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즐겨찾기 | 블로그홈 | 바로가기 바로가기 | 로그인
내일,또 내일
블로그  |  사진갤러리  |  동영상갤러리 방명록  |   즐겨찾기 추가
황령산kkk (pks13693094)
프로필     
 인기도 :
 이 블로그 점수주기
전체 글보기(39252)
일반폴더 새 글이 있습니다.
대표폴더 새 글이 있습니다. 새 댓글이 있습니다.
오늘 전체
방문자 443 3650124
구독자 0 402
댓글 0 8572
참조글 0 506
HanRSS 로 구독하기Fish 로 구독하기
2009 11월
1 2 3 4 5 6 7
8 9 10 11 12 13 14
15 16 17 18 19 20 21
22 23 24 25 26 27 28
29 30
최근 댓글 전체보기
위와 같은 정신으로 끝..
이딴거버려
서로 범인이라고 하는거..
저도 어제 목욕탕갔는데..
와 잘했다.
최근 참조글 전체보기
Cheap ambein..
물 붓고 3분이면 오케..
▶[투쟁]돈 300만원..
▶[투쟁]돈 300만원..
▶[투쟁]돈 300만원..
다녀간 블로거 더보기
- nimnimyi
- 風餐露宿
- h_won_trading
- hmg307
- bella
 즐겨찾기
 즐겨찾기 글모음
개설일 : 2004/03/30
 

착하게 태어난다는 것

사람 뇌에는 12쌍의 뇌신경이 있다. 뇌신경은 감각기관과 운동계통을 뇌와 연결시켜준다. 뇌신경 중에서 가장 길고 복잡하며 가장 넓게 분포한 것은 열 번째 뇌신경이라 불리는 미주신경(迷走神經)이다.

영어 명칭(vagus nerve)은 라틴어의 방황이란 뜻에서 연유된 것이다. 이 뇌신경은 머리에서 시작해 안면과 가슴 부위를 거쳐 복부까지 뻗어 있다. 후두·기관지·식도·위·폐·간·심장 등의 운동을 자극한다.

미주신경이 활성화되면 가슴이 따뜻하게 부풀어 오르는 듯한 느낌이 온다. 가령 다른 사람의 선행을 보고 감동을 느끼거나 좋은 음악을 듣고 기분이 좋아질 때처럼 가슴이 따뜻해진다. 일부 신경과학자들은 미주신경의 활성화가 남을 돌보는 감정이나 윤리적 직관과 관련된다고 주장한다. 대표적인 학자는 미국 캘리포니아대의 대처 켈트너이다.


켈트너에 따르면 휴식 상태에서 미주신경이 활성화되는 수준이 높은 사람은 동정심, 감사, 사랑, 행복감을 느끼기 쉽다. 이런 정서는 이타주의를 촉진한다. 이를테면 남을 배려하고 기꺼이 베풀며 협조를 아끼지 않는다.

이런 맥락에서 지난 1월 펴낸 저서 '선량하게 태어나다(Born to Be Good)'에서 켈트너는 미주신경 덕분에 인간은 이타적 행동을 한다고 주장했다. 우리가 선행을 하고 협동하고 윤리적 판단을 할 줄 아는 능력을 진화 과정에서 정서의 일부로 지니게 됐다는 뜻이다.

요컨대 사람은 착하게 살도록 만들어졌다는 것이다. 이는 생물의 진화를 생존경쟁과 적자생존의 개념으로 설명하는 관점과 정면으로 충돌하는 셈이다.

켈트너는 그의 저서에서 인간은 남을 돌보고 존경하고 겸손할 줄 아는 능력이 뇌, 몸, 유전자, 사회 관행에 모두 내포되어 있을 정도로 본질적으로 착한 존재라고 주장했다.

미국 격월간 '사이언티픽 아메리칸 마인드' 9~10월호에 실린 글에서도 켈트너는 친절, 관용, 자기희생, 협동심과 같은 이타적 정서를 누구나 타고나기 때문에 이것을 잘만 활용하면 자신은 물론 타인의 삶에도 행복을 안겨줄 수 있다고 강조했다. 그가 열거한 몇 가지 사례이다.

첫째, 진정으로 남을 존경해본 경험이 있거나 도덕적으로 우월한 사람들과 가까이 지내게 되면 인간관계의 감각을 향상시킬 수 있다. 둘째, 타인을 측은히 여기면 행복과 관련된 뇌 영역이 활성화되고 면역기능이 좋아진다. 셋째, 교실이나 식탁 또는 일기장에서 감사해야 할 것들에 대해 관심을 표명하면 행복, 건강, 사회적 복지가 증진된다.

켈트너는 이타주의가 인간의 본성이라는 주장에 공감하면 사회적으로 미래가 밝다고 강조했다. 무엇보다 물질만능주의 문화가 사라지고 남에게 베푸는 사회적 즐거움을 중시하는 멋진 사회에서 살게 된다는 것이다.

멋진 삶은 직업에 따라 다양하게 실현된다. 의사들은 환자의 말을 경청하고 따뜻하게 어루만지는 자세를 가다듬게 된다. 학교에서는 배려와 존경을 중요한 덕목으로 가르친다. 교도소에서는 죄수들에게 명상을 권유한다. 최고경영자는 기부 행위가 회사 발전에 얼마나 보탬이 되는지 깨닫게 된다. 한마디로 살맛 나는 세상을 얼마든지 만들 수 있다는 것이다.

고려 대각국사 의천은 화폐경제 도입의 주역


문종의 넷째 아들로 태어나 출가
형 몰래 배타고 송나라 유학
형 숙종에게 "鐵錢 주조" 상소

고려의 찬란한 전성기를 이룩한 국왕으로 평가받는 11대 문종(文宗·1019~1083)은 문무(文武)와 유불(儒佛)을 함께 진흥시킨 것으로도 유명하다. 게다가 아들 복도 많아 정비(正妃)인 인예태후 이씨와의 사이에만 10명의 아들을 두었다.

문종은 어느날 아들들을 불러 "누가 능히 중이 되어 부처를 공양하고 공덕을 닦겠느냐"고 물었다. 아들 간의 권력투쟁을 우려한 문종이 고심 끝에 완충 역할을 해줄 아들 하나를 원했던 것인지 모른다. 이때 열한 살 된 넷째 아들 왕후(王煦)가 나섰다.

"제가 출가(出家)의 뜻을 품고 있었습니다. 부왕의 명을 따르겠습니다." 이렇게 해서 왕자에서 승려로 신분이 바뀐 왕후는 먼 훗날 위대한 승려가 된다. 우리에게 대각국사(大覺國師) 의천(義天· 1055~1101)으로 알려진 그 인물이다.

어려서부터 학문을 좋아했던 의천은 영통사로 출가해 난원왕사(爛圓王師)를 스승으로 모시고 불경뿐만 아니라 유학도 깊이 공부했다. 자연 의천은 불교의 깊은 공부를 위해 송(宋)나라 유학(留學)을 꿈꾸었다. 그러나 당시 바닷길은 오늘날 우주여행보다 더 위험했기에 아버지 문종이 강력하게 반대했다.

송나라 유학의 의지가 강렬했던 의천은 아버지가 돌아가시고 형(宣宗)이 즉위를 하자 유학을 강행한다. 1085년(선종 2) 4월의 일이다. 형이라고 찬성할 리 없다는 것을 잘 아는 의천은 비밀리에 딱 두 사람만 데리고 송나라 상선에 올랐다. 이 소식을 뒤늦게 접한 선종은 크게 놀라 군사들을 보내 뒤를 쫓도록 했으나 이미 의천은 멀리 가버린 후였다.

송나라 수도 변경(�N京)에 들어간 의천은 행복했다. 송나라 황제 철종(哲宗)은 의천을 극진하게 예우했다. 의천의 경우 후(煦)라는 이름이 철종과 같아 자(字) 의천을 이름 대신으로 사용했다. 이를 피휘(避諱)라 했다.

의천은 철종에게 송나라의 명승(名僧) 대덕(大德)을 두루 만나 볼 수 있도록 해달라고 청했고 철종은 당대 최고의 명승들이 의천과 만나 불교를 논할 수 있도록 모든 편의를 제공해주었다.

아마도 이듬해 어머니 인예태후가 강권하지 않았더라면 의천의 송나라 체류는 언제까지 계속될지 모를 정도로 의천의 불법(佛法)탐구여행은 활발했고 뜻깊었다. 그가 훗날 천태종(天台宗)을 일으킨 것도 이때의 여행에서 얻은 깨달음 덕분이었다.

1086년 6월 '강제'귀국조치로 고려에 돌아온 의천은 먼저 형이자 임금인 선종에게 걸죄표(乞罪表)부터 올린다. 국왕의 명을 어기고 비밀리에 송나라행을 결행한 데 대한 사과문이다.

선종은 의천을 당시 대표사찰이던 흥왕사(興王寺) 주지로 삼아 선진불법을 전파할 수 있는 기반을 마련해주었다. 그런데 의천은 불법만 도입한 것이 아니다. 14개월 송 체류 때 보았던 중국의 화폐경제를 고려에 도입한 것이다.

고려는 성종 15년에 처음으로 철전(鐵錢)을 주조했다. 철전 주조는 실패했다. 숙종 2년(1097) 12월 마침내 강력한 리더십을 갖고 있던 숙종은 다음과 같이 명한다. "장차 민간의 큰 이익을 일으키고자 하노니 주전관(鑄錢官)을 세워 백성으로 하여금 통용케 하라!"

숙종이 이런 결단을 내린 것은 아우 의천의 상소에 따른 것이었다. 의천은 화폐 대용물인 쌀이나 베(布)의 문제점을 조목조목 지적하며 용전(用錢)의 이점을 다음과 같이 제시했다.

첫째 운반하기 편리하다. 둘째 쌀이나 포와 달리 아전들이 협잡을 부릴 수 없다. 셋째 국가 관리의 봉급을 절반은 돈으로 지급하며 녹미(祿米·봉급으로 받는 쌀)독촉으로 해를 입는 불쌍한 백성을 구제하는 결과가 된다. 넷째 미곡을 비축할 수 있게 돼 흉년의 대비책도 된다. 국사(國師)로서 백성을 위하는 마음이 바로 의천의 주전(鑄錢) 상소의 핵심이었던 것이다.

의천이 세상을 떠난 이듬해인 숙종 7년(1102) 12월 '해동통보(海東通寶)'라고 새긴 동전 1만5000관을 만들어 문무 관리들에게 나눠줌으로써 우리나라도 화폐경제의 시대에 들어서게 된다.

의천은 종교 지도자임과 동시에 우리 경제사에서도 반드시 기억돼야 하는 주전론자(鑄錢論者)다. 조선에서 화폐경제를 되살린 김육(金堉·1580~1658)과 같은 반열이라는 뜻이다. 묘하게도 고려 때나 조선 때나 주전론을 관철시킨 인물은 둘 다 강력한 카리스마를 지녔던 동명이인 숙종(肅宗)이다.

육경신(六庚申)


'동의보감'의 내용 가운데에는 현대 서양의학으로는 이해할 수 없는 대목이 몇 군데 있다. 내경편(內景篇)에 나오는 '삼시충(三尸蟲)'에 관한 대목도 그 한군데이다.

삼시충은 '우리 몸에 있는 세 종류의 벌레를 말하는데, 첫 번째 것은 상충으로 뇌 속에 살고 있고, 두 번째 것은 중충으로서 명당에 살며, 세 번째 것은 하충으로 뱃속에 산다'고 되어 있다.

우리 몸에 이 벌레가 살기 때문에 도를 닦는 것을 싫어하고 의지가 약해지는 것을 좋아한다는 것이다(동의과학연구소 번역본 1449쪽). 이 삼시충을 잡지 못하면 생사윤회를 마칠 기약이 없다고 설명되어 있다.

과연 어떻게 잡을 것인가? 약물을 사용해서 잡는 방법도 있지만, 이보다는 육경신(六庚申)의 방법이 더 고차원적인 방법으로 도사들 사이에서 여겨져 왔다. 육경신은 수경신(守庚申)이라고도 부른다. 육십갑자 중에서 경신(庚申)일이 돌아오면 이날은 밤새 잠을 자지 않는 것이 그 방법이다.

경신일은 60일 만에 한 번 돌아오므로 1년이면 6번이 돌아온다. 이 여섯 번 동안의 경신일을 잠을 자지 않고 잘 지키면 육경신 수련을 성취한 것이다.

고려시대에 불가의 고승들도 이 경신일에 일절 잠을 자지 않고 날을 새우는 습관이 있었으며, 왕실의 왕자들도 이날이 되면 잠을 자지 않기 위해 친구들과 밤새 이야기를 하며 노는 관습도 있었다. 단 1초라도 졸면 실패한다.

필자는 문헌과 구전으로만 이 육경신 수련에 관한 이야기를 접해왔다. 얼마 전에 세간에 '화타'로 알려진 104세의 장병두(張炳斗) 선생을 만나 당신이 육경신을 몸으로 직접 실천한 이야기를 듣게 되었다.

경신(庚申)은 강건한 금기(金氣)로만 이루어진 날이므로, 산란한 우리 마음을 이루고 있는 목(木)을 자르기에 아주 좋은 날이라는 설명이다. 장 선생은 졸음을 참기 위해 칼로 자신의 왼손을 찔러 생긴 상처도 보여 주었다. 4~5번 정도 경신일을 성취해도 만물과 소통하는 기감(氣感)을 느낀다고 한다.

'육경신'을 성공하면 하늘로부터 면허증을 받는 셈이다. 내가 보기에 장병두의 신통한 의술은 상당 부분 이 육경신 수련의 결과이다. 그러나 그는 인간세계의 의료면허증 없이 불법의료행위를 했다고 고발당해서 현재 대법원에서 재판 중이다.

■‘全作주의자의 꿈’ 찾아 떠나는 가을기행



이곳에서는 책이 사람에게 말을 건다. 모든 책은 저마다의 사연을, 마치 늙은 보병의 훈장처럼 속표지에 달고 있다. 그 모습은 마을 어귀 느티나무 그늘에 앉아서 월남전 참전 이야기를 늘어놓는 나이든 외삼촌을 닮았다. 책 대신 책의 속표지만 보는 것도 흥미로운 ‘탐험’이다.

2001년 중쇄()된 이청준의 ‘당신들의 천국’ 속표지는 “다시, 사람만이 희망이다…(2001년 11월 30일)”라고 말한다. 8년 전 겨울이 시작될 즈음, 사람에게 상처받았던 여인이 다시 사람에 대한 희망을 말하고 있는 것일까. 볼펜으로 꾹꾹 눌러쓴 단정한 글씨체에 그 사람의 성품이 담겨 있다.

1992년 초판이 나온 무라카미 하루키()의 ‘양을 둘러싼 모험’에는 한자로 ‘청춘()’ 두 글자만 적혀 있다. 젊은 시절 하루키가 쓴 ‘질주하는 청춘’ 이야기에 누군가 공감했던 모양이다. 그는 1990년대 초반, 소설의 주인공과 비슷한 나이의 ‘청춘’이었을 것이다.

이곳에서는 흐르는 시간도 박제()된다. 시중 서점에 진열되는 온갖 종류의 신간 서적 대신 1990년대에 간행된 책들이 눈에 많이 띈다. 1990년대는 한국 출판계의 황금시대였으며 그동안 금서()로 묶여 있던 책들이 한꺼번에 쏟아져 나온 시기다.
그리고 그 많은 책들 중 상당수는 1990년대에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선보인 후 절판됐다. 그 시절 김수행 전 서울대 교수가 번역한 애덤 스미스의 ‘국부론’ 안에는 ‘KT’ 대신 ‘한국통신’ 글자가 선명한 붉은색 공중전화 카드가 꽂혀 있었다. 책뿐 아니라 그 시대 자체가 고스란히 박제된 셈이다.

이곳은 ‘헌책방’이다. 이곳에는 지나간 과거의 지혜가 문자 그대로 빽빽하게 쌓여 있다. 낡은 책들은 낡음이 곧 늙음은 아니라고 말하지만, 세상은 이제 낡음과 늙음이 동의어라고 말한다.

판단은 독자의 몫이다. 가을, 서울시내 헌책방을 찾아다니며 종이가 나이를 먹는 냄새를 맡는 당신은 진정한 ‘문화인’이 아닐까.

○ 온·오프라인 고객 비율 7 대 3 정도

23일 찾아간 서울 성동구 금호동의 헌책방 ‘고구마’는 발 디딜 틈조차 없을 정도로 책이 가득 차 있었다. 양 옆 벽면을 타고 올라선 책 때문에 통로는 한 명이 움직이기도 힘들 정도로 비좁았다.

어린 시절 ‘책으로 가득 찬 공간’을 꿈꾼 적이 있는 사람들에게 이곳은 바로 ‘천국’이다. 고구마는 한국 최대의 헌책방으로 ‘추정되는’ 곳이다.

이곳의 관리를 총괄하고 있는 엄승세 씨는 “소설과 인문서, 어린이도서와 잡지 등 모두 합쳐 40만 권 정도의 헌책을 보관하고 있다”고 말했다. 정확한 수치는 그도 모른다.

컴퓨터 데이터베이스에 누락된 채 주택가 창고에 보관하고 있는 책도 부지기수이기 때문이다. 고구마에서는 평일 오전 이른 시간에도 10여 명의 직원들이 책의 밀림을 헤치며 고객이 주문한 책을 찾고 있었다.

엄 씨는 “‘아마도’ 이곳이 한국에서 가장 많은 책을 보유한 헌책방일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런 이야기를 할 때는 가정형 문체만 쓸 수 있다. 어느 누구도 정확한 헌책방 통계를 모르기 때문이다.

취재 과정에서 서울시와 문화단체 등에 서울 시내 헌책방 수와 헌책 거래량 등을 알아보려 했지만 어디에서도 집계하고 있지 않았다. 헌책방협회도 없다.

고구마는 1984년 헌책방을 시작했다. ‘헌책=청계천’의 공식이 유효할 때다. 1998년부터는 국내에서 거의 처음으로 온라인 헌책 판매를 시작했다. 온라인 취급 이후 헌책계의 유명 서점이 됐다.

지금은 리브로 등 온라인 대형 서점들이 헌책 판매를 겸하면서 속속 실제 매장에도 헌책을 들여놓고 있지만, 당시까지만 해도 독보적이었다. 엄 씨는 “현재 온라인과 오프라인 고객의 비율이 7 대 3 정도”라며 “최근에는 직접 찾아오는 오프라인 손님들이 늘어 영업 시간을 오후 10시까지 연장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40만 권의 책 중에서 가장 소중한 ‘헌책’을 물어봤다. 소중한 책은 알 수 없지만 가장 ‘비싼’ 책 은 알 수 있단다. 이 헌책방에서 보관하고 있는 가장 값비싼 책은 1936년에 100부 한정본으로 출간된 백석의 시집 ‘사슴’. 이 책의 가격은 자그마치 5억 원이다.

엄 씨는 “백석이 직접 한정 출판한 시집인 데다 정지용 시인에게 선물하며 친필 서명을 달아 놓은 책”이라며 “5억 원이라는 가격은 어려운 국내 헌책방 시장을 도와줄 분들을 찾는다는 의미도 있다”고 말했다.

○ 100권만 찍은 백석 시집 ‘사슴’은 5억 호가

시간의 흐름에 무심할 것 같은 헌책방에도 베스트셀러가 있을까. 취재했던 헌책방 관계자들은 하나같이 ‘있다’고 대답했다. 신간 서적이 연도와 계절에 따라 베스트셀러가 바뀌듯, 헌책에도 ‘잘 팔리는’ 작가가 따로 있다는 설명이다. 헌책은 작가에 따라 판매량이 크게 바뀐다.

이들이 첫손에 꼽은 베스트셀러 작가는 조정래다. 고구마의 엄 씨는 “조정래 작가의 책은 매장에 쌓여 있는 모습을 보기가 힘들다”고 말했다. 보통 연권으로 구성된 대하소설은 덩치 때문에라도 쉽게 팔려나가지 않는다. 삼국지나 수호지 전집이 대표적이다.

하지만 조정래의 ‘태백산맥’이나 ‘한강’, ‘아리랑’ 등은 시리즈로 짝을 맞춰 놓기가 무섭게 팔려나간다. 신촌의 유명 인문사회서적 전문 헌책방인 ‘숨어있는 책’을 찾았을 때도 조정래의 태백산맥을 ‘모자이크 맞추기’ 형식으로 한 권씩 수집하는 손님이 있었다. 이 밖에 이윤기, 안정효 등이 헌책방계에서 더욱 빛나는 작가다.

헌책방은 일반 서점보다 ‘작가 파워’가 강하다. 헌책방을 탐험하는 헌책 마니아들이 주로 작가 위주로 책을 모으다 보니, 인기 있는 작가는 직접 집필한 책뿐 아니라 번역한 책까지 동이 나는 경우가 흔하다.

‘숨어있는 책’을 운영하는 이미경 씨는 “신경숙이나 은희경 등 베스트셀러 작가는 시중에 나온 물량도 많아 인기가 덜하다”며 “절판된 책이 많고 인문학적 소양을 지닌 작가의 책이 헌책방의 베스트셀러”라고 말했다.

인문학과 사회과학 도서는 얼마 남지 않은 국내 헌책방의 꾸준한 효자다. 자연과학서적은 워낙 이론 흐름이 빨리 바뀌다 보니 오래된 책을 찾는 이가 드물다. ‘괜찮은 번역의 해외 인문학 원전()’이 헌책방에서 가장 안정적으로 팔리는 책이라는 게 이 씨의 설명이다.

학기 초만 되면 헌책방에서 많이 팔리는 대학 교재나 중고교 학습서는 어떨까. 의외로 이런 책들은 팔기 힘든 책이다. 헌책방 입장에서도 ‘리스크’를 안고 사들이는 책들이란다.

1974년부터 운영된 서울 신촌 ‘공씨책방’의 최성장 씨는 “흔히 대학 앞에 있으면 교재 판매 장사가 잘될 것이라고 생각하지만 헌책 중에서 가장 취급하기 힘든 게 대학 교재”라며 “워낙 종류가 많고 개정판도 자주 나와 자칫 잘못하면 폐지로 넘기는 상황이 발생한다”고 귀띔했다.

○ 헌책 고르기, 왕도()는 없다


헌책방 입문자들이 가장 많이 하는 질문이 ‘헌책 잘 고르는 방법’이다. 헌책방은 일반 서점과 달리 별다른 계통 없이 서가에 꽂혀 있는 책이 많을뿐더러, 주인조차 책이 어디에 있는지 모르는 경우가 많다.

“헌책방 한번 가 볼까” 하고 생각하다가도 쉽게 포기하는 이유는 누구도 어떤 책이 어디에 있는지 알려주지 않기 때문이다. 무수한 ‘책더미’ 속에서 원하는 책을 고르는 좋은 방법이 있을까.

정답은 유감스럽게도 ‘없다’이다. 오직 발품 파는 만큼 책 고르는 안목도 커지고 원하는 책을 발견할 확률도 높아진다. 공씨책방 최 씨는 “자주 오는 사람들은 내가 어디에 있는지 모르는 바닥에 깔린 책까지 귀신처럼 찾아낸다”며 “그렇게 한 책방 한 책방을 ‘탐험’하는 것이 인터넷으로는 맛볼 수 없는 헌책방의 묘미”라고 말했다.

그래도 초심자들에게 충고할 수 있는 부분은 있다. 우선 특정 작품만 염두에 두고 헌책방 한 곳을 찾지 말라는 것이다. 없을 확률이 크다. 헌책방을 순례하는 사람들이 작가 위주로 책을 모으는 것도 그 때문이다. 또 충동구매는 금물이다.

기본적으로 표지 가격의 30∼40%에 불과한 싼 가격 때문에 초보자들은 필요 없는 책을 잔뜩 사들일 가능성이 많다. 고구마의 엄 씨는 “평상심을 가지고 천천히 헌책방을 돌아보는 사람이 진정 헌책방을 즐길 수 있다”고 조언했다.

글=박재명 기자
디자인=공성태 기자 
 





▼“한 작가의 모든 책을 찾아 읽는 것 자체가 행복”▼
‘헌책방 키드’ 조희봉 씨




“이제 헌책방 자체가 사양길이라고 생각합니다. 아마도 돌이킬 수 없겠죠. 하지만 헌책만이 줄 수 있는 매력을 포기하는 건 쉽지 않을 겁니다.”

조희봉 씨는 헌책 마니아들 사이에서 유명 인사다. 그는 2003년 ‘전작주의자의 꿈’이란 헌책방 관련 책을 내고 일약 ‘헌책방 스타’로 떠올랐다. 그는 이 책에서 헌책을 모을 때 한 작가의 모든 책을 사 모으는 ‘전작주의’를 말했다.

작가 위주로 사들이는 것이 ‘정석’인 헌책 수집을 가장 잘 표현한 말이었기에, 전작주의라는 말은 헌책방 ‘순례자’들 사이에 빠르게 퍼져나갔다. 그가 제시한 작가는 이윤기에서 시작해 안정효, 김우창, 고종석 등 지금도 헌책방계에서 ‘잘 팔리는’ 작가들이다.

26일 전화로 인터뷰한 조 씨는 ‘헌책방의 죽음’을 말했다. 지금까지 5000여 권의 헌책을 모은 ‘헌책방 키드’가 헌책방의 종말을 예고하다니, 왜일까? 그는 “인터넷이 헌책방을 완벽하게 죽였다”고 말했다.

조 씨는 2006년 서울의 직장을 버리고 고향인 강원 화천군의 별정우체국인 상서우체국장으로 부임했다. 서울을 벗어나 고향으로 돌아오니 헌책방의 죽음이 더욱 또렷하게 보인단다.

“저부터도 온라인 대형 서점의 헌책 코너를 이용하고 있습니다. 헌책 품질도 사실 그쪽이 더 좋을뿐더러 편리하기까지 하니, 헌책방들이 자꾸 죽어가는 거겠죠.”

그래도 헌책방 키드의 마음은 여전하다. 헌책방을 잘 이용할 수 있는 방법을 물으니 열변을 토한다. 그는 “헌책방을 다니기 위해서는 신간 정보를 꼼꼼하게 살펴야 한다”며 “원하는 책은 언젠가는 나타나며 그 순간을 챙기기 위해 신간을 체크하는 게 노하우”라고 말했다.

최근에도 한 작가의 ‘전작’을 모으는 전작주의를 고수하고 있을까. 그는 “헌책뿐 아니라 책을 읽는 가장 좋은 방법이 작가를 파고드는 것”이라며 “지금도 열심히 모으는 작가가 있다”고 말했다. 최근에는 소설가 김원일과 평론가 김병익이다.

“전작을 모으기 위해서는 꾸준히 작품 활동을 할 수 있는 사람을 선정해야 합니다. 사실 20∼30년 동안이나 책을 쓸 수 있다면 그것 자체로 ‘훌륭한’ 작가라고 할 수 있어요. 그런 글을 읽는 것 자체가 행복 아닐까요.”


박재명 기자



성장 김행령, 그림 제공 포털아트
절친한 친구가 암으로 세상을 떠났습니다. 건강하고 한없이 쾌활하던 그에게 말기 암 판정이 내려졌을 때 주변 사람은 하늘이 무심하다고 원망했습니다. 그리고 그가 6개월 동안 투병하면서 눈 뜨고 볼 수 없는 통증에 시달릴 때 주변 사람은 아무런 위안이 될 수 없었습니다.

자주 가던 병문안도 끔찍스러운 통증에 시달리며 깡말라 가는 그의 외관을 지켜보는 게 너무 힘들어 차츰 뜸해지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가족도 이미 정해진 일이 된 죽음을 현실로 받아들이지 못해 환자와 진배없는 고통을 느끼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어느 날 병문안을 갔을 때 친구는 진통제를 맞고 모처럼 편안한 자세로 앉아 있었습니다. 가난하던 어린 시절 얘기를 하며 웃다 울다 가끔 긴 한숨을 내쉬곤 했습니다. 그리고 한동안 멍하니 앉아 있다가 문득 이런 말을 했습니다. “이별은 그렇게 나쁜 게 아니야. 세상의 모든 만남은 이별을 전제로 한 것이니 이별이 이루어져야 비로소 의미가 생기는 거야.”

친구는 주변 사람보다 더 오래, 더 깊게 이별에 대해 생각하고 있었습니다. 자신이 남기고 가는 모든 것과의 관계성을 낱낱이 더듬어 어린 시절까지 거슬러 올라가고 그것을 통해 인생 전체가 하늘의 별처럼 많은 만남과 이별로 이루어진다는 걸 깨달았습니다.

그는 이별이 지극히 자연스러운 일이라는 걸 알았고 이 세상에 이별로부터 자유로운 사람은 아무도 없다는 걸 알았습니다. 이별이 이뤄진 뒤에 우리는 대상의 부재를 통해 오히려 존재의 의미를 깨치게 됩니다. 함께 머물 때는 모르던 소중함, 빛남, 눈부심, 반짝임 같은 것이 벅차올라 우주 전체가 부재의 공간처럼 한없이 허전하게 느껴집니다.

친구가 떠난 뒤에 남은 사람은 그의 존재가 얼마나 크고 웅숭깊었는지 절감했습니다. 그가 세상에 남긴 인생의 흔적이 이별 뒤에 그렇게 크고 환하게 되살아날 수 있다는 게 참으로 신기하게 여겨졌습니다. 그래서 슬퍼해야 할 장례식장에서 사람들은 숱한 덕담을 나누며 한없이 뿌듯하고 가슴 벅찬 기쁨을 나누었습니다. 그가 말한 이별의 진정한 의미가 이런 것이로구나, 오래오래 그의 말을 되새기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사람들은 이별을 두려워합니다. 이별이 세상 모든 일의 끝인 줄 알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인생행로를 놓고 보면 이별은 아주 작은 과정에 지나지 않습니다. 이별과 맞닿은 새로운 시작이 매번 씨줄과 날줄을 엮어 각자의 삶을 새롭게 직조하기 때문입니다.

인생은 만남과 이별의 연속이고 그것을 통해 인간은 숙성합니다. 이별이 없다면 우정도 사랑도 의미를 얻을 수 없습니다. 이별을 겪은 후에 비로소 지나간 관계에 의미를 부여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좋은 이별의 누적은 영혼의 창공에 별을 수놓는 일처럼 아름답습니다.

우리 곁을 스쳐간 별처럼 많은 사람, 그들 모두가 우리 삶의 스승입니다. 좋은 사람은 좋은 것으로 가르치고, 나쁜 사람은 나쁜 것으로 가르치니 시간이 지나면 모두 가치 있는 가르침이 됩니다. 마음이 고달플 때, 이별의 가르침을 되새겨 보세요.


작가 박상우

이전 페이지 [ 1 | 2 | 3 | 4 | 5 | 6 | 7 | 8 | 9 | 10 ] 다음 페이지 다음 10번째 페이지