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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설일 : 2005/06/19
 

대안학교에서 '문제행동'이란?

2008.07.09 20:11 | 대안 교육 | 파랑

http://kr.blog.yahoo.com/pleamore/5787 주소복사

대안학교에서 '문제행동'이란? <필자:금안당/조경숙>

입학설명회 준비도 할 겸, 내년에 삼무곡으로 내려갈 소나무가 예비체험 기회도 가질 겸, 1주일 간 소나무선생님과 내가 역할을 바꾸기로 했다. 그래서 나는 본교에, 소나무 선생님은 삼무곡에 있게 되었다. 오늘로서 내가 본교에 등교하는 게 3일째다.

덕분에 7학년 학부모님 두 분과 깊이 있는 상담을 할 수 있었다. 두 분 다 6, 7학년 전체회의에서 소위 도마에 자주 오르는 아이들의 부모님들이다.

아이의 상황이 염려되어서인지, 두 분 다 고민스런 얼굴들이시다. 그럴 것이다. 학생수가 많아 아이들 한명한명이 깊이 있게 파악될 수 없는 일반학교에 다니던 동안에는 오히려 가려져 있거나 축소된 형태로만 보이던 아이의 문제가 대안학교라는 작은 집단안에서는 더 전면화되어 드러나니 말이다. 당혹스럽기도 하고  아이에게 화가 나기도 하고, 학교에 미안하기도 하고... 거꾸로 학교가 불만스럽기도 하고 아이가 안되어보이기도 하고...

역으로 대안학교에 아이를 보내면 또다른 반대현상도 일어난다. 눌리고 강제되는 환경이 제거되는 만치, 아이의 부정적 행동의 강도가 그만큼 약해지는 것이다. 억압이 강하면 저항(어른들의 눈으로 보기에는 문제행동) 또한 강해지기 마련인데, 억압이 약해지니 그 저항의 강도도 약해질 수밖에.

그래서 가정이나 동료관계에서 공격적이거나 반항적인 행동을 보이던 아이라면, 그 정도가 약화되고, 반대로 수동적이거나 위축된 행동을 보이던 아이라면, 조금씩 자신감을 키워간다. 부모는 아이의 이런 변화를 말로는 설명하지 못하지만, 느낌으로 전달받는다.

부모는 적의에 찬 아이의 눈빛이 좀은 누그러진 것을 느끼고, 어디에 마음 둘지 몰라 산만하고 부산스럽던 태도가 좀은 편안하고 안정되는 것을 느끼며, 감당 못할 세상에 대한 두려움으로 안으로만 움츠려들던 아이가 조금씩 기지개를 켜고 밖으로 고개를 돌리는 것을 느낀다. 그러다 어느 날 문득 예전보다는 아이가 옆에 있는 것이 덜 부담스럽다는 사실과 자신이 더 많이 아이와 대화를 나누고 있다는 사실을 깨닫기도 하고,  아이가 예전보다 동생을 더 잘 데리고 놀아주는 모습을 보기도 하며, 아이가 쾌활하고 기분좋아 하는 순간들이 예전보다는 더 자주 있음을 깨닫기도 한다. 말하자면 대안학교에 오면 아이들은 '풀어지고', 본래 가지고 있던 아이다운 순수함쪽으로 한발 더 다가선다.

그렇다면 왜 이렇게 정반대되는 두 가지 현상, 다시 말해 대안학교에 보내고 나니 아이의 문제가 특정 측면에서는 오히려 더 전면화되는 것 같은 현상과 전체적으로는 아이의 문제상황이 완화된 것 같은 현상이 동시에 일어나는 걸까?

그것은 전체가 탁한 물일 때는, 개체가 아무리 더러워도 잘 드러나지 않고, 단지 그 개체와 가까이 있는 다른 개체만이 상대방의 오염도를 어느 정도 인식할 수 있을 뿐이지만, 물 전체가 좀더 깨끗해지면, 예전에는 보이지 않던 더러움, 말하자면 그렇게 심하지 않는 더러움까지도 인식할 수 있게 된다는 데 있다.

이 점은 한 개체를 놓고 보더라도 마찬가지다. 한 아이의 심리적 왜곡상태가 심할 때, 우리 눈에는 그 왜곡으로 인해 나타내는 현상 중 가장 정도가 심한 한 두 측면만이 주로 눈에 들어온다. 정도가 심하지 않은 다른 측면들에 대해서는 '그 정도야 뭐' 라고 접어주게 마련이다. 하지만 정도가 심했던 측면이 해결되고 나면, 그전에는 중시하지 않았던 다른 측면이 문제의 고리로 떠오른다.  

그래서 대안학교에서 회의 안건으로 자주 오르는 아이들의 행동, 이건 일반학교에서 말하는 문제아들, 불량청소년들의 행동과는 전혀 다르다. 일반학교의 상황, 그 탁한 물의 상황에서는 별반 더럽다고 지적받지 않았던 행동들이다. 오히려 일반학교에서는 전혀 문제아가 아니었던 아이가 대안학교에 들어오면 '문제아'(?)가 될 수도 있다. 아니, 좀더 정확히 말하면 대안학교에 들어오면 모든 아이가 '문제아'가 될 수 있다.

왜냐하면 대안학교는 아이들의 성장에 도움 되지 않거나 오히려 아이들의 성장을 저해하는 전체적인 억압 상황을 제거함과 동시에, 아이 스스로가 설정한 자기 한계(혹은 자기 억압)의 틀에서 벗어나도록 부추기기도 하기 때문이다. 아이들 스스로가 설정하고 있는 이 자기 한계는 아이의 성향과 부모와의 관계를 포함하여 살아온 경험에 따라 아이마다 다르고, 어느 아이나 가질 수밖에 없다. 그런데 그 한계를 넘지 않겠다고 고집하면--그 이유는 대부분 피해의식과 같이 심리적인 요소에 있다--, 그런 퇴행적 고집은 문제행동으로 드러나고, 그 아이는 '문제아'가 되는 것이다.

어른들도 그렇지만, 아이들도 익숙한 심리적 습관에서 벗어나라고 하면, 강한 거부반능을 보인다. 그 심리적 습관이 잘못된 것이어서, 남에게만이 아니라 자신에게도 해로운 것이라 하더라도 말이다. 그래서 익숙하지만 잘못된 것에서 벗어나 올바르지만 아직은 낯선 습관으로 옮겨가기 위해서는 용기가 필요하다. 게다가 한 두가지 습관이 아니라 자신의 기존 심리 기저 전체가 흔들려야 한다면, 아이로서는 얼마나 힘이 들겠는가? 변화 요구에 대한 저항은 완강해지고 더불어 저항행동도 거세진다. 이럴 때 아이는 대안학교에서 '문제아'가 되고, 회의에서 다른 아이들의 비판 대상이 된다.

부모는 자기 아이가 회의에서 다른 아이들의 비판을 받았다는 사실만으로 충격일지 모르지만, 달리 보면 아이는 자기 혼자 힘으로는 해결하기 힘든 자신의 문제상황을 친구와 교사들의 도움을 받아 해결해보고자 그런 행동방식을 취하는 것일 수 있다. 이렇게 본다면 대안학교의 회의는 부정적 상황이 오히려 긍정적 역할을 할 수 있도록 바꿔주는 변환기 역할을 하는 셈이다.

청미래 전체회의가 갖는 이런 특성은 우리 아이들이 회의를 대하는 양면적인 태도에서도 드러난다. 겉으로는 누구나 회의는 정말 싫고 힘들다고 말한다. 그러나 막상 회의를 시작하면 전부 다들 아이들답지 않게 진지해진다. 안건의 주인공이 된 아이는 말할 것도 없고, 조연인 아이들조차 지금 거론되고 있는 다른 아이의 문제가 또한 자기 문제인 것처럼 느껴지는 데서 오는 '고통'을 맛보지만, 그것을 넝어섰을 때의 해방감 또한 아이들은 알고 있다.  (회의가 그 주인공을 단죄하는 방식으로가 아니라 그 주인공을 도와주는 식으로 진행되었기 때문에 그런 해방감을 느끼게 된다는 사실은 아이들이 모르고 있지만...)

이야기가 옆길로 샌 감이 있지만, 이번 주에 나와 상담을 했던 두 분 부모님께 다시 한번 강조하고 싶다. 아이가 회의에 자주 올라 문제아가 된 것처럼 보여도 걱정하실 것 없다고, 오히려 자신의 문제를 외부적으로 드러내는 아이일수록 그 아이는 친구와 교사들의 도움을 더 많이 받을 수 있고, 그만큼 더 빨리 성장할 수 있다고, 어쩌면 아이는 가장 안전하고 상대적으로 가장 덜 고통스러운 방식으로 자신의 문제를 해결해가고 있는지도 모른다고. 그리고 그 아이는 자신을 희생하여 교사와 다른 아이들의 성장을 도와주는 셈이기에 우리는 그 아이에게 감사한다고. 그러니 부모님이 교사나 다른 아이들에게 미안해할 필요 없다고....

출처:청미래과정 홈피(파주자유학교)

기차길옆작은학교공연 영상입니다.
 김재양  | 2008·04·02 12:59 | HIT : 133 |
홍보영상



기차길옆작은학교 홈페이지에 방문해 보세요.

만일 내가 다시 아이를 키운다면

2007.09.01 10:32 | 대안 교육 | 파랑

http://kr.blog.yahoo.com/pleamore/4976 주소복사

 

만일 내가 다시 아이를 키운다면

먼저 아이의 자존심을 세워주고

집은 나중에 세우리라.


아이와 함께 손가락 그림을 더 많이 그리고

손가락으로 명령하는 일을 덜 하리라.


아이를 바로 잡으려고 덜 노력하고

아이와 하나가 되려고 더 많이 노력하리라.

시계에서 눈을 떼고 눈으로 아이를 더 많이 바라보리라.


만일 내가 다시 아이를 키운다면

더 많이 아는 데 관심을 갖지 않고

더 많이 관심 갖는 법을 배우리라.


자전거도 많이 타고 연도 더 많이 날리리라.

들판을 더 많이 뛰어다니고 별들도 더 오래 바라보리라.


더 많이 껴안고 더 적게 다투리라.

도토리 속의 떡갈나무를 더 자주 보리라.


덜 단호하고 더 많이 긍정하리라.

힘을 사랑하는 사람으로 보이지 않고

사랑의 힘을 가진 사람으로 보이리라.

                                                           -다이애나 루먼스-

 신의진, ‘현명한 부모들이 꼭 알아야 할 대화법’ 중에서

간디학교 등 대안교육 사이트

2007.06.25 16:13 | 대안 교육 | 파랑

http://kr.blog.yahoo.com/pleamore/4750 주소복사

간디학교
두레자연고등학교
홀로세생태학교
성지송학중학교
이우학교
꿈틀학교
들꽃온누리고등학교
들꽃피는마을
동명고등학교
진솔대안학교
자유학교물꼬
마포두레생협 우리마을꿈터
(마을학교)
다물자연학교
참좋은기초학교
녹색나라체험스쿨
남해갯벌생태학교
합천자연학교
느티나무교육문화협동조합
배움의 숲
학벌없는 사회
민들레
습지와 새들의 친구

http://user.chollian.net/~gandhis
http://www.doorae.hs.kr
http://www.holoce.net
http://sjsh.ms.kr
http://www.2woo.co.kr
http://www.imyschool.com/home/index.php
http://www.onnurischool.com
http://www.wahaha.or.kr
http://www.kdm.hs.kr
http://user.chollian.net/~jeansol
http://www.freeschool.or.kr
http://www.mapocoop.org/board2/dir.php?wh=school
http://www.damool.or.kr/
http://www.chamjoeun.net/
http://www.i-chehum.com/
http://www.wetlandschool.net/
http://www.hcjh.net/
http://my.netian.com/~aceunion
http://forest.edufuture.com
http://www.antihakbul.org
http://mindle.org/
http://www.wbk.or.kr/


출처:이주노동자방송국

간디학교 10년을 돌아보고 앞을 내다보며

2007.03.31 08:52 | 대안 교육 | 파랑

http://kr.blog.yahoo.com/pleamore/4505 주소복사

간디학교 10년을 돌아보고 앞을 내다보며
양희규


2007년 2월, 네 곳 간디학교 교사가 한 자리에 모여 교사공동연수를 열었습니다. 이 글은 그때 발제한 내용을 보완해서 정리한 것입니다. hee-q@hanmail.net

여기 모인 모든 간디학교 교사 분들은 객관적으로 볼 때 매우 선량한 시민이며 타인에게 결코 피해를 줄 리 없는 아주 좋은 분들입니다. 그런데 지난 십 년의 세월 속에서 어려운 상황들이 이어지는 가운데 서로에게 상처와 고통을 주기도 했습니다. 개인이 나빠서가 아니라 상황 때문에 악연이 만들어지기도 했습니다. 오늘 이 시간 이런 감정의 부담을 모두 내려놓고 서로에 대한 연민과 관용의 마음으로 편하게 있었으면 합니다.

실은 저한테도 지난 2년의 시간은 50년 가까운 제 인생에서도 가장 고통스런 시기였습니다. 이 시간을 통해 저는 두 가지를 배웠습니다. 하나는, ‘인생은 덧없다’는 것입니다. 어떤 집착이나 욕심 따위는 다 버리고 언제든 떠날 준비를 하고 살아야 한다고 말입니다. 간디학교가 이런저런 방향으로 가야 한다는 것도 제 욕심이나 집착이었던 것 같습니다. 아내와 저는 2005년 가을 산청을 떠나면서 ‘언제라도 모든 것을 버리고 깊은 산골 어디라도 가서 농사짓고 살자’라고 서로에게 약속했던 터입니다만 새삼 다시 새기곤 합니다. 또 하나 배운 것은 겸허함입니다. 제가 의도하고 계획한 것과는 전혀 상관없이 오히려 엉뚱한 일들이 터지는 것을 보면서, ‘그래, 인생을 살다보면 그저 고통의 시간이 흘러가기만 기다리는 것 말고는 아무 것도 할 수 없는 시간도 있구나’ 하고, 그저 낮아지는 법을 배워야 함을 깨달았습니다.

미욱한 제 이야기는 이 정도로 하고, 오늘 이 자리에서 몇 가지 말씀드리고 싶은 게 있습니다. 먼저 간디학교의 역사적 의미와 간디학교 10년의 교육에 대해 간략하게 평가한 뒤, 앞으로의 지향점과 과제를 제안해보겠습니다.

간디학교의 역사적 의미
간디학교는 ‘비인간적인 사회구조(억압, 무지, 부패의 구조)에 대한 불복종운동’에서 출발했습니다. 이것은 제사장이 아닌 선지자의 역할이며, 거친 광야의 외침 같은 것입니다. 간디학교는 큰 강이나 바다가 아니라, 가늘고 자그마한 물줄기입니다. 중세의 수도원처럼 소리 없이 사회를 정화시키는 역할입니다. 이러한 역할은 교육의 대안을 추구하고자 하는 ‘대안교육운동’으로 나타나고 또는 더 나아가 대안적 삶을 추구하는 ‘대안문화운동’으로도 나타납니다.

이러한 간디학교의 역사적 의미는 때로는 회피하고 싶지만 피할 수 없습니다. 우리 출발의 근원이기 때문입니다. 사회에서 인정받고 편하게 살고 싶은 유혹이 우리를 흔들기도 하지만, 우리는 ‘영원한 비주류’ ‘사회정화를 위한 끊임없는 불복종’일 수밖에 없습니다. 이것이 간디학교의 존재이유이기 때문입니다. 저 또한 이것이 싫다면 간디를 떠나야 합니다.

1997년 학교가 만들어지고 지금까지, 지난 십 년의 세월을 돌아보면 그동안 참 정신없이 살아왔습니다. 때론 ‘제대로 한 게 아무 것도 없구나’ 하는 생각이 들기도 합니다. 하지만 찬찬히 평가해보면 우리가 해낸 것들도 여럿 있습니다. 하나하나 잠깐 짚어볼까요.
하나, 새로운 교육의 실천이라는 점에서 ‘대안교육운동의 개척자’ 역할을 해왔습니다. 1997년 최초의 상설 대안학교를 만들었고, 많은 어려움이 있었지만 입시중심 교육이 아닌 전인성에 초점을 둔 교육을 실천해왔습니다. 시행착오를 겪으며 만들어왔던 교육과정이나 문화는 여러 다른 학교들에게 하나의 기준(좋은 기준이든 나쁜 기준이든)이 되곤 했습니다.

둘, 인격적 만남과 존중을 기초로 하는 ‘사랑의 교육’이라는 토대를 마련했습니다. 간디학교가 정말 기존의 학교와 다른 점은 교사와 학생의 관계입니다. 현재 간디학교 교사들은 학생들과 친구 같은 관계를 편안하게 받아들이고 있습니다. 처음에는 그것이 마치 권위를 상실하는 것 같아 힘들어하는 교사들도 있었습니다. 하지만 교사들은 아이들로부터 존경받는 것이 아닌 사랑받는 것이 무엇보다 소중한 것임을 알게 된 것이지요. 이러한 부분은 이제 간디학교의 문화로 정착됐다고 봅니다.

셋, 억압과 강제의 학교문화를 바꾸는 ‘자유교육’의 지평을 추구해왔습니다. 처음 간디학교를 시작할 때 우리는 서머힐에서 자유교육의 중요한 개념과 실천들을 배웠습니다. 교사 학생이 모두가 참여하는 식구총회에서 1인 1표를 갖는 제도나 수업을 선택해서 듣는 것 등이 바로 그것들입니다. 하지만 식구총회의 권한은 학습이나 수업에는 적용되지 않았고(학습에 관해서는 교사들이 모든 결정권을 갖고 있습니다), 생활에 관해서만 적용되었습니다. 그런데 이 자유교육이란 게 간디 안에서는 시종 논란거리가 되기도 했습니다. 식구총회에서 결정된 규칙들 가운데 어떤 건 우리들의 자유교육이라는 철학에 위배되는 것이냐 아니냐를 놓고 교사회에서 논란을 벌이는 경우들도 있습니다. 이는 뒤에 좀더 자세히 이야기하도록 하겠습니다.

넷, 간디학교는 ‘농촌에서의 교육운동’을 해왔습니다. 이 사회가 모두 도시로, 서울로 집중되는 흐름 속에서 우리는 거꾸로 갔습니다. ‘떠나는 농촌’에서 ‘돌아오는 농촌 만들기’의 가능성을 발견했습니다. 산청에 간디학교가 생긴 이후 도시에서 백 명 이상의 사람들이 옮겨왔습니다. 산청 간디학교 뒤 ‘안솔기 마을’은 농어촌특별위원회가 선정한 돌아오는 농촌마을로 지정되기도 했습니다.

다섯, 동일한 철학 위에서 ‘다양한 모델과 특성의 교육’을 해왔습니다. 산청 간디고, 둔철마을학교, 금산 간디학교, 제천 간디학교 등 네 개 간디학교는 서로 다릅니다. 모델도 다르고 특성도 다릅니다. 산청 간디학교는 특성화로 인가받은 학교로 고1 과정은 인문계 학교와 거의 비슷하고 2학년 때부터 개인의 선택과목이 늘어나게 됩니다. 한편 다른 세 학교들은 미인가학교이기 때문에 그런 제한 없이 학교의 자율성에 따르고 있습니다. 제천 간디학교의 가장 큰 특성은, ‘사회참여’에 있다고 봅니다. 학생들은 사회 이슈들에 대해 학습하고 토론하고 때로는 시위에 참여하기도 합니다. 금산 간디자유학교(고)의 가장 큰 특징은 학교명에서도 나타나듯이 학생들의 자유의 범위가 매우 크다는 것입니다. 학습이나 생활면에서 가장 넓은 자유를 누리고 있습니다. 간디마을학교(중)의 가장 큰 특징은 ‘자기주도적 학습’입니다. 정해진 수업은 거의 없는 편이고 학생들은 각자 개인 시간표를 만들어 필요한 사람을 찾아가든 나름의 유용한 방식으로 배웁니다. 홈스쿨링의 연장선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이러한 융통성은 각 학교와 교사들의 자발성에서 나왔습니다. 그래서 상당히 폭도 넓고 성장의 잠재력도 크다고 봅니다.

여섯, ‘교사양성과 교사교육’에 깊은 관심을 갖고 교사연수원과 교사대학원을 운영해왔습니다. 대안학교 교사들의 경우 실천 과정에서 고민과 어려움을 겪었습니다. 정작 당신들은 대안교육을 받지 못했던 까닭입니다. 특히 교육에 대한 관점과 견해가 사뭇 다를 경우, 같은 현장에서 함께 교육해 나간다는 것 자체가 엄청난 고통이었습니다. 그래서 현장에서의 인턴십을 포함한 교사교육이 대안교육현장에 발을 들이는 신임교사들에게는 반드시 필요하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또 대안교육운동의 바른 확산을 위해서는 돈이나 어떤 다른 것보다도 ‘준비된 교사’가 가장 중요하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준비된 교사만 있다면 새로운 학교 만들기는 문제되지 않는다고 봤습니다. 그래서 2001년부터 교사연수원을 시작해 2005년에는 교사대학원이라는 이름으로 움직이고 있습니다. 해마다 5~10명의 교사들이 나와, 이 분들이 네 학교의 근간이 되어줬습니다. 2년 전부터는 간디교사대학원 졸업생들이 다른 대안학교의 교사로도 가고 있습니다.

일곱, ‘교육의 질을 확보하면서도 대중성을 가지려는 노력’을 해왔습니다. 학교를 세울 때 정신에 어긋나지 않도록 학비수준을 유지하는 것은 물론 10% 안팎의 장학금도 지급해왔습니다. 학생 대 교사 비율이 5:1 정도임을 감안하면 학비수준은 무척 낮은 편입니다. 그런데 이런 그림 뒤에는 언제나 교사들의 헌신성이 있었습니다. 교사들의 무조건적인 헌신에 기대어온 셈입니다. 이 점도 뒤에서 좀더 이야기하겠지만, 앞으로 풀어야 할 주요 과제라 하겠습니다.

여덟, 교사 학부모 학생의 긴밀한 협력과 관계를 발전시켜왔습니다. 한국에서 간디학교만큼 학교운영위원회가 제대로 이루어지는 곳은 없다고 자부합니다. 학교 예결산, 교육과정, 학교시설 등 거의 모든 중요한 과정에 교사와 학부모, 학생이 함께 의견을 수렴하고 조정하고 의결하고 있습니다.

아홉, ‘교사공화국’을 건설했습니다. 간디학교는 교사들이 교육에 관한 한 모든 것을 결정하고 집행하는 절대적인 힘을 갖고 있습니다. 뒤에서 다시 이야기하겠지만, 교육은 결국 교사에 달려 있습니다. 따라서 ‘교사공화국’은 학생공화국이나 학부모공화국, 이사장 독재에 비해 나은 모델이라 봅니다.

앞으로의 지향과 과제
한국교육의 흐름을 보건대, 살아남기 위해서라도 헌신성뿐만 아니라 문제해결 능력과 창의력이 요구됩니다. 현재 한국 교육의 기본 방향은 영재교육입니다. 현 정부도 드러내놓고 이야기하지는 않지만 가장 관심을 두는 것은 사실상 ‘세계 경쟁력’입니다. 이미 미국의 경우, 나노산업에서 세계 우위를 갖기 위해 영재 고등학생 1만 명을 선발하여 교육하고 있다고 합니다.

한국 또한 이런 방향으로 가고 있고 현재 점점 더 많은 예산을 투입하여 유아부터 영재교육을 하고 있으며 앞으로 이런 추세는 더욱 강화될 것이 틀림없습니다. 따라서 한국교육의 큰 흐름은 공립에서는 영재고를 중심으로 한 특목고, 사립에서는 민사고를 비롯한 자립형 사립고가 될 것으로 보입니다. 기독교 대안학교들은 대부분 현재 미인가 형태를 취하면서 사실상 영재교육을 하고 있고 이러한 흐름을 이미 타고 있습니다.

물론 영재교육이 나쁜 것은 아니고 불필요하다는 뜻도 아닙니다. 그럼 영재가 아닌 나머지 아이들은 어디로 가나? 정부가 고심하고 있는 ‘교육정상화’는 영재교육의 과제와는 별도로 추진되고 있습니다. 먼저 과거의 실업계 학교들은 빠른 속도로 ‘특성화학교’로 변하고 있습니다. 요리, 영상, 승마, 디자인, 전산 등 전문화된 교육을 표방하면서 앞으로 15년 안에 모든 실업계 학교는 특성화학교로 변화해가거나 문을 닫게 될 것입니다. 이미 실업계 특성화학교 중에는 상당한 경쟁력을 가진 학교가 있으며 이런 추세는 앞으로도 가속화될 것 같습니다. 이른바 특성화 명문도 등장하리라 봅니다. 특성화고 출신들이 대학에 계열 진학을 할 수 있도록 문도 열었으니 이런 흐름은 더욱 힘을 받겠죠. 이런 와중에서 가장 애매한 게 ‘특성화 대안학교’의 위치입니다. 시간이 지날수록 특성화 대안학교는 아무런 특성이나 전문성도 갖지 못한 학교로 추락할 가능성이 많습니다.

정부는 보통의 아이들을 위한 교육 정상화를 위해 ‘공립 대안학교’라는 카드를 내놓았습니다. 한때 ‘공영형 혁신학교’ 라는 이름으로 불리다가 현재 ‘개방형 자율학교’라는 명칭을 갖고, 2007년부터 전국 네 개 학교가 시범운영에 들어갔습니다. 이것은 미국의 차터스쿨(Charter School)과 거의 유사한 공립 대안학교를 뜻합니다. 정부나 지자체가 설립하고 민간인 교육전문가에게 운영을 위탁하는 학교(2007년 시범운영 주체는 민간이 없습니다)로, 재정 걱정 없고 높은 수준의 교육인력을 확보할 수 있게 되어 있습니다. 만일 2010년부터 본격적으로 이 학교가 확산되기 시작하면, 특성화 대안학교나 미인가 대안학교들은 위기를 맞을 수도 있습니다.

올해 문을 연 네 개의 개방형 자율학교 중 서울의 원묵고등학교는 문을 열자마자 신입생 모집에서 5:1 이상의 경쟁률을 보였다는 소식을 들었습니다. 재정이나 교사 수급에서 우위를 갖는 ‘공립’ 대안학교들이 등장하게 되면 ‘사립’ 대안학교들은 타격을 받을 수밖에 없습니다.

세계 대안학교 역사를 봐도 이런 상황이 종종 드러납니다. 영국의 대안교육운동은 대중교육과 무료교육을 표방하며 움직여왔습니다. 100여 년 그렇게 오다 지금은 거의 종말에 이르렀습니다. 주된 이유는 정부의 재정지원이 없는 상태에서 재정적 대안 없이 ‘서민을 위한 교육’이란 이상을 고집했기 때문이기도 하고, 공교육의 진보적, 전향적 변화로 자유교육이나 대안교육에 대한 필요가 옅어진 탓도 있습니다.

미국의 경우도 1970년대부터 수많은 대안학교들이 설립되었지만 90년대 이후 대부분 문을 닫거나 재정이 어려워 차터스쿨 등의 공립 대안학교로 전환했습니다. 살아남은 소수의 대안학교들은 자체 수익구조가 있었거나 아니면 맞춤식 교육의 귀족교육으로 바꾼 학교들이었습니다. 일본도 예외가 아닙니다. 과거의 화려한 명성의 대안학교들은 문을 닫거나 아니면 소수의 학생들로 겨우 명맥을 유지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경향은 한국에서도 예측이 가능합니다. 현재 대안학교법이 통과되어 겉으로 보기에는 대안학교가 호황기를 맞은 듯 보이지만, 이런 흐름은 10년 이상 가지 않으리라 생각합니다. 앞에서 이야기했듯이, 별 뚜렷한 장점을 갖지 못한 특성화 대안학교나 사립 대안학교(인가 또는 미인가)들은 본격적인 영재교육의 확산과 공립 대안학교의 등장과 확산, 그리고 다양한 특성화학교들의 성장 속에서 무관심의 대상이 될 가능성이 매우 높습니다. 간디학교가 지금까지 주목받을 수 있었던 것은 교육의 질보다 희소성에 있었던 게 아닐까 하는 생각도 얼핏 듭니다. 이런 흐름을 잘 읽어내면서 앞으로의 방향과 과제를 풀어나갔으면 합니다. 앞 이야기가 길어졌습니다만 제가 생각하는 우리들의 과제나 지향을 몇 가지 말씀드려보겠습니다.

하나, 학교 철학에서 ‘자유교육’의 문제를 들 수 있습니다.
간디학교 철학을 둘러 싼 가장 큰 이슈는 ‘자유교육’에 대한 것일 겁니다. 자유교육에 대한 오해와 편견은 니일 교장 시절이나 지금이나 여전합니다. 자유교육을 마치 아이들을 방임하거나 방치하는 교육쯤으로 이해하는 분들이 의외로 많습니다. 제 멋대로 하도록 부추기는 게 자유교육이라 여기는 거죠.

자유는 선택의 자유인 동시에 책임을 의미합니다. 나 혼자 있을 때 누리는 자유와 또 한 사람이 더 있을 때, 또는 많은 사람들과 함께 할 때의 자유는 다릅니다. 나와 함께 있는 ‘그’도 자유이기 때문입니다. 내 자유가 그의 자유를 침해하지 않으려면 상황을 정확하게 판단하고 그 판단에 대한 책임을 질 때 서로 자유로워질 수 있습니다. 나와 우리가 모두 행복하고 자유로울 수 있도록 상황을 정확하게 읽고 책임지는 힘을 키워주는 게 저는 ‘자유교육’이라고 생각합니다. 이런 점에서 자유교육은 책임의 교육을 의미하기도 합니다. 그래서 자유학교에 규칙이 많습니다. 하지만 자유학교가 다른 학교와 다른 점은 그 규칙이 주어진 것이 아니라 지키고자 하는 이들 스스로 만들었다는데 있습니다.

간디학교는 자유교육 내지 자발성의 교육을 가장 중요한 가치로 삼습니다. 간디학교를 선택한 교사는 간디학교의 철학을 선택한 것입니다. 자유주의 교육을 진심으로 존중하고 받아들이고 내면화하지 못한다면 선택을 잘못한 것입니다. 교사들이 철학을 공유하지 못한다면 학교의 장래는 없습니다. 왜냐하면 철학은 학교의 방향이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간디학교의 철학만이 옳다는 뜻은 아닙니다. 간디학교의 철학은 단지 ‘하나의 철학’에 불과하고, 간디학교를 지원하는 것은 그것에 찬동하는 사람들의 선택인 것입니다. 요즈음 저는 자유주의 철학은 모두나 다수를 위한 철학이기보다는, 진정한 자유(선택과 그에 따른 책임)를 사랑하고 중요하게 여기는 어쩌면 ‘소수를 위한 철학’일지도 모른다는 생각도 합니다.

자유교육은 가능한 어린 시절부터 하는 것이 좋습니다. 그런데 자율적 능력을 습득하지 못한 채 우리 학교에 오려는 십대 아이들을 어떻게 할지 난감해집니다. 니일은 열서너 살이 지나면 자유교육은 성공할 수 없다고 했습니다. 산청에서 처음 학교를 시작할 때, 초등부터 할 생각이었습니다. 하지만 1997년 무렵 초등학생들을 위한 미인가 기숙형 학교는 현실적인 안이 아니었습니다. 불가피하게 중학교 과정부터 시작했습니다. 지난 몇 년 간 뼈저리게 느꼈지만, 일반학교를 다니다가 간디고등학교 과정에 오는 학생들의 경우, 자유교육의 실현은 무척이나 어려운 과제입니다. 너무 억압되어 자랐거나 열등의식에 사로잡혀 스스로 선택을 제대로 하지도 못하고 책임을 회피하려는 아이들이나 아니면 정반대로 응석받이로 자라 아무런 책임을 지지 않으려 하면서 원하는 것만 하려는 아이들과 함께 자유교육을 실천하는 일은 하루하루가 고군분투였습니다.

그럼 어떻게 할 것인가? 지금부터라도 유아나 초등교육부터 할 것인가? 아니면 자율성이 결여된 아이들을 위한 책임의 교육은 정규과정과 달리 따로 할 것인가? 아니면 현재 대안 초등학교를 하고 있는 다른 대안학교들과 연계하여 우리의 중등과정을 할 것인가? 특히 처음부터 고등학교 과정으로 들어오는 아이들에 대해서는 얼마 전부터 상당히 신중하게 선발하고 있습니다만, 자유교육은 앞으로도 계속 중대한 과제가 될 것입니다.

둘, 교육의 질과 대중성이라는 딜레마를 안고 있습니다.
대부분의 미인가 기독교 대안학교들은 엘리트 교육을 하고 있으며, 학비 수준은 우리의 두 배 정도입니다. 이 수준은 상당히 현실적인 수치입니다. 하지만 교육의 대중성을 확보하기는 어렵습니다. 우리의 경우, 교육의 질을 높이기 위하여 학비 수준을 어느 정도 현실화할 것인가? 아니면 학비 의존도를 현실적으로 얼마나 어떻게 줄일 것인가? 하는 과제가 앞에 있습니다. 저는 앞으로 5년 내지 늦어도 10년 안에 학교 재정 가운데 학비 의존도를 현재의 50% 수준으로 낮추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교사들에게 10년, 20년 더 헌신하라고만 하기에는 무리가 있기 때문입니다. 아마 몇 년이 지나면 어떤 교사들은 임금 인상 요구를 할지도 모릅니다. 새로운 세대의 교사는 대안학교 교사 또한 안정된 직업이어야 한다고 믿고 있으니까요. 오래 전부터 저는 이 문제로 고심해왔고 올해부터는 학교와 연관된 녹색기업을 시작하려 합니다. 금산의 경우, 생태건축회사와 유통회사를 시작할 준비를 하고 있습니다. 그 외에 이사회의 적극적인 활동, 지자체나 기업의 후원으로 이 문제를 보완해가고자 합니다.

셋, 네 학교가 왜 제대로 협력하지 못하는지도 들여다봐야겠습니다.
네 군데 간디학교 간에는 자유교육에 관한 철학적 합의점이 부족한 것 외에도, 여러 다른 양상들이 있을 것입니다. 이 점을 두고 어떤 이들은 ‘간디학교들이 아무런 공통점도 없으면서 전략적으로 같은 브랜드를 쓰고 있다’는 지적까지 합니다.

간디학교의 장래는 이 과제를 어떻게 다루느냐에 따라 크게 좌우되리라 생각됩니다. 몇 년 후면 바로 이것이 당면과제가 될 것으로 봅니다. 이 문제를 제대로 다루기 위해서는 우선 설립자와 설립철학을 구분해야 합니다. 학교를 세운 개인 양희규와 구분하여 학교철학을 바라봐야 합니다. 간디학교의 철학을 저 양희규가 제시한 것이 사실이지만, 제 발명품이 아닙니다. 저 또한 그 철학을 선택한 것입니다. 개인 양희규와 분리하여 철학 그 자체를 제대로 이해할 필요가 있습니다. 또한 철학은 완성된 것이 아닙니다. 학교철학은 제 품을 떠나 역사의 다이나믹한 흐름 속에서 성장하고 변화하고 발전하고 있습니다. 만일 그렇지 못하면 그 학교는 죽은 학교이거나 교조적 성격을 띤 조직에 불과할 것입니다.

이밖에 학교 간에 협력해야 할 여러 가지 과제들이 있습니다. 교사 교류나 해외이동학습 프로젝트, 학교 평가나 교육과정 개발도 같이 풀어야 할 것입니다. 이를 위해 내년 간디대안교육센터를 열 준비를 하고 있습니다. 마음을 열고 학교 간 협력을 어렵게 하는 장애요인들을 발견하고 인식하여야 할 것입니다.

넷, 성장하고 혁신하지 못하면 죽습니다.
앞에서 이야기했듯이 남다른 탁월함 없이는 미인가 학교는 죽게 되어 있습니다. 겸허한 마음으로 계속 성장하고 혁신할 수 있는 실천이 필요합니다. 개별 학교로서도 그러하고 간디학교 전체로도 그러합니다. 우선 경험과 지혜가 학교 간에 공유되어야 합니다. 공동 연수나 공동 기획회의, 학교 간 경영자회의 등이 정기적 비정기적으로 있어야 합니다. 다른 대안학교들에서 배워야 합니다. 간디대안교육센터의 효율적 운영으로 각 학교를 지원하고, 각 학교를 객관적으로 평가하고 학교에 대한 컨설팅이 이루어져야 할 것입니다.

제가 미국 캘리포니아 주립대에서 강의조교로 첫 강의에 참여하게 되었을 때, 오리엔테이션 중에 매뉴얼을 하나 받았는데, 그때 내용을 읽어보고 상당히 도움을 받았습니다. 100년의 역사를 가진 학교에서 그동안 선배들이 한 실수를 중심으로 아주 구체적인 도움말이 적혀 있었거든요. 특히 문화가 다른 아시아나나 인도 아프리카 등지에서 온 사람들에게는 그 사회를 이해하고 사람들과 만나는 데 큰 도움이 되었습니다. 큰 개를 데리고 거의 반나체로 교실에 들어오는 여학생들을 보면 어떻게 해야 할지, 강의 도중에 햄버거를 먹고 있는 학생들, 강사를 안고 키스하는 여학생들을 어떻게 대해야 하는지 등 구체적인 사례가 도움이 되었다는 이야기입니다. 경험과 지혜를 축적하고 전달하지 못하면 결국 모든 것은 개인의 문제로 귀착되고 학교는 실수와 시행착오를 반복하게 됩니다. 결과적으로 학생과 학부모들로부터 외면당하게 될 것입니다. 지혜와 경험의 공유, 그리고 정확한 전달의 제도화가 시급합니다.

다섯, 삶의 교육이라는 과제가 있습니다.
가장 어려운 과제는 삶의 교육입니다. 아이들에게 삶을 어떻게 가르칠 것인가? 교사들의 삶은 어떻게 대안적일 수 있는가? 우리들의 삶은 너무나 상업적인 경제와 문화에 의존적입니다. 좀더 인간적이고 자연을 돌보는 경제와 문화가 필요합니다. 말로는 생태와 공동체를 이야기하지만 대안적인 삶은 결코 쉽지 않습니다. 그렇다고 엄격한 기준만 세워 놓고 무조건 적용해서도 안 됩니다. 또 다른 폭력을 낳기 때문입니다. 학교와 지역사회가 함께 대안적인 문화와 경제를 모색하고 만들어가야 할 것입니다. 금산 간디학교에서는 녹색비지니스센터를 만들고 이러한 연구와 실천을 진지하게 해갈 생각입니다.

삶의 교육에서 염두에 둬야 하는 것으로 지역사회과 함께하는 교육이 있습니다. 지자체와 긴밀하게 연계하여 지역사회와 함께하는 일들을 벌여나가야 합니다. 간디학교가 자리 잡은 농촌을 돌아보면 우리가 해야 할 일들이 산적해 있습니다. 혼자 사시는 노인부터 이주민 자녀, 부모 없는 아이들, 손이 없어 엄두도 못내는 문화적 과제들, 돌아오는 농촌 만들기 사업 등. 이 일은 아무리 우리가 여력이 없더라도 반드시 해야 할 일들로, 간디학교 전체 차원(기획연구)의 접근도 필요합니다. 저는 농촌에 온 지 20년이 넘었고 그동안 농촌의 변화를 눈으로 직접 봐왔습니다. 교사가 먼저 농촌에 정착하고 나이 들어 마지막을 보낼 곳으로서 애정을 가지고 농촌을 바라보아야 할 것입니다.

여섯, 교사공화국을 보완해야 할 것입니다.
저는 지난 십 년 동안 이른바 ‘교사공화국’을 건설하기 위해 노력해왔습니다. 어떤 분들은 ‘교사공화국’이란 단어가 낯설거나 싫을지도 모르겠습니다. 국가 중심이나 이사회 중심의 교육실행에서 교사들의 교육 권리를 보호하기 위해 국가의 통제와 학부모의 간섭이나 압력도 줄이고 오너의 개념을 없애기 위해 노력해왔다는 뜻입니다. 그래서 간디학교는 어떤 학교보다도 이런 부분에서 성공한 학교라고 봅니다. 그리고 바람직한 구조를 가지고 있습니다. 하지만 앞으로 간디학교가 낭만주의 시대를 지나 크게 성장하려면 ‘교사공화국’이 가진 한계를 보완해야 할 것입니다.

인사나 재정 부분에서는 장기적이고 전문적 관점에서 건강한 의사결정구조(이사회)가 필요하고, 이 구조의 지원을 받아 교사회는 실행구조가 되어야 할 것입니다. 이러한 구분 없이 교사회가 모든 기능을 가지고 있을 때 여러 가지 문제가 다시 발생할 것입니다. 권력이 집중된 모든 조직은 예외 없이 부패하는 법입니다. 다른 한편으로 학생들이 모든 것을 결정하는 이른바 어린이공화국이나 학생공화국 역시 심각한 결과를 낳을 것입니다. 민주주의의 힘은 힘의 분배와 균형과 견제에 있습니다. 현재의 과제는 건강한 이사회를 만들고, 건강한 학부모회와 학생회를 운영하여 교사회, 이사회, 학부모회와 학생회가 균형 있게 서로를 견제하는 구조를 만드는 것입니다. 특히 오너 개념이 없으면서도 무한책임을 질 수 있는 이사회인 소위 ‘공익이사회’를 만들어가는 것도 하나의 모색이 될 것입니다.

인생과 인간사에 충돌과 갈등은 피할 수 없습니다. 우리는 갈등을 없애려 하기보다 갈등을 받아들이고 견제와 조정을 통하여 해결점과 타협점을 찾는 능력을 길러야 할 것입니다.

마지막으로 이 말씀도 드리고 싶습니다. 간디학교는 민주주의를 존중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민주주의에도 한계가 있습니다. 민주주의와 리더십의 균형과 견제가 있어야 할 것입니다. 대부분의 과제나 이슈를 해결할 때 민주주의적 결정이 가장 좋은 절차지만, 학교의 중대한 결정이나 위기관리에서는 리더십의 역할이 중요하다고 봅니다.

예를 들어, 인사이동이나 보직인사 같이 민감한 사안을 결정할 때 모든 교사가 참여하기보다는 교장이나 교사대표에게 전적으로 맡기는 것이 오히려 객관적이고 공정한 결과를 낳으리라 봅니다. 물론 이러한 전통을 위해서는 교사들의 의견이 적극적으로 수렴된다는 것, 신뢰가 바탕이 되어야 한다는 것이 전제조건입니다. 간디의 아쉬람이나 오랜 전통의 수도원에서는 인사를 지도자가 결정하며 그것에 대해 구성원은 복명을 합니다만, 오히려 그러한 비민주적 관행이 공동체의 영적인 힘을 나타내기도 합니다.

숙제가 많습니다. 다 같이 머리를 맞대면 그리 어려운 일은 아닐 겁니다. 긴 이야기를 여기서 마무리합니다. 2007년 새해, 여러분 모두에게 기쁨과 성장이 있기를 기원합니다. 감사합니다.


출처:간디학교 홈페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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