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초에는 말이 없었다. 따라서 말이나 글 때문에 생기는 어려움도 없었다. 그러나 사람들은 말을 만들고 글을 만들었다. 말은 고마운 도구가 되었다. 말은 더없이 소중해지고 인간은 말 없이는 생각할 수 없는 존재가 되었다. 말과 글은 인간이 인간임을 드러내준다고는 하지만 말이나 글로밖에 할 수 없는 일을 가지고 있다는 것, 이것 또한 인간이 지닌 치명적인 약점이다.
그래서 말이 인간의 삶을 풍성하게 하는 경우, 아름다운 것을 아름답다고 하고 추한 것을 아름답지 못하다고 이르는 경우, 우리는 말/글을 예찬할 수밖에 없다. 그것을 장려할 수밖에 없다. 그러나 부엌칼의 용도가 그러하듯 말/글도 때로는 위험한 도구에 지나지 않는다. 그런 도구가 어떻게 아름답게 쓰이느냐 하는 것은 전적으로 인간에게 달려있다.
말이 사물을 담아내야 할 수밖에 없다면, 말이 인간의 일에 어차피 개입할 것이라면, 인간이 말없이 살 수 없다면......, 말과 사물의 격차, 말과 양심의 격차를 줄이는 것이 가장 좋은 일일 것이다. 거짓한 말을 줄이고, 진실한 말을 늘여가야 할 것이다.
말들이 사물을 왜곡하고 진상(眞相)이나 진실을 어렵게 하는 시대에, 말과 글을 하는 이가 자세를 곧추 세운다면, 시퍼런 양심을 포기하지 않는다면, 단호한 의지를 거두워 들이지 않는다면, 말/글이 사물을 진실하게 담아내는 그릇이 되게 할 수 있을 것이다. 더 나아가 올곧은 방향으로 사물/일을 이끌어 갈 수 있으리라 나는 믿는다. 말/글이, 인간을 올바로 인도하는 기제가 될 수 있으리라 굳게 믿는다. 거짓한 말들을 거둬낼 수 있을 것이라고 확신한다.
문제는 말 그 자체가 아니라 그것을 가진 인간이다. 말을 다듬을 것이 아니라 인간을 다음을 일이다. 말/글의 힘을 배워버린 탓에 여태 말/글로 먹고 살아온 데 대해, 역한 말을 무수히 쏟아놓은 데 대해 한없는 자책감을 나는 느낀다. 이제 그 어마어마한 잘못을 조금이나마 지우기 위해서라도 나는 살아있는 말, 살려내는 말들을 하고 싶다. 말이 세상을 아름답게 하는 일을 하고 싶다.
나는, 말이 사물을 올바로 담아낼 때까지, 사물들을 올바로 이끌어 낼 때까지 말과 처절하게 대면하려 한다. 말과 싸워서, 세상과 싸워서, 자신과 싸워서 지지 않으려 한다.
1톤 트럭으로 서울의 여러 아파트 주변에서 과일을 파는 ㄱ씨. 시간과 상황에 따라 트럭의 자리를 옮겨 다녀야 맞다. 하지만 이제는 아니다. 어지간히 기대치를 잡지 않는 한 정한 자리를 떠나지 못한다. 경유 비용을 충당하기가 쉽지 않기 때문이다. 장사가 되지 않는 데다가 경유 값까지 올라 기동력이 떨어져 매출액을 끌어올리는 게 쉽지 않다. 자리 잡는 일도 이제는 만만한 일이 아니다.
경유 값이 올라 생활에 직접적인 부담이 되는 사람들은 비단 ㄱ씨만은 아닐 것이다. 경유값이 얼마나 올랐을까. 주유소에 따라서는 이미 1700원을 훌쩍 넘어서 있다. 이런 추세라면 휘발유 값보다 더 비싸지는 것은 시간문제다. 지난 4월 말 현재, 경유 값은 지난 해 같은 달에 비해 30.4%나 올랐다. 1년 새 30% 이상이 올랐다는 건 충격적인 일이다.
경유는 휘발유와는 달리 서민경제에 치명적인 영향을 미치는 것인데도 정부와 정유사들은 뒷짐만 지고 있다. 경유 값이 오르는 건 국제유가가 오르고 있는 한 어찌할 수 없다는 식으로 여론을 호도하고 있다. 여기에 대중 매체의 ‘협조’까지 더해지면서 시민들은 경유 값 인상을 정서적으로도 어찌할 수 없는 것으로 받아들이고 있다. 거의 모든 언론들이 경유 값 인상에 대해 “경유의 국제가격 급등 탓으로…”투로 기사를 쓰고 있으니 그럴 수밖에.
최근엔 값싼 주유소를 찾아다니게 하는 등의 '운동'이 시민들의 호응을 얻고 있다. 경남 창원에서는 아예 시민단체들까지 나서서 이런 운동을 펼쳐가고 있다. 하지만 모든 짐을 결국은 소비자들이 떠안게 된다는 게 문제다. 경유 값의 경우는 좀더 심각하다.
경유 값 부담을 소비자들에게 떠넘기는 게 과연 합리적인가. 국제 경유의 국제가격이 올랐다고 치자. 정부의 유가정책에서 생긴 인상분은 다시 조정할 수 있는 것 아닌가. 지난 해 7월 정부는 경유 값을 휘발유 대비 85%까지 끌어올리는 것을 내용으로 한 세제개편을 마무리했다. 그때 시민들은 정부의 에너지 정책이 무리라는 것을 알면서도 어쩔 수 없이 정부 정책에 따랐다.
2004년 유가정책을 개편하면서, 정부는 경유값 조정의 가장 큰 이유로 ‘환경 오염'을 들었다. 당시로서는 설득력이 없는 것도 아니었다. 하지만 지금은 환경 오염은 고사하고 경유차를 세워둬야 할 정도로 서민들의 삶이 어려워진 상황이다. 2004년 이후 환경 오염을 이유로 올렸던 세수만큼을 국민들에게 되돌려 주어야 하지 않겠는가. 경유 가격을 급격히 끌어올린 세수를 정부는 당장 조정하여 2004년 이전으로 환원해야 한다. 경유 차에 매겨지는 환경부담금을 폐지하는 것도 심각하게 고려해야 할 것이다.
휘발유 차는 세워두어도 된다. 하지만 경유차를 세워두어서는 생계를 이어갈 수 없는 시민들이 절대 다수라는 점을 정부는 지나쳐서는 안 된다. 정유사들의 폭리가 문제라면 정유사들을 감독하여 경유 값을 조정하면 될 것이다. 정부 쪽에서는 경유차를 사용하는 자영업자 등에게 세제혜택을 주는 것도 좋을 것이다.
경유정책을 2004년 이전의 그것으로 되돌려 놓는다면, 정부의 에너지정책은 앞으로도 시민들에게서 신뢰를 얻을 수 있을 것이다. 시민들이 정부에게 요구하는 건 무리한 게 아니라 합리적인 정책의 기준이다. 경유 값을 조정하여, '한번 오르면 결코 내리는 법이 없다'는 이 나라의 물가정책에도 획기적인 변화가 있을 수 있음을 정부는 국민들에게 보여주기를 바란다. 불합리한 유가정책으로 서민들과 시민들의 거센 저항을 부르지 않기를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