에 관심을 깊이 가지면 가질수록 항상 세계의 조선임을, 실로 우주의 조선임을 잊어서는 아니된다. 산 조선 역사는 산 우주관을 가진 사람의 손에 의하여서만 쓰일 수 있고 그런 사람의 가슴으로만 읽을 수 있다.
역사를 산출하는 것이 아가페라면 세계사는 일언으로 하면 애인 탐색기(愛人 探索記)라고 할 수 있다. 역사란 무엇인가 물을 때에 그는 인류가 하나님을 탐색하는 기록이라고 하면 그것이 만점의 대답이다. 민족의 성쇠도 국가의 흥망도 모든 문화도 다 이 하나님을 탐색하는 일에 지나지 않는다. 애급(埃及)의 금자탑(金子塔)은 그 안에 묻혔던 제왕을 기념하는 것이 아니다. 사실은 역사의 여명기(黎明期)에 있어서 생명의 본원에 대한 갈앙(渴仰)이 인류의 가슴 속에 얼마나 간절하였던 것인가를 기념하는 기념물이오. 중국의 만리장성은 진시황의 폭정의 산물이 아니다. 사실은 주검을 막기 위하여 고투하는 쓰라린 인생의 고로를 표징하는 작품이다. 하나님은 여기 있다고 본 후 인생을 향하여 그리 나가라고 구령을 하는 자가 제왕이요 종교가요 선각자요, 그렇게 하는 활동이 정치요 개혁이다. 탐색여행을 위하여 양식을 준비하는 일이 경제요 문명이요, 이따금 예민한 감수성을 가진 사람 인생 속에 혹은 자연 속에 하나님의 섬영(閃影)을 보는 것이 예술가다. 그 감격을 말에 표하여 시가 되고 그 즐거움을 소리에 표하여 음악이 되고, 그 장엄을 형색(形色)에 표하여서 그림, 조각이 된다. 끔찍한 전쟁조차도 죄악의 노력이 아무리 거기 있기는 하더라도, 말하자면 어머님의 품을 독점하자는 심술궂은 형제의 다툼질이다. 가시 없는데 장미의 향기를 볼 수 없는 것 같이, 고로 없이 하나님을 찾아 얻을 수 없다. 고로 인류의 걷는 길은 고생의 길이다. 역사의 과정은 수난의 과정이다. 세계사를 배우는 자의 배워야 할 제 1과는 그것이 터벅이는 탐색의 기록임을 알아야 하는 것이다. 황금시대보다도 혼란기에, 번영보다도 쇠잔에, 승자보다도 패자에 형락보다도 주검에, 보다 더 존경할 것이 있고 참으로 영원한 소유자가 될 보물이 있다. 서로서로의 목을 찌르는 칼날의 섬광이 속에서 정의를 배우지 않으면 아니되고, 무릎 위에서 최후의 숨을 거두는 애아(愛兒)의 창백한 얼굴에서 사랑이 무엇임을 배우지 않으면 아니되는 인류의 역사는, 비참은 하지만 다시금 깊이 생각하면 빙설 밑에 파릇한 움을 보는 것 같이, 그렇기 때문에 도리어 장차올 청명한 날에 대한 기대가 간절해진다. 또 그렇듯 파란곡절(波瀾曲折)이 많기 때문에 만나야 할 이에 대한 갈모동경(渴募憧憬)이 더 타오르는 것이오 만날 때의 기쁨과 감격이 더 커진다. 아메리카 시인 롱펠로-의 시에 '이반젤린'이라는 것이 있다. 나는 그것을 읽을 때마다 그것이 바로 인류의 역사 그것을 읊은 것이라는 느낌을 금치 못한다. 다소의 여담인 듯하나 그 내용을 소개하겠다.
지금 미국이 아직 영국의 식민지가 되기 전, 아카지아 지방의 원시림을 등지고 불란서 식민의 평화로운 농촌이 있었다. 그들은 거기서 평온과 만족 속에 크리스챤의 생활을 걷고 있었다. 그 중에 이반젤린이란 방년 처녀가 있어서 용모로나 맘성으로나 촌중(村中)의 영화로 칭찬을 받아 왔다. 그리하여 허다한 신랑후보 중에서 건장하고 씩씩한 야장(冶匠)의 아들 가부리엘을 택하여 약혼을 하였다. 그때에 그랜드푸레의 평화촌에는 청천벽력(靑天霹靂)이 내렸다. 하루 아침 영국 군대가 항구에 상륙하여 촌민을 모아 놓더니, 이 촌으로부터 모든 가족을 다리고 철거하라는 명령을 내렸다. 이를 듣고 촌민은 분개하여 반항의 기로를 올렸다. 노호(怒呼)와 저주(呪咀)가 일어났다. 그럴 때 노 신부 펠리샨은 일어서서 사십여년 간 자기의 목회한 것을 회상시켜, 신앙적으로 순종할 것을 말하고, 십자가에 걸린 예수를 바라보아 위로를 얻기를 권면하였다. 그 말에 감동하여 이 불행한 촌민은 도리어 회개하고 대적을 위하여 사죄(赦罪)를 비는 기도로써 그 그리운 고향을 뒤에 두고 정처 없이 표랑(漂浪)의 길을 떠났다. 이반젤린의 노부는 출발할 때 해안에서 상혼(喪魂)하여 영면(永眠)하고 이반젤린 혼자 노 신부를 따라 배를 타고 떠났다. 혼란중에 서로 눈물로 떠나니 가부리엘이 어디 갔는지는 물론 몰랐다. 그러나 심중에 그 사람을 잊을 수 없었다. 그리하여 이리 묻고 저리 물었으나 도무지 묘연하였다. 가부리엘 편에서도 일단 남부지방에 안도한 후 이반젤린을 찾으려 떠나서 몇해를 두고 서로서로 찾는 중에 한번은 서로 탄 배가 올라가거니 나려가거니 길을 어기면서도 모르고 지나간 일도 있었으나, 그 후 종내 만나지 못하였다. 가부리엘의 집을 찾아는 갔으나 그는 이미 자기를 찾으려 갔다고 하므로 다시 길을 떠나 풍문에 들리는데로 혹은 푸레이리로 혹은 루이쟈나로 굻으며 벗으며 더듬으며 너머지며 애인을 찾는데 방황하게 되었다. 그리 갔다고 해서 찾아 가면 바로 어제 떠났다고 하고, 옴즉 하다 하여 기다리다 못하여 떠나면 바로 그 뒤로 오게 되고, 그리하여 두 사람은 서로 서로 심중에 못잊고 찾고 찾으면서 종내 만나지 못하였다. 그러는 동안에 한 때는 아름다웠던 이반젤린의 얼굴에도 한오리 두오리 주름이 생기고 늙음이 오게 되니, 일생을 두고 찾던 것도 드디어 절망이 되어버리고 말았다. 의탁할 곳 없고, 믿을 곳 없이 헤매이다가 델타웨어에 있는 퀘이커교도의 촌중에 안주하게 되었다. 절망으로 인하여 침울해졌던 그의 마음도 이 신심 깊은 교도의 사랑 중에서 위로를 얻고, 지상에서 실패한 사랑은 비로소 저 세상을 봄으로 인하여 정화되게 되었다. 그리하여 그는 그 여생을 자선에 쓰게 되었다. 그는 자비량이라는 이름을 얻게 되었다. 그 때에 그 지방에 역병이 유행하여 많은 생명이 상하게 되었다. 이반젤린은 날마다 날마다 수용소에 담겨 오는 그 환자를 간호하고 그 최후의 눈을 감기었다. 그러던 중 하루 아침은 아침 광선에 비취어 바로 마지막 숨을 넘기려는 한 백발노인 환자의 얼굴에서 젊었을 때의 가부리엘의 모습을 보았다. 이반젤린은 병자를 위로하기 위하여 꺽어 들고 온 꽃이 자기 손에서 떨어지는 줄도 모르고 '오 사랑하는 가부리엘!'하고 달려 들었다. 가부리엘은 아마 표랑의 생애를 지내다가 애인을 종내 못찾고 거기까지 밀려 왔다가 역병에 걸려 왔든 것이었다. 이반젤린을 보고 그는 일어나려 몸을 움즉이려 하였으나 이미 운동의 자유가 없었고, 애인의 이름을 부르려는 혀는 공연히 움즉일 뿐이요, 소리를 발하지 못하였다. 그리하여 가부리엘은 최초로 최후로 숨 넘어가는 그 입에 애인의 접문을 받고 그 가슴에서 운명하였다. 모든 것이 끝났다. 모든 희망, 모든 기쁨, 슬픔, 고통이 다 끝났다. 이반젤린은 다시금 한번 더 죽은 애인의 얼굴을 가슴에 포옹하며 '아버지여 감사하옵니다!'하였다.
인류의 역사도 이러한 것 같다. 우리는 결국 애인을 찾아 방황하는 이반젤린이다. 때로는 하나님이 우리를 고의로 피하는 것 같이, 모든 노력과 모든 갈앙(渴仰)이 수포로 돌아가는 때가 있다. 때로는 잔혹(殘酷)한 운명에 우롱(愚弄)되는 듯한 일도 있다. 때로는 찾던 이는 이미 죽어버리고 무의미한 일이 아닌가 하는 절망이 오는 때도 있다. 그러는 동안에 지상에서 가졌던 우리의 모든 소유는 시간으를 인하여 상실되는 처녀의 미같이 다 잃어지고 만다. 그러나 우리의 역사는 결코 실패가 아니다. 하나님과 숨박곡질을 하는 동안에 우리 가슴 속에는 최후까지 이반젤린의 가슴 속에 있었던 가부리엘 모양으로 시간을 초절하여 늙지 않는 영원의 애(愛)가 항상 살아 있고, 점점 그 지상적 가변적인 색채를 버리고 점점 더 정화되고 순화되어 간다. 그리하여 끝 없는 듯한 고난의 과정이 끝날 때 기적적으로 일순간에 우리 목적이 완성되는 때가 있다. 그리하여 「오 아버지여 감사하옵니다!」하는 부르짖음을 발하게 될 것이다.
인류가 하나님을 탐색한다는 것을 하나님 편에서 말하면 인류를 교양하는 일이다. 사람이 하나님을 찾음은 본성적이지만 그 본성은 하나님에게서 받은 것이다. 휘트맨이 풀잎새를 읊어서 말하기를
혹은 생각건대 이는 주의 손수건이라. 어느 구석에 그 이름을 쓰고 우리가 보고 뉘 것임을 알게 한 후 향수를 뿌려 짐즛 떨어치신 기념의 선물이 아닌가.
라고 하였지만 깊은 통찰의 눈으로 보면 하나님의 손수건 아닌 것이 없다. 모두 다 우리로 하여금 자기를 찾게 하기 위하여 뜻 있게 두신 것이라. 고로 역사는 일개 성장이다. 하나님에 대한 지식의 자람이다. 고로 역사에는 계단(階段)이 있다. 인류사를 이해하는데 필요한 것의 또 하나는 이를 계단적으로 파악하는 일이다.
역사가 일개 생명의 흐름인 이상, 그 지나는 계단도 산 인생의 일생과 같이 볼 수 있다. 우리 일생을 대체로 구분하면 출생, 성장, 장년, 노성의 사기(四期)로 할 수 있다. 마찬가지로 인류의 역사를 구분한다면 발생기, 성장기, 단련기(鍛鍊期), 완성기로 할 수 있다.
1 . 발생기(發生期) 이는 매우 유구한 옛날의 일이다. 어느 때부터요 얼마나 한 기간임을 알 수 없다. 학문의 연구는 아직 이것을 명확히 설명할 수 있도록 진보하지 못하였다. 지구가 생긴 것이 언제인가 하는데 대하여서도 학자들의 계산이 제각기라고 하는데 어느 것을 믿을 것인지 모르나 아무렇게 잡아도 20억년은 된다고 한다. 이는 우리가 관념에 넣기 어려운 수자(數字)다. 인류가 지구 위에 나타난 것도 어느 때부터임을 확언하지 못한다. 오직 지질학, 고생물학, 고고학 등에 의하여 그 얼마쯤을 추측할 뿐이다. 역사에서 말하는 것은 최대가 7000년쯤이라고 하는데 그 때는 이미 상당한 문화의 지역에 들어온 때다. 고로 발생기라는 것은 적어도 석기시대 이전까지다. 그 시대 사람들이 처(處)하던 동굴 속에 남긴 자취로 보면 그들은 매우 순박했고 신화적(神話的)이었다. 그리고 매우 지지(遲遲)한 진보의 과정을 밟았다.
2 . 성장기(成長期) 자라는 시대다. 고대의 모든 국가가 발생하는 것은 이 시대의 시작이다. 성장은 위선(爲先) 물질적일 필요가 있는 고로 정주생활(定住生活)에 따라 민족의 분화가 일어났다. 그리하여 각민족(各民族)의 문화의 개성은 이 시대에 그 기초가 생겼다. 애급(埃及), 바빌론, 인도(印度), 중국, 조선, 일본, 아미이가등(亞米利加等)의 문화가 그 중 현저한 것이다. 정주의 농경문화는 그들에게 물질의 풍요(豊僥 )를 주었다. 그것이 도시를 낳고 법률을 낳고 기타 복잡한 온갖 사회제도를 낳았다. 발생기에 사람들이 순박했던 대신에 이 시대 사람은 낭만적이었다. 혹은 살벌적(殺伐的)이었다. 그러나 하나님은 결코 물질적 조건만을 주지 않았다. 깊은 정신문화의 씨를 뿌리게 하였다. 기원 전 6,7세기는 사상에 특이한 시대라고 하는 때다. 이 때에 동서양을 통하여 위대한 정신적 지도자가 배출하였다. 인도의 석가, 중국의 공자, 이스라엘의 모든 예언자, 희랍(希臘)의 칠현인 등 많은 진리의 제시자가 있었다. 그리하여 성장이 거의 다 된 때에 최고의 진리가 그리스도에 의하여 나타났다. 이 시대 후에 있어서는 우리는 새로운 민족의 성장을 별로 보지 못한다.
3 . 단련기 성장이 다 된 후 단련의 시기가 온다. 대체로 중세 이래 지금까지다. 조선에서는 삼국시대 이래요 중국에서는 한(漢) 이래다. 동양에서도 이 시대라면 기전 소 분립 시대가 지나고 비로소 대 통일이 되는 시대다. 서양에서는 고대 모든 문명을 구용(苟容)하고 근대 모든 문명의 유원(流源)이 된다는 로마제국이 출현하여 비로소 근대식의 국가가 시작된다. 이 시대는 회의(懷疑)의 시대요 고투(苦鬪)의 시대다. 현세적에서 내세적으로, 물질에서 정신으로, 필연에서 자유로, 노예에서 자녀로 나가기 위한 변태(變態)하기 위한 단련이다. 이 시대 이후 위대한 종교가는 더 나지않았다. 오직 이미 제시된 진리의 사도가 계속(繼續)한다. 이 시대 이래 역사의 사역을 연(演)하는 서양민족들의 역사는 곧 정교양권 (政敎兩權)의 싸움이다. 최후의 승리를 수분(數分) 후에 두고 점점(漸漸) 더 맹렬해 가는 용사의 싸움 같이, 지상의 세계와 영원의 세계의 양군세의 싸움이 점점(漸漸)더 격렬해 가는 시대다. 우리는 지금 이 시대의 종말기에 가까운 것이 아닌가 한다.
4. 완성기(完成旗) 아직 오지 않았다. 언제 올지도 어떤 모양으로 올지도 모른다. 마는 이 때까지의 일로 미루어서 마침내 모든 문제가 「애(愛)」안에 해결되는 시대가 올 것은 확실하다. 그는 통일의 시대요, 정화의 시대요, 영화(靈化)의 시대다. 영원의 시대다.
다음에 세계사의 윤곽을 그릴 때에 한가지 더 잊어서는 아니될 것은 동양 서양의 대립이다. 서양의 어느 시인은 동양은 동양, 서양은 서양, 이 두 쌍둥이는 영원히 만나지 못하리라고까지 불렀지만, 만나지 않을 것은 아니라 하드라도 양자가 제각기 특색을 가지는 것은 사실이다. 동양은 명상적인 대신에 서양은 활동적이요, 동양은 종합적인 대신에 서양은 분석적이다. 동양 인종의 역사는 복종의 역사요, 통일의 역사요 반복의 역사인데 서양 인종의 역사는 자유적이요 발전적이요 전개적이다. 동양심(東洋心)과 서양심은 물과 기름 같이 서로 합하지 않는 것인 듯하다. 그러나 이는 우연히 된 일도 무의미하게 된 일도 아니다. 그 밑에 깊은 섭리의 손이 있어서 된 것이다. 세상사를 주의하여 읽어 보면 동양은 정신의 지지자요, 서양은 물질의 지지자임을 알 수 있다. 역사의 출발은 동양에 있고 발달은 서양에 있다. 진리의 씨가 역사의 토양에 떨어지자 역사의 주역은 서양인에게로 갔다. 그리하여 충분한 분화와 자유로운 토구(討究)가 허락되었다. 진리는 이러하여서만 빈약해지고 질곡(桎梏)됨을 면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래 분석에 이어 분석, 회의(懷疑)에 이어 회의, 연구에 이어 연구가 생겼다. 그리하여 얻은 물질적 위력으로 동양인을 가혹히 훈련하게되었다. 동양인은 그 밑에서 자유를 학습하지 않으면 아니되었다. 이제 현대는 서양문명의 문화극도 달하여 그 침체(沈滯)를 보이게 되고, 동양가치의 인식이 차차 주장되는 일편 동양은 그 인학(因學)을 거의 필(畢)할 시기가 되었다. 이제 남은 문제는 동양의 각성에 의한 동양문명의 정화다. 오늘날에 성(盛 )히 종합이 절규되는 것은 그 때문이다.
우리는 이상에 그린 이 윤곽도에서 조선을 발견해야 한다.
출처:사단법인 함석헌 기념사업회 ssialsori.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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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병춘 2007.12.03 22:53 [121.156.174.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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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서양이 만나는 '보편' 진리를 벌써 이야기 하셨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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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성서적 사관 성서의 사관이 어떤 것인가를 구명(究明)하는 일은 곧 성서의 근본의(根本義)가 무엇인가를 찾는 일이다. 성서의 가르치는 근본진리를 알지 못하고는, 말하자면 성서심(聖書心)을 얻지 않고는, (성서의 말을 빌어 하면, 성령을 받지 않고는) 성서의 사관을 이해할 수 없는 일이오 반대로 만일 역사를 보기를 성서가 보는 것 같은 견해로써 한다면, 저는 벌써 성서의 근본의를 안 것이라고 할 수 있다. 그 이유는 성서의 목적은 사람으로 하여금 우주 인생의 근본실체인 영원의 생명을 파악시키자는 것이오, 역사에 대하여 말하는 바가 있는 것도 이 때문인 까닭이다. 성서에는 그 내용의 분량으로 보아서도 역사에 관한 것이 불소(不少)하지만 또 직접 역사적 기록이 아닌데 있어서도 그 입장은 항상 우주사적인데 있다. 성서가 그렇듯 역사를 중요시함은 기독교가 인생의 구원을 목적하는 사실의 종교요 생명의 종교인 증거다. 사변에 의한 관조(觀照)가 아니다. 실인생활역사(實人生 活歷史)에 의하여 인생의 오의(奧義)를 붙잡게 하고 우주를 꿰뚫으는 영원의 생명 그 자체를 파득(把得)하게 하는 일이다. 생명을 문제로 삼는 자라면 역사를 무시할 수 없다. 생명과 역사는 분리하여 생각할 수 없는 것이다. 생명은 역사적으로 진전하는 것이오 역사를 산출하는 자는 생명이다. 우리가 성서를 읽어서 활동사진을 보는 듯이 대우주의 생명류(生命流)를 볼 수 있는 것은 성서가 생명 있는 우주사인 까닭이다. 거기 우주의 창시가 있고 완결이 있다. 거기 인류와 그 문화의 기원과 가치를 볼 수 있고 모든 민족과 국가의 흥망융체(興亡隆替)의 원리를 볼 수 있다. 성서는 실로 세계에 필적할 자 없는 유일의 우주사다. 그렇게 말하면 성서의 사관은 이미 다 알려진 것이다. 기독교의 근본진리가 무엇인지가 명백한 이상, 그 사관이 어떤 것인가는 설명할 필요도 없다. 성서 66권을 일언으로 요약하면「하나님」하나에 돌아가고 만다. 즉 만물은 천사나, 인생이나, 자연이나, 그 가운데 있는 모든 것은 다 신으로부터 나왔고 신으로 말미암고 신 안에 약동(躍動)하고 마침내 신으로 돌아간다는 것이 성서의 근본주장이다. 주장이라기보다도 고지(告知)요 증거다. 그리고 그 신은 은총의 신이다. 우주과정의 배후에 서서 그 흐름의 오저(奧底)에 있어서 그 생명의 내부에 있어서 자기 몸소의 질거움으로부터 역사를 지어내기 위하여 자신을 만물 속에 나타내고 만물 위에 자기의 생명을 붓는 자다. 고로 신은 사랑이다. 환언하면 이 역사의 산출자는 즉 역사의 근원이 되고, 그 원동력이 되고, 그 법칙이 되는 자는 愛(아가페)이다. 성서적 사관은 아가페 사관이다. 그러나 이 결론적인 일어(一語)를 지적하는 것만으로는 우리가 말하는 성서적 사관의 학문적 설명은 되지 않았다. 고로 우리는 이하에서 그 아가페 사관의 내용의 경개(梗槪)를 설명하기로 하자. 1. 성서는 역사의 본원을 신에 구한다. 정신이거나 물질이거나 인생이나 동물, 식물, 광물(鑛物)이나, 존재라는 존재는 모두 다 신에서 나온 것이오 신 없이는 하나도 존재할 자가 없다는 것이다. 이 점은 역사의 본원을 아무 생명 없고 목적 없는 우연적 물질에 귀(歸)하는 유물사상과 근본적으로 상이한 것이다. 유물론은 성서와는 역사의 출발점에서부터 갈라진다. 양자(兩者)의 세계는 시로 대척적(對蹠的)으로 대립한다. 만일 유물론 안에 어떤 실질적 세계가 있다고 가정하면, 유물론의 홍수에 의하여 세계관의 파선(破船)을 당한 현대인은 스스로를 구원하기 위하여 아가페의 세계로 향하면 어떤가. 그러나 역사의 본원이 신이라는 말만 가지고는 불완전하다. 그 신은 인격적이라는 설명을 부가(附加)하여서만 기독교적이다. 역사의 본원을 신에 돌리는 사상은 밖에도 있다. 범신론(汎神論), 다신론(多神論). 그러나 기독교에서 신이 만물과 그 역사의 본원이라는 말은 범신론에서 오는 것 같은, 만물 즉 신의 의미도 아니오, 다신교에서 보는 듯한, 자연현상의 상징화된 의미에서도 아니다. 성서에서는 만물의 본원이 신에 있고 신은 만물에 있어서 자신을 현현(顯現)하지 아니치 못하는 이라고 하기는 하지마는 또 어디까지 신은 만물이상이라 함을 주장한다. 신은 단순한 철학적 설명의 최후적 가정으로 요구하는 관념에 붙인 명사(名詞)가 아니라, 의지적 생명적 존재자라는 것이 성서의 사상이다. 2. 우주는 신이 창조하였다고 한다. 즉, 이 우주와 인생은 우연히 자연발생적으로 된 것이 아니라 생명의 본원이 되는 신이 자기의지로써 지어 냈다는 것이다. 고로 성서에서는 변증론에서 보는 것 같이 역사가 알 수 없는 운무(雲霧) 속에 그 머리를 잃어버리는 것이 아니라 명료한 시작을 가진다. 과학이 발달한 금일(今日)에 있어서 창조설을 믿는 것은 미신인 것 같이 생각하는 것이 대세다. 물론 하나님이 우리의 손가락 같은 다섯 손가락을 가지고 어린 아이들이 소꿉질을 하듯이 흙을 빚어 만들었다고 생각하는 것은 미신일런지 모르겠으나 창세기는 그렇게 이해할 것도 아니오 또 이유는 알수없이 자연히 우연한 물질의 운동으로 인하여 되었다는 사상도 그영리도(怜悧度)에 있어서 조금도 나을것이 없는 말이다. 창세기의 해석을 어떻게 할것이라는 것은 여기서 논할바 아니지만 이우주 더구나도 인류의 역사를 일개 의지의 표현으로 보는 사상은 진(眞)을 천득(穿得)한 설명이라 하지 않을 수 없다. 우주는 결코 자연발생적으로 된 것도 아니오 우연하게 생긴 것도 아니다. 그렇게 말하기에는 나무나도 경이할만 한 것이 있다. 다른 모든 것을 다 버리고라도 오직 한가지 사실만 예거(例擧)한다면 이 세상에 도덕생활이라는 것이 있다는 일이다. 우리가 나면서부터 소여(所與)의 환경의 한 조건으로 타 가지고 나는 이 도덕세계는, 그 까닭으로 인하여 평범한 것이 되어버리었지만 재사삼사(再思三思)하여 반성의 비로써 우리 심선(心線)위에 앉은 모든 습관의 먼지를 떨어버린다면 세상에 대체(大體) 도덕이라는 것이 있다는 이 사실 같이 이상한 일은 없다. 과학은 경이(驚異)를 없앤다 하여도, 과학이 진화론을 가리켜 도덕은 인간의 두뇌의 발달에 따라 생긴 것이라 하면 할수록 우리의 의심은 더하여간다. 성선이 어떤지 성악이 어떤지 또는 혹의 생각하는 것 같이 성무선악(性無善惡)이 어떤지 도덕적 가치는 실재하는 것이라고하든지, 사회생활의 방편에서 나온 것이라고 하든지, 기타 혹은 긍정 혹은 부정의 무슨 변론을 하든지 하여간 저가 상식을 가진 정상자라면 인간의 실사회에 우연하게 존재하는 도덕률을 부정할 수는 없을 것이오, 만일 도덕률이 실지 있음을 인정 한다면 그는 도대체 어디서 유래한 것인가. 의지 없는 곳에 도덕을 상상할 수 없는 것이오, 도덕 없는 곳에 목적을 인정할 수 없다. 이 인생이 목적 없다면 모르지만 그 추구하는 어떤 목적이 있다면, 그리고 이 우주를 지지하는 정의의 법칙이 있다면 이 우주는 의지의 소산임을 승인하지 않을 수 없다. 그리고 만일 이를 승인하지 않는다면 우주도 인생도 허무 뿐이다. 성서가 우주창조를 가르치는 창세기로 시작됨은 우연이 아니다. 3. 종말관이다. 원시가 있는 이상 종말이 있지 않을 수 없다. 종말관은 기독교 독특의 위대한 사상이다. 여기서 종말관이 어떤 것임을 세론(細論)하려는 것은 아니지만 하여간 성서는 대담(大膽)히 명백히 이 세상에는 어떤 종말의 날이 온다고 하는 것이다. 그리고 그 날에 있어서 모든 문제가 해결된다는 것이다. 기독의 재림 사자(死者)의 부활, 최후의 심판등 위대한 사실들이 그 때에 일어난다고 한다. 그는 실로 우주 총결산의 날이다. 더구나도 그날은 비논리적 방법으로 도래된다는 것이다. 실로 놀랄 사상이다. 그러나 이것도 역사를 일개 의지의 소산으로 본 이상에는 필연적으로 요구되는 결론이다. 목적있는 물건이라면 반드시 완성의 날이 있어야 할 것이다. 역사를 가지고 처음도 내종(乃終)도 없는 무한한 기계적 변화의 도정(道程)으로 보는 사상에서는 이 지구가 우연히 어떤 천체와 충돌이라도 하지 않는 한 인류역사는 무한히 계속 될것이오, 또 지구의 파멸로 인류의 역사가 불의에 끝난다 하더라도 그로 인하여 적막한 무덤으로 되어버린 이 우주는 그 아름답지 못할 상태를 영원히 계속하지 않으면 안된다고 한다. 그러나 역사의 배후에 의지의 활동을 읽는 성서에서는 우주는 유한성을 가진 것이다. 적어도 이 시공(時空)의 의상을 입는 우주는 그렇다. 그리하여 그것이 지나간 후에야 영원히 축복 받은 세계가 온다고 한다. 현대의 사학(史學)에 있어서는 종말관을 가지는 사람은 별로 없는 모양이다. 사학은 고사하고 개인적 신앙으로도 드문 모양이다. 아마 현대인 같이 물질적 형락(亨樂)에만 탈심(奪心)이 된 사람들은 일찍이 바벨탑을 쌓던 사람들 모양으로 이 역사에 종말의 날이 온다는 말은 두려워 못견디는 모양이다. 그러나 인류를 구하는 것은 이 사상이 아니면 안된다. 그는 인류의 사상은 찰나적 조건보다도 미래에 의하여 규정될 때에 가장 원대성을 띨 수 있고 건전(健全)할 수 있기 때문이다. 쳐녀에게 결혼(結婚)의 식일(式日)을 알려 주라. 그럴 때 저는 전에 볼 수 없었던 미와 미덕을 나타낼 것이다. 그리하여 처녀 생활의 종결이라는 비극적 사실과 공(共)히 비로소 처음으로 참 생활이 시작될 것이다. 역사상의 종말일은 곧 결혼식이다. 그 날이 온다는데 일종 공포가 포함되지마는, 만일 그 날이 영원히 아니 온다면, 이 고통 많은 세상에 있어서 실망하지 않을 자 누군가. 종말일이 온다고 하는 것은 도리어 우리에게 희망을 약속하는 일이다. 더구나 그날이 예측할 수 없는 비논리적 방법에 의하여 온다고 하는 고로 우리 생활에 긴장이 일층 더한다. 천년이 일일 같고, 일일이 천년 같은 세계(거기는 눈물과 고통과 탄식이 그림자를 감춘 세계)가, 도적 같이 내임(來臨)한다는 말을 듣고 누가 작약(雀躍)하지 않는 사람이 있으리요, 4. 원시의 날이 있고 종말의 날이 있어 이 역사의 한계가 결정되었다. 그 중간에 있어 역사는 어떻게 진전되는 것인가. 성서는 여기 대하여 신의 통치를 말한다. 신은 우주의 창조주일 뿐 아니라 또 통치주이다. 존재의 원인이 될 뿐 아니라 발전의 원리가 된다. 교도(敎導)자가 된다. 일찍이 철학자 중에는 신은 시계사와 같고 이 우주는 그가 만든 시계와 같이 자동장치에 의하여 활동하는 기계라고 설명한 이가 있었다. 철학적 제일원인으로 신을 가정하는 고로 그런 설명이 나온다. 그러나 신을 인격자로 체험하는 성서에서는 그렇지 않다. 아가페의 신은 그런 자동기계로써 즐거워 하지 않는다. 그는 이 우주 속에 자유의지를 넣었다. 자유로운 의지가 있어서만 생명은 가능하기 때문이다. 자유의지 없는데 인격 없고 인격 없는데 참 생명은 없다 생명 없는 사각(死殼)뿐이다. 신은 사해(死骸)를 좋아하지 않는다. 시인이 읊은 것 같이 '행하라 산 현재 속에 행하라' 고 명령한다. 그리하여 저 자신을 항상 자유의 생명을 가진 자를 통하여 나타내기를 쉬지 않는다. 신은 자기의 작품을 바라보고 앉아서 만족을 느끼는 노쇄한 예술가 같이 우주를 형락(亨樂)하는 자가 아니다. 예수의 말대로 그는 오늘날까지 항상 쉬지 않고 일하는 자다. 자유의지 위에 일하는 자다. 그리하여 그를 양육하고 교도하는데서 자의 아가페로서의 본성을 들어낸다. 고로 기독교의 신은 섭리의 신이요 역사는 그 운행의 차륜을 섭리의 궤에 꿰었다. 5. 최후로 성서는 인생을 도덕적 책임자로 본다. 인간은 그의 생활을 도덕적으로 하지 않으면 안된다는 것이다. 사람에게는 자기가 원하던지 안하던지 물을 것이 없이 도덕적 책임이 지워졌다는 것이다. 저가 시장에 나갔던가, 심곡(深谷) 숨었던가 북극의 무인경(無人境)에 갔던가 말할 것 없이 저가 산 존재자로 있는 한은 그 하는 바 일거수일투족(一擧手一投足)에도 시비(是非) 선악의 판단이 붙는 것이오 거기 대하여 저는 책임를 져야 한다고 한다. 인생의 가는길, 항상 험로(險路)와 난관이 기다린다. 반갑지 않은 인생관이라 할 것이다. 그러나 도리어 모든 사상 중에 이보다도 더 높은 값을 인생에다 붙인 자는 없다. 이로 인하여 인생은 신의 공동자가 되었기 때문이다. 신은 그 우주경륜의 성업(聖業)을 도덕적 인생에 의하여 완성하려고 하였기 때문이다. 신은 왜 인생을 도덕적으로 지었는가고 힐문(詰問)하는 것은 소용없는 일이다. 그러나 그 신의(神意)를 체험하는 것은 최귀(最貴)한 일이다. 신은 실로 이 우주를 죽은 기계에서 구하기 위하여 그 가운데 도덕적 인생을 두었다. 오직 노예같이 복종하는 것을 신은 원치 않는다. 고로 자유의지를 주었다. 그러나 그자유의지만으로는 위험하다. 자유는 방종과 상거(相距)가 멀지 않은 것이오 의지는 항상고집과 교만에 빠지고 마는 것이다. 고로 신은 자유의지에 반하여 양심을 넣었서 자유의 가는 곳에 반드시 책임이 따르게하였다. 그리하여 인생은 도덕생활을 피할수 없이 되었다. 그리하여 인생은 만물을 대표하여 우주역사의 도덕적 책임자로 서게 되었다. 만물창조하는 날에 신은 아담으로하여금 만물을 명명(命名)케 하였다함은 의미깊은 일이다. 그렇지 않았으면 매우 유쾌한 것이었을 도덕이 아담의 실패로인하여 중하(重荷)로 되기는 하였으나 역시 그는 우리의자랑임이 틀림없다. 인생이 도덕적생활자인 것으로 인하여 우주역사 완성의 책임을진다하는 말은 근대윤리학과같이 인간을 신으로 높이는 의미는 아니다. 오직 신은 인격적인 애(愛)의 신이기 때문으로 그 우주경륜의 일을 도덕적인 인생을 통하여서만 실행한다는 의미에서다. 사람이 도덕적책임을 다하는 것은 신을 거부하여서가 아니오, 자기의 자유의지로서 신의를 쫓아서야 능히 할 수 있다. 시인 테니슨이 우리 의지는 우리의 것 어찌 할 줄모르는 것 우리의 의지는 우리것 당신 것으로 바치올것 이라고 옲은 것은 인류를 대표하여 한말이다. 우리의지를 바치는 것이다. 자유의 가치는 자기하고 싶은대로 방종(放縱)을 하는데 있는 것이 아니다. 내의지를 자유로써 신앞에 바치는데 있다. 인생을 도덕적 책임자로 보는 일은 곧 역사를 도덕적으로 해석하는 일이다. 그저 문화의 발달이 아니다. 도덕적발달이다. 이해를 위하여는 정의인도가 무엇인지 모른다는 현대에 있어서는 이 점은 특히 강조할 필요있다. 배타적민족주의 같은 것, 살육적계급투쟁론 같은 것, 성서의 입장에서 보면 용서할 수 없는 죄악이다. 이름은 자유에 빌어가지고, 민중은 어육을 만드는 현대의 정치가들은 차라리 왕도정치를 하자던 옛날 전제군주에게가서 그 책임감을 배워야할 것이다. 하여간 성서로인하여 우리는 역사에 대한 도덕적책임을 진다. 조선사람이면 세계 어느구석에 가던지 조선에 대한 책임을 피치 못한다. 이를 도덕적으로 향상시킬 책임이다. 시로 조선 만인이라 전우주에 대하여서다. 바울은 말하였다. - 만물이 모두 비탄(悲嘆)하며 하나님의 뭇아들이 나타나기를 기다린다고. 이상에서 우리는 매우 조잡한 논법으로 성서적사관의 대체를 말하였다. 그러나 이것만으로도 우리는 봄바람에 들려오는 야성의 불음에 깨여 노후(怒吼)하는 함중(檻中)의 사자 같이, 문명이라는 인위적식물로 마비된 가슴속에서 어떤 영성이 그 동명(動鳴)를 시작함을 깨닫는다. 새 사관을 가질 것이다. 그리고 역사를 고쳐 읽을 것이다. 그리하여 이 인생을 지리멸렬(支離滅裂)에서 구원하라. BACK 사단법인 함석헌 기념사업회 ssialsori.net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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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병춘 2007.12.02 21:59 [121.156.174.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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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깊은 글들에 선배들은 감동먹었겠죠? 낯선 한문이 많지만 뜻이 깊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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